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39화 (138/202)

139. 강림(降臨) (1).

인형사는 천장을 올려다 봤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 사이로 푸른빛의 결계가 보였다.

‘아직도 피가 모자란 겁니까?.’

작전이 시작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그의 신은 아직도 응답이 없었다.

결계의 빛이 푸른 것은 아직 주술을 완성시킬 제물이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으득.

인형사의 입술 사이로 뼈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기 어린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도연우.

날카로운 칼을 겨눈 채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태촌.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강현.

무슨 생각인지 모를 강현의 눈동자를 마주한 인형사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사혼 감옥을 탈출한 것도 당신의 능력 때문이겠죠?’

신이 하사한 성물을 파괴할 능력을 가진 자이니 사혼 감옥을 탈출하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었으리라.

분노가 일었다.

‘저런 하찮은 자 때문에….’

이제 겨우 S급 각성자에 불과한 자 때문에 자신이 수세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완벽한 계획이 고작 저런 먼지와 같은 자 때문에 틀어졌다는 것이 그의 분노를 자극했다.

성물을 파괴한 것으로 보아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 그 강함은 하찮기 그지없었다.

인형사의 눈이 강현에게 머무른 그 잠깐의 시간.

쉬익-!

티티팅!

바람을 가르고 쏘아져 온 날카로운 창날이 수천 개의 바늘과 은사가 뭉쳐 만들어진 방패를 뚫지 못하고 멈춰 섰다.

“눈깔 돌아가는 거 보니 아직 여유가 있나 봐?”

도연우였다.

신의 가호를 받아 SSS급에 오른 자신과는 다르게 오롯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SSS급에 오른 천재.

그 재능이 아까워 신의 사도가 되기를 권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거부했더랬다.

‘그때 인형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촤르릉!

얼기설기 얽혀있는 은사를 풀어낸 도연우의 창끝이 다시 인형사를 겨누고 쏘아져 왔다.

심장을 노리고 쏘아져 온 그 공격을 허리를 뒤틀어 피해내는 인형사.

번-쩍!

서걱!

하지만 그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도연우만이 아니었다.

번쩍이는 푸른색 섬광과 함께 인형사의 옆구리를 할퀴고 지나가는 검격.

서태촌의 단천세였다.

인형사가 하나 남은 손으로 울컥 흘러나오는 피를 틀어막았을 때 무심한 서태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겁하다 생각지 말게.”

한기가 서린 차가운 눈으로 인형사를 쏘아본 서태촌이 다시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샤아악!

바람이 잘려나가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인형사를 양단할 듯 쏘아져 나가는 반월형의 도기.

티티팅!

겹겹이 쌓은 은사와 바늘들이 서태촌의 도기를 막아서는 순간.

퓨퓨퓨퓨푹!

사각에서 쏘아져 온 창의 그림자가 인형사의 몸을 유린하고 지나갔다.

철퍽.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시고.

번-쩍!

휘청이는 인형사를 향해 다시 한번 쏘아져 온 서태촌의 단천세.

황급히 바닥을 굴러 단천세를 흘려보내고 안심하던 인형사는 이내 한줄기 빛살에 의해 허벅지가 관통당했다.

‘참…천재란 것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아공간 결계의 안에서 깨달은 SSS급 스킬을 이 짧은 시간에 능숙하게 사용하는 도연우를 보자니 욕도 안 나왔다.

‘어떻게 되먹은 재능인지….’

익힌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스킬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재능이란 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재능이란 말인가.

하지만 적에게 감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바닥을 구르며 빼낸 힐링 포션을 상처에 뿌리고 마셨다.

이런 수모를 격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인형사는 기억을 뒤적거려 봤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피를 흘리고 바닥을 구르고.

상처 입은 쥐새끼처럼 몰이를 당하는 것은 그의 인생을 모두 뒤져봐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포션에 의해 상처가 회복되며 찾아오는 끔찍한 재생통에 미간을 찌푸리던 인형사의 눈에 구석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강현이 들어왔다.

이 모든 일의 원흉.

구름 가오리를 이용한 테러 계획 실패.

사혼 감옥을 이용한 SSS급 각성자 제거 계획 실패.

그 모든 실패의 뒤엔 강현이 있었다.

미끼라는 이름으로.

그저 이용하기 좋은 미끼에 불과했던 자가 어느샌가 대계의 걸림돌이 되어 버릴 만큼 성장해 버렸다.

‘성물만 멀쩡했더라면….’

신께서 하사하신 성물만 멀쩡했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인형사가 ‘권능의 공간’이라 부르는 아공간 결계만 멀쩡했더라면 SSS급 각성자가 수십 명이 덤비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성물을 파괴한 것도 저자였지.’

하지만 강현이 성물을 파괴해 버린 지금, 인형사는 그저 평범한 SSS급 각성자에 불과했다.

뿌득.

강현을 바라보는 인형사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와 함께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저자를 인질로 잡으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서태촌과 도연우의 연수합격.

톱니처럼 맞물려 쏟아지는 그 공격을 회피하고 받아내며 인형사는 조심스럽게 강현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전투를 지켜보던 강현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형사를 보며 눈을 빛냈다.

‘어째…. 저거 슬금슬금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마치 재미있는 장난이 떠오른 악동처럼.

***

“X발. 이러다가 우리만 X되는 거 아니야?”

각성자 센터 5층.

6층을 점거하기 위해 올라가다가 10대길드 길드장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길드원들에게 밀려 5층으로 되돌아온 욱일회 소속 각성자 중 하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뭐? 지금이라도 도망가자고?”

“90층에서 내려오기로 한 대주들도 감감무소식이고 지하 8층에 있는 회주랑 친위대도 연락이 안 되는데 무슨 방법을 찾아야지! 이러고 있다간 몰살이라고!”

“방법? 무슨 방법? 뭐 유리창을 부수고 뛰어 내리기라도 하게?”

일반인이라면 5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자살행위와도 같겠지만 각성자라면 달랐다.

D급만 되더라도 5층 높이에서 낙하하는 것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잘한 부상은 입겠지만 그거야 포션 바르면 낫는 거니까.

“정 안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럼 여기 앉아서 그냥 죽으라고?”

“야. 진정하고 창밖 좀 봐라.”

“…뭐?”

“창밖 좀 보라고.”

동료의 말에 창 쪽으로 눈을 돌린 그의 눈빛은 암울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색 결계.

외부 침입과 내부의 인물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는 결계는 이제 그들을 가둔 감옥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이곳 한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X발. 그러게 인질 좀 남겨두자니까….”

인질이라도 있었다면 그 인질을 볼모로 10대 길드 쪽과 협상을 시도해 볼 수도 있으련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회주의 명령은 말살(抹殺).

따라서 그들은 지하 8층부터 이곳 지상 5층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올라왔다.

그렇게 그들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수가 물경 1만을 넘어섰고, 당연히 그들의 선택지에 협상과 항복이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항복하더라도 죽는 것은 불 보듯 뻔했으니까.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서 끔살을 당하느냐 아니면 재판을 받고 교수형을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후위에 있는 자들이 생존을 위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콰과광!

5층으로 진입하려는 10대 길드장과 맞서 싸우고 있는 전위에서는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고 있었다.

퍼펑!!

“크아악!”

“막아! 뚫리면 다 죽는 거야! 커억!”

서걱!

비명과 고함. 그리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이 합주를 이루고 있는 이곳.

뻐억!

“킁. 이따위 테러를 자행한 놈들이 지들 목숨은 끔찍하게 챙기네. X팔놈들.”

구정철과 버금가는 커다란 체구에 전신을 둘러싼 단단한 근육이 인상적인 사내.

한태산은 자신의 건틀릿에 묻은 핏물과 인간이었던 것의 잔해를 털어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목숨이 아까웠으면 이따위 짓거리는 하지 말았어야지 이 쓰레기 새끼들아!”

사자의 포효와 같은 그 외침에 놀란 이들이 움찔거리며 물러난 것도 잠시.

휘이익-! 퍼펑!

쫘좌좌좍!

허공을 격해 화려한 스킬들이 떨어져 내리며 한태산의 몸에 적중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열기가 섞인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공격으로는 저 괴물의 몸에 작은 흠집 하나도 세길 수 없다는 것을.

철왕(鐵王) 한태산의 SS급 스킬.

금강철벽(金强鐵壁).

S급 이하의 모든 공격과 저주에 면역인 금강철벽을 뚫을 수 있는 자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테러리스트들에게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금강철벽의 마나 소모량이 엄청나다는 것.

퐁.

꿀꺽. 꿀꺽.

때문에 한태산은 전투 중간중간에 이렇게 마나 포션을 들이켜야만 했다.

“하. 건물 한번 빌어먹게 튼튼하게 만들었네.”

포션을 다 마신 한태산이 신경질적으로 5층 입구를 막고 있는 벽을 두드렸다.

쾅-!

하지만 SS급 각성자인 그의 주먹질에 벽은 큰 울림과 함께 먼지를 한 움큼 토해낼 뿐 실금 하나 생기지 않았다.

대현건설이 지은 이 각성자 센터의 총 사업비용은 40조 원.

일반적인 건물이라면 같은 금액으로 똑같은 빌딩 열 채는 세울 수 있는 금액이었다.

SS급 이하 스킬에 대한 마법 방어와 물리방어.

영국의 SSS급 각성자이자 대마법사인 아서 게일에게 의뢰해 만들어낸 마법진을 기반으로 건축된 각성자 센터는 그야말로 철옹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록 그때 당시에는 돈지랄이라는 혹평을 받긴 했지만, 커다란 폭발이 수십 차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는 걸 보면 오늘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입이 어렵겠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오나연의 물음에 한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도 지들 목숨이 걸려있다 보니 반항이 심하네요. 다른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각성자 센터의 비상계단은 모두 다섯 곳.

2개 길드씩 짝을 이뤄 다섯 곳을 공략중이지만 모두 5층 진입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다른 곳도 입구에서 막혀 진입하는 게 쉽지 않다네요.”

“빌어먹을. 싸그리 쓸어버리고 내려가야 하는데.”

한태산은 오나연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선두에 나와 있는 몇 놈 잡아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뒤가 문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금강철벽 스킬이 해제되면 쏟아져 내릴 수천 개의 스킬을 버틸 재간은 그에게도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벽을 파괴해 입구를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더욱 답답한 상황이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놈들이라고 마나 포션을 무한대로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저들이 이대로 스킬 폭격을 계속하면 곧 바닥을 드러낼 거에요. 그때까지만 참으세요.”

“끙….”

오나연의 말에 한태산은 온몸으로 스킬을 맞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파서가 아니라, 답답해서….

그렇다고 이놈들을 놔둔 채 아래로 내려 갈 수도 없었다.

이 위로 20층마다 만들어진 대피소에 수만 명의 민간인이 모여있었으니까.

관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차단벽이 내려왔을 테지만 지금은 관제시스템이 먹통이 되어버려 대피소는 제 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꽈과과광!!

덜덜덜덜덜.

지하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폭음과 함께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아직도 폭탄이 남아있었나?”

“일반적인 폭탄으로 건물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하단 걸 놈들도 알고 있을 텐데…. 이상하네요.”

한태산과 오나연이 의문 섞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끄아아악!!”

퍼퍼퍼펑!

“괴! 괴물!! 도망쳐!!”

꽈르르릉! 콰쾅!!

아래에서 들려오던 폭음에 비명과 고함 소리가 함께 실려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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