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31화 (130/202)

131. 경매 (2).

강현은 흥미로운 눈으로 경매장 내부를 훑었다.

‘칭호라는 게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거였나 보네.’

-칭호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대상의 ‘호의’와 ‘악의’가 시각화됩니다.

-특성: 공간시 S(LV9)가 발현됩니다. 공간의 정보를 추출합니다.

-‘칭호: 인필리언의 구원자’가 ‘특성: 공간시’와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시각화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각성자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적용된 칭호 효과와 특성 공간시의 발현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정보를 시각화해서 내게 보여 주었다.

나의 시야 안에 존재하는 이가 가진 호의와 악의는 하얀색과 검은색 빛으로, 그 외에 사물과 인물의 정보는 아이템 창이 되어 눈앞에 떠올랐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강현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재벌들과는 다른 기세를 뿜어내며 자신을 노려보는 이들을 바라봤다.

회색.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쯤 되는 어중간한 회색의 아우라를 풍겨내는 이들.

공간시는 그런 이들의 정보를 상태창처럼 시각화해 눈앞에 띄웠다.

‘이것 봐라…?’

그리고 그중 유독 검은색이 짙은 한 남성을 바라본 강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름: 하성웅 (야마다 켄시로)]

[나이: 48]

[등급: SS]

[직업: 백두 길드 길드장. 욱일회 장로]

도깨비 길드와 함께 한반도 북단을 방어하는 백두 길드의 수장이 욱일회의 첩자였다.

***

하성웅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대체 회주는 무슨 생각인 거지?’

80년이 넘도록 욱일회를 쥐고 흔들고 있는 100살이 넘은 노괴(老怪).

그 노괴의 명령에 욱일회의 전 병력이 서울에 집결했다.

이미 양지에 나가 길드를 설립한 병력과 아직 음지에 있는 이들까지 모두 합쳐 1만2천.

욱일회의 전 병력이 이렇게 한곳에 집결한 것은 욱일회 80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데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찝찝하군.’

문제라면 장로인 자신조차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주의 집결령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경매에 참석하기도 해야 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미간을 찡그린 그가 시선을 단상으로 옮겼을 때.

‘웃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욱일회의 척결대상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놈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을 보자 하성웅은 뭔가 알지 못하는 찜찜함이 등허리를 타고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찜찜함에 강현을 바라보는 하성웅의 눈매가 매서워질 때 강현이 그의 눈길을 피했다.

“…이상으로 마나의 묘약 경매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단상 위의 쇼호스트가 약 천 개에 달하는 마나의 묘약 경매를 마치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단상 위로 올라와 낡은 두루마리를 벨벳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스크롤?”

단상에 가까이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마나의 묘약 낙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자리를 뜨려던 이들의 시선이 단상으로 향했다.

“이어서 소개할 물품은 많은 분이 원하시는 물건일 듯싶은데요. 바로 마나의 묘약 레시피입니다.”

순간 조용하던 경매장 내부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마나의 묘약 레시피.

저것만 낙찰받는다면 이미 낙찰받은 마나의 묘약을 연구할 필요도 없이 생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미 생산하기 위해 제조 방법을 연구 중이라는 대현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셈.

그 웅성거림을 뚫고 쇼호스트의 음성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마나의 묘약 레시피]

[등급: 없음]

[설명: 마나의 묘약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마법 연산식이 기록된 레시피. 최초 마나의 묘약을 개발한 개발자 중 한 사람인 강현이 보증하는 레시피입니다.]

“홀로그램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당 물건은 대현 토탈 아이템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물건입니다. 경매 참여자분들은 이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물건.

다른 아이템이라면 그게 불안요소일 테지만, 마나의 묘약 레시피라면 사정이 달랐다.

최초에 마나의 묘약을 만들었다고 공개된 각성자는 모두 네 명.

그중 셋은 누구라도 알 만한 무투파 각성자들이니 사람들은 강현이 실질적인 마나의 묘약 개발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강현이 보증하는 레시피가 경매에 나왔으니 마나의 묘약 경매가 끝난 후 식어가던 경매장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기에 충분했다.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건 대현 그룹과 다른 세 길드도 레시피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으니까.

독점.

그 말은 저 레시피만 낙찰받으면 독자적으로 마나의 묘약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레시피를 낙찰받기 위해 저마다 전략을 구상하느라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게 강 회장님이 각성자 센터까지 오신 이유였구나.”

재벌 회장씩이나 되는 이들이 이렇게 경매장에 몰려온 이유는 고작 마나의 묘약이나 낙찰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경매 낙찰 정도야 아랫사람들에게 시키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이곳 각성자 센터까지 직접 행차한 이유가 있었다.

대현의 늙은 호랑이 강산호.

그가 칩거를 깨고 이곳 각성자 센터로 직접 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들은 왜 대현의 늙은 호랑이가 몸을 움직인 것인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대현 그룹에도 저 레시피는 없다는 말이군….”

대현에 저 레시피가 있었다면 대현 토탈 아이템의 검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경매장 내부에 울리는 순간 재벌 회장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전까지의 경매가 대현이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었다면 지금부터 이뤄질 경매는 달랐다.

‘대현도 아직 마나의 묘약을 개발하지 못했다.’라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다.

***

“마나의 묘약 레시피라니…. 알고 있으셨습니까?”

서태촌의 물음에 강산호는 고개를 저었다.

“몰랐습니다. 그저 오늘 경매에 특별한 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죠.”

“저 레시피, 다른 놈들 손에 넘어가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정확히는 우리가 반드시 낙찰받아야 할 물건입니다.”

강산호의 말에 서태촌과 구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도 마나의 묘약 개발이 지지부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세계의 아이템을 강현을 통해 구매한 것이었다.

성분분석을 통해 확인한 거라곤 묘약의 재료 중 몇 가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부였다.

레시피라는 게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말이 옳았다.

“강 회장님이 친히 각성자 센터까지 오신 이유가 있었군요.”

“아마 오늘 경매에 올라오는 물건이 저것뿐만은 아닐 겁니다.”

“설마. 레시피 여섯 개를 전부 다 경매에 올릴 거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저 예상이지요. 저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세상의 이목이 모두 이곳으로 쏠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경매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한 라이브 경매.

이미 먼저 진행한 마나의 묘약 경매에서도 절반 정도는 온라인에서 낙찰자가 나왔다.

덕분에 오프라인으로 경매에 참여한 재벌 총수 중 절반은 낙찰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 경매로 올라왔던 마나의 묘약 10개는 100억에 낙찰되었다.

개당 낙찰가가 10억인 셈이다.

“재벌 회장이라는 이들이 돈이 없어 낙찰을 받지 못한 건 아닐 겁니다. 단지 급하지 않았을 테죠.”

강산호의 눈은 홀로그램 TV에 떠올라있는 레시피를 향했다.

“하지만 레시피는 다릅니다.”

“저것만 차지하면 향후 만들어질 묘약 시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단 말이군요.”

“저 레시피를 가진 기업이 향후 묘약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 나머지는 후발주자가 되는 셈이죠.”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시작가 100억에서 시작한 호가창이 무서운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천억을 돌파한 호가창을 본 구정철의 입이 떡 벌어질 때, 강산호는 조용히 한 통의 메시지를 그의 아들인 강태웅에게 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낙찰받아야 한다.’

한도 없는 지갑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호오-. 제법 쓸만한 물건이 올라왔군요. 이대로 날려버리기 아쉬울 정도인데요?”

대상 그룹 회장 주철원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수행원 자격으로 그와 함께 경매에 참석한 평범한 인상의 30대 사내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뭘 그렇게 떨어요?”

“예? 아 그게….”

어젯밤 자신의 저택을 찾아온 이자는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긴장 풀어요. 왜 이렇게 얼어 있어요. 재벌 회장답지 않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겠네….”

“네, 네. 죄송합니다.”

자신의 형인 주석원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 큰돈을 들여 영입한 A급 헌터 30명의 경비를 뚫고 유유히 저택의 거실까지 걸어들어온 사내가 내민 것은 욱일회주의 인장이 찍힌 한 장의 지령서.

그곳에 적힌 것은 지령은 단 한 줄이었다.

그룹의 모든 것을 걸고 사내에게 협조할 것.

이미 경호원들이 모두 제압된 상태에서 주철원은 그 지령을 거부할 힘도 명분도 없었다.

대상 그룹의 모든 것은 욱일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긴장 풀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거 낙찰받아 와요. 알았죠?”

‘저걸?’

주철원의 시선은 단상 위의 레시피로 향했다.

1조 원대를 넘어선 호가와 무슨 일이 있어도 낙찰받겠다는 듯 기계적으로 패드를 조작해 입찰하는 그룹 회장들.

낙찰가가 얼마나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머릿속에 무리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아. 자금은 걱정하지 말아요. 회주가 지급해 줄 겁니다.”

옆에서 들려온 사내의 말은 긴장을 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철원이 아는 한 욱일회의 그 누구도 회주를 저렇게 아랫사람 부르듯 칭하지 못했으니까.

사내는 말 한마디로 자신이 회주보다 위에 있는 사람임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었다.

“아.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거참 긴장 풀라는데도….”

“네. 네!”

“하…. 입찰이나 하세요. 그 전에 우리 한 가지만 명심합시다.”

사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주철원의 귓가로 입을 가져갔다.

“이거 낙찰 못 받으면 우리 주 회장님 인생에 내일은 없는 거예요. 아셨죠?”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사근사근한 그 목소리와 귓가를 간질이는 입김에선 인간이라 생각될 만한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륵.

멀어져가는 사내의 기척을 느낀 주철원은 황급히 들고 있는 패드를 조작해 입찰가를 입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

“어떤 미친놈이!!”

4조 원.

순식간에 호가가 두 배나 뛰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우리 주 회장님. 역시 화끈하시네. 일 잘하셔-.”

옆에 선 사내가 주절거렸지만, 주철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낙찰받아야 해!’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이번 경매에 목숨이 걸려 있었으니까.

***

154층에서 한창 경매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각성자 센터 지하 8층에 있는 통합 관제실에서는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홀로그램 화면과 모니터들이 가득한 통합 관제실.

평소라면 수백 명의 직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칙.

-A-12 구역 정리 끝났습니다. 폭탄 설치 후 합류하겠습니다.

찐득한 피 냄새가 가득한 통합 관제실의 한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 자루 일본도를 든 채 서 있었다.

“회주님. A-12 구역까지 정리가 끝났다고 합니다. 이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수하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회주는 어딘가 몽롱해 보이는 눈으로 수하의 얼굴을 쳐다봤다.

“회주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그 눈빛에 놀란 수하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서걱-!

“컥!”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수하가 단말마를 토해 내며 쓰러졌다.

“대기.”

“네, 네!!”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에 얼어붙은 욱일회 각성자들의 귀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회주의 명령이 파고들었다.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린다. 반발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네!”

인형사의 충성스러운 인형이 되어버린 욱일회주는 그렇게 피로 물든 통합 관제실에서 주인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성자 센터를 무너트리기 위해 설치한 폭탄의 기폭장치를 손에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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