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50화 (149/202)

150. 25년 만의…. (2).

비척비척.

갈 곳 잃은 발걸음이 거리를 헤맸다.

“야. 저기 봐….”

“뭐야. 저 여자. 실연이라도 당한 거야? 왜 길 한복판에서 울고 있어?”

“와 씨! 우는 것도 예쁜데 내가 한번 꼬셔 봐?”

인파가 가득한 강남의 한복판을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는 신아연.

그런 그녀를 보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아직 신만철에게 전해 들은 진실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또각.

‘너는 내 손녀가 아니다.’

또각.

‘너는 신 씨가 아니야.’

힘없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신만철의 냉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너는 입양된 아이다.’

‘그게 이 후계자 경쟁이 공정하지 않았던 이유야.’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네 부모에게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입양아.

‘그래도 키워준 은혜는 알아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니겠느냐.’

그녀의 세상이 부정당했다.

‘네, 친혈육 중에 오빠라는 자가 살아있더구나.’

친부모라 믿었던 부모님은 자신의 부모가 아니었고, 그동안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또로롱. 또롱.

손목에서 울리는 헌터 와치가 쉼 없이 띄워 대는 메시지만 보더라도 할아버지 신만철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 아연아 어디니. 할아버지가 네게 무슨 말을 한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집에 와. 엄마가 걱정 많이 한다.』

『엄마▶: 우리 딸. 왜 전화 안 받아 엄마 걱정되게. 전화 좀 받아. 응? 네가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 엄마가 설명할 수 있어. 응? 그러니까 집에 와서 얼굴 보고 얘기하자.』

인적이 드문 골목의 계단.

하염없이 걷던 신아연은 엄마에게서 온 애달픈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흐으. 흐으흑….”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울음이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쉼 없이 눈물을 흘렸건만 아직도 흐를 눈물이 남아있었는지, 울음과 함께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그녀의 볼을 따라 흘러 끌어안은 무릎을 적셨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것일까?

그녀는 자신을 부정당한 세상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해가 지고,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이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할 무렵.

“저….”

낯선 사내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안쓰러운 눈으로 신아연을 바라보는 남자의 손에는 새하얀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

씨드에게 명령을 내리고 반나절.

난 점심마저 거른 채 서류를 읽고 또 읽었다.

신아연.

내 동생이라는 그 아이가 어떻게 입양이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하지만 서류로 알 수 있는 건 분명 한계가 있었다.

일부러 누락시킨 건지 아니면 거기까지 조사할 여력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입양되는 과정에서 ‘어떻게’가 빠져 있었다.

갓 돌 지난 아이가 빅 웨이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어떻게 신성 그룹 장남 부부에게 입양되었는지 말이다.

11년 전 만 18세가 되어 청심원을 떠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잃어버린 가족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혹시’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땐 분명 나를 제외한 내 가족은 모두 사망 처리가 되어 있었다.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11년 전 기록조회를 했을 땐 실종 후 사망 처리돼 있었어.’

가족들이 함께 있던 차 안에서는 그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정부에선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확한 사인은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이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빅 웨이브 때 실종된 사람은 대부분 몬스터에게 잡아먹혔다는 게 기정사실이니까.’

상식적으로 이제 돌 지난 아기가 그 난리 통에 살아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 아이가 살아있고, 신성 그룹 신만철 회장의 장남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뭔가 내막이 있을 거야.’

솔직히 이 서류를 강산호 회장이 보낸 것이 아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질 정도로 치부했을 테니까.

강산호 회장이 마련해 준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내 귓가로 씨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지시하신 신아연 님에 관한 모든 정보 수집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씨드의 보고를 통해 빠져있던 ‘어떻게’를 채울 시간이었다.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기다림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였을까?

씨드의 보고가 시작되기도 전에 내 입에선 질문이 튀어 나갔다.

“씨드. 신아연이 내 동생이 확실해?”

그리고 돌아온 씨드의 대답.

“신아연 님은 사령관님의 동생이 확실합니다.”

쿵.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기쁨과 함께 분노가 끓어올랐다.

잃어버린 동생을 되찾았다는 기쁨과.

대체 왜. 내가 내 동생과 생이별을 해야 했는가?

차가운 분노가.

“잡다한 건 건너뛰고, 어떻게 내 동생이 살아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신성 그룹 일가에 입양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 사실이 ‘빅 웨이브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만 간추려서 보고해.”

그리고 이어진 씨드의 보고는 그 분노에 끼얹은 기름과 같았다.

“먼저 사령관님의 동생이신 신아연 님에 대해 보고를 드리기 전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말해.”

“25년 전. 신영수와 이현주, 현재 서류상 신아연 님의 부모인 두 사람 사이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있었다? 과거형이네?”

“네. 생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마나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딸이 마나 중독으로 사망한 후 내 동생을 입양한 건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식을 잃은 충격을 입양으로 치유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이어진 씨드의 보고에 내 얼굴은 더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그 사망한 딸의 이름이 신아연입니다.”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 동생을 입양한 부부에게 딸이 있었다는 건 이해했다.

그런데 그 딸의 이름이 신아연이란 말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 이런 개 같은…….’

죽은 딸의 이름을 입양한 아이에게 붙인다?

이건 보통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씨드의 보고는 더욱 가관이었다.

생후 첫돌도 되지 않아 마나 중독으로 사망한 딸.

딸을 잃은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죽어가던 이현주.

남편인 신영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이현주는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는 절망의 시작인 빅 웨이브가 일어난 그 날.

신영수는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에 휩쓸려 사고가 난 차 안에서 아기를 발견했다.

일가족 모두가 사망한 차 안에서 살려달라는 듯 울고 있는 아기.

신영수는 저도 모르게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아기가 바로 지금은 신아연이라 불리고 있는 내 동생 강지아였다.

다른 건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 차 안엔 나도 있었지만, 첫돌도 지나지 않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눈엔 아기가 더 밟혔겠지.

이런저런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 정상적인 입양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도 이해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뿌득.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빠드득.

왜 죽어버린 딸의 이름을 내 동생의 이름을 지었느냐는 것이었다.

‘개새끼에게도 하지 않을 짓을 사람에게….’

그 뒤로 이어진 씨드의 보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뜨거워진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고 벌떡벌떡 뛰기 시작한 심장은 사무실을 태워버릴 것 같은 열기를 만들어냈다.

빠지지직.

퍼퍼펑!!

순간적으로 방사된 전격에 사무실에 있던 집기들이 터져 나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씨드….”

“네 사령관님.”

“찾아.”

“…….”

“내 동생…. 강지아. 지금 봐야겠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라 뛰어온 직원들이 부서진 문틈 사이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동생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죽은 아이의 이름을 입양한 아이에게 붙여주는 집안이 정상적인 집안일 리 없지 않은가.

***

“…괜찮아요.”

신아연은 자신 앞에 내밀어진 손의 주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거절 의사를 밝히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청.

갑작스럽게 몸을 움직였기 때문일까?

일어서던 그녀가 중심을 잃고 휘청이자 손수건을 내밀었던 남자가 그녀를 부축했다.

분명 도움의 손길이건만 왠지 모를 불쾌감에 신아연은 저도 모르게 남자를 밀쳐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순간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신아연이 남자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 죄송해요.”

어찌 되었건 상대의 선의를 무례로 되돌려준 셈이었으니까.

자신의 호의를 거절당했기 때문일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신아연을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받아요. 얼굴이 안돼 보여서 주는 거니까.”

남자의 말에 주차되어있는 차 유리를 거울 삼에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신아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퉁퉁 부은 눈과 흘러내린 눈물에 얼룩진 얼굴은 추레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추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녀가 남자가 건넨 손수건을 받아든 순간이었다.

푸시시식.

신아연의 손에 닿은 하얀색 손수건이 보라색 연기를 내뿜으며 증발했다.

타 탁!

이상함을 느낀 신아연이 급하게 발을 움직여 자리를 벗어났지만, 연기를 피할 순 없었다.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순식간에 신아연을 따라잡은 보라색 연기가 그녀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흡.”

신아연은 호흡기를 막아 연기의 침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연기는 그녀의 호흡기뿐만이 아닌 눈과 귀 그리고 모공을 통해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

“컥.”

그렇게 저주에 잠식당한 신아연은 자신에게 저주를 건 남자를 노려봤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털썩.

신아연의 몸이 무너져 내리며 바닥을 굴렀다.

저주로 인해 흐릿해지는 시야와 몽롱한 머리.

정신력이 온전할 때였다면 이렇게 쉽게 저주에 잠식당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의 정신력은 거듭된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따라서 고작 하급 마족에 불과한 몽마(夢魔) 인큐버스의 저주에도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킥. 별것도 아닌 게 튕기긴.”

소정환은 널브러져 있는 신아연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씁. 들었던 것보다 더 잘 빠진 것 같은데. 넘겨주기 전에 한 번 닦아?”

어차피 골목의 양쪽 입구는 동료들이 막고 있을 테니 당분간은 사람이 오지 않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소정환은 이내 고개를 젓고는 신아연에게 다가갔다.

‘아서라. 괜히 여자 하나 때문에 인생 꼬일라.’

그렇게 신아연의 손목에 있는 헌터 와치를 풀어 내고 혹여 다른 전자기기가 있을까 그녀의 몸을 뒤지며 사심을 채우고 있을 때였다.

띠리링.

그의 손목에 있는 헌터 와치가 울음을 토해냈다.

“야. 어떻게 됐어?”

헌터 와치를 통해 들리는 동료의 목소리에 소정환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잘됐지. 빨리 차 가지고 이쪽으로 와.”

“오케이. 본 사람은 없지?”

“아. 없어! CCTV도 없으니까 여기 주차된 차 블랙박스만 회수하면 될 거야.”

“알았어. 1분이면 가니까 허튼짓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 알지? 이번 일 의뢰주가 누군지.”

재차 들려오는 동료의 당부에 소정환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알아! 안다고! 씨바. 그러니까 닥치고 빨리 오기나 해. 이대로 있다간 없던 목격자도 생길 판이니까.”

통화를 끝낸 소정환이 다시 한번 쓰게 입맛을 다셨다.

“쩝. 가뜩이나 마음 심란한데 새끼가 보채고 지랄이야.”

정신을 잃고 바닥을 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신아연.

무방비로 쓰러져 있는 신아연의 모습은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묘한 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꿀꺽.

그 모습을 모고 마른침을 삼킨 소정환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 의뢰주가 거기만 아니었어도 한번 닦는 건데. 존나 아깝네.”

아쉬움이 가득한 그의 중얼거림이 끝날 무렵.

꽈르르릉.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함께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번-쩍!

벼락 맞아 마땅할 짓을 저지르고 있는 소정환의 머리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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