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재회 (3).
“허허. 꽤 일을 크게 벌이셨네요.”
뒤늦게 드론을 타고 날아온 최종혁 부 길드장이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처참하게 파괴된 차량과 검게 그을린 폐공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다면 시체인 줄 알았으리라.
“그래도 살려는 두셨네요.”
최종혁의 말에 강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창석에게 의뢰주의 이름과 그 목적을 듣고 눈이 뒤집혀서 날아왔기에 사망자를 만들지 않은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살려만 뒀죠.”
말 그대로 살려만 둔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마나홀은 일부러 파괴하신 거죠?”
“저런 쓰레기들을 각성자로 살아가게 놓아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납치, 인신매매, 장기매매, 청부살인, 마약유통.
이창석에게 들은 놈들의 불법적인 범죄행위였다.
“흑점(黑店)이라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중국 화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범죄조직이죠.”
“알고 계셨어요?”
“각성자 사이에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동안 욱일회에 가려져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죠.”
“그 말은 욱일회가 사라져서 놈들이 활개를 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욱일회라는 거악이 사라지니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원래 이런 범죄는 경찰 담당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말한 최종혁의 눈이 포션으로 치료를 받는 흑점의 일원들에게 향했다.
“욱일회가 대한민국 전복을 노렸던 테러단체라면 흑점은 조폭 정도일 뿐이죠. 단지 일반적인 조폭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각성자들이 주 구성원이라는 거구요.”
치료를 받는 이들이 약 스무 명.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흑점의 특성상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놈들을 일별한 최종혁의 시선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신유빈에게서 멈췄다.
“그나저나 동생분 납치를 의뢰했던 자가 신성 그룹 신유빈이라니…. 일이 좀 복잡하겠네요.”
걱정 섞인 최종혁의 말에 강현은 담담히 대답했다.
“복잡할 것 없습니다. 놈은 이제 신성 그룹 후계자가 아니니까.”
그 말에 최종혁은 놀란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설마. 신유빈의 마나홀도 파괴하셨습니까?”
“그냥 놔둘 이유가 없지 않나요?”
당연하다는 듯한 강현의 대답에 최종혁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대체 어떤 논리회로를 가지면 후계자의 마나홀을 파괴한 게 복잡하지 않을 수 있는 겁니까.’
최종혁은 강현의 정신세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길드장이랑 호형호제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신성 그룹 차기 후계자의 마나홀을 부숴놓고 마나홀이 부서져서 후계자가 아니게 되었으니 복잡할 게 없다는 논리는 어떻게 하면 나오는 걸까.
최종혁은 할 수만 있다면 강현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천재였지?’
어딘가 길드장인 도연우와 잘 통한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강현도 평범한 부류는 아니었다.
각성한 지 5개월 만에 S급으로 승급한 전무후무한 남자.
커다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통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어떤 면으론 도연우보다 더 천재로 불려야 할 남자였다.
‘길드장은 어려서부터 꾸준히 수련이라도 했지….’
자신이 들은 바론 강현의 각성 전 직업은 던전 청소부였으니까.
“신유빈에 관한 건 제가 처리할 테니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어진 강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 최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흑점 쪽은 저희가 경찰과 공조해서 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지아 납치와 관련된 인물들은 이미 모두 잡힌 상황이지만 최종혁은 이참에 서울에 있는 흑점을 깡그리 솎아낼 참이었다.
그동안은 던전 관리라던가 욱일회에 대한 대처 때문에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욱일회가 전멸하다시피 한 이상 이젠 여유가 생길 테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최종혁의 헌터 와치가 울음을 토해냈다.
“강현 씨. 동생분이 깨어나셨다네요.”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최종혁의 말에. 강현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설렘, 두려움, 긴장. 수만 가지 감정이 파도처럼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지아가 내가 오빠라는 걸 부정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부터.
‘만나면 뭐라고 인사하지? 안녕. 내가 네 오빠인 강현이야 만나서 반갑다?’
‘혹시 내가 너무 오지랖 부린 건 아닐까? 신유빈이랑 사이가 좋았던 거였으면 어떻게 하지?’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강현의 심리상태를 보자면 근래에 가장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강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최종혁에게 말했다.
“이 둘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강현이 말한 두 사람은 신유빈과 이 실장.
최종혁으로선 골치 아픈 일을 덜어내는 셈이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곳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최종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온몸에서 전류를 뿜어냈다.
파르스름한 뇌전에 휩싸인 강현은 이내 채찍과 같은 전류 다발을 뿜어내 신유빈과 이 실장을 옭아매고 몸을 띄웠다.
번쩍-!
콰르르릉!
최종혁은 그렇게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강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주차장에 내차 빼놓으라고 얘기를 했던가?”
몇 달 전 큰맘 먹고 지른 자신의 애마가 걱정되는 최종혁이었다.
***
한울 길드 접객실.
벌컥.
정신을 차린 뒤 한울 길드원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있던 신아연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가 왠지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
언제가 한번 본 듯한 얼굴.
“아. 강현 씨 오셨군요.”
강현.
‘요즘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신급 몬스터를 처치한 남자’가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라고?’
마나의 묘약 개발, 2천 명이 넘는 마나 중독 환자들에게 마나의 묘약 무상 배포.
천문학적인 거금을 자선단체에 기부.
구름 가오리를 사냥하는 데도 일조했다는 남자.
TV고 인터넷이고 강현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는 상태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왜?’
신아연은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강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중되는 매스컴을 피해 자택에 칩거했다고 들었으니까.
“신아연 씨 이쪽이 신아연 씨를 구해준 강현 씨입니다.”
“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신….”
한울 길드원의 말에 강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던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너는 신 씨가 아니다.’
‘너는 내 손녀가 아니야.’
할아버지. 아니 할아버지라고 믿었던 신만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기 때문이다.
그때.
아무 말 없이 그런 신아연을 바라보던 강현이 입을 열었다.
“강지아.”
“네?”
“강지아. 네 이름이야.”
“그게 무슨…?”
강현은 자신의 맥락 없는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울 길드원을 향해 말했다.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아…. 네, 넵.”
그렇게 길드원이 접객실을 떠나고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신아연의 물음에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지아가 제 이름이라는 게 무슨 말이죠?”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머뭇거리는 동생을 보자 충동적으로 강지아라는 이름을 말해버린 강현이었지만 이어진 신아연의 물음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접객실까지 걸어오는 동안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아치며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5년 만에 마주한 동생.
동생이라 생각하고 얼굴을 보니 자신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일단 앉으시죠.”
그렇게 신아연에게 자리를 권한 강현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이제 말해주세요.”
강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신아연의 떨리는 눈을 마주하곤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25년 전…….”
강현은 동생의 눈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부터 천천히.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
한울 길드 길드장실.
“어…. 이 여성분이 네 동생이라고?”
날이 새도록 토플란 시스템 속에 있다가 나온 도연우는 황당한 소식에 어이없는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친동생?”
“네. 25년 만에 만난 제 동생이요.”
대답하는 강현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어 도연우는 더는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오빠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친형처럼 챙겨 주셨다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도연우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강지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와 얼룩진 볼을 보자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 그러니까 이쪽….”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도연우를 향해 강현은 동생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말했다.
“지아요. 강지아.”
다시는 잊지 말라는 듯이.
“그래 지아 씨.”
“네. 도연우 길드장님.”
퉁퉁 부은 얼굴로 도연우의 부름에 대답하는 강지아의 목소리엔 긴장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세계에 6명뿐인 SSS급 각성자이자 대한민국 모든 각성자들의 우상으로 추앙되는 천재 도연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에이-. 길드장님이라니, 너무 딱딱하다. 내가 현이 형이니까. 지아 씨도 날 오빠라고 부르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어…. 네.”
“그럼 호칭 정리는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아래층에 잡혀 있는 세 사람 현이 네 작품이야?”
“네. 형.”
“뭐 하는 놈들인데?”
“지아의 납치를 사주한 놈과 그놈을 지키던 놈. 그리고 납치하려던 놈이요.”
“와-. 아주 나쁜 놈들이네. 그래서 우리 부 길드장이 퇴근도 못 하고 바빴구나? 난 흑점하고 엮인 일이라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지.”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처음 듣는 말에 강지아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납치를 사주한 사람이라뇨? 아깐 그런 말 없으셨잖아요.”
“그건…. 네가 상처받을까 봐…….”
“그 말은…. 제가 알면 상처받을만한 사람이 납치를 사주했다는 뜻이네요?”
어딘가 날카로운 강지아의 질문에 강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군데 그 쓰레기가?”
옆에서 듣고 있던 도연우의 물음에 곁눈질로 강지아의 안색을 확인한 강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성 그룹 신유빈이요.”
“네? 신유빈이 왜요?”
“신유빈? 그게 누구야?”
강현이 신유빈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강지아와 도연우는 다른 반응을 내보였다.
강지아는 신유빈이 왜 자신을 납치하고자 했는지가 의문이라면 도연우는 신유빈이라는 이름 자체를 알지 못했다.
“네가 자신하고 후계자 경쟁을 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나 봐.”
“하긴…. 그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사람이 입양아하고 후계자 경쟁을 했다는 걸 알았으니 그럴 만하겠네요.”
신유빈의 성격을 아는 강지아가 이해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 도연우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 둘만 아는 이야기 할 거야? 그 신성 그룹 신유빈이 누군데?”
“신성 그룹 차기 후계자요. 뭐 이젠 후계자가 아니게 될 테지만요.”
“응? 왜?”
“알아보니까 신성 그룹 후계자는 각성자여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마나홀을 부숴버렸어요.”
“네?! 정말요? 대체 왜요?!”
그 말은 들은 강지아가 퉁퉁 부은 눈을 부릅뜨고 놀란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그야. 너를 납치하려 했으니까. 그것도 흑점이라는 질 나쁜 조직까지 이용해서.”
그리고 돌아온 너무나도 당당한 대답에 강지아는 황당한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그, 그렇다고 마나홀을 부숴버리면 어떻게 해요…….”
새로 생긴 친오빠가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