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테러 (3).
물론 녀석들에게 지옥을 선물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이템: 케이돈]
[등급: EX]
[물리방어: 사용자의 내구 스탯 적용]
[마법방어: 사용자의 지혜 스탯 적용]
[물리공격: 사용자의 힘 스탯 적용]
[마법공격: 사용자의 마력 스탯 적용]
[내구: 사용자의 스탯 총합]
[옵션]
형태 변환
스킬: 아공간 포식(捕食) EX
스킬: 아공간 변환(變換) EX
[설명: 해피니스 시스템 사용자 강현이 수수께끼 알을 부화시켜 얻은 공방 일체의 무구(武具). 사용자 강현의 특성을 기반으로 태고룡 ‘쿠아르탐파’의 특성을 흡수해 만들어진 ‘스킬: 아공간 포식’과 크롤러 ‘검은 그을음’의 특성을 흡수해 만들어진 ‘스킬: 아공간 변환’을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형태 변환이 가능하다.]
[특이사항: 사용자 강현에게 귀속됨.]
바로 녀석들이 가진 인벤토리를 포식하는 것.
“스킬 사용. 아공간 포식.”
-스킬: 아공간 포식이 사용됩니다. 포식할 아공간을 지정해 주세요.
스킬을 사용하자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녹색으로 빛나는 아홉 개의 인벤토리가 떠올랐다.
“오-. 되네?”
솔직히 이게 가능할 줄 몰랐다.
‘주인이 있는 아공간도 포식할 수 있다는 거네.’
전용 던전에 있는 아공간은 모두 주인을 잃은 아공간이었으니까.
나는 거적때기처럼 널브러진 채 독기가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녀석들을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봤다.
테러단체라더니 대주급 정도까지 올라서려면 저 정도 독기는 있어야 하는가 보다.
“아직도 눈빛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
“…….”
놈들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 없이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왜냐고?
당연히 놈들이 쉽게 삶을 포기할 것 같지 않아서다.
“나는 네놈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래. 그래야 내가 준비한 지옥이 의미가 있을 테니까.”
“크큭.”
아까 악에 받쳐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던 그 남자가 웃음을 토해냈다.
고통이 극심할 텐데도 웃을 수 있다니 고통을 감내하는 특별한 스킬을 지녔거나 정신력이 특출난 놈인 것 같았다.
“뭐가 웃기지?”
“뭐가 웃기냐고? 중2병 걸린 찐따 새끼처럼 지옥이네 뭐네 지껄이는 네놈 꼬라지를 봐라. 웃음이 안 나오고 배기는가. 낄낄.”
부상으로 고통이 심할 텐데도 허파라도 토해낼 것처럼 웃는 녀석을 보니 조금 빈정이 상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는데 상대가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으니까.
‘하…. 마음이 쓰리네, 무려 10만 포인트나 들여서 아이템 세팅을 했는데 진심을 의심받다니….’
저벅.
그래서 저놈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틀렸다.
미운데 떡은 왜 준단 말인가? 죽빵을 한 대 더 날리면 모를까.
저벅.
무심하게 걸음을 움직여 놈의 등을 지르밟았다.
우지직.
그나마 아직 버티고 있던 척추와 갈비뼈가 바스러지는 게 발을 통해 느껴졌다.
“끄…윽….”
어떻게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악다문 놈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삐져 나왔다.
“쿨럭.”
하도 처맞아, 터지고 부풀어 오른 입술 사이로 붉은색 핏물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부러진 갈비뼈가 혹여 장기라도 건드린 걸까?
아차 싶어 놈의 등에서 발을 떼자 등판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다행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일단 너부터 시작하자.”
“끄…. 뭐?”
“대상지정. 차서운.”
“너…. 어떻게 내 이름을?”
내가 놈의 아공간을 포식의 대상으로 지정하자 그 말을 들은 놈이 놀란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나는 그저 공간시로 놈의 정보를 확인한 것뿐이지만 비밀이어야 할 자신의 이름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모양이었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스킬: 아공간 포식이 대상: 차서운의 인벤토리를 포식합니다.
-…99…100%
-차서운의 인벤토리가 강현 님의 인벤토리에 흡수됩니다.
-인벤토리가 확장됩니다.
-10245→10345.
-인벤토리 무게 한도가 증가합니다.
-10245㎏→10345㎏
-차서운의 인벤토리에 있던 모든 아이템이 강현 님의 인벤토리로 이동됩니다.
-……
눈앞을 가득 채운 시스템 메시지를 읽는 것만 해도 바빴으니까.
확실히 EX급 아이템은 제값을 했다.
수수께끼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아공간에 들어가서 했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이제는 지난 일일 뿐이다.
‘이젠 달콤한 과실을 먹을 일만 남았지.’
그 순간 뭔가 이변을 느낀 걸까?
“너, 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척추가 부러져 나가고도 고작 작은 신음 하나 흘릴 뿐이었던 차서운이 괴성과 같은 고함을 질러댔다.
‘인벤토리에 뭐 소중한 거라도 있었나?’
“어떻게 내 인벤토리를 봉인한 거지?!”
아. 인벤토리가 열리지 않자 내가 무슨 수를 써서 봉인한 거로 착각한 모양이다.
고작 봉인 같은 게 아닌데 말이다.
하긴, 다른 사람의 인벤토리를 강제로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테니 이해는 됐다.
“뭘 그런 거 가지고 놀래? 말했잖아. 지옥을 선물하겠다고. 이건 내가 네놈들에게 선물할 지옥에서도 애피타이저 정도에 불과해.”
놈들을 위해 구매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메인디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지옥을 선물해야 이놈들이 고통스러울까?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녀석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아이템: 마선의 등선단]
[등급: A]
[설명: 행성 다온의 절대자 마선(魔 仙) 이그한이 등선을 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만든 선단(仙丹). 복용 시 오감이 차단되고 심마(心魔)가 찾아오며 이를 이겨낼 시 등선(登仙)을 이룰 수 있다.]
[주의사항: 심마를 이겨내지 못하면 정신은 심마가 만들어낸 내면세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등선단을 만든 마선 이그한은 미친놈이다. 심마를 이겨낼 자신이 없으면 사용하지 말자.]
바로 저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지옥과 싸우는 것.
심마를 이겨내면 등선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저놈들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렇게 놈들이 가진 인벤토리를 흡수하고 등선단까지 꼼꼼하게 먹이고 나자 놈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에 갇혔다.
“효과는 있는 것 같은데 그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아쉽네.”
전신에 툭 불거져 나온 푸르스름한 핏줄.
간헐적으로 미친 듯이 떨어대는 몸뚱어리.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여기서 끝낼 거냐고?
천만에.
“스킬 사용. 아공간 변환.”
아공간 변환 스킬을 사용해 내 인벤토리를 분리했다.
700칸. 한계 중량 700㎏.
충분히 성인 일곱 명을 담을 수 있을 만한 크기로.
거기에 아공간 조작 특성을 발현해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작했다.
공기를 주입하고 물과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이 놈들에게 공급되도록 조작하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공간 변환에 성공하셨습니다.
-해당 아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선 마나석이 필요합니다.
-인벤토리에 보유 중인 마나석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다.
저런 쓰레기들을 가둘 감옥을 만들기 위해 마나석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놈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을 받기를 원하니까.
수락 버튼을 누르자 인벤토리에 보유하고 있던 마나석이 소모되며 무채색이었던 아공간 포탈이 푸른색으로 빛을 냈다.
-아공간이 활성화됩니다.
-활성화된 아공간이 현재 위치에 고정됩니다.
‘힘들게 얻은 EX급 스킬 가지고 처음 만든 아공간이 감옥이라는 게 조금 걸리네. 쩝.’
씁쓸한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놈들을 감옥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놈들은 이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각성자 센터 90층.
오직 나만 아는 작은 감옥이 만들어졌다.
***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신창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크윽.”
“포기하세요. 이 결계 안에서 저는 신과 같습니다.”
도연우는 저 유유자적한 가면인의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마나가 닿는 곳을 제외하면 결계 안의 모든 공간은 놈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가면인은 모든 것을 창조해냈다.
불의 폭풍과 얼음의 비.
뇌전의 바다와 용암의 해일.
가면인은 마치 신처럼 그 모든 것을 다뤘고 도연우는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호신강기를 펼쳐 몸을 보호할 수 있었기에 이제껏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무리였다.
“마나 포션이 바닥 난 것 같은데 더 버틸 수 있겠어요?”
가면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척에서 생성된 수십 개의 칼날이 벼락처럼 쇄도해 왔다.
카카카캉!
“젠장!”
신창을 휘둘러 어렵지 않게 막아냈지만, 욕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면인의 말처럼 마나홀의 마나가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포기하고 제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그럼 진정한 신의 사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그분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답니다.”
싸움이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가면인은 도연우에게 신의 사도가 되라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도연우는 당연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자칭 신의 사도라는 가면인의 모습 어디에도 신을 떠올리게 하는 성스러움은 없었으니까.
칠흑과 같은 어둠으로 일렁이는 몸,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
그 모습은 성스럽기보다는 기괴했고 신보다는 악마를 떠올리게 했다.
“하. 네 꼬라지를 봐라. 신의 사도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지.”
하지만 그 말은 가면인의 귀에 들리지 않은 듯했다.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의 혼란은 동트기 전의 어둠이라. 여명을 인도할 길잡이여 큰 불을 피워 신의 길을 밝혀라….”
“그 빌어먹을 신이란 놈은 장님인가 보군. 아니면 제 갈 길도 못 찾는 길치이거나.”
도연우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빈정거렸지만, 가면인은 여전히 제 할 말만 주절거렸다.
“…그리하면 동녘 하늘에서 떠오르는 여명과 함께 내가 혼탁한 세상을 신의 빛으로 정화하리라.”
그것은 맹신이자 광신.
오롯이 자신이 믿는 신의 말만이 옳다고 믿는 자의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 손을 잡으세요. 도연우 씨.”
느릿하게 손을 내미는 가면인.
그와 함께 결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면인의 손짓을 따라 뇌전의 비가 쏟아지고 거대한 용암의 바다가 발밑에 모습을 드러내며 메케한 유황 연기를 피워 올렸다.
치이익.
당장은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지만, 푸르게 빛나던 그 색은 떨어지는 낙뢰와 용암의 열기에 서서히 연해져 갔다.
“마지막이라니 나도 하나만 묻자. 네가 욱일회주냐?”
마지막 질문이기 때문일까?
도연우의 물음에 가면인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신의 사도. 욱일회주는 지하에서 구정철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답니다.”
친절하게 대답을 마친 가면인이 말을 이었다.
“이제 제가 답을 들을 차례군요. ‘우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도연우 씨?”
하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나보고 그 꼬라지로 살라고? 좆 까.”
가면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연우는 신창을 틀어쥐고 그에게 창날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쯧. 기회를 주었는데도 걷어차다니 불신자들은 어쩔 수가 없군요.”
앞으로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인 가면인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자 그나마 잠잠했던 바람이 거세지며 폭풍을 만들어냈다.
“재미없겠지만 인형으로 만드는 수밖에…. 그렇게 되면 당신이 지키려는 그 비밀도 더는 지킬 수 없을 겁니다.”
투두두두.
그와 함께 호신강기를 두드리는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과 쏟아지는 뇌우.
도연우의 몸을 감싸고 있는 호신강기는 제 색을 잃고 겨우 형태만을 유지할 정도가 되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가면인을 노려보는 도연우의 눈빛은 포기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하나의 빛….’
SSS급에 오르고도 아직 만들지 못한 SSS급 스킬.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그 깨달음의 실마리가 극한의 상황에서 손에 쥐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