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테러 (4).
도연우가 SSS급 스킬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을 무렵.
쾅! 쩌억!
우지직!
폐허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하 8층 통합 관제실에선 구정철과 욱일회주의 싸움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뻐억!
싸움이라기보단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불러야 할 그것.
SS급 각성자인 회주가 대적하기엔 구정철은 너무 강했다.
하지만 사지가 끊어지고 모든 장기가 박살이 나도 회주는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언데드처럼.
“정말, 회복력 하나는 언데드보다 더하군.”
그 모습을 본 구정철이 혀를 내둘렀다.
언데드 보스 몬스터 엘더 리치의 회복력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리치는 라이프베슬이라는 약점이라도 있지만, 회주에게는 그런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장을 터트려도, 머리를 박살 내도 회복하다니. 초재생과 불사인가?”
말 그대로 약점이 없었다.
회주의 공격능력은 특출나지 않았지만, 구정철의 일방적인 공격에도 죽지 않을 만큼 생존력이 대단했다.
팔다리를 끊어내고 머리를 박살 내도 눈 한번 깜빡할 시간이면 다시 회복되어 버렸다.
초재생(超再生)과 불사(不死).
하나하나 상대하기에도 쉽지 않은 스킬들인데, 두 개를 한몸에 지니고 있으니 그 시너지가 엄청났다.
‘세포 단위로 쪼개서 박살을 낸다면 죽일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하던 구정철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서태촌이라면 모를까 구정철에겐 그런 섬세한 공격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큰 거 한방에 세포 하나 핏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소멸시켜야 한다는 건데….’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회주의 몸을 두들기며 방법을 궁리하던 구정철의 기감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대피를 위한 소음과는 또 다른 비명과 고함.
그것은 지상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텁.
구정철은 회주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렸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냐.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는 이유가 뭐지?”
언뜻 느껴지는 것만 해도 수천.
이것은 그동안 욱일회가 진행해 왔던 테러와는 그 궤가 달랐다.
지금까지의 테러가 최소한의 희생으로 큰 타격을 입히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면 오늘 공격은 테러가 아니라 기습적인 전면전과 같았다.
“꿍꿍이 같은 게 있을 리가 있겠나. 그저 종으로서 주인의 명을 따를 뿐이라네.”
‘종? 주인? 이건 또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어딘가 허허로운 회주의 말을 들은 구정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암약했던 욱일회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구정철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번 일의 배후가 천황이란 소리냐?”
욱일회주에게 주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본 본토에서 신 놀음을 하는 천황 이외에는 없었다.
회주를 노려보는 구정철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그 심각함은 회주의 가벼운 고갯짓으로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이보게 정철이. 그따위 애송이가 내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구정철의 억센 손아귀에 목덜미가 잡혀 있음에도 여유롭기 그지없는 목소리.
오래된 친우라도 되는 양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회주의 모습에 구정철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꽈앙!
그리고 구정철은 회주를 바닥에 처박아 버리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쩌적! 꽈르르릉!
그렇지 않아도 엉망진창이던 관제실 바닥이 움푹 꺼지며 커다란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뿌옇게 피어오른 분진을 손을 휘젓는 것으로 흩어버린 구정철이 으르렁거리듯 말을 토해냈다.
“다시는 그 시궁창 같은 주둥이에 내 이름을 담지 마라. 노괴.”
하지만 그런 구정철의 목소리는 회주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허허허. 자네도 나처럼 가슴속에 화가 많은가 보군.”
바닥에 처박히며 박살 났던 머리가 순식간에 복구된 회주는 너털거리는 웃음을 토해냈다.
“자네나 나나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그리 화낼 필요 없네.”
“그건 또 무슨….”
“오늘 이곳은 무너질걸세. 그리고 이 안에 있는 모두는 제물이 될 거야. 나도 자네도 말이야.”
구정철에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회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허. 이거 아무래도 오늘 무리를 좀 해야 할 모양이군.’
구정철은 두툼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위에서 저런 난리가 났음에도 서태촌이나 도연우가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154층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성웅. 그 애송이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는 건 아닐 테니, 그 대상 회장의 수행원이라는 놈이 문제란 소리군.’
어쩌면 회주가 말한 주인이라는 놈이 154층에 있는 그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구정철은 분노에 찬 주먹질을 시작했다.
퍼퍼퍽!
그는 자신이 대통령일 때 세운 각성자 센터가 무너지는 꼴을 이대로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물론, 회주의 말처럼 제물이 될 생각도.
콰아아앙--!!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저 불길한 폭발음도 그의 손이 빨라지는 데 한몫을 했다.
***
154층 대회의실.
‘이거 곤란하게 되었구나.’
지름이 5m쯤 되는 새하얀 결계를 바라보는 서태촌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백두 길드장 하성웅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새를 못 참고 도연우가 사고를 쳐버렸다.
그 정체불명의 수행원과 함께 결계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후, 상황을 인지한 서태촌이 검격을 날렸지만, 결계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서태촌의 검격을 흡수해 버렸다.
“사혼 감옥…?”
“사혼 감옥이 뭔가요. 어르신?”
제압당한 하성웅을 지키고 있던 현월 길드장 우지영이 물어왔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만일 저 결계가 사혼 감옥이라면 낭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천세를 압축시켜 날렸지만, 결계는 부서지기는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는 역시가 되었고 도연우와 함께 모습을 감춘 정체불명의 수행원이 사혼 감옥을 만든 결계 술사 당사자라는 확신을 얻었다.
“자네. 저 인사 좀 이리로 끌고 오게.”
그렇게 최악의 결론에 도달한 서태촌은 우지영에게 창백한 안색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주철원을 데리고 올 것을 부탁했다.
잠시 후.
우지영에게 목덜미가 붙잡혀 끌려온 주철원은 공포와 두려움이 버무려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서태촌. 우지영. 한태산. 이석평…….
하나같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 가닥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에 주철원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윽고 들려온 얼음장보다 차갑고 송곳보다 날카로운 서태촌의 목소리.
“욱일회의 자금줄이시라고?”
확신 어린 그 목소리에 주철원은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사. 살려주십시오. 어르신! 저는. 저는 몰랐습니다! 모든 건 전 회장인 주석원이 한 짓입니다! 저는 그 새끼가 죽고 회장직을 넘겨받은 죄밖에 없어요!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르신!”
그 때문에 주철원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형을 팔며, 자신은 죄가 없음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주철원의 그 노력은 경멸이라는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되돌아왔다.
자기가 살기 위해 형을 팔아먹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살고 싶나?”
서태촌의 물음에 주철원은 부러질 것처럼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들의 살기 어린 눈빛 속에서 서태촌의 물음은 한줄기 구원의 동아줄과도 같았으니까.
“자네가 살려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야 할 텐데?”
“마, 말하겠습니다! 그, 그러니까 제가 욱일회를 알게 된 건…….”
한번 입을 연 주철원은 쉼 없이 말을 토해냈다.
말을 멈추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덕분에 서태촌은 원치 않은 정보를 꽤 많이 들어야만 했다.
그마저도 영 시원치 않은 정보였지만.
“…그래서 제가 그자와 함께 경매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주철원이 폭포수처럼 쏟아낸 불필요한 문장의 나열 속에서 그나마 쓸만한 정보라곤 단 하나였다.
욱일회주의 인장이 찍힌 지령서를 들고 찾아온 정체불명의 수행원이 욱일회주를 아랫사람 부르듯 불렀다는 것.
‘욱일회에 관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군. 쓸만한 정보가 없어.’
주철원이 회장직에 오른 뒤 한 거라곤 오직 하나였다.
욱일회의 저금통.
돈을 가지고 있으라면 가지고 있고 어딘가로 송금하라면 송금한다.
어떻게 보면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중요한 자리였지만 그에겐 실권은 없었다.
그 일조차 욱일회 조직원들로 가득 차버린 비서실에서 도맡아 처리했으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은 서태촌이 우지영에게 눈짓했다.
“잘 지켜보도록 하게. 법정에 세워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니까.”
서태촌의 말에 우지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주철원은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당장 목이 잘리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그나저나 저 결계를 어찌한다….’
사혼 감옥에 갇혔을 때도 강현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
충격을 흡수해 더 강화되는 특성을 가진 건 사혼 감옥과 같다.
괜히 어설프게 공격해 파괴하려는 시도는 결계를 더욱 강화할 거라는 소리였다.
“방법이 없어. 방법이…….”
자력으로 탈출하길 바라는 건 요원한 길이었다.
SSS급에 올랐다곤 하지만 도연우는 아직 SSS급 스킬을 개화(開化)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 적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결계 안에 동급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를 적과 함께 갇혔으니 시간이 지체될수록 도연우의 생존확률은 낮아질 터.
이런저런 생각에 서태촌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였다.
“연우 형은 저 안에 있나요. 영감님?”
강현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
“크윽-.”
시간이 지날수록 도연우의 몸엔 상처가 늘어갔다.
이젠 마나 포션은 물론이고 힐링 포션도 바닥이 났다.
마나홀엔 마나가 있었지만,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정말 지독하군요….”
입고 있던 옷가지는 넝마가 되었고 급소를 제외한 몸뚱어리엔 빼곡하게 상처가 새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요. 꼭 가지고 싶어졌어요.”
“좆이나 까 잡숴.”
“…저급한 욕설…. 지금 많이 해두도록 하세요, 내 인형이 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테니까. 하하하.”
거칠기 짝이 없는 도연우의 언사에도 가면인은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멸망해 가는 세계처럼 최악의 재난을 모아놓은 것 같은 결계 안에 가면인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번-쩍!
도연우가 쥐고 있던 신창에서 한줄기 섬광이 뻗어 나와 공간을 갈랐다.
움찔.
그 빛에 반응한 가면인이 몸을 움찔거리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비처럼 쏟아지던 벼락도.
온몸을 할퀴던 칼날의 폭풍도.
그리고 발밑에서 끓어오르던 용암의 바다도.
모든 것이 환상처럼 사라지고 원래라면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가면인과 도연우만 남았다.
“큭….”
신음을 내뱉으며 무너져내리는 가면인.
도연우는 여유만만하던 가면인의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신음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순간을 위해 상처 입는 것을 감내하며 마나를 아낀 보람이 있었다.
그야말로 최후의 일격이었으니까.
“어때? 조금 따끔하지?”
“…….”
도연우는 쉬지 않고 나불대던 가면인의 주둥아리가 멈추니 조금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물에 갇힌 물고기라 생각해서일까?
가면인은 도연우를 공격하면서도 쉴 새 없이 입을 놀렸고 덕분에 도연우는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면인이 속해 있는 ‘교단’이라는 집단과 그들이 신으로 추앙하는 12신에 관해서.
‘술사를 해치웠으니 결계도 곧 사라지겠지. 밖으로 나가면 영감님들과 의논을 좀 해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푸욱!
살을 가르는 절삭음과 함께 도연우의 오른쪽 가슴에 검은색 칼날이 돋아났다.
“컥!”
몸을 뒤틀지 않았다면 심장을 관통당했을지도 모를 상처였다.
“호오…. 피했네요? 괘씸해서 혼 좀 내주려 했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가면인의 목소리.
분명 심장을 관통당한 가면인의 시체가 도연우의 눈앞에 있음에도 목소리는 버젓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너…. 어떻게?”
“오-. 이번엔 좀 놀랐나 보네요? 반응이 귀엽네. 도연우 씨.”
우득. 쩌걱.
“컥. 쿨럭.”
가면인은 도연우의 가슴에 박혀있는 칼날을 뒤틀며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요. 이 결계 안에서 나는 신과 같다고…. 원래 신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거랍니다.”
그 말이 끝나고, 도연우의 눈앞에 있던 가면인의 사체는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도연우의 절망을 머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