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34화 (133/202)

134. 테러 (2).

콰아앙!

각성자 센터 지하 8층.

통합관제실을 차단하고 있던 문이 파괴되며 그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진 관제실의 내부.

갑작스러운 적의 난입에 분분히 무기를 빼 드는 수하들 사이에 서 있는 백발 백미의 노인.

욱일회주는 어딘가 텅 빈 눈으로 터져나간 관제실을 입구를 바라봤다.

철퍽.

흉험한 기세를 내뿜으며 피가 고인 관제실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장대한 체구의 노인.

“투왕(鬪王)!”

투왕 구정철의 등장에 무기를 움켜쥐고 경계하던 이들이 분분히 걸음을 뒤로 물렸다.

세계에 단 6인만 존재하는 SSS급 각성자의 등장에 관제실을 점령하고 있던 이들은 모두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빌어먹을 버러지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새끼를 잃은 야수의 분노가 이러할까?

관제실의 참상을 본 구정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낮고 거칠었다.

각성자 센터.

이 높고 높은 바벨탑은 20년 전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착공에 들어간 건물이자 어찌 보면 구정철의 최대 업적 중 하나였다.

바벨탑.

세간에선 각성자들의 욕망을 담은 건물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각성자 센터는 60여 년간 저 바닥에 깔려 있던 각성자의 인권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며.

기나긴 시간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위해 희생해 온 이들을 위해 새운 위령탑과도 같은 것이었다.

던전에서 시체조차 찾지도 못한 수많은 각성자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니까.

물론 지금은 바벨탑이란 오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구정철….”

“회주님! 피하셔야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상대할 수 없습…!”

퍼어억!

구정철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회주의 곁에서 후퇴를 종용하던 이의 머리가 터지며 피와 뇌수가 허공에 흩날렸다.

“회주?”

관제실 내에 있던 이들을 하나하나 훑던 구정철의 눈이 백발 백미의 노인, 회주의 얼굴에서 멈췄다.

“네가…. 이 버러지들의 대가리구나….”

구정철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어찌 보면 웃는 것 같은, 또 다르게 보면 울고 있는 것 같은 얼굴.

기쁨, 환히, 분노, 경멸, 회한, 혐오.

그 단 하나의 표정엔 수많은 감정이 버무려져 있었다.

“드디어….”

그도 그럴 것이 80년이 넘는 그의 인생 중 60년이 넘는 세월을 싸워왔던 적의 우두머리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내가 네놈을 보게 되는구나.”

뭉클.

순간, 구정철의 몸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뿜어져 나와 관제실 내부를 휩쓸었고.

빠지직!

퍼퍼펑!

관제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전자기기와 각종 집기가 폭발하며 불꽃을 토해냈다.

모든 전자기기가 폭발해 버린 관제실엔 살기와 함께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이런 어둠이 장애가 될 만한 낮은 경지의 인물들이 아니었지만.

퍼퍼퍼펑!

꽈과광!

“크아아악!”

“피해!”

“커억!”

찰나의 순간을 노리고 쏘아져 나온 구정철의 공격에 회주의 친위대는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인원이 쓸려나갔다.

친위대라곤 하지만 깨달음의 벽을 넘지 못해 A급에 머물러 있는 자들.

그들에겐 구정철의 일격을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순식간에 친위대의 절반이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고혼이 되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회주의 입에선 뜻 모를 말이 흘러나왔다.

“이걸로 그분의 뜻에 조금 더 가까워졌군.”

몽롱하고 공허한 목소리.

수하의 죽음을 본 이의 입에서 나올 만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구정철에겐 어찌 되었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에겐 60년 동안 쌓아왔던 원한의 대상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쁠 뿐이었다.

***

154층 대회의실.

가면인을 상대로 호기롭게 앞으로 나섰던 도연우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제길. 처음부터 거리를 내주는 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근접전으로 몰아쳤어야 했다.

놈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주었던 약간의 시간, 그 시간이 이토록 뼈아픈 실수로 여겨질 줄 알았다면 말이다.

“이쯤 해서 포기하는 게 어떨까요. 도연우 씨.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허공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가면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창을 찔러봤지만 걸리는 게 없었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공간.

가면인이 내뱉은 테러리스트라는 말로 인해 주의가 흐트러진 잠깐 사이에 펼쳐진 주술은 도연우를 이 공간에 가둬버렸다.

“개소리도 참 우아하게 지껄이는 재주가 있네. 이까짓 결계 내가 못 부술 것 같아!?”

“쿡. 못 부술 것 같은데요. 전에도 못 부쉈잖아요.”

비웃음이 담긴 가면인의 목소리에 도연우의 미간이 찌푸려지려 할 때 다시 가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제가 질문하도록 하죠. 공동에 설치해 두었던 결계는 어떻게 탈출한 거죠? 지금 당신의 능력으로 봐선 무리였을 것 같은데…. 역시 서태촌과 구정철의 능력이었나요?”

“결계…. 네가 그 빌어먹을 사혼 감옥을 만든 놈이었구나?”

서태촌과 구정철, 그들과 함께 갇혔던 결계라면 사혼 감옥밖에 없었기에 당연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이후 들려온 가면인의 물음에 도연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당신. 어떻게 사혼 감옥을 알고 있는 거죠?”

여유롭던 가면인의 목소리에서는 서릿발 같은 한기가 묻어나왔다.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사혼 감옥이라는 이름이 도연우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

“아무래도 우리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요. 도연우 씨.”

가면인의 목소리가 변했다.

지금껏 들려왔던 평범한 30대 남성의 목소리가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로.

“그리고 그 대화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당신에게는요.”

그와 함께 백색의 공간 한쪽이 일렁거리며 검은 이물질이 만들어졌다.

순백의 공간에 만들어진 검은 얼룩.

그것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둠으로 빚어 만들어진 듯한 인간의 형상.

그것은 도연우를 바라보며 유독 하얗게 빛나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미소짓고 있었다.

***

투왕 구정철의 성명 절기(成名絕技)라 불리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붕천격(崩天擊).

하늘을 무너뜨린다는 광오한 이름에 어울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붕천격은 투왕 구정철이 SS급 승급 후 만들어낸 스킬로 이후 30년간 그를 대표하는 스킬이었다.

몇 달 전 그가 SSS급에 올라 풍신퇴를 창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구정철을 상대해 본 이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스킬을 꼽으라면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백야투로(百野鬪路)라고.

백 마리의 야수가 싸우는 것을 보고 만들었다는 백야투로는 스킬 명에서 드러나듯이 거칠기 짝이 없었다.

거칠고 단순하다.

때리고 잡고 부러트리고 찢고 터트린다.

백야투로는 오직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어디에도 회피와 방어라는 개념이 없는 공격기.

오로지 단단한 몸의 내구성과 회복력 그리고 체력이 없다면 펼칠 수 없는 스킬.

이 스킬을 만들 당시 구정철이 30대가 아니었다면 만들지 않았을 스킬이기도 했다.

그만큼 무식한 스킬이었으니까.

“커억…이 괴물….”

마지막 남은 적이 사지가 뒤틀린 채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꽈직!

“괴물이라니. 멀쩡한 사람한테.”

강현은 손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여기서 탈출하는 건 힘들 것 같은데, 다른 탈출로를 알아봐야 하나?”

전투의 여파로 주차되어 있던 드론들이 완파되거나 반파되어 시커먼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외부에서 드론이 진입하는 것도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씨드. 관제 시스템 장악은 어떻게 됐어?”

“현재 각성자 센터의 메인 시스템이 다운된 상태라 온전히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메인 시스템이 다운됐다고?”

“지하 8층에 있는 통합관제실이 공격당해 테러리스트들에게 장악당했으며, 이후 구정철 전 대통령의 난입으로 인해 관제실의 메인 시스템이 파괴되며 다운되었습니다.”

씨드의 보고에 강현은 얼굴이 굳었다.

“비상상황에 대비한 서브 시스템이 가동되었으나 온전히 메인 시스템을 대체하지 못한 상황이라 제가 제어하며 일반인들의 탈출을 유도하는 중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씨드가 비상 시스템을 장악해 일반인들의 탈출을 원활하게 제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구 영감님이 지하 8층에 계셔?”

“네. 사령관님. 현재 확인된 바로는 욱일회 회주라고 불리는 자와 전투 중입니다.”

“욱일회주?”

강현이 욱일회주라는 말에 흥미를 보이자 씨드는 뇌파 통신을 이용해 통합관제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달했다.

지끈.

미약한 두통과 함께 곧 강현의 머릿속에 통합관제실 내에 펼쳐진 광경이 사진처럼 떠올랐다.

“통합관제실을 촬영 중인 CCTV가 두 사람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해 그들의 움직임이 잔상처럼 남았습니다.”

씨드의 설명처럼 두 사람의 모습은 잔상처럼 남았지만 적어도 통합관제실의 상태가 난장판이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저쪽은 구 영감님에게 맡겨 두면 되겠네. 대회의실 상황은 어때?”

강현의 물음에 씨드는 다른 화면 하나를 전달했다.

새하얀 원형의 경계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하성웅으로 보이는 물체는 이미 제압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던 주철원의 수행원과 도연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백두 길드장 하성웅은 서태촌에 의해 제압되었으며 도연우와 정체불명의 인물은 결계 내에서 전투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강현은 씨드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서 영감님이 그냥 지켜보고 있다고?”

“서태촌은 결계를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뭐?”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결계가 서태촌의 공격을 흡수해 더 강해졌습니다.”

“공격을…. 흡수해?”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이기적을 납치했던 욱일회 놈들을 쫓아 들어갔던 동굴에서 발현됐던 사혼 감옥이란 결계.

그 정체불명의 수행원이 사혼 감옥을 만들었던 결계 술사라면 서태촌이 저 결계를 부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위아래로 싸움이 벌어진 상황에 강현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일단 이곳의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우리 직원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통제에 따라 안전하게 저층부로 이동 중입니다.”

직원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씨드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남은 건 이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건데.”

강현의 시선은 사지가 뒤틀린 채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일곱 명의 테러리스트를 향했다.

강현이 테러리스트들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생명을 존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더 고통받기를 바랐을 뿐.

온몸의 뼈란 뼈는 모두 가루가 된 상황에서도 바닥을 뒹굴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테러리스트들.

“살고 싶어?”

그들의 머리 위로 강현의 싸늘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 목소리에 어떻게든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네놈들의 더러운 손에 목숨을 잃은 분들도 살고 싶었을 거다. 이 쓰레기 새끼들아.”

차갑게 정제된 분노가 실려있는 목소리.

“그러니까. 지옥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먼저 속죄하도록 해.”

“개소리 작작 하고 죽여 이 새끼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살려달라고 구걸이라도 할 것 같아?!”

쓰러진 이들 중 대장이라도 되는 걸까?

마치 의로운 결사대(結社隊)라도 되는 양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강현의 얼굴에는 차가운 냉소가 맺혔다.

“아니. 난 너희를 이대로 편하게 만들어줄 생각이 없어. 조금만 기다려, 그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게 해줄 테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강현은 상점창을 열어 아이템들을 구매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강현.

그런 강현의 동작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이 흔들리며 불안한 마음이 드러날 무렵.

인원수에 맞춰 모든 아이템을 구매한 강현이 씩 미소를 지었다.

테러리스트들의 눈엔 악마처럼 보일법한 미소를.

“기대해. 내가 준비한 지옥은 꽤 비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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