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강림(降臨) (7).
‘천한 것이라 허풍도 비루하기 그지없다.’라는 녀석의 말은 내 여린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마 방금 그 공격으로 내가 자신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허풍이라니 진심인 사람 맘 상하게.’
이렇게 순정이 무시당하면 깡패가 되는 수밖에,
‘아공간 조작.’
-특성: 아공간 조작이 발현 중입니다.
아공간 조작 특성은 아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발현되는 특성이니 굳이 내가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조작을 하기 위해선 내 의지가 필요했다.
‘대상지정.’
-아공간 안의 대상을 지정합니다.
-사용자 강현과 영락한 신 **가 존재합니다.
-대상 **를 지정합니다.
-에러. 대상이 가진 격이 사용자보다 높습니다. 대상지정이 취소됩니다.
영락한 신의 격이 나보다 높아 대상지정이 불가능하다는 말.
처음 놈에게 대상지정을 했을 때도 들었던 메시지다.
반신이라 불리는 녀석이니, 아무리 내게 아공간 안에서만큼은 전능에 가까운 특성이 있다 해도 놈을 아공간 조작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전뢰화의 권능으로 9년 같은 9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게 그 시간은 놈을 공략할 방법을 찾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상 우회지정 강림체(降臨體) 효고.’
-대상지정 영락한 신 **의 강림체 효고.
-대상이 지정되었습니다.
-강림체 효고를 조작하시겠습니까?
‘그래.’
방법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공간 안으로 들어온 나는 모태 솔로 특성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3배 더 상승했고 그것은 ‘칭호: 인필리언의 구원자’와 ‘특성: 공간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칭호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대상의 ‘호의’와 ‘악의’가 시각화됩니다.
-특성: 공간시 S(LV9)가 발현됩니다. 공간의 정보를 추출합니다.
-‘칭호: 인필리언의 구원자’가 ‘특성: 공간시’와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시각화됩니다.
그렇게 내 눈앞에 떠오른 놈의 정보창은 두 개.
하나는
[이름: **]
[나이: ****]
[등급: **]
[직업: *** *** *]
단 하나의 정보도 확인할 수 없는 영락한 신의 정보였고.
다른 하나는.
[이름: 효고 쇼헤이]
[나이: 108]
[등급: SS]
[직업: 욱일회 회주.]
*특이사항: 영락한 신 **의 강림체.
바로 영락한 신이 강림한 강림체에 대한 정보였다.
욱일회주 효고.
어쩌다 대한민국을 벌벌 떨게 했던 테러집단 욱일회의 회주가 신의 강림체 따위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일 놈이 자신의 본체로 강림을 했다면 격의 차이 때문에 놈을 공략할 방법 같은 건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쏴라.’라는 말처럼 강림한 신을 잡으려면 강림체를 잡으면 될 일이다.
나는 끊임 없이 쏟아지는 뇌전의 비를 맞으며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영락한 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조작대상: 효고 쇼헤이. 조작할 설정을 입력해 주십시오.
나는 놈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효고 쇼헤이의 모든 스킬 무효화.’
-사용자 강현의 지혜 스탯이 대상보다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대상의 스킬을 무효화 합니다.
-효고 쇼헤이의 S급 스킬 초재생이 무효화 되었습니다.
-효고 쇼헤이의 SS급 스킬 불사가 무효화 되었습니다.
-효고 쇼헤이의…….
-…….
쉴새 없이 올라가는 시스템 메시지는 욱일회주의 모든 스킬이 무효화되었음을 내게 알려왔고.
비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던 영락한 신의 얼굴엔 경악이 어렸다.
“너…. 감히 나를 잘도…….”
이내 분노로 붉게 물들어 일그러지는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
놈은 이제야 자신이 샌드백 대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인지했다.
“내가 말했잖아. 이제부턴 웃기 힘들 거라고.”
-[유지시간: 00분 59초]
남은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뢰화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지금, 내게 1분은 1년과도 같이 긴 시간이었다.
영락한 신이 아닌 놈의 강림체를 소멸시키는 데는 1초면 충분하니까.
꽈르르르릉---!!
번-쩍---!
빠지지지직--!!
순간적으로 몰아친 샛노란 뇌전의 폭풍이 녀석을 집어삼키고.
퍼퍼퍼퍼펑--!!
끊임없이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던 강림체가 세포 단위로 쪼개져 소멸했다.
-[유지시간: 00분 58초]
1초.
세포 단위로 분해된 강림체는 티끌 하나 남기지 못하고 분해되어 아공간에서 사라졌다.
띠링!
-특수 퀘스트 ‘너 꼴리는 대로 해봐!’를 완료하셨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시스템이 인정했다.
반신급 퀘스트를 클리어했노라고.
내가 영락한 신을 무찔렀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보상을 받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는 하찮은 것이라 부를 수도 없겠군.>
느려진 시간 속.
형태도 없이 일렁이는 검은 빛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비록 시스템에 의해 이것저것 제약을 받았다지만, 나 죽음의 신 리퍼의 아바타를 소멸시켰으니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필멸자여.>
찰나의 순간 수천 번 내리치는 벼락 속에서 무척이나 여유롭고 느긋한 목소리로.
“죽음의 신 리퍼…. 그게 네 이름인가 보군.”
<그렇다. 필멸자. 아니 강현. 이 지구에서 내 신명(神名)을 아는 자는 현재까지 네가 유일하다. 영광으로 알도록.>
“거참, 퍽이나 영광스럽군….”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영락한 신, 자신을 죽음의 신 리퍼라 밝힌 놈의 뒤통수를 확실하게 후려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놈은 너무나도 여유로웠으니까.
거기다 검은빛의 형상을 한 놈은 전뢰화의 권능으로 내려치는 벼락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듯 고고하게 떠 있었다.
<…여전히 천박하고 무례하구나. 쯧.>
<하지만 이번 한 번은 내 너그러이 이해하도록 하마.>
내 말투를 가지고 혼자 신경질을 내더니 또 혼자 이해해주겠다 지껄인다.
‘미친놈인가….’
영락했다더니 그 충격으로 어딘가 모자라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놈은 자기중심적이었다.
‘아니면 신이란 놈들은 모두 저따위인 건가?’
그렇게 내가 신이란 존재에 정의를 내리고 있을 때, 리퍼가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지금 보여준 것이 너의 전부인가. 강현?>
“…그런 건 왜 묻는 거지?”
리퍼는 내 물음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었다.
<뇌전의 권능과 아공간을 생성하고 그 아공간 안에서 전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다…. 몇 가지 잡스러운 기술들을 쓰는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저 세 가지지.>
틀렸다.
전뢰화 권능은 나의 권능이 아니다.
강림한 리퍼를 상대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라고 관리자가 떠먹여 준 일회용 권능일 뿐.
<이게 전부라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내 전력을 평가하던 놈이 이젠 내 죽음을 논했다.
“너. 나한테 진 지 아직 1초도 지나지 않았다는 거 알고는 있냐?”
<해서, 내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내 목소리가 안 들리나 보다.
“개가 짖는구나. 아주….”
놈은 아주 관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의 사도가 되어라. 강현.>
그러곤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개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너의 재능을 아낀 나의 마지막 제안이다. 거절 따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파악했느니라. 허니 다음번에 너는 꼭 나에게 죽는다.>
<아니, 어쩌면 내 차례까지 버티지 못할지도 모르지.>
문제는 그 개소리가 전혀 개소리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알고 있느냐? 구름 가오리는 나의 종이었다. 네가 나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다른 신들의 종과 사도들이 너를 처리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인 너는 우리의 적이니까.>
열두 신.
그 신들을 믿고 따르는 교단.
그리고 열두 마리의 재해급 몬스터.
‘열두 마리의 재해급 몬스터는 던전을 만들어 지구를 침공하려 하는 열두 신이란 놈들의 부하였단 말이네.’
이제야 재해급이라 불리며 사냥 불가 판정을 받은 열두 마리의 몬스터들이 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싸움을 벌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자연의 법칙은 개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들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침범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 주장하던 학자들의 말은 틀렸다.
놈들은 애초에 한편이었으니 싸울 필요가 없었던 거다.
<사도와 종들의 공격으로부터 너는 살아남을지도 모르지. 너에겐 뇌전의 권능이 있고, 아공간이라는 피난처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 나라는? 그리고 이 나라에 사는 인간들이 과연 그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까? 너희가 재해급 몬스터라 부르는 열한 마리의 종과 SSS급 각성자보다 더 강한 열한 명의 사도가 몰려올 텐데?>
“…….”
너무나도 적나라한 협박에 할 말이 없었다.
리퍼의 말대로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구름 가오리 한 마리에 서울이 물에 잠길 뻔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11마리의 재해급 괴수와 11명의 사도가 몰려온다면 장담컨대 한 달 안에 멸망할 것이다.
‘씨발….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네.’
절로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공간에 들어오기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다.
아공간 안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곳으로 전장을 옮긴 거지, 숭고한 희생 따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리퍼는 1억2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두고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나의 사도가 되어라. 강현. 그리하면 훗날 내가 이 땅에 강림할 때 가장 영광된 자리에서 권세와 부귀를 누리게 해 주마….>
그렇게 리퍼가 채찍과 함께 당근을 내밀 때였다.
띠링-!!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다급함이 느껴지는 알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추가보상이 지급됩니다.
-구출 인원 산정 중….
-총 구출 인원 21,015명.
-추가보상을 책정합니다.
-추가보상으로 영락한 죽음의 신 리퍼의 ‘권능: 사망 선고’ 빼앗아 옵니다.
“뭐?”
<뭐?>
-추가보상으로 영락한 죽음의 신 리퍼의 신성 일부를 빼앗아 옵니다.
“…?”
<이런! 미친!!!>
시스템 메시지를 보기라도 한 걸까?
발끈하며 화를 내던 리퍼가 이내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의 권능과 신성을 내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 너를 이 자리에서….>
음산하게 깔린 낮은 목소리에서 끈적하고 서늘한 죽음의 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그런데 어쩌나? 주고 싶어도 주는 방법을 모르는데.’
물론 기껏 보상으로 받은 권능을 돌려줄 생각 따윈 없었지만 말이다.
-[유지시간: 00분 56초]
그렇게 다시 1초의 시간이 흐르고.
<…영원히 죽지도….>
리퍼는 내뱉던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허무하게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시스템에 의해 리퍼의 사도가 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뭐, 나쁘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놈의 뒤통수를 씨게 갈긴 샘이 되기도 했고 애초에 놈의 사도가 될 생각은 없었으니까.
상태창을 열어 새로 얻은 권능을 확인했다.
……
[권능]
전뢰화 [유지시간: 00분 56초]
사망 선고.
└영락한 죽음의 신 리퍼의 권능중 하나. 대상을 지정해 절대적인 죽음을 선고한다.
……
절대적인 죽음이라니….
이런 어마어마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왜 사용하지 않은 걸까?
‘아마 시스템에 의해 사용하지 못하게 제약당한 상태였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 덕분에 나는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리퍼의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일이었을 것이다.
전뢰화의 남은 시간 56초.
원래라면 무언가를 익히기에 짧은 시간.
하지만 느려진 시간 속에서 56초는 새로 얻은 권능을 익히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왕 사용한 거 뿌리를 뽑아야지.’
언제 다시 전뢰화와 같은 권능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사용할 수 있을 때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
[특수 퀘스트: 너 꼴리는 대로 해봐!]
[등급: 반신(半神)]
……
[진행상태: 완료]
[생존확률: 0.1%]
[현재 구출 인원: 21,015명]
[보상: 보너스 스탯 1,000. 칭호: ‘하지 말라는 건 꼭 하는.’ 상점 포인트 1억. 선업 포인트 1억. 특성카탈로그.]
[실패 시: 사망]
*해당 퀘스트는 강제 퀘스트입니다.
*구출 인원에 따라 추가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수령 하시겠습니까?]
[수락]
톡.
내가 익혀야 할 건 사망 선고라는 권능뿐만이 아니었다.
1억의 선업 포인트와 특성카탈로그.
또 어떤 특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여러모로 심장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