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44화 (143/202)

144. 강림(降臨) (6).

신(神).

신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지구인들이 정의한 사전적인 의미의 신은 이러하다.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

하지만 누군가 리퍼에게 신의 의미를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세상 만물의 생과 사를 관장하며 그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존재.

리퍼에게 신이란 바로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퍼억! 퍼퍼퍼퍽!

파직! 빠지지지직!!

뇌전의 권능이 깃든 원초적인 폭력이 쏟아져 내렸다.

그의 권능 ‘죽음’은 뇌전에 녹아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고.

상대의 권능은 더욱 강해져 이제는 숫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뇌전으로 가득 차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고작 백 년도 못사는 필멸자 주제에 권능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게 가능한 일인가?’

자신은 신성(神聖)과 신앙(信仰)을 지닌 존재.

신격을 잃어 반신이 되었다 해도 신은 신이다.

무리한 강림으로 이것저것 시스템의 제약을 받았지만 그렇다 해도 신은 신이다.

그런 자신이….

퍼억! 파지지직!

퍼퍼펑!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건 그의 계획엔 없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없던 일이….

쫘좌좍!

빗발치듯 쏟아져 내리는 뇌전의 권능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자신의 종인 구름 가오리가 소멸한 것으로 이미 ‘교단’에 속한 신들 사이에서 체면이 깎인 상태였다.

그래서 무리해서 강림한 것인데.

‘관리자가 선택한 녀석이 이런 자그마한 땅에 있을 줄 몰랐던 게 패착이었어.’

자신이 맡은 극동 아시아라는 땅덩어리에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가 있을 줄 몰랐다.

덕분에 이번 강림은 실패했다.

‘그나마 건진 건 시스템 사용자가 누구인지 파악했다는 것 정도인가?’

뇌격에 맞아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와중에도 리퍼는 이번 강림의 득실을 따졌다.

사도를 잃었고, 원래 목표로 했던 죽음의 탑을 만드는 것도 실패했다.

한마디로 계획했던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데도 리퍼는 미소를 지었다.

‘시스템 사용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으니 놈이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 낼 수 있게 되었어.’

남은 건….

‘놈의 능력이 뭔지 확인하는 건가?’

이미 파악한 놈의 능력은 두 가지.

뇌전의 권능과 아공간을 창조해 내는 능력.

거기에 그 아공간 안에서 권능이 더욱 강화되는 것까진 파악되었다.

하지만 이게 놈이 가진 모든 것은 아닐 터. 리퍼는 놈이 가진 모든 능력을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다음에 놈을 죽이는 게 수월해질 테니.

다행히 지금 자신이 강림한 강림체(降臨體)가 가진 능력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초재생과 불사라는 스킬.

적이었다면 그의 권능과 상극에 가까운 스킬이지만, 자신의 강림체로 활용하는 이상 이보다 더 좋은 시너지가 없었다.

물론 스킬이 사용될 때마다 마나가 꽤 많이 소모되는 게 흠이긴 했지만, 마나보다 상위의 힘인 신력(神力)을 소모하면 될 일이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렇게 리퍼가 미소짓고 있을 때, 강현은 살기 어린 눈으로 그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

‘고통을 받지 않고 있다.’

영락한 신이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은 나의 뇌전에 의해 소멸했고, 그 육신도 벼락에 맞아 터져 나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영락한 신의 표정엔 약간의 모멸감만 떠오를 뿐 고통의 흔적은 없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거나…. 잃을 게 없단 소린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놈이 여유로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초재생?’

뇌격에 맞아 터져 나간 부위가 순식간에 재생하고 있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그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질 만큼.

‘이게 뭔…. 죽음의 기운을 내뿜는 놈이 정작 자신은 초재생을 가지고 있다고?’

언데드들의 특성을 보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가장 저급인 해골 병사만 하더라도 두개골은 아닌 다른 부위는 파괴해도 순식간에 복구하니까.

꽈르릉! 빠지지직!!

혹시나 해서 머리와 심장에 낙뢰를 떨어트려 터트려 봤지만, 순식간에 재생했다.

‘약점이 없어?’

이렇게 되면 놈을 세포 단위로 분해해야 한단 소린가?

문제는 그렇게 해도 놈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는 거.

‘반쪽짜리 신도 신이란 소린가?’

왜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화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는가.

불멸과 불사.

죽음에서 3일 만에 돌아오신 분도 있고,

‘이렇게 되면 시간 싸움이라는 소린데….’

흘끗.

-[유지시간: 09분 45초]

권능의 유지시간은 이제 겨우 15초가 지났다.

놈이 강림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전뢰화의 유지시간을 넘긴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곳이 아무리 내 홈그라운드와 같은 아공간 안이고 내가 이곳에서 전능에 가까운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난 아직 그 힘을 한계까지 써본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유지시간 안에 놈과의 전투를 끝내야 해.’

내가 최상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을 때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동반 자살이 될 수도 있으니까.

***

구정철을 가운데에 두고 포션을 들이붓고 있던 도연우는 갑자기 공기의 무게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끈적하고 무거운, 불쾌한 느낌에 고개를 쳐드는 순간.

“컥!!”

“끄아아악!!”

터져 나오는 비명과 죽음.

그리고 자신의 가슴께에 겨눠진 검은 송곳.

그것을 인지한 찰나.

꽈르르릉!

뇌전으로 화한 강현이 은발의 소년에게 달려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육탄돌격.

순간 그는 강현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아! 안…!”

꽈르르릉----!!!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강현과 은발의 소년은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돼!”

뒤늦게 흘러나온 그의 말이 허망하게 공간을 울릴 무렵.

그들을 겨누고 있던 검은 송곳이 허공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또….”

동생 그리고 제자.

SSS급 각성자인 자신이 또다시 강현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

사혼 감옥에 갇혔을 때처럼.

이번에도 강현의 도움으로.

“또 저 녀석이 희생했네요. 이번에도 또!”

이곳에 내려오며 강현에게 전해 들었다.

반신급 퀘스트라는 게 떴고 4층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존재가 영락한 신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도연우는 전의를 다졌다.

SSS급 각성자 셋이라면 반신이라 불리는 존재라도 상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으니까.

물론 놈과 창을 맞댄 이후 그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몇 번 안 되는 창질이었지만 도연우는 리퍼를 상대하며 격의 차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내심 SSS급 스킬인 일섬(一閃)을 개화한 상태라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발목 정돈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의 일격은 리퍼의 손가락 하나에 막혀 버렸다.

이후 놈이 뿜어낸 죽음의 기운에 휩싸이는 순간엔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고.

그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강현이요. 또 영락한 신을 끌어안고 아공간에 몸을 던진 것도 강현이었다.

“지가 무슨 논개야?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거야?”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중얼거리는 도연우.

텁.

그의 어깨에 두툼한 손 하나가 얹어졌다.

“아직 죽었다고 확인된 것도 아닌데 벌써 눈물을 보이는 게야? 쯧쯧. 못난 놈.”

구정철이었다.

“눈물을 보이긴 누가 눈물을 보여요?! 그리고 영감님이야말로 현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삼도천 건너서 염라대왕하고 면담하고 있었을 텐데, 현이한테 고맙지도 않아요?!”

“고맙지….”

“SSS급 각성자가 세 명이나 있는데 제자나 다름없는 녀석이 목숨을 걸고 적한테 달려드는 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냐고요!!”

무엇이 그리 복받친 건지 눈가를 벌겋게 물들이며 목소리를 높이는 도연우.

구정철은 그런 도연우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고마우니까. 우리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않겠냐?”

“…?”

“녀석이 싸우는 데 도움은 못 되더라도 짐 덩어리는 되지 말아야지. 너나 나나, 저기 바닥을 구르고 있는 놈들도.”

구정철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 도연우의 눈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몇몇을 어깨에 들쳐메고 계단을 오르고 있는 서태촌의 등이 보였다.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서태촌의 등이.

***

10분.

누군가에겐 영겁과도 같이 길었을 그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유지시간: 01분 03초]

나는 몰아치는 뇌전의 폭풍 속에서도 끊임없이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는 녀석을 죽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이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인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느릿하게 말을 뱉는 영락한 신.

영락한 신은 죽어도 수만 번은 죽어야 했을 공격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여유로웠다.

불사와 초재생.

놈은 내가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세포 단위로 분해해 봤자 금세 원래의 형태를 되찾으니 공격이 무의미하다.

그게 놈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였다.

확실한 결정타가 없는 한, 이 싸움은 소모전으로 갈 수밖에 없고.

-[유지시간: 01분 02초]

이제 전뢰화의 유지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은 나는 그 뒤를 장담할 수 없었을 테니.

내가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말이다.

“웃을 수 있을 때 많이 웃어둬. 이제부턴 웃기 힘들 테니까.”

나는 놈과 똑같은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았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걸까? 내 미소를 본 놈의 얼굴이 굳었다.

녀석에겐 10분이지만, 내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놈에게 실험해 볼 수 있었다.

자체수복능력이 있는 샌드백이라니 이보다 유용한 실험대상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내가 가진 스킬과 특성의 실험대상이 된 녀석은 내가 자신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를 찾아 갔지만.

사실은 달랐다.

“덕분에 내가 꽤 많은 걸 얻었어. 고마워. 진심으로.”

“뭐?”

나는 이미 놈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은 상태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영겁과 같은 긴 시간 동안 스킬과 특성을 사용하며 실시간으로 성장했다.

그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은 바로.

빠지지직!

꽈르르르르릉!

퍼퍼퍼퍼퍼퍼-----!!

9분 전보다 더 강해진 벼락의 비.

전뢰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스킬.

바로 뇌신일체(雷身一體)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구름 가오리를 사냥하기 위해 심었던 나무, 전뢰수 라그라주의 열매 뇌실을 먹어 습득했던 스킬.

태초의 별에서 고작 연우 형의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위해 사용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사용처가 없었던 스킬이다.

하지만 지금 전뢰화와 함께 사용되는 뇌신일체 스킬의 등급은 무려 SS급.

‘뇌신 울티아의 이름을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더라니.’

-권능: 전뢰화의 영향으로 스킬: 뇌신일체가 성장합니다.

-권능: 전뢰화의 영향으로 뇌기 스탯이 상승합니다.

-스킬: 뇌신일체가 레벨업했습니다.

-스킬: 뇌신일체 SS (LV8)→ 스킬: 뇌신일체 SS (LV9).

-뇌기 스탯이 상승합니다. 뇌기: 9312→9316.

거기에 더해 보너스 스탯 포인트를 투자할 수 없었던 뇌기도 어마어마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스탯을 얻었던 곳이 바로 뇌신 울티아의 정원이었었지.’

모태 솔로 특성으로 인해 한 번에 4포인트의 스탯이 오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오른 것은 1포인트다.

그렇게 계산해도 200대 후반이었던 스탯이 2000이 넘었다는 소리니, 무려 8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얻은 게 그것뿐만은 아니지.’

상태 창에 표시되고 있진 않지만, 세 사부에게 배웠던 스킬들의 운용이 영락한 신을 상대하며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격세, 단천세, 붕천격, 풍신퇴, 백야투로, 만영창….

열심히 익힌다고 익혔지만 어색했던 스킬들이 이젠 내 몸에 맞춘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게 펼쳐졌다.

이게 전부 저 자체재생 샌드백 덕분이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가 있을까?

“뭔가 있는 것처럼 큰소리치더니 한다는 게 고작 같은 행위의 반복이냐? 역시 천한 것이라 그런지 허풍도 비루하기 그지없군.”

“아….”

고맙다는 말은 취소. 저 새끼는 아직 더 맞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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