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토플란 시스템 (1).
일단 상점창을 열었다.
지금 필요한 건 나를 포함해 되도록 많은 사람이 강해지는 거다.
열한 마리의 재해급 몬스터와 열한 명의 신의 사도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적이 확실하니까.
‘이제 놈들은 내가 시스템 사용자라는 걸 알고 있어.’
그 말은 당장 내일 사도라는 놈이 찾아와 내 멱을 따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뭐, 아공간 조작과 아공간 변환을 사용할 수 있으니 1대1 싸움에서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문제는 내가 아닌 내 주변을 공격할 때다.
SSS급 각성자인 연우 형도 이상한 아공간 결계에 걸려 수세에 몰려 반죽음 가까이 갔었다.
인형사가 신이 내린 성물이라 불렀던 그것.
그런 아이템이 하나뿐이라면 상관없지만, 사도마다 성물이라는 걸 가지고 다닌다면 구 영감님이나 서 영감님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보는 게 맞았다.
‘전체적인 전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강해질 방법. 나는 시스템 상점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구매횟수와 판매횟수부터 확인하자.’
구매횟수: 9,999,975
판매횟수: 10,000,742
아이템 25개만 구매하면 S급으로 승급이 가능했다.
이게 다 태초의 별에서 노가다 작업을 한 효과다. 애초에 S급을 목표로 구매와 판매를 반복했었으니까.
‘마나의 묘약 스물다섯 개 구매해서 등급을 올리고 S급 아이템들을 검색하면 되겠네.’
일단 없어서 못 파는 마나의 묘약을 구매해 상점 등급을 올렸다.
-상점 등급이 상승합니다
-A→S
-‘주문’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제 원하시는 아이템을 판매자에게 직접 주문해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주문 기능이라는 게 활성화됐다.
판매자에게 직접 주문 구매해서 좋을 게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검색어 입력. S급, 강화, 트레이닝.”
[검색: S급, 강화, 트레이닝.]
[2,058건의 S급 ‘강화’ ‘트레이닝’ 아이템이 검색되었습니다.]
약 2천 개가 넘는 강화와 트레이닝 카테고리의 아이템.
이 중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그럼 시작해 보자고.’
***
다음날 한울 길드장 사무실.
아직 테러문제로 시끄러운 이때 백두 길드장 하성웅을 제외한 10대 길드 길드장들이 한울 길드 사무실에 모였다.
“그러니까. 도 길드장 말은 그 교단의 신이라는 놈들이 강현 씨를 노리고 재해급 몬스터와 사도라는 놈들을 부려 우리나라를 침공할 거란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때 4층에서 우리를 공격한 놈이 그 교단의 신중 하나인 영락한 죽음의 신 리퍼라는 놈의 강림체였다구요?”
“네.”
도연우의 대답과 함께 두려움과 공포를 동반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저 내뿜는 기파만으로 이곳에 있는 모두를 기절하게 했던 존재가 본체가 아닌 고작 강림체에 불과한 존재였다는 건 이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서태촌과 구정철이 없었다면 그 순간 4층에 있던 이들은 모두 죽은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 그 정도의 힘을 가진 놈들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텐데 왜 숨어서 수작을 부리는 거지?”
화연 길드장 이석평의 말에 다른 길드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재해급 몬스터 몇 마리만 몰려가도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될 테고.
거기에 SSS급으로 추정되는 11명의 사도라는 놈들까지 더하면 국가 몇 개쯤은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놈들이 원하는 게 우리의 멸망이 아닐 수도 있죠.”
“하면…. 우리를 지배하고자 한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80년은 긴 시간일세. 도 길드장 말처럼 던전을 만든 게 그 교단의 신이란 것들의 짓이라면 말이지.”
이석평의 말이 맞았다.
그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들이 뭐가 아쉬워서 80년이 넘도록 어둠 속에서 힘을 숨기고 있단 말인가.
그때 오나연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아직 때가 아닐지도 모르죠.”
“때?”
“여러 가지 정황들을 조합해 보면 욱일회의 이번 테러는 그 인형사라는 놈이 리퍼라는 신의 강림을 위해 벌인 게 확실해요. 거기에 구 어르신이 처치했다던 욱일회주가 남긴 말을 보면 확실해지죠.”
“제물….”
“네.”
“그 때문에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거기에 자기 부하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어서 리퍼를 강림시킨 거죠.”
오나연의 논리정연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그 정도의 피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신이란 놈들은 강림할 수 없다는 말이겠군.”
“강림체도 있어야 하고요.”
가장 강력한 적들이 함부로 세상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그들의 얼굴은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여전히 그들 앞에는 커다란 문제가 남아있었으니까.
재해급 몬스터와 사도.
단신으로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괴물들이 무려 스물둘.
사실 이곳에 모인 10대 길드장들이 모두 힘을 합해도 몇이나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도연우의 말대로라면 놈들은 성물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고 그 공간 안에선 전능에 가까운 힘을 지닌다고 했으니까.
“큰 걱정은 덜었지만 그래도 암담한 건 변함이 없군. 제기랄.”
한태산의 중얼거림처럼 상황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사도라는 자들은 정체를 파악할 수도 없으니 당장은 내버려 두더라도 재해급 몬스터들은 각개격파가 가능할 것 같은데, 놈들이 뭉치기 전에 하나씩 제거하는 게 어때요?”
우지영의 말에 길드장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구지석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힘들 것 같다니…. 왜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구름 가오리는 우리 화랑과 싸울아비의 힘만으로 잡은 게 아닙니다. 강현 씨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해둔 상태여서 놈의 가장 큰 무기인 뇌전이 무용지물이 된 상태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죠.”
“그 라그라주라는 나무를 말하는 거군요. 하루아침에 말도 안 되는 크기로 자라난?”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구름 가오리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마나 포격과 마나 미사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방사가 40퍼센트나 되는 지분을 가져간 거고요.”
구지석의 말은 한마디로 군대의 도움이 없으면 재해급 몬스터 사냥이 힘들다는 말이었다.
“군대의 화력지원 없이는 사냥이 힘들다는 말씀이신데.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두 어르신도 SSS급으로 승급하셨고 여기 도 길드장도 SSS급이 되었으니까요.
”맞아요. 우리도 힘을 모으면 군대의 지원 없이도 재해급 몬스터 한둘은 처리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들의 말에 구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들은 직접 구름 가오리를 상대해 본 적이 없어 모른다.
재해급 몬스터가 가진 힘을.
강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지막엔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정부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도 길드장?”
우지영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은 도연우에게 몰렸다.
각성자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벌써 20년.
이후 정부는 일반인들도 사용이 가능한 대 몬스터용 무기의 연구와 개발에 꾸준히 투자를 해왔다.
지난번 구름 가오리를 잡을 때 사용했던 마나 미사일이나 마나 포격도 그 일환이고.
“군대의 지원은 힘들 것 같아요. 말은 해봤는데, 믿지 않는 눈치더라고요. 증거도 없고…. 리퍼의 말을 들은 사람이 현이 뿐이라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아니. 이런 일을 겪고도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요? 어떻게 각성자라는 것들이 정치만 하면 하나같이 일반 정치인들하고 똑같아지는 건지. 화딱지나 죽겠네. 정말.”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던 우지영이 아차 싶었는지 맞은편에 앉은 구지석의 눈치를 살폈다.
퇴임했다고 하나 구지석의 아버지 구정철도 전직 대통령이니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구지석은 우지영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 아버지인 구정철에게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유일한 대안이었던 각개격파마저 힘들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며 모두가 암담한 현실에 얼굴을 굳히고 있을 때였다.
우웅-!
도연우의 헌터 와치가 묵직한 진동음을 토해냈다.
『현이』
강현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
한울 길드 사무실.
소회의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좌중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나를 향했다.
“어 현아. 어서 와.”
여느 때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연우 형은 물론이고 다른 길드장들도 호의 어린 눈으로 나를 반겼다.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줬는데 왜 연락 안 해요? 섭섭하게.”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며 눈을 흘기는 오나연.
“허허. 일전엔 큰 신세를 졌네. 내 언젠가 이 빚은 꼭 갚도록 하지.”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내 손을 붙잡고 흔드는 이석평.
왠지 부담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누가 뭐래도 이들은 대한민국 헌터계의 기둥들이고 유명인들이니까.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현 씨.”
그렇게 이석평의 손에 이끌려 소파에 앉자 연우 형이 물어왔다.
“당분간 분위기 살피면서 집에서 쉬라니까…. 너도 참 너다. 그래. 할 얘기라는 게 뭐야?”
혹시나 혼자 움직이다 사도에게 공격을 받을까 하는 염려에 세 사부는 당분간 내가 집 안에 머물기를 바랐다.
암중으로 집 주변을 경호하는 인원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도 씨드의 보고를 통해 알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어제 시스템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을 설치하기 위해선 내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이용해야 할 아이템인데 내 집 마당에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이템: 토플란의 초인 육성 시스템]
[등급: S급]
[설명: 행성 토플란의 대마법사들이 마왕의 침공에 대항할 마법사와 전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마도 공학 시스템. 설치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며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마나석의 소모량이 엄청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추가설명: 토플란의 대마법사들은 해당 시스템을 통해 용사 바울을 ‘육성’해 마왕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주의사항: 해당 시스템의 마나석 소모량은 일개 국가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사용을 자제하자.]
주의사항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내가 염려할 바는 아니었다.
사용자들에게 사용료와 함께 마나석을 받을 생각이거든.
아직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해 보진 못했지만 ‘용사’를 육성해 마왕이라는 존재의 침공을 물리쳤다고 했으니 효과는 확실할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9대 길드 길드장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랑 사업하나 같이 하실래요?”
“…에?”
***
“정말….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죠? 도 길드장에게 듣긴 했는데. 강현 씨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한울 길드 지하의 트레이닝 룸.
원래라면 온갖 운동기구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트레이닝 룸 중앙엔 커다란 구조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포털.
그것은 공동 사업을 제안한 강현이 사업 아이템이라며 인벤토리에서 꺼낸 토플란 시스템이었다.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오 길드장?”
“이 길드장님이 아직 시스템 사용을 안 해 보셔서 그래요. 직접 사용해 보시면 그런 말씀 못 하실걸요.”
토플란 시스템을 경험하고 나온 오나연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슬쩍 핀잔을 준 이석평.
하지만 시스템을 체험하고 난 후 그는 오나연보다 더 적극적인 반응을 드러내며 강현에게 달려들었고.
“강 선생. 이 사업 꼭 함께합시다. 아니, 일단 나만이라도 먼저 사용할 수 없겠소?”
강현 씨라고 불리던 호칭은 어느새 강 선생이 되었다.
“아니, 이 길드장님! 사용하려면 같이해야지 이 길드장님만 먼저라니요!”
“그러게. 이 길드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좀 이기적이시네요.”
“아니 그럼 자네들도 강 선생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지 왜 나한테 화를 내나. 그래.”
아직 토플란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았기에 뭣 때문에 이런 반응을 내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강현은 밖으로 나온 도연우의 말에 길드장들의 격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와…. 현아. 이거 네가 말했던 해피니스 시스템이랑 완전 비슷한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