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재회 (1).
꽈르르릉-!
뻔-쩍!
하늘이 무너진다.
적어도 벼락을 맞는 당사자인 소정환은 그렇게 느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며 끓어오르고.
퍼퍼퍼퍼펑---!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폭발의 여파로 터져나갔다.
삐-융. 삐-융.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유리창이 터져나가며 경보음이 골목을 울렸지만, 소정환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폭음 때문에 귀가 먹먹한 것도 있었지만.
빠지지직-.
자신의 눈앞에 서서 푸른색 뇌전을 뿜어내는 사내의 기세에 압도당한 영향이 더욱 컸다.
‘이…. 이 새끼 뭐야?’
순간 소정환의 머릿속으로 뇌전을 다루는 각성자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대한민국에 있는 각성자 중 뇌전으로 유명한 이는 누가 뭐래도 뇌왕(雷王) 오나연.
하지만 오나연도 이런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늘에서 번개와 함께 떨어져 내리는 것은 말이다.
“흡.”
푸르스름한 뇌전이 일렁이는 눈동자가 소정환을 직시하자 그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너…. 나랑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군.”
뇌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는 다르게 한없이 차가운 사내의 목소리가 먹먹하던 귀를 뚫고 들어와 소정환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기다려.”
사내는 기다리라 말했지만, 소정환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꿀꺽.
날카로운 촉들이 소정환에게 겨눠진 채로 수십 개에 달하는 화살이 허공에 떠 있었다.
허튼짓하면 꿰뚫어 버릴 것처럼.
***
지금 급한 건 저런 쓰레기가 아니다.
단죄해야 할 쓰레기를 일별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생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가 고블린과 싸운 후 죽어가고 있을 때 선뜻 내게 포션을 사용해줬던 각성자.
신아연.
아니, 강지아.
‘이 세상 하나뿐인 내 혈육, 내…동생.’
25년 만에 이뤄진 동생과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다.
씨드를 통해 들은 놈의 통화 내용이라든가 혼잣말은 이게 단순한 범죄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납치…. 하지만 누가?’
순간 수많은 가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고개를 흔들어 지워 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재킷을 벗어 동생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일단은 동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먼저였으니까.
“씨드.”
“네. 사령관님.”
“도망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해. 한 놈도 빠짐없이.”
“네. 사령관님.”
명령을 받은 씨드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샤이닝 에로우 몇 대가 허공을 날아 사라졌다.
“스킬 사용. 뇌신일체.”
빠지지직.
순간 몸속에서 푸른색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컥!”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
고개를 돌려보니 샤이닝 에로우에 왼손을 꿰뚫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쓰레기가 보였다.
꼼지락거리더라니 허튼짓을 하다 씨드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저 새끼도 데리고 가야겠지?’
곧 놈의 동료들이 올 텐데 괜히 놔두고 갔다가 도망이라도 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샤이닝 에로우로는 불안하니까.’
샤이닝 에로우로 제압 가능한 각성자 등급은 C급.
B급 각성자만 해도 회피나 방어해낼 수 있고 A급 각성자라면 샤이닝 에로우로 제압하는 게 불가능하다.
저 쓰레기의 동료 중에 A급 각성자가 있다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란 소리였다.
아니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의 입을 막을 가능성도 있고.
‘하는 수 없지….’
나는 쓰레기를 향해 뇌전을 뿜어냈다.
푸른색 뇌전이 채찍처럼 놈의 허리를 휘감았다.
“끄아아악!!”
물론 녀석이 감전돼 고통에 몸부림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빠지지직!!!
오히려 놈이 더 고통받기를 바라며 방출되는 힘을 늘렸다.
“끄---어어억!!”
뭐. 죽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렇게 쓰레기까지 포박한 나는 가볍게 몸을 띄웠다.
번-쩍!
순간적으로 빛이 명멸하고.
꽈르르르릉!!
뒤늦게 거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다 좋은데 시끄러운 게 흠이네.’
신의 권능인 전뢰화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기에 SSS급 스킬인 뇌신일체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도착했다.’
나는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다.
서 영감님과 구 영감님을 제외한 대한민국 최강자들이 모여 있는 이곳.
한울 길드 본사에.
꽈르르릉.
번쩍.
꽈아아앙.
그렇게 낙뢰와 함께 떨어져 내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변고를 느끼고 뛰쳐나오자마자 각자의 무기를 내게 겨눈 10대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
다행히 헤프닝은 쉽게 수습됐다.
길드장들을 수행하는 길드원들답게 몇몇이 내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 아스팔트가 좀 녹아내리고 차량 몇 대와 기물이 파손되긴 했지만 그건 사과와 함께 변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강현 씨 이렇게 급하게 어쩐 일이십니까?”
그렇게 올라온 길드 접객실.
연우 형과 함께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는 한울 길드 부 길드장이 내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저…분들은 또 누구고요?”
나와 함께 온 두 사람의 정체도 함께.
접객실의 소파에 뉘어져 있는 동생과 타다만 쓰레기처럼 검게 그을린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
누가 봐도 다른 대우에 부 길드장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일단. 이쪽은 제 동생입니다.”
“동생…이요?”
내 대답에 부 길드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혈혈단신 고아인 것을 그도 알고 있으니 동생이라는 말에 의문을 가진 것일 터.
“그럼 이쪽은….”
“그 쓰레기는 제 동생을 납치하려던 놈이고요.”
부 길드장이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납치라고요?!”
“그래서 한울 길드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
그건 동생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한울 길드의 힘을 이용해 납치범들을 잡아들이기 위함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샤이닝 에로우 몇 대가 저 쓰레기의 동료들을 추적 중이고.
그 과정에서 나는 놈들이 꽤 체계적인 조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수도 만만치 않고 말이다.
물론 나 혼자서 놈들과 싸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문제는 빗방울에 놀란 개미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있는 놈 중 몇을 내가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우 형의 도움을 받아 놈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는데.
“죄송하지만. 저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길드원을 함부로 사적인 일에 동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미처 연우 형이 토플란 시스템 안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해합니다. 당황스러운 부탁을 드려 제가 더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길드장님이 계셨다면 반드시 도와드렸을 거란 걸 알지만, 이게 제가 명령을 내리는 건 월권이라서…. 이것 참. 도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강현 씨.”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 길드장의 목소리에는 도와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묻어나왔으니까.
무리한 부탁은 오히려 좋은 관계마저 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지 혼자서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생각을 정리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였다.
“강현 씨.”
부 길드장의 목소리가 내 걸음을 붙들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혹. 지난번에 길드장님이 건넨 물건 가지고 계십니까?”
“연우 형이 건넨 물건이요?”
부 길드장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나는 곳 그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혹시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전면에는 연우 형이 사용하는 신창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힘 있는 글씨체로 ‘한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금속 재질의 카드.
신창패(神槍佩).
한울 길드가 관리하던 던전의 인벤토리 청소를 모두 마쳤던 날, 연우 형이 한울의 은인에게 주는 증표라 말하며 건넸던 그것이었다.
신창패를 확인한 부 길드장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한울의 최종혁이 한울의 은인을 뵙습니다.”
갑작스러운 극진한 인사에 놀란 내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강현 님.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것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어…. 어. 네.”
마치 내 일이 제 일인 것처럼 나서는 모습을 보니 최종혁 부 길드장에게 필요한 건 명분이었나 보다.
나를 도울 수 있는 명분.
그렇게 내 사적인 부탁을 한울 길드의 은인을 돕는 공적인 일로 만든 그는 불과 3분이 지나기 전에 이곳저곳 통화를 마치더니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연락이 올 겁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얌전히 앉아 놈들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잠시 동생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동생을 납치하려 한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요.”
납치하려 한 놈들과 납치를 사주한 놈들까지.
이번 일과 관련된 놈들 모두가 벼락을 맛본 이후라면 모를까.
내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부아아앙-.
승합차 한 대가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폭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그 위험한 질주에 주변의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지만, 운전자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씨X! X 같은!!”
쾅!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핸들을 내리치는 남자의 이름은 이창석.
소정환과 통화했던 동료이자 신아연을 의뢰주에게 운반하기로 한 운반책이었다.
하지만 일이 틀어졌다.
통화를 끝내고 현장에 도착한 이창석이 본 것은 수많은 인파. 그리고 여기저기 터지고 녹아내린 전투의 흔적이었다.
이미 일은 틀어졌고 의뢰주가 요구한 목표도, 작업을 친 동료도 사라진 상황.
거기서 이창석은 빠른 판단을 내렸다.
도주.
사라져 버린 소정환을 제외한 동료들에게 잠적할 것을 명령하고 위에도 일이 틀어졌음을 보고했다.
불과 1분 만에 모든 절차를 마친 그는 헌터 와치를 풀어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거칠게 차를 몰아 현장을 벗어났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추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대처는 더 빨랐다.
일이 벌어진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들어서는 길목마다 각성자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울 길드의 길드원들이.
검문한다는 건 찾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고 이창석은 그들이 찾는 게 왠지 자신인 것 같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대체 한울 길드가 왜? 그 새끼가 벌써 불었나?’
사라진 소정환이 의심됐지만 모를 일이었다.
‘신아연이 한울 길드와 연관이 있었나?’
목표물이었던 신아연이 한울 길드와 무언가 관계가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일은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였다.
의뢰주와 목표물, 거기에 한울 길드에 빠른 대처도.
위에서 오더를 주기에 일을 하긴 했지만 하면서도 영 꺼림칙했던 게 사실이다.
‘빌어먹을 이번 일은 하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를 해 봤자 이미 버스는 떠나갔고 자신은 10대 길드 중 하나인 한울 길드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끼익.
한강변에 차를 세운 이창석은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둠 속에서 발현한 그의 스킬이 흔적과 기척을 지워 그를 감춰 주었다.
‘다행히 아직 추격자가 붙은 건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그는 인벤토리에서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드론을 불렀다.
지상으로 서울을 빠져나가는 건 막혔다 하더라도 드론을 타고 빠져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요금이 좀 많이 나오겠지만 뭐 어떠랴.
노숙자 명의로 만든 대포폰이니 한번 쓰고 버리면 그만이다.
“후….”
그렇게 드론을 부른 이창석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꾸르르르릉!!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뻔-쩍!
꽈과과과광!!!
내려친 낙뢰에 그가 타고 왔던 승합차가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나갔다.
“허….”
갑작스러운 변고에 이창석이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나직한 탄성을 토해낼 때였다.
덜그럭. 쾅!
이제는 차라고 부르기도 뭣한 것의 잔해를 해치고 한 인영이 불길 속에서 빠져나와 걸음을 움직였다.
마치 이창석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안다는 듯이 그를 향해 똑바로.
그리고 은신 스킬을 펼친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창석은 깨달았다.
‘X됐다.’
자신이 X됐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