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54화 (153/202)

154. 여동생은 무섭다 (1).

강지아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할 말을 잃었다.

“용케 안 죽였네? 나 같으면 바로 요단강 관광시켜줬을 건데.”

“동생을 처음 만나는 날 살인은 좀….”

“하긴, 이렇게 예쁜 동생하고 재회하는 날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좀 그렇지.”

“형이 생각해도 우리 지아가 좀 예쁘긴 하죠?”

여동생 바보의 초기증상을 보이는 강현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도연우와는 다르게 강지아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기 후계자를 잃은(죽지는 않았지만) 신성 그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이,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신성 그룹에서 알면 분명 오빠에게 복수하려 할 거라고요.”

신성 그룹 회장인 신만철의 성격을 아는 강지아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강현과 도연우의 반응은 태평스럽기 그지없었다.

“오…빠….”

강현은 강지아가 자신을 오빠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감격한 듯한 얼굴로 눈을 감았고.

도연우는.

“킁. 복수? 현이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네. 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하려 할 거라구요.”

강지아의 말을 들은 도연우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조소를 베어 물었다.

“지아 네가 아직 오빠를 잘 모르는구나?”

“네? 그게 무슨….”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현이를 건드릴 사람은 없어.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도연우의 말에 강지아는 의문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 봤다.

“현이 저 녀석도 어설프게 당할 녀석이 아니지만, 저 녀석을 건드리면 서태촌, 구정철, 그리고 나, 도연우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도연우의 입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을 끌어 올렸다고 평가받는 SSS급 각성자 세 명의 이름이 주르륵 나열됐지만, 강지아는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입양아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녀 또한 재벌가의 일원으로 자라왔기에 재벌의 힘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물리적인 힘으론 어쩔 수 없다지만 언론과 정치 경제계에 뻗어있는 힘을 이용하면 한사람 매장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도연우의 입에서 나온 또 다른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는 도연우의 자신감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 한 분 더 추가해야겠네. 대현 그룹 강산호 회장님.”

“아….”

대현.

이제는 국민 기업이 돼버린 대한민국 1위, 세계 5위의 대기업.

대현의 왕회장 강산호는 재벌공화국 대한민국의 황제라 불리는 사람.

신성 그룹이 대한민국 10위의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대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

신성 그룹 회장실.

신만철은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두 아들 덕분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 대체 아연이에게 왜 그러신 겁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 그룹이 살자고 한일이니 더 입에 올리지 마라.

원망 어린 눈으로 신만철을 바라보던 큰아들 신영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이 되는 변명을 하세요. 아버지. 아연이를 쳐내야 그룹이 살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아연이가 후계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게 눈엣가시 같았다고 말씀하세요!”

그때 듣고 있던 둘째 신경훈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형. 아연이가 우위를 점하긴 뭘 우위를 점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만 봐도 우리 유빈이가 훨씬 유리했는데. 유빈이는 헌터계에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았고 아연이는 이름 하나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었잖아.”

“너 지금 그거. 아버지랑 네가 뒤에서 기자들한테 돈 먹인 걸 내가 모를 거로 생각하고 말하는 거냐?”

“돈을 먹이긴 무슨…. 광고 몇 개 넣어준 걸 가지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럼 형은 누구 핏줄인지도 모르는 애한테 신성 그룹 차기 후계자 자리가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 막말로 형은 대체 뭐한 건데? 그 애가 차기 후계자 경쟁에 참여 못 하게 말렸어야지. 애초에 말렸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잖아.”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왜.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어?”

“아연이 내 딸이고, 네 조카다. 함부로 말하지 마.”

“그래. 피 한 방울 안 섞인 조카지. 형하고 형수가 아연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까, 지금까지 예뻐해 준 것만으로도 난 작은아버지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되는데?”

점점 날카로워지는 두 아들의 언쟁에 신만철이 일갈했다.

“그만!”

말다툼을 벌이던 신경훈과 신영수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래서 늙은 아비한테 따지러 온 거냐?”

서릿발보다 차갑고.

“아연이가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요.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하지 않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해요.”

“그러니까 고작 집 나간 계집애 하나 찾겠다고 아침부터 이 아비를 닦달하러 온 거야?”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로운 신만철의 말이.

“아버지!”

“이제 네 딸도 내 손녀도 아닌 계집애다. 그룹의 힘을 그딴 곳에 쓸 생각 없어.”

신영수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아버지, 정말!”

“할 말 끝났으면 나가봐라. 바쁘다.”

그 무심한 축객령에 몸을 일으킨 신영수가 신만철을 노려봤다.

“기억하십니까? 25년 전 제가 후계자 경쟁을 포기하며 걸었던 조건은 하나였습니다.”

“기억한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형, 마나 중독 때문에 죽은 ‘진짜’ 아연이 때문에 후계자 경쟁 포기한 거 아니었어요?”

신영수는 발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신경훈을 일별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아버지가 먼저 약속을 깬 것도 인정하시겠군요.”

“…내가 그걸 인정하면 뭐가 달라지니?”

뻔뻔하기까지 한 신만철의 대답에 신영수는 입꼬리를 비틀어 말아 올렸다.

“그건…. 두고 보면 아실 겁니다.”

칼날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눈으로 아버지와 동생을 한 번씩 노려본 신영수는 그대로 등을 돌려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신영수가 떠나고.

“아버지 저게 무슨 말입니까? 두고 보면 안다니….”

신만철은 신경훈의 물음에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버지?”

하지만 신만철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진작 쉰이 넘은 아들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자식이 상처받지 않는 것.

그래서 신만철은 차마 ‘25년 전 후계자 경쟁에서 네 형이 너보다 더 후계자에 가까웠다.’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자존심 강한 신경훈이 그 말을 들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뻔히 보였으니까.

“됐고. 넌 아침부터 왜 왔어?”

아버지의 싸늘한 반응에 슬쩍 눈치를 본 신경훈은 이내 자신이 회장실에 올라온 이유를 말했다.

“어젯밤부터 유빈이가 연락이 안 됩니다.”

“그게 왜?”

“그게…. 어제 집에 들어오지 않길래 후계자로 결정됐겠다. 축하 파티나 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근데?”

“아버지가 붙여놓은 이 실장하고도 연락이 안 됩니다.”

“뭐?!”

먼저 내보낸 큰아들에 대한 걱정에 신경훈의 말을 흘려듣던 신만철은 이 실장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

“그야….”

신경훈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신만철은 이미 인터폰을 눌러 비서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전략기획실 박 과장 올라오라고 해.”

신성 그룹을 수호하는 각성자 집단인 신화는 요인 경호 시 10분마다 보고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 신화의 수장인 이 실장이 연락되지 않는다는 건 차기 후계자인 신유빈에게 뭔가 사고가 생겼다는 뜻이었으니까.

이 실장도 감당할 수 없는 사고 말이다.

***

신성 그룹의 그림자인 신화가 총력을 기울여 신유빈을 찾기 시작했을 때.

“너야?! 네가 이 새끼한테 나 납치하라고 사주했냐?!”

그 당사자인 신유빈은 강지아를 마주하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개, 돼지만도 못한 버러지 같은 년이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감히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독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쉼 없이 악담을 토해내는 신유빈은 강지아의 곁에 있는 강현과 도연우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저주와 같은 말을 이어갔다.

“왜?! 이렇게 하면 네가 다시 후계자가 될 줄 알았어? 신가의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인 네년을 할아버지가 후계자로 삼을 줄 알았냐고!!”

신유빈이 이토록 분노한 이유는 명확했다.

부서져 버린 마나홀.

그것에서 오는 상실감.

신가의 가법에 따라 마나홀이 부서져 각성자라 불릴 수 없게 된 자신은 이제 신성 그룹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성 그룹의 후계자라는 찬란한 영광을 손에 거머쥐었던 그였기에 한순간에 그것을 잃어버린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역시, 만나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신유빈이 동생을 보며 저주와 같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강현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이번 일, 마무리는 제가 하고 싶어요. 모든 게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라는 강지아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널 가만 놔둘 것 같아?! 너랑 네 그 친오빠라는 새끼랑 잡아다가 몬스터 밥으로 던져줄 거야! 내가! 우리 신성 그룹이 못할 것 같아?! 못할 것 같냐고!!”

신유빈의 살기 섞인 협박이 귓가를 쩌렁쩌렁 울릴 때였다.

또각.

독설을 가만히 듣고 있던 강지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서로를 마주한 신유빈과 강지아.

살기 섞인 신유빈의 눈빛과 한기가 서린 강지아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피식.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린 강지아가 신유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넌, 어쩜 변하지가 않니?”

“…뭐?”

“나이를 그 정도 먹었으면 이제 철이 들 때도 됐잖아. 개, 돼지? 여전히 천박하고 저렴한 말투야. 딱 너랑 어울리는.”

“너…. 이 썅!!”

“썅! 뭐!”

“…….”

“넌 여전히 우주가 너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지? 네가 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지금 네 꼴도! 일이 이렇게 된 것도!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인데! 여전히 너는 남 탓만 하네? 어릴 때랑 똑같이.”

강지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신유빈은 입술을 꼼지락거릴 뿐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나랑 내 오빠를 어떻게 하겠다고? 몬스터 밥으로 던져줘?”

“…….”

마나홀이 부서져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어진 신유빈이 감당하기에 강지아가 내뿜는 기운은 너무 차가웠다.

“유빈아. 신유빈. 정신 차려. 신성 그룹 후계자가 아닌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평범한 재벌 4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재벌 4세가 평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강지아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성 그룹의 후계자와 그저 재벌 4세의 이름값은 같은 저울에 올려놓기도 민망할 만큼 그 무게에 차이가 있었으니까.

“할 수 있으면 해봐. 네가 그 짓거리 할 동안 나는 그냥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까? 너랑 나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후계자 경쟁하던 사이였어. 네가 할…아버지랑 작은아버지 등에 업고 이미지 세탁하는 동안 나는 놀고 있었을 것 같아?”

할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강지아는 하고자 하는 말을 끝냈고 그녀의 말을 곱씹던 신유빈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너…너 설마?”

“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너! 이 썅….”

“경고하는데!!”

뭔가가 떠오른 듯 욕설을 내뱉으려던 신유빈은 강지아의 고함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한 번만 더 욕하면 협상 같은 건 없어.”

“…….”

“그러게 작작 좀 하지 그랬어. 마약에, 폭행, 서포터에게 갑질에, 미성년자…. 이건 내 입으로 말하기도 더럽다. 이딴 짓을 하고도 너는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허…. 내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고?”

“그럼 내가 너랑 네 아버지가 하는 짓거리에 그냥 멍하니 처맞을 줄 알았니?”

‘독한 년. 어쩐지 근래 조용하다 싶더라니. 뒤에서 이런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어?’

강지아에게 숨겨놓은 카드가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신유빈은 비릿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너도 알지? 그런 거 기사 한 줄 안 실릴 거라는 거. 그게 풀리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그룹 전체에 폭탄이 던져지는 건데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으실 것 같아?”

재벌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신성 그룹의 허락 없이 그딴 기사를 내보낼 언론은 없었으니까.

“알지. 이젠 아니지만…. 나도 명색이 재벌가 밥을 25년 넘게 먹었는데 그걸 모를까?”

“그런데 그게 협상 카드로 쓰일 거로 생각해? 넌 이미 신성 그룹 후계자인 나에게 위해를 가했고 신성 그룹의 적이 됐어. 거기에 그런 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할아버지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너를 가만히 두고 보실까?”

“그래 분명…. 손을 쓰시겠지. 그래서 할아버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준비해 뒀어.”

“뭐?”

“유럽, 미국, 중국, 일본. 외국에서 때리기 시작하면 그분이 어떻게 하실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한기가 풀풀 넘치는 강지아의 물음에 신유빈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외국에서 내 기사가 터지고 그게 그룹에 해가 된다면….’

할아버지는 자신을 법정에 세우고 죗값을 치르게 할 거란 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으니까.

후계자도 아닌 손자보다는 그룹.

그게 신유빈이 아는 신성 그룹 회장 신만철이었다.

“어때? 이제 협상할 마음이 들어?”

그런 신유빈의 귓가에 들려온 강지아의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거부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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