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49화 (148/202)

149. 25년 만의…. (1).

25년 전.

전 세계엔 커다란 재앙이 일어났다.

일명 빅 웨이브.

전 세계 모든 던전에서 한날한시에 몬스터를 토해냈던 그 재앙은 인류에게 던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간 돌연변이 취급을 받으며 정치 사회적으로 경원시 되던 각성자들의 위상이 올라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신 귀족의 탄생.

하지만 그 빅 웨이브가 만들어 낸 참상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만 10개의 도시가 초토화되었고 100만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실종되었다가 사망 처리된 인원은 10만이 넘었다.

빅 웨이브가 남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십만에 이르는 실향민과 이산가족. 그리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

나도 그 부모를 잃은 아이 중 하나였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젖먹이 어린 동생.

빅 웨이브 때 잃은 나의 가족이다.

그런데 지금, 난 동생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있다고?”

황 집사에게 건네받은 갈색 서류봉투.

그 안에서 나온 여러 장의 사진과 한 장의 프로필.

신아연.

낯설지 않은 얼굴과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이 어떻게 내 동생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딸려온 서류뭉치가 있었지만, 그 서류들을 모두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내 동생이…. 살아있어?’

이 세상, 혈육 하나 없이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철이 들고 머리가 굵어질 무렵부터 내 것을 지키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야 했고, 쥐뿔도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시를 세워 세상을 경계해야만 했다.

그런데.

‘동생이 살아있어…. 동생이….’

난 혼자가 아니었다.

주룩.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기댈 곳 없는 부평초 같은 삶이라 여겼었는데 이 하늘 어딘가에 나와 피를 나눈 동생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르륵.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사령관님….”

괜찮다고.

외로움은 익숙하다고 자위하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기적 형님을 친형처럼 따르고 청심원 식구들을 가족처럼 여겼지만, 가족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었나 보다.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아야만 했던 것이고.

익숙한 게 아니라 익숙해지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씨드….”

나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씨드에게 명령했다.

“신아연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아 봐줘.”

강산호 회장이 보낸 서류.

더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

“후….”

신성 그룹 회장실 앞.

신아연은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회장실 문을 열었다.

‘이 년 아니, 삼 년만인가?’

삼 년 전만 해도 금이야 옥이야 막내 손녀를 아껴주었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뒤, 단 한 번도 자신을 찾지 않았다.

이후 돌아온 것은 부모님을 제외한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과 차별뿐.

공정한 경쟁은 말뿐이었으며 후계자 경쟁 어디에도 공정과 평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그룹의 차기 후계자는 사촌 오빠인 신유빈으로 굳어져 가는 상황에서 삼 년 만에 할아버지가 자신을 부른 것이다. 신성 그룹의 회장실로.

“어. 아연이 오랜만이네?”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밉상인 얼굴 하나가 자신을 반겼다.

“오랜만은 무슨. 며칠 전에도 던전 앞에서 마주쳤잖아.”

사촌오빠인 신유빈.

“그건 경쟁자로서 만난 거고. 지금은 사촌오빠로 만나는 거니까. 오랜만이 맞지.”

넉살스러운 신유빈의 말에 신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그 말은 내가 더는 경쟁자가 아니란 소리야?”

“발끈하긴. 할아버지 앞에서 말싸움할 생각 아니면 앉기나 해.”

신아연은 그제야 상석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 아연이 이리 와서 앉아라.”

지난 삼 년 동안 가족 모임에서조차 데면데면 그녀를 대했던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맞이했다.

‘설마 이제부터라도 공정하게 경쟁하게 해주시려는 걸까?’

지난 삼 년, 신아연과 신유빈의 경쟁에 공정이란 단어는 없었다.

애초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심판이 신유빈의 편이니 공정이란 단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게 맞았으리라.

그렇게 신만철의 미소에서 한 가닥 희망을 본 신아연이 신유빈의 맞은편에 앉자.

“둘 다 왔으니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상석에 앉아있던 신만철의 입에서는 그녀의 바람과는 다른 폭탄 발언이 튀어나왔다.

“오늘부로 차기 후계자 경쟁은 끝이다.”

“할아버지!!”

“신성 그룹의 차기 후계자는 유빈이로 결정되었으니 그리 알아.”

“할아버지! 정말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발끈한 신아연의 목소리가 회장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직 그 누구도 A급으로 승급하지 못했고. 신아연도 신유빈도 이번 후계자 경쟁의 과제였던 길드 설립을 하지 못했으니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공정한 경쟁의 끝이 이런 거였어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로 악에 받쳐 소리치는 신아연과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신유빈.

손자 손녀의 상반된 반응을 조용히 지켜보던 신만철이 신유빈을 향해 말했다.

“내 아연이랑 할 말이 있으니 유빈이 넌 이만 나가봐라.”

그 말에 신유빈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띤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놀렷다.

“우리 아연이 이젠 다시 오빠 동생으로 볼 수 있게 됐네. 오빤 이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랑 내가 경쟁이라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잖아. 안 그래?”

신유빈의 그 말은 후계싸움에서 밀려난 신아연의 아버지와, 신성 그룹의 후계자이자 신성 그룹의 지주회사인 신성 철강의 사장인 신유빈 그의 아버지를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뭐?!”

표독스러운 신아연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신유빈은 움찔 놀라는 시늉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무서워라. 하하. 할아버지 그럼 차기 후계자 신유빈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능청스러운 웃음과 함께 신유빈이 회장실을 빠져나가고.

“아연아. 너는 이 일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네게 이 경쟁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경쟁이었다.”

신만철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굳은 눈으로 신아연을 바라봤다.

큰 눈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며 서러움에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그녀.

처음 신아연을 품에 안았을 때가 떠올랐다.

‘아버지. 이 아이. 우리가 키우게 허락 해주세요.’

어렵게 얻은 손녀를 마나 중독으로 잃은 큰아들 내외가 안고 온 아기.

‘허락해 주신다면 더는 그룹 후계자 자리에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아들 내외는 빅 웨이브로 부모를 잃은 그 아이를 입양하기를 원했고.

처음 본 할애비의 품이 낯설기도 하련만 아기는 방긋방긋 잘도 웃었더랬다.

세상 그 어떤 웃음보다 환한 미소로.

아들 내외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허락했던 그 날의 기억.

‘그때. 허락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런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됐을까?’

지나버린 25년의 세월이 야속했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는 그룹의 후계자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절대 제 것이 될 수 없는 그 자리를.

신만철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냉정한 눈으로 신아연을 바라봤다.

‘혈육이 없다면 모르지만, 진짜 혈육이 있다면 찾아주는 게 도리지.’

아들 내외에게 미룰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그들에게도 못 할 짓인 거 같아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로 했다.

“아연아. 너는….”

신만철은 처량하게 떨리는 신아연의 눈동자를 직시하고 말을 이었다.

“너는. 내 손녀가 아니다. 신 씨가 아니야.”

목에 가시가 박힌 듯 나오지 않으려는 말을 한 자 한 자 힘주어 내뱉고 나서 손녀의 얼굴을 보니.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충격을 받아 떨리는 눈동자가 처량해 보였다.

신만철은 이 일이 자신에게도 못 할 짓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말 그대로다. 너는 입양된 아이야. 애초에 이 후계자 경쟁이 말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하지만 한번 뚫린 입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거…짓말…….”

“믿지 못하겠다면 네 부모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슴으로 키운 막내 손녀의 가슴에 신만철은 모진 말로 비수를 꽂아 넣었다.

“그래도 키워준 은혜는 알아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니겠느냐?”

그것이 신성 그룹을 이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가라. 가서 신성의 후계자 자리는 욕심내지 말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 그게 내키지 않으면 신성과 연을 끊어도 괜찮고. 내 알아보니 네 친혈육 중에 오빠라는 자가 살아있더구나.”

모질고 모진 말을 쉼 없이 내뱉는 자신의 입이, 이 상황에서도 저 아이의 오빠라는 강현과의 관계에 대해 계산을 하는 머리가 원망스럽지만.

“내 할 말은 끝났으니 이만 나가 주면 좋겠구나.”

저 아이의 모든 원망은 자신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신아연에게 축객령을 내린 신만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린 채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런 그의 등 뒤로 물기에 젖은 신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한 신아연의 목소리.

하지만 신만철은 그 인사를 받지도, 무어라 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의 귓가에 자박거리며 멀어지는 구둣발 소리와 그 뒤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굳게 닫혀있던 신만철의 입술이 움직였다.

“몸, 조심하거라….”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짠 듯한 그의 인사엔 짙은 슬픔이 묻어나왔다.

“강산호….”

이어서 대현 그룹 왕회장 강산호의 이름을 읊조리는 목소리엔 짙은 원한이 베여 있었다.

신만철이 이토록 모질게 신아연을 내쳐야 했던 이유.

이틀 전 대현 그룹 왕회장 강산호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네 장손과 후계자 경쟁을 하는 신아연이라는 아이 말일세. 자네 손녀가 맞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침묵했고. 그 침묵의 끝에 정신을 차린 자신이 강산호의 말을 부인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연히 제 손녀지요.’

강산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그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군. 난 자네 큰아들 내외가 그 아이를 입양한 거로 알고 있었거든.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리던 강산호의 눈.

그 눈동자 속엔 아흔이 넘은 노인이라 보기 어려운 총기가 빛을 내고 있었다.

‘광호(狂虎).’

광호라 불리던 젊은 시절의 강산호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눈빛에 신만철이 저도 모르게 움찔한 그때, 강산호의 말이 이어졌다.

‘혹여 내가 오해를 한 것이라면 내 자네에게 사과해야겠구먼. 그렇지?’

‘그런데 말일세. 신 회장. 왜 나는 자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걸까?’

그때, 신만철은 할 수 있다면 강산호의 입을 막고 싶었다.

‘이 정도면 내가 어떤 패를 가졌는지 자네도 충분히 알 거라 생각하는데…. 틀렸나?’

‘아무리 부모가 없는 아이라 하더라도 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입양을 한다는 건…. 재벌의 권력 남용인가? 도덕적 해이인가? 더군다나 그 아이의 친오빠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일세.’

‘무,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신 회장, 더 발뺌하면 조만간에 신성의 이름이 매스컴을 뒤덮을 걸세. 어째. 내가 그리 못할 듯싶은가?’

안다. 너무도 잘 안다.

재벌이라 불리는 이치고, 강산호의 힘을 모르는 이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힘에 대적하는 건 적어도 대현과 함께 재계 1, 2위를 다투는 성삼 그룹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것도.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한 가지 의문은 왜 강산호가 이런 선을 넘은 행위를 하는가였다.

‘그 아이 원래 자리로 되돌려주게. 구차한 미련 같은 건 남기지 않도록 확실하게 해주었으면 좋겠군.’

‘아연이…. 그 아이를 쳐내란 말씀입니까?’

‘쳐내는 게 아니라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라는 말일세….’

‘우리 가족 내부의 일입니다. 이 일이 강 회장님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러십니까. 대체 우리 신성과 척을 지면서까지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자신의 물음에 강산호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허허. 신성과 척을 진다…. 그게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군. 그래 봐야 고작 신성 아닌가.’

‘…….’

총기를 넘어 광기가 일렁이는 강산호의 눈빛에 자신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시총 1천 조가 넘는 재계 1위의 대현과 시총 90조대에 불과한 신성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뭐. 자네도 알아야 할 사실이니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그 후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말문을 연 강산호의 입에서 나온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내게 중요한 친구가 그 아이의 오라비더군. 이건 내가 그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일세. 자네도 오늘 봤을걸세 강현이라고.’

강현.

각성한 지 5개월 만에 S급으로 승급해 헌터계를 뒤집었고, 마나 중독 치료제로 불리는 마나의 묘약을 개발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천재.

‘설마. 그 청년이…. 아연이 오빠란 말씀입니까?’

‘그래.’

정말 놀랍게도 강산호는 그 천재의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주려 하는 것뿐이었다.

‘난 자네 가족이 빼앗아간 그 친구의 유일한 가족을 되찾아주려는 것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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