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37화 (136/202)

137. 테러 (5).

대회의실의 분위기는 뭐랄까, 조금 살벌했다.

피떡이 되어 결박당해 있는 하성웅은 기절한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대상그룹의 현 회장이라는 주철원은 회의실 구석에서 우지영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내가 대회의실에 들어서자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낙찰받은 마나의 묘약은 전부 전달했는데,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뭔가 묘한 열기가 어린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길드장들을 지나쳐, 서 영감님의 옆에 섰다.

“왔나?”

“네. 저건…. 사혼 감옥인가요?”

“피를 머금지는 않았으니 그것은 아닌 것 같은데, 사혼 감옥을 펼쳤던 술사가 펼친 것만은 확실하네. 내 단천세를 흡수하더니 강도가 강화되더군.”

씨드의 보고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잠시만 집중 좀 하겠습니다.”

“음….”

서 영감님께 양해를 구한 뒤 사혼 감옥으로 의심되는 결계를 바라봤다.

-칭호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대상의 ‘호의’와 ‘악의’가 시각화됩니다.

-특성: 공간시 S(LV9)가 발현됩니다. 공간의 정보를 추출합니다.

-‘칭호: 인필리언의 구원자’가 ‘특성: 공간시’와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시각화됩니다.

내가 주시하는 대상. 즉 백색의 결계에 대한 정보가 시각화되어 떠올랐다.

[인형사의 장난감 주머니]

[등급: ***]

[설명: 인형사 ***가 만들어낸 아공간 결계입니다. 내 외부의 충격을 흡수해 강화되는 방식의 결계로 장난감 주머니의 주인인 인형사 ***은 결계 내에서 신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지금 공간시의 레벨로는 알아낼 수 없는 정보가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공간….”

인형사의 이름이라던가 결계의 등급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놈이 펼친 결계가 아공간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혼 감옥 같은 일반적인 결계였다면 상대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아공간 결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공간은 또 내 전문분야지.’

적어도 이 대한민국 땅에 나만큼 아공간을 많이 접한 사람은 없을 테니.

‘사령관님. 급히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내심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씨드의 뇌파 통신이 전달됐다.

‘현재 각성자 센터의 저층부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장악당해 직원분들이 탈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헌터 와치를 이용한 홀로그램이 허공에 떠올랐다.

‘또한, 외부에 설치된 원통형의 결계가 탈출과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뉴스 화면엔 거대한 푸른색 원통형 결계에 휩싸인 각성자 센터가 송출되고 있었다.

기자인지 앵커인지 모를 남자가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테러리스트의 총인원은 1만에서 1만 2천 사이로 추산되며, 현대 각성자 센터의 보안 요원들과 일반 각성자들이 연합하여 싸우고 있지만 밀리는 추세입니다.’

‘지하층과 지상 1층부터 5층까지는 모두 테러리스트들이 점거한 상황이며, 현재 6층 진입을 놓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테러리스트라니….

이건 정말 미친 거다.

심각한 얼굴로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서 영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우리 중 몇몇이 내려가 봐야겠군….”

그 말에 길드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얼굴이었지만 자신들이 내려가면 저 정도쯤은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SS급 각성자 여섯에 SSS급 각성자 하나.

대한민국 최강자들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서 영감님이 망설이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 내려가셔도 됩니다.”

“그자. SSS급 각성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네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어?”

나는 결계를 가리켰다.

“안에 연우형이 있지 않습니까. 형과 함께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 영감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럼 부탁함세.”

아마 지금도 테러리스트들에게 희생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반인들과 각성자들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릴 무렵, 가만히 듣고 있던 길드장 중 하나가 다가와, 서 영감님에게 말했다.

“어르신. 아직 S급에 불과한 사람인데, 그냥 우리 중 한 사람이 남는 게 좋지 않을까요?”

황해도 해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고려 길드의 길드장 오나연이었다.

“아 그쪽. 그러니까 강현 씨를 믿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확실히 오나연의 목소리엔 악의보단 날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 묻어나왔다.

언제 봤다고 날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흠…. 그럼 오 길드장도 여기 함께 남는 거로 하지.”

더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싫다는 듯 결론을 내린 서 영감님은 망설임 없이 바로 걸음을 움직였다.

“아. 저놈들은 우리가 데리고 가겠네. 남겨놓아 봐야 방해가 될 것들이니.”

서 영감님이 그렇게 말하며 손짓을 하자. 한태산이 무어라 구시렁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하성웅을 어깨에 들쳐멨다.

그러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주철원을 노려보자, 주철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도 갑니까?”

“네 발로 가기 싫다면, 여기 이놈처럼 만들어줄 의향도 있는데 그렇게 해줄까?”

주철원은 한태산의 어깨 위에 있는 하성웅을 잠깐 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제. 제 발로 가. 가겠습니다.”

“그래 살아 있어야 재판도 받지.”

살기가 듬뿍 담긴 한태산의 말에 움찔 몸을 떤 주철원이 부리나케 걸음을 움직여 서 영감님 옆으로 붙었다.

그나마 저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갈 사람은 갔고. 이젠 내 일을 해야 할 차례였다.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줌마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무시했다.

지금 급한 건 이쪽이니까.

[인형사의 장난감 주머니]

나는 백색의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

꽈드득. 철퍽.

“컥…….”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칼날이 몸을 헤집는 고통에 도연우는 입을 쩍 벌리고 신음을 흘렸다.

“아파요?”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도연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러게 내 손을 잡았으면 좋았잖아요. 이런 꼴 당할 일도 없고. 어때요? 지금이라도 신의 가호를 받고 사도가 될래요? 그게 내 인형이 되는 것보단 나을 텐데.”

“죽…여!”

악에 받친 도연우의 외침에 인형사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역시. 근성이 보통이 아니네요. 마음에 들어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호의를 거절당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푸욱!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등을 뚫고 들어온 인형사의 손이 쿵덕거리며 뜀박질하는 도연우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옥죄이는 고통에 도연우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

“아깝네요. 이 잘생긴 얼굴이 생기를 잃는 건 정말 싫었는데.”

그런 도연우를 보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인형사.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잘 만든 인형이라 해도 살아 있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반항을 하니 저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네요. 미안해요. 도연우 씨.”

미안함이라고는 한 푼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인형사는 도연우의 심장을 더욱 억세게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잡아 뜯을 것처럼.

그 순간.

드드드드.

쩌저저저적!

세상이 진동하며 균열이 일어났다.

어떤 대처를 하기도 전에 파편이 되어 어디론가 빨려들어 가는 결계의 조각들.

쩌저적!!

콰-앙!

굉음과 함께 결계가 붕괴되며 도연우와 인형사가 결계 밖으로 튕겨 나왔다.

우당탕.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한 몸이 된 듯 뒤엉켜 바닥을 구르는 인형사와 도연우.

“이게 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인형사의 말이 채 끝나기 전.

어딘가에서 날아온 날카로운 검격이 도연우의 심장을 쥐고 있던 인형사의 팔을 잘라냈다.

서걱!

인형사가 결계의 권능으로 만들어냈던, 도연우의 가슴에 박혀있던 검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텁.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도연우를 안아 든 강현은 바쁘게 손을 놀렸다.

퐁.

한 병에 1억이 넘는 최상급 힐링 포션 수십 병을 순식간에 쏟아붓고는 이내 마나 포션도 들이붓기 시작했다.

마치 포션으로 도연우를 절이기라도 할 것처럼.

강현이 도연우의 치료에 집중할 때 인형사는 잘려나간 팔도 챙기지 못한 채 몸을 피해야만 했다.

쫘좌좌좌작!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쏘아져 오는 번갯불과 같은 검기 다발.

재빠르게 몸을 날렸지만 검기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인형사를 쫓았다.

빠지직!

이내 뇌전을 머금은 검기에 적중당한 인형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끄으으!”

파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인형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공격한 인물을 노려봤다.

“뇌왕(雷王). 오나연….”

“어머! 벌레 새끼가 말을 다 하네?”

깜짝 놀란 얼굴로 검을 치켜든 오나연은 검을 내리그으며 말을 이었다.

“징그럽게….”

파지지직!!!

오나연의 검 끝에서 쏘아져 나온 검기가 인형사를 압박했지만, 그는 오른손을 가볍게 튕기는 것으로 그것을 흘려버렸다.

핏!

티팅!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날아든 무언가를 검으로 쳐낸 오나연은 놀란 눈으로 인형사를 쳐다봤다.

“바늘?”

그녀의 검기를 흩어버린 무기가 고작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바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형사의 관심은 이미 오나연에게서 떠나 있었다.

“네놈이구나….”

부상이 치유되며 찾아온 고통에 바르르 몸을 떨고 있는 도연우를 안고 있는 사내.

“감히 신께서 하사하신 성물을 파괴한 놈이 너였어….”

광기가 일렁이는 붉은 눈.

시선을 강현에게 고정한 채 중얼거리는 인형사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뚝뚝.

잘려나간 팔을 지혈하는 것도 잊은 듯 멍하니 서 있는 그 모습은 빈틈투성이였지만.

쫘좌좌작!

핏! 피핏!

기습적으로 쏘아져 오는 오나연의 검기 다발을 단지 손가락 몇 번 튕기는 것으로 막아낼 정도로 강했다.

갑작스럽게 결계에서 튕겨 나와 당황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팔을 잃는 일도 없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너….”

인형사는 하나 남은 손을 들어 강현을 가리켰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 신의 성물을 파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에게 하사받은 성물을 잃었다는 죄악감과 들끓는 분노였으니까.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주마.”

강현은 인형사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온몸에 소름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피부의 솜털이 바짝 일어설 정도로 서늘할 살기가 강현과 오나연을 포함한 주변을 장악하려 할 때였다.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티딕.

강현의 품에 안겨있던 도연우가 몸을 일으키며 뿜어낸 기운이 인형사의 살기를 밀어냈다.

드드드.

기운과 기운이 부딪히며 대회의실이 당장이라도 붕괴할 것처럼 흔들렸다.

“이 녀석. 내가 아끼는 동생이자 제자라서 말이야.”

“괜찮아요. 형?”

걱정이 담긴 강현의 물음에 도연우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정도야 껌이지. 근데 인사는 이따가 하자. 아직 저 새끼랑 볼일이 남아서.”

일어서며 강현을 자신의 뒤로 물린 도연우가 손을 뻗자 바닥을 뒹굴고 있던 신창이 날아와 도연우의 손에 잡혔다.

신창이 한울 길드의 상징이자 길드장의 신물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주인을 가리는 무구.

훙훙-.

바람 소리를 내며 신창을 휘두른 도연우가 웃는 얼굴로 인형사를 바라봤다.

“어쩌지? 인형 놀이는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이랑 함께 해야겠는데?”

그 목소리엔 압도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 인형사를 상대로 분투를 해야 했던 도연우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