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테러 (1).
유튜브, 트위치.
경매는 끝났지만, 종료되지 않은 방송 채널엔 수많은 사람이 남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경매방송 때보다 접속 인원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수십 대의 마나 캠들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태촌 할배 패기 ㅎㄷㄷ.
└마! 이게 SSS급의 아우라다!
└문짝이 뜯기는 순간 내 심장도 뜯겨 나갔다.
└근데 백두 길드장 하성웅이 욱일회 장로라는 거, 실화냐?
└우리 태촌 할배 나이가 있어서 치매 오신 듯.
└50년 넘게 함경도 방위선을 지킨 백두 길드 길드장이 욱일회 장로라니 믿을 놈이 없네.
└근데 성웅이 형은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분위기 싸해지게.
└보면 모름? 핵심 찔려서 말문 막힌 거임.
└연우 형 태촌 할배 뒤에서 기웃거리는 거, 왜 때문에 귀여움?
└오오. 상황정리.
└아재들요 고마 집에 가소! 요 있다가 다 죽어요!
└재벌 회장들도 SSS급 각성자 앞에선 일반인 행.
└돈 많은 일반인.
└응? 연우 형 어디 가지?
└신창 빛나는 거 봐라. 존나 영롱하네.
└팩트) 그 빛은 신창이 아니라 도연우 얼굴에서 나오는 거다.
└ㄹㅇㅋㅋ. 웬만한 배우도 오징어로 만들자너.
└엌! 길막!
└대상 그룹이 뭐 하는 곳임?
└테마파크랑 호텔로 유명한 그룹임. 재계서열은 85위.
└도연우 지금 재벌 회장한테 시비 터는 거?
└니가 그르케 따움을 잘해? 옥땅으로 올라와!
└대상 그룹 회장 지금 삥 뜯기는 거임?
└옆에 있는 수행원은 뭔 잘못?
└도연우 학창시절에 좀 놀았음? 찐 일진 삘인데?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임. SSS급 각성자면 저래도 됨?
└그러게, 그래도 어른인데 반말은 좀….
└도연우는 아직 방송 중인 거 모르나 봄.
└이렇게 쓰레기 인성 공개되나요?
주철원과 그 수행원을 막아선 도연우의 모습에 채팅창 분위기가 도연우를 성토하는 쪽으로 흘러갈 무렵.
“대상 그룹 주철원 회장님. 욱일회이시라고?”
도연우의 말에 채팅창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어붙은 건 채팅창만이 아니었다.
“그.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제가 욱일회라니…. 즈, 증거가 있습니까?”
└엌! 증거 드립 나왔고요.
└당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증거입니다.
└우리 주 회장 연기가 어설프네. 이럴 땐 화를 냈어야지!
└???: 감독님 상대 배우가 얼어 있는데 NG 아닌가요?
“뭐 증거는 나중에 찾아보도록 하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여유롭게 이어지던 도연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손에서 한줄기 빛살이 쏘아져 나갔다.
꽈앙!
그리고 그 빛은 주철원의 옆에 있던 수행원의 손에 막혀 버렸다.
└방금 뭔 일 있었음?
└도연우가 선빵 날림.
└근데 막혔죠-.
└SSS급 각성자의 선빵이 막혀쓰요!
└주 회장 수행원 뭐임? 맨손으로 신창을 어케 막음?!
└이게 말이 됨?
└SSS급 각성자의 기습을 막아낸 재벌 회장의 수행원이 있다?! 뿌슝빠슝!
└냄새! 냄새가 난다!!
그 광경은 도연우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그 이유는.
뻐억!
텅!
빠각!!
다른 화면에선 백두 길드의 길드장이자 SS급 각성자인 하성웅이 서태촌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날도 아닌 칼등으로.
단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고 처맞기만 하는 하성웅과 도연우의 창을 막아낸 의문의 수행원.
누가 봐도 비교가 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으. 으어어어.”
뒤늦게 자신의 볼을 스치고 지나간 신창을 확인한 주철원이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엌! ㅋㅋㅋ. 주 회장님 지렸으요.
└ㄹㅇㅋㅋ. 국제적 공개 망신.
└국제적 공 ‘개망신’?
바닥에 주저앉은 주 회장의 사타구니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물론 도연우나 신창을 막아낸 수행원은 그따위 것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초면에 인사가 거칠군요. 도연우 씨.”
쥐고 있던 신창의 창날을 놓은 수행원의 손바닥에선 한줄기 붉은 핏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피를 보는 거 참 오랜만이군요.”
창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낸 도연우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 정체가 뭐지? 재벌 회장 수행원이나 할 급이 아닌 것 같은데.”
주철원의 수행원으로 위장했던 가면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제 정체라…. 뭐라고 해야 할까요?”
가면인은 핏물이 흐르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 혀를 내밀어 핏물을 핥았다.
“지금은…. 테러리스트가 맞겠네요.”
가면인은 피가 묻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훔쳤다.
“테러리스트?”
“구정철이 안 보이는 걸로 봐선 막으러 간 것 같은데 이미 늦었어요.”
선문답 같은 대답에 도연우가 얼굴을 찡그릴 무렵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건물이 흔들거렸다.
“오늘 오만한 인간들이 쌓아 올린 이 탑은 무너지게 될 겁니다.”
가면인은 선홍색 피로 물든 이빨을 드러내며 불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각성자 센터 90층.
VIP들을 위한 드론 전용 주차장.
‘테러리스트?’
씨드를 통해 경매장 내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직원들의 탈출을 돕던 나는 뜬금없이 터져 나온 테러리스트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건물이 진동했다.
드드드드.
“꺄아악!”
“아악!”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는 건물.
탈출을 위해 이동하던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씨드!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각성자 센터의 보안을 뚫어 놓지 않아 상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그 순간 2차 3차로 울려 퍼지는 폭음.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우던 사람들이 다시 머리를 싸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씨드. 지금 바로 각성자 센터의 관제 시스템을 장악해.’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씨드에게 명령을 마친 후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한 폭음이 세 번이나 울렸고 건물이 흔들렸음에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화재경보기도 대피 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다는 것은 각성자 센터의 보안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는 관제실이 놈들 손에 넘어갔다는 말이었다.
“일어서세요. 빠르게 대피해야 합니다.”
정말 테러라면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154층에 있던 재벌 회장들은 물론이고 각성자 센터에서 근무하던 직원들도 탈출을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 테니까.
활성화된 감각 영역에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공포에 질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운 직원들을 독려해 VIP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쯤.
나는 깨달았다.
이번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서 와요. 첫 손님들이신가?”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
공간시가 보여 준 그들의 정보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름: 차서운]
[나이: 42]
[등급: S]
[직업: 욱일회 신흥대 대주]
[이름: 오야키 하지메]
[나이: 51]
[등급: S]
……
주차장 입구를 막아선 사람들, 그들은 모두 욱일회의 대주들이었고 S급 각성자들이었다.
90층 VIP 주차장은 이미 욱일회 놈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입구에 들어서던 나와 직원들이 발을 멈추자 작달막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음? 어째 우리 손님이 아닌 모양인데?”
“그럼 그냥 빨리 처리해. 시시덕거릴 시간 없어.”
그들은 마치 나를 앞에 두고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떠들어댔다.
“왜? 피 맛 좀 보면 안 돼?”
“장난치다 VIP 중 하나라도 놓치면 회주한테 개작살난다. 감당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그들의 대화를 들은 직원들이 오들오들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근데 저쪽은 어째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지?”
그중 한 놈이 내 얼굴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강현?”
“강현이라면 척결대상 중에 하나잖아. 얼마 전에 S급으로 승급했다던.”
“호오-. 피라민 줄 알았는데 나름 대어이셨네. 낄낄.”
다 잡은 물고기를 놓고 품평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주절거리는 놈들.
S급이나 되는 놈들이 열이나 모여 있으니 우습게 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뒤로 물러서세요.”
나는 공포에 떨고 있는 직원들을 복도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이, 이사님 괜찮으시겠어요?”
쇼호스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강단 있는 여자였다.
건장한 남자직원들도 말 한마디 없이 제 몸 챙기기 급급한 와중인데.
“괜찮습니다. 오래 안 걸릴 테니 안에서 기다리세요.”
그렇게 직원들을 피신시키고 고개를 돌리자 욱일회 놈들이 이죽거렸다.
“괜찮습니다-? 오래 안 걸릴 테니 안에서 기다리세요-? 아주 영웅 납셨네. 씨X 새X. 오래 안 걸려? 니 눈엔 우리가 좆밥으로 보이냐?”
“이래서 드라마나 영화가 문제야. 아주 씨X. 지들이 영화 주인공인 줄 알아요.”
“놔둬. 일단 저 새X 반쯤 조져놓고. 앞에서 한 명씩 멱따면서 괜찮은지 물어보게.”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며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놈들.
나와 동급인 놈들 열.
분명 쪽수로 치면 내가 열세인 상황이 맞았지만 웃음이 났다.
스릉.
“이 X만 한 새X 봐라. 웃어?”
내 웃음을 본 놈 중 하나가 날카로운 일본도로 내 목을 겨눴다.
하지만 칼날이 목 앞에 닿아 있는 상황에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거 어쩌냐?”
“뭐?”
“너희들이 날 이기려면 저 사람들을 그냥 보내면 안 되는 거였어.”
“하. 이 새끼 맛탱이 많이 갔네.”
함께 있던 직원들이 몸을 피하고 나 홀로 놈들을 마주하는 순간.
-특성: 모태 솔로 A가 발현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치가 3배 상승합니다.
나는 이제 놈들과 같은 S급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
“크악!!”
“씨발! 조져!!”
비명과 고성이 난무했다.
퍼엉!
“으아아악---!”
드론이 들어오기 위해 뻥 뚫려있는 주차장, 그 외부로 튕겨 나간 적이 내지른 비명이 길게 메아리를 쳤다.
“이게 어떻게 S급이야!! 씨바!!”
“아가리 놀릴 시간 있으면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라고 새끼야!!”
이제는 아홉이 된 놈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스킬을 쏘아내지만 소용없었다.
저벅.
그저 몇 걸음 걷고.
쓱.
퍼퍼펑!!
가볍게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공격을 막고 흘려버릴 수 있었으니까.
싸움이 시작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놈들은 내 옷자락 하나도 베지 못했다.
증폭된 감각 영역 안에서 놈들의 움직임은 크롤러의 공격보다 느렸고 그 위력은 하잘것없이 약했다.
그나마 놈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수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질 테지만.
퍼걱.
우지직.
“우웨엑!!”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칼날을 낚아채며 정권을 찔러 넣자 심장이 터져버린 놈이 피 분수를 토해 내며 날아갔다.
등 뒤를 점하고 있던 놈이 그틈을 노리고 스킬을 사용해 10개의 칼이 급소를 노리고 쇄도해 왔지만.
콰장창!
가볍게 손을 휘둘러 스킬을 파훼했다.
일본인의 후예라는 걸 어필하려는 것처럼 하나같이 일본도를 들고 쇄도해 오는 놈들의 공격은 검은 그을음보다 느리고 약했다.
쉬각-!
하지만 발밑의 그림자에서 솟구쳐 오른 날카로운 칼끝이 낭심을 향해 쏘아져 오는 것을 보자니 오싹 소름이 들었다.
‘씨X!’
이건 뭐랄까.
남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텁.
푸욱.
날아오는 칼날을 잡아 상반신만 그림자 밖으로 나와 있는 놈의 목덜미에 꽂아줬다.
‘육천만 대한민국 남자들의 원한을 받아라.’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 불구가 될 뻔했다.
악독한 놈이다.
남자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공격을 하다니.
목덜미에 칼날로 데코레이션을 해줬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좀 뒈져! 이 괴물 새끼야!!”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직 분풀이할 대상이 일곱 명이나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무기를 안 써서 그런가? 싸움방식이 왠지 구 영감님을 닮아가는 기분인데?’
투박하고 거친.
투왕(鬪王) 구정철의 싸움방식이 내 몸을 통해 재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