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강림(降臨) (3).
붉게 물들었던 결계가 제 색을 되찾았다.
‘왠지 불길해.’
공간시에도 아무런 정보가 떠오르지 않는 결계.
SSS급 각성자의 정보가 ***으로 표시가 되었던 것과 다르게 결계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았다.
‘내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등급의 결계란 소린데….’
결계를 펼칠 것으로 추정되는 인형사를 아공간에 가뒀음에도 결계는 해제되지 않았다.
서 영감님은 다시 아래로 내려갔고 연우 형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 곁에 남았다.
‘사령관님. 조금 전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아래층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씨드의 보고.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우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되면 아까 그 새끼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리는데…. 젠장.”
알 수 없는 혼잣말이었다.
“그…새끼가 했던 말이요?”
“아. 처음 그 인형사라는 놈하고 결계에 갇혔을 때 놈이 이런 말을 하더라.”
“어떤…?”
“자기는 신의 사도고 신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는 메신저라고. 그러면서 나보고 사도가 될 생각이 없냐고 하던데. 뭐 차라리 죽이라고 했지.”
“신의 사도요?”
“응. 자기는 욱일회 소속이 아니라 열두 신을 모시는 ‘교단’이라는 곳에 소속된 신의 사도라고 하더라고.”
“교단? 열두 신?”
“응. 그때는 그냥 미친놈이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라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가지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태양신 인필리언과 나눴던 대화.
아공간 기생 생명체인 크롤러를 만든 존재와 지구의 던전을 만들어낸 존재가 같은 존재라는 그 말.
신이 된 태양신 인필리언조차도 ‘존재’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했을 누군가.
인형사가 말했다는 열두 신과 인필리언에게 들은 정보를 조합하면 한 가지 가설이 만들어졌다.
“교단이라는 단체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들이 지구를 노리고 있다?”
“응 그건 무슨 소리야?”
“그게….”
나는 연우 형에게 태양신 인필리언에게 전해 들은 정보를 공유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나 보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email protected]!#@!$지구에 허가되지 않은 존재의 비정상적인 접속이 감지되었습니다.
쿠우우웅!
지하 깊숙한 곳에서 생성된 진동이 154층인 이곳까지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경고. 신속히 현재 위치를 이탈하십시오.
-시스템이 허가되지 않은 존재의 접속을 제한합니다.
-실패.
-영락한 @!$#%의 신 **가 @!#@!$지구에 강림합니다.
-시스템에 의해 대상의 권능이 제한됩니다.
-시스템에 의해 대상의 힘이 제한됩니다.
-시스템에 의해…….
-…….
그 뒤로 이어진 수많은 메시지는 ‘영락한 신’이라는 놈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었지만.
우우우우웅-----.
그런데도 영락한 신이라는 놈이 내뿜는 기운은 푸른 결계에 둘러싸인 공간을 떨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게…. 뭐야 대체…….”
바짝 일어선 팔뚝의 솜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연우 형.
본인은 모르겠지만 지금 연우 형은 떨고 있었다.
“너. 왜 그렇게 떠는 거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일단 우리도 아래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혹시나 인형사라는 놈이 아공간을 뚫고 나올까 봐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인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인형사보다 더 위험한 적이 나타났으니까.
***
같은 시각 4층.
쿠우우웅-!
------!!
공간을 울리는 거대한 굉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이 울리는 순간.
“어어…?”
“내가 왜?”
대다수의 각성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고.
“끄르륵….”
“이, 이봐요. 정신 차리세요!”
개중 몇몇은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그리고 서태촌과 구정철 등 제자리에 서 있던 몇몇은 온몸에 한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이거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구먼.”
주변을 돌아보며 조용히 입을 여는 구정철의 굵은 팔뚝도.
스릉.
“욱일회주라는 자가 말한 복수가 이걸 의미하는 거였나 보군.”
살며시 환두대도를 뽑아 드는 서태촌의 팔도.
주인의 의지를 벗어나 부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서가야 아무래도 이번엔 쉽지 않겠다.”
느껴지는 기운이 평범하지가 않았다.
구름 가오리나 태고룡 쿠아르탐파를 상대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
마치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았다.
그런 구정철의 눈을 마주한 서태촌이 고개를 끄덕일 때.
“%#@%!^^&&%^.”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어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email protected]!$네%#@%가?”
허공에 떠 있는 10대 후반의 미소년.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던 이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4층에 있던 이들 중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소년과 마주한 사람은 오직 둘,
서태촌과 구정철뿐이었다.
은색 머리칼과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년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네#들이 나의 #@[email protected]$을 죽인 놈들이냐?”
중간에 알 수 없는 언어가 섞여 있긴 했지만, 서태촌과 구정철은 곧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년의 시선은 다른 이들이 아닌 서태촌과 구정철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우리가 뭘 죽였다는 거지?”
“나의 종 에페르 티아크. 너희 말로는 구름 가오리라 부르더구나.”
SSS급이자 재해급 몬스터로 분류된 구름 가오리를 종이라 부르는 소년.
대화를 나누던 서태촌과 옆에서 듣고 있던 구정철의 얼굴이 굳었다.
재해급 몬스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라 불렸던 몬스터를 종이라 부르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톡톡.
“이 육체의 기억으론 네놈들이 맞는 것 같은데, 아닌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소년은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찌 되었든 상관없지. 오늘 이곳에 있는 놈들은 모두 죽을 테니.”
꾸구궁----!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며 건물을 뒤흔들었다.
“컥!”
“케엑!!”
그리고 이미 기절한 이들 중 격이 낮은 이들은 그 기운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피를 토해내며 죽어갔다.
서태촌과 구정철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다.
으득.
악다문 입술 사이로 핏줄기를 흘리며 환두대도를 치켜드는 서태촌.
“…괴물이군.”
욱일회의 테러리스트들과 싸우며 괴물이라 불렸던 구정철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괴물.
“얘들 재미있네. 이걸 버텨?”
쓰러지지 않은 두 사람을 보는 소년의 눈이 이채를 발하는 순간.
쩌엉!!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밀려났다.
콰드득.
부서진 바닥에 밭고랑처럼 새겨진 네 줄기 발자국.
양팔을 들어 올려 가드를 한 구정철과 환두대도에서 뿜어져 나온 강기로 전면을 틀어막은 서태촌.
“호오-. 내 ‘죽음’을 막아? 너희들 좀 하는구나? 하긴 이러니까 구름 가오리를 죽였겠지.”
두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평가하던 소년은 갑자기 허공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아! 거참 쫑알쫑알 시끄럽네! 빨리 끝내면 될 것 아냐!!”
허가되지 않은 접속을 한 그에게 시스템의 경고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어쩌나. 내가 너희하고 좀 놀아주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내가 시간이 없어.”
소년은 그렇게 말을 마치며 오른손을 들어 두 사람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죽어.”
뭉클.
소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
어둠이라 불러야 마땅할 그것이 빛보다 빠르게 쏘아져 서태촌과 구정철을 휘감았다.
죽음을 형상화한다면 이럴까?
치 이익….
두 사람의 주변을 잠식한 검은 기운은 주변의 모든 것을 죽였다.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딛고 있던 바닥이 먼지처럼 바스러져 허물어지고, 빛과 공기마저도 생기를 잃고 흩어져 버렸다.
자신의 호신강기를 소멸시키는 검은 기운을 본 구정철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미친…. 이딴 게 가능하다고?”
이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80 인생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사(怪事).
구정철은 검은 기운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호신강기를 겹겹이 펼치며 몸을 날렸다.
그곳에 더 머물다간 주변에 있는 10대 길드장들이 모두 죽어 나갈 판이었으니까.
그런 구정철의 귓가에 소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죽어주면 좋을 텐데 참 귀찮게 하네. 네 나이 정도면 인간 중에서도 늙은 인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삶에 미련이 많아?”
터무니없는 말을 태연한 목소리로 내뱉던 소년이 이내 주먹을 그러쥐고 구정철의 호신강기를 두들겼다.
콰창-!!
구정철은 소년의 가벼운 주먹질 한 번에 유리창처럼 깨져나가는 호신강기를 보자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고작 이 정도였다고?’
전 세계에 단 여섯 명.
SSS급에 올라 지구상 최강자 중 하나가 되었다 자만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쩌저적!
콰장창--!
온 힘을 다해 마나를 불어넣어 만든 호신강기가 다시 한번 유리창처럼 깨져나가며 구정철의 몸이 오롯이 검은 기운에 노출되었다.
“끄아악!!”
순간 구정철의 입에서 괴성이라 불러야 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은 기운에 침습 당한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어 먼지처럼 바스러져 흩날렸다.
“이것까지 버틴다고?”
하지만 구정철은 죽지 않았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뼈와 살이 분해되는 와중에도 소년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구정철.
“와우-. 반격할 정신이 있다고? 너 정말 재미있는 놈이구나?”
하지만 그 주먹은 맥없이 소년의 손에 붙잡혔다.
“이대로 죽이긴 아까운데…? 너. 내 사도가 될래?”
그리고 이어진 소년의 말에 구정철은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지금 사도로 쓰는 놈이 영 비리비리해서…. 너 정도면 꽤 튼튼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어때? 생각 있어? 사도가 되겠다면 살려줄게.”
밑도 끝도 없는 소년의 말에 구정철의 입에선 전에 없이 날 선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살려준다고 하면 내가 이 나이 먹고 너 같은 애새끼 밑구멍을 닦을 줄 알았느냐?! 말 같잖은 소리 말고 죽여라!”
“허…. 내가 외모가 어리지 나이가 어린 게 아닌데…. 말이 너무 심하네. 고작 80년밖에 안산 애송이 새끼가.”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등 뒤로 손을 뻗었다.
텁.
퍼펑!
하늘을 멸한다는 이름을 가진 강기가 소년의 손에 붙잡혀 터져 나갔다.
서태촌의 멸천세였다.
“설마 이런 거 믿고 그 지랄을 한 거 아니지? 그럼 실망이야. 너 나름대로 기백 있어 보였거든.”
멸천세를 막아낸 놈을 툭툭 털어낸 소년의 시선이 다시 구정철을 향했을 때.
“끄으으으…….”
구정철은 소년을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온몸에 휘감긴 검은 기운이 쉴 새 없이 그의 육신을 좀먹으며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니까.
“아. 넌 대답할 상황이 아니구나? 아쉽네.”
스윽.
털썩.
소년이 쥐고 있던 구정철의 손을 놓자 검은 기운에 휩싸인 구정철은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너는 어때? 너도 싸움 좀 하는 것 같은데. 내 사도가 될 생각 없어?”
그런 구정철을 일별한 소년의 시선이 서태촌을 향했다.
츠츠츠츠….
환두대도에서 뿜어내는 강기로 검은 기운을 막아내던 서태촌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져 경련하는 구정철을 향했다.
장대했던 체구, 두꺼웠던 근육이 먼지처럼 바스러지고 있는 구정철.
경쟁자. 친구. 적.
80년의 생을 살며 수많은 장소에서 마주해야 했던…. 이제는 하나 남은 지기가 죽음과 싸우고 있는 것을.
서태촌의 눈길을 따라 구정철을 바라본 소년은 이내 입꼬리를 씰룩였다.
“네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어쩔 수 없네….”
파창!
그 말과 함께 서태촌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소년의 손끝이 호신강기에 닿자 검은 기운을 버티고 있던 서태촌의 호신강기가 힘없이 바스러졌다.
텁.
이윽고 서태촌의 목덜미를 움켜쥔 소년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도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