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32화 (131/202)

132. 경매 (3).

오늘 이 자리는 내가 가진 힘의 크기를 측정하는 자리였다.

지구 유일의 시스템 사용자.

이계와 거래 가능한 상점창을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가 지닌 파급력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자리.

하지만 이 공간엔 이물질이 껴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한 건 3명. 그중 제일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은….’

나는 조심스럽게 마나 캠이 송출하고 있는 화면 중 하나를 바라봤다.

평범한 30대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와 방금 4조 원이라는 미친 가격으로 마나의 묘약 레시피에 입찰한 대상그룹 회장 주철원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었다.

재벌 회장과 그 수행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내막은 전혀 다르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이름: 주철원]

[나이: 58]

[등급: 없음]

[직업: 대상 그룹 회장. 욱일회 일원]

공간시는 주철원보다 30대 남성이 더욱 위협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

[나이: **]

[등급: ***]

[직업: ************]

무엇하나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정보.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연우 형의 정보도 이와 같았으니까.

즉.

저기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서 있는 사내가 SSS급 이상의 각성자라는 뜻이었다.

‘사령관님.’

‘응. 알아봤어?’

‘주철원에 대한 정보 보고드리겠습니다. 주철원 대상 그룹 현 회장. 3개월 전, 전대 회장인 주석원이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그룹 회장직을 승계했습니다. 약간 미심쩍은 점은 주석원 회장이 평소 심장질환을 앓지 않았다는 것과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그 누구도 주석원 회장의 시체를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직계가족들조차도 말입니다.’

‘정상적인 승계가 아니었다는 소리네?’

‘정황상 그렇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주철원 회장의 수행원은?’

‘정보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대한민국 안에 내가 모르는 SSS급 각성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SSS급 각성자의 등장. 거기에 욱일회라는 조건을 얹으면 답은 간단했다.

‘욱일회의 수뇌부이거나 회주라는 소리겠지.’

그런데 왠지 대상그룹이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았다.

언젠가 들어본 것만 같은….

‘대상그룹의 주력사업이 뭐지?’

‘테마파크와 호텔, 리조트 사업이 주력사업입니다.’

그 말을 듣자 떠올랐다.

몇 달 전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청심원과 근처 땅들을 매입하려 했던 그룹이 바로 대상 그룹이었다는 사실이.

‘이것도 뭔가 냄새가 나는데….’

대상그룹이 매입했던 땅.

욱일회와 대상 그룹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

강산호 회장에게 전해 들었던 욱일회가 나를 노리는 이유까지.

그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서 조합되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일제 강점기 시절 수탈당한 문화제와 금괴들.

강산호 회장은 욱일회가 그것들을 처분해 테러 활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한다고 말했었다.

‘욱일회가 회수하기를 원했던 유산이 사실은 대상 그룹이 개발하려 했던 테마파크 부지에 묻혀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마나의 묘약 레시피를 원하고 있었다.

목적은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테러단체가 마나의 묘약 레시피를 가지고 하고자 하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물론 그들은 내가 설치해 둔 함정 수를 모르기에 원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단 레시피가 저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지.’

생각을 정리하며 연우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연우형▶: 형. 경매장 안에 욱일회 놈들이 있어요.』

메시지를 확인한 연우 형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연우형◀: 이 안에 욱일회 놈들이 있다고?』

『연우형▶: 일단 제가 확인한 것만 세 명이에요. 무슨 목적으로 경매에 참여한 건지도 짐작이 되고요.』

『연우형◀: 어떤 놈들이야?』

살기가 일렁이는 시퍼런 눈.

당장이라도 요절을 낼 것 같았다.

나는 그 세 명의 인적사항을 연우 형에게 전달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연우형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연우형◀: 이거 사실이야? 백두 길드 길드장이 욱일회에 소속돼 있다고?』

『연우형▶: 그중 하나는 제가 등급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예요.』

『연우형◀: 뭐?』

『연우형▶: 최소 SSS급. 시스템으로 확인한 거니 확실해요.』

연우형의 얼굴이 굳어졌다.

SSS급 각성자라면 혼자 힘으로 이 경매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

물론, 연우형이 이 자리에 없을 때 이야기지만.

『연우형◀: 주철원과 하성웅. 이 둘은 아닐 테니 주철원의 수행원이라는 놈이 SSS급이라는 소리겠네. 알겠어. 일단 믿을 만한 사람을 부를 테니 기다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우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일부러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마나의 묘약 레시피 경매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4조 5천억을 넘어선 금액.

입찰하는 사람은 경매장 내에선 두 명에 불과했고 온라인에선 세 명이 따라붙고 있었다.

‘강 회장님도 레시피를 포기할 생각은 없으신 모양이네.’

경매장 내에서 입찰 경쟁 중인 두 사람.

하나는 대상 그룹의 주철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현 그룹의 강태웅 회장이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재계 1위와 85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

싸울아비 길드장실.

“음? 무슨 일입니까?”

강산호는 경매방송을 보다 말고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두 사람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그런 강산호에게 서태촌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 아무래도 몸을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몸을 피하라니?”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서태촌이 아닌 구정철의 입에서 나왔다.

“피 냄새가 납니다. 그것도 아주 진한.”

단어 하나하나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구정철의 목소리에 강산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도 내 한 몸 추스를 힘은 있으니 두 분은 가셔서 일 보셔도 됩니다.”

“그럼.”

두 사람이 강산호에게 인사를 하고 걸음을 움직이려는 순간.

벌컥.

길드장실 문이 열리며 도연우가 들어섰다.

“자넨 여긴 어쩐 일인가? 경매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경황이 없이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산호에게 꾸벅 인사를 건넨 도연우가 두 사람에게 저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

뿌득.

“백두 길드 하성웅이가 욱일회 장로라고?”

“네. 거기에 SSS급 각성자까지 나타났다고 하네요.”

“그 말. 사실인가?”

“제가 확인한 건 아니지만 현이가 시스템을 통해 확인했다고 하네요. 이런 일로 장난칠 녀석은 아니죠.”

“흠 그 녀석 말이라면…. 사실이겠군.”

고개를 주억거린 구정철이 서태촌에게 물었다.

“서가야. 네가 갈래? 내가 갈까?”

“흠…. 내가 도 길드장과 가도록 하지.”

“그럼 내가 아래로 내려가면 되겠구먼.”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도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래는 무슨 일로…?”

꾸웅-!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정철의 신형은 길드장 실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삐걱거리는 문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도연우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우리도 가도록 하지. 경매장 일도 가볍게 볼일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야.”

서태촌의 서늘한 목소리가 도연우를 스쳐 지나가고,

“어르신. 그럼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강산호에게 인사를 한 도연우도 서태촌을 따라 길드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게 된 강산호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황 집사. 청와대에 전하게. 욱일회 벌레들이 각성자 센터를 노리는 것 같다고.”

***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인 대회의실.

뿌직! 꽈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문이 떨어져 나가자 강태웅과 주철원의 입찰 경쟁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한 손에 환두대도의 도집을 쥔 노인이 문짝을 뜯어낸 다른 손을 툭툭 털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서태촌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두 길드장 하성웅. 튀어나와.”

차가운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먹이를 찾아 헤매다 이내 반짝였다.

“나오지 않으면 내가 가지.”

챙.

도집을 빠져나온 환두대도가 불빛을 받아 싸늘한 검광을 흘리자 살기를 감지한 길드장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고 하성웅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 전 길드장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기를 거두시고 말로 하시죠.”

화연 길드장 이석평의 말에 서태촌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말로 하라…?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배신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자네는 혹시 내가 해야 할 말을 알고 있는가?”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배신자라니. 그게 무슨…?”

서태촌이 던진 의외의 질문에 얼떨떨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이석평.

서태촌은 그런 이석평에게 다시 말했다.

“알지 못한다면 비켜서게. 내 직접 물어볼 테니.”

서태촌의 날카로운 칼끝이 다시 하성웅을 가리키자 그 앞을 막아섰던 길드장들이 슬금슬금 걸음을 물렸다.

민족의 배신자라는 명칭은 아무에게나 붙는 명칭이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그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이 서태촌이라면 그 말의 무게는 만금(萬金)보다 무거워진다.

이제 모두의 시선은 하성웅에게 향했다.

“저는 50년 넘게 함경도 방어선을 지켜온 백두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그런 제가 민족의 배신자라니요. 저는 당최 어르신께서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당황과 분노가 담긴 하성웅의 말.

대회의실에 있던 이들 중 몇몇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하성웅을 변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곳엔 서태촌이 내뿜는 서릿발 같은 살기에 맞서 하성웅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없었다.

“네 쓸데없는 말장난에 놀아날 만큼 내가 한가하지 않다. 그러니 내 하나만 물으마. 언제부터였느냐?”

“대체 그게 무슨….”

“네놈이 욱일회의 장로가 된 것 말이다.”

순간 고요한 적막이 대회의실에 내려앉았다.

욱일회.

대한민국의 전복을 노리는 테러집단.

지금 서태촌은 10대 길드의 하나이며 북방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백두 길드의 길드장이 욱일회의 장로라고 말한 것이었다.

1분, 2분….

시간은 흘러갔지만 한번 내려앉은 침묵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당사자인 하성웅과 서태촌, 그리고 대회의실에 자리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욱일회의 장로라는 말이 나오자 흙빛으로 변한 하성웅의 안색이 그 어떤 것보다 명확한 증거였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숨 막히는 침묵에 질식되어 갈 무렵.

“일단 오늘 경매는 여기까지입니다. 회장님들께서는 자리를 비켜주시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서태촌의 뒤에 서 있던 도연우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경매를 진행하던 쇼호스트와 경매장 직원들은 이미 빠져나간 듯 단상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요. 일단 우리는 자리를 피합시다. 괜히 각성자들 싸우는데 옆에 있다가 된서리 맞을 필요는 없지 않겠소?”

누군가의 말에 재벌 회장들은 분분히 걸음을 움직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SS급 헌터와 SS급 헌터의 싸움이다. 잘못하면 튕겨 나온 파편에 맞아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서태촌과 하성웅이 대치 중인 뒷문을 피해 앞문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턱.

고개를 숙인 채 인파에 묻혀 걸음을 옮기던 주철원은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왜, 왜 이러십니까?”

“대상그룹 주철원 회장님. 과 그 수행원 맞으시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물어오는 도연우.

주철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은 좀 남아 주셔야겠네요. 이유는 너희가 더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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