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부화(孵化).
이름: 강현
종족: 인간
직업: 해피니스 청소부
칭호: 인필리언의 구원자
레벨: 751
……
상태창에 칭호 카테고리가 생성되어 있었다.
칭호: 인필리언의 구원자
└한 세계의 선(善)이자 악(惡)이었던 태양신 인필리언. 태양신 인필리언을 구원한 당신에게 태양신의 축복이 내립니다.
‘??’
시스템은 여전히 불친절하다.
기껏 달아놓은 설명 중 도움이 되는 거라고는 태양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말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 축복 효과가 뭔지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불친절한 시스템 덕에 칭호효과를 알기 위해서 이번에도 맨땅에 헤딩해야 할 판이다.
쩝.
쓰게 입맛을 다신 뒤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상점 등급: A]
[검색: ]
[구매] [판매]
[보유 포인트:1,351,421]
130만 포인트.
이틀 후에 있을 경매에 올릴 아이템들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포인트다.
원래대로라면 아공간을 청소하고 나온 아이템들로 첫 경매를 치르려 했지만, 대어가 떡밥을 물었으니 좀 더 그럴싸한 미끼를 낚싯바늘에 꿰어둘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배고픈 고래들이 덥석 물지 않고는 못 뱃길만큼 오동통한 미끼.
‘일단 백만 포인트는 묘약을 구매하고 남은 포인트로 탈모제, 발모제, 활성단 순으로….’
일단 묘약 세트를 베이스로 거기에 양념을 좀 더 얹을 생각이다.
한번 맛보면 눈이 돌아가고도 남을 만큼.
우리 경매장의 충성고객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그렇게 구매한 아이템들을 차곡차곡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후 다음 보상을 향해 눈을 돌렸다.
[특성카탈로그]
금강불괴(金剛不壞) S-1,000,000P
힐링팩터 S-1,000,000P
공간시(空間視) S-1,000,000P
미래 예지 S-1,000,000P
초신속(超神速) S-1,000,000P
그 이름만으로도 효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특성들.
처음 특성카탈로그를 받았을 때 보았던 장난스러운 이름들 대신 꽤 그럴싸한 이름을 가진 특성들이 카탈로그를 채우고 있었다.
거기에 등급과 포인트도 같다.
‘미래 예지는 모르겠고, 금강불괴. 힐링팩터는 탱커용, 초신속은 딜러용인가?’
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공간시.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의 상위 랭크였다.
처음 나온 S급 특성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스킬들과 시너지를 생각해 고민을 해 봐야겠지만 왠지 모르게 공간시에 눈이 갔다.
공간시.
내게 죽음의 공포를 알려준 놈이자 내가 각성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고블린 바르라는 놈이 남긴 아공간 주머니를 흡수하면서 얻은 특성.
원래는 EX급 특성이었지만 나에게 흡수되며 당시 보잘것없었던 내 능력 때문에 F급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특성이다.
원래라면 지금처럼 성장하는 것에 만족했을 거다.
지금처럼만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S급이 되고 또 SS 급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인필리언에 다녀온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공간 조작.
이제 겨우 B급 9레벨에 불과하지만, 그 특성의 제대로 된 사용법은 고작 아공간 균열이나 메꾸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공간을 조작하는 것.
‘아직은 기의 형태는 바꾸는 것 말고는 사용해 본 적이 없지만, 그 효용성은 무궁무진해.’
그 공간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아공간 안에서는 전능(全能)하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분명 공간시에도 내가 모르는 어떤 힘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공간을 보는 눈’ 따위가 EX급 특성이 되었을 리도 없고 ‘관리자’라는 존재가 보낸 ‘사용인’이라는 존재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관리자라는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해피니스 시스템을 관리하는 관리자와 같은 존재거나 비슷한 위치에 있는 존재겠지.’
신(神) 말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부리는 사용인이라는 자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만큼 고블린 바르가 가지고 있던 특성은 특별했다는 말이 된다.
운도 없이 나를 만나 죽게 되었지만 말이다.
뭐, 나도 요단강을 건널 뻔했으니 운 없는 건 피차 마찬가지였다고 해야 할까?
분명한 건 아공간 조작처럼, 공간시에도 특별한 힘이 있을 거라는 거다.
다만 아직 내가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톡.
-특성: 공간시 S를 구매하시겠습니까?
-[Y/N]
톡.
-선업 포인트 1,000,000이 차감됩니다.
-특성: 공간시 S가 사용자 강현 님에게 ‘각인’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 떠올라 있던 카탈로그가 붉은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후웁.”
그리고 나는 곧 닥쳐올 끔찍한 고통을 예상하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기억.
위대한 초인 특성을 각인할 때 겪었던 그 끔찍한 고통이 떠올랐으니까.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뭐지…?’
슬쩍 눈을 뜨자 시스템 메시지가 보였다.
-이미 같은 특성을 보유 중입니다.
-특성: 공간시 A(LV4)가 특성: 공간시 S(LV1)에 흡수됩니다.
-공간시 S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공간시 S(LV1)→공간시 S(LV9)
잔뜩 긴장했던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메시지였다.
뭐, 그렇다고 고통을 겪지 못해 아쉽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상태창을 닫을 때였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템: 수수께끼 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수수께끼 알의 사용 여부를 묻는 메시지.
그렇다면 수수께끼 알의 성장이 완료되었다는 말이었다.
[아이템: 수수께끼 알]
[등급: S급]
[설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알. 태고룡 쿠아르탐파를 흡수해 성장을 시작했으며 ‘검은 그을음’을 흡수해 성장을 완료했다. 사용 시, 스킬: 포식 S (LV1)을 습득할 수 있다.]
S급 특성을 얻은 것만 해도 3일간 인필리언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알짜배기는 이 녀석이었나보다.
“흠….”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이대로 흡수하면 본전, 서 영감님이 내준 숙제를 풀면…. 결과는 알 수 없음인가?’
머릿속에 근 한 달 전 기억이 떠올랐다.
검기 하나 만들어내지 않은 무심한 칼질 한 번으로 그동안 누구도 흠집을 내지 못했던 수수께끼 알에 칼자국을 새겨 넣은 서 영감님.
그때 나는 어쩌면 수수께끼 알의 진짜 사용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느꼈다.
‘살기(殺氣)를 없앤 검격이 지금 내 수준에서 가능한 걸까?’
문제라면 아직 내가 그 정도 수준에 오른 검사(劍士)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알’이란 건 부화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대로 스킬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껍데기를 깨지 못한다면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껍질뿐이다.’
그 안에 보석이 들어있는지 썩은 물이 고여있는지는 껍질을 깨봐야 아는 거다.
알이란 본래 그런 거니까.
나는 수수께끼 알을 손에 쥐고 집안 구석에 만들어둔 창고로 걸음을 움직였다.
식료품과 자질구레한 공구들이 놓여있는 창고의 한가운데,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전용 던전의 입구가 나를 맞이했다.
***
같은 시간 욱일회주의 거처.
“효고.”
같은 공간이지만 이제는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네. 주인님.”
가면인의 부름에 대답하는 회주의 모습은 충성스러운 수하 그 자체였고.
“준비는?”
질문을 던지는 가면인은 이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지시하신 대로 준비를 마쳤습니다.”
“총인원이 몇이라고 했지?”
“총 1만2천 명입니다.”
욱일회 소속 각성자들의 수다.
등급 불문한 모든 각성자들의 수.
“1만2천이라…. 좀 부족하긴 하지만 나쁘진 않아, 모자란 건 그쪽에서 보충하면 되니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가면인이 이내 손짓을 해 회주를 밖으로 내보냈다.
1만2천 명의 머리 위에서 명령을 내리던 욱일회주는 이제 누군가의 손짓 한 번에 아무 말 없이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있었다.
100살이 넘은 노인을 손짓 하나로 부리는 것은 누가 봐도 눈살을 찌푸릴 만한 모습이었지만 가면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쿡. 그러게 나이 먹었으면 권력을 놓고 뒷방 늙은이로 지냈어야지.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니 이런 추한 꼴을 당하잖아. 쯧쯧.”
그는 인형사.
암막 뒤에서 세상을 조종하는 존재니까.
어차피 세상 위에 존재하는 그에게 인간이란 그저 도구이자 인형에 불과하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말이다.
“이제 남은 건 한국과 일본의 전면전. 재미있겠어. 하하.”
그가 계획한 것은 별것 아니었다.
욱일회가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일 뿐이다.
테러단체가 할 일은 테러를 하는 것이니까.
이번 일로 욱일회는 모조리 사라지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지겠지만, 상관없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그는 한국의 편도 일본의 편도 아닌, 신의 뜻을 전파하는 사도(使徒)니까.
그의 신은 명했다.
대한민국의 피를 흘리라고.
그 이유도 방법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신이란 원래 그런 존재.
신의 명을 받은 사도는 그저 신의 뜻대로 행할 뿐이다.
별들마저 잠들어버린 시월의 어느 날 밤.
이름 없는 밀실에서 거대한 음모가 꿈틀거리며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
“하…. 빌어먹을 알 새끼…….”
나는 씨드의 중력제어에 붙들려 허공에 떠 있는 수수께끼 알을 노려봤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 수천 번의 칼질을 했지만, 알껍데기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살기를 없애고 알의 껍데기를 부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시작을 했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명상을 해보기도 했고, 그저 무심하게 톡 건드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수수께끼 알은 여전히 멀쩡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만나면 멱살을 잡고 싶을 만큼.
멀쩡해도 너무나 멀쩡했다.
그리고 또다시 깨달았다.
서 영감님이 보여준 그 한 수.
별것 없어 보이던 그 일 검이, 지금의 나로서는 닿을 수도 없는 경지의 검의(劍意)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씨드. 돌아와.”
내 명령에 수수께끼 알을 붙들고 있던 샤이닝 에로우가 돌아왔다.
꾸욱.
돌아온 알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자 타원형의 모양에 변형만 있을 뿐이었다.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알이라는 게 무색하게 말이다.
“그래.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오늘 결판을 내자.”
그런 알을 보며 중얼거린 나는 노란색으로 일렁이는 아공간을 향해 움직였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특성이 발현될 거다.
아공간 청소부, 공간시 그리고 아공간 조작.
아공간 청소부는 모르겠지만 공간시와 아공간 조작은 수수께끼 알을 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수수께끼 알이 흡수할 수 없었던 유일한 몬스터 검은 그을음.
영락했다곤 하지만 신의 격을 가질 뻔했던 녀석도 아공간 안에서만큼은 나와 대적하길 포기했을 정도니까.
그렇게 12시간이 흐르고.
나는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노란색 아공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알은 부화했고. 나는 정체도 모르는 내 적들을 상대할 수 있는 든든한 무기를 얻었다.
크롤러와 던전을 만들어냈다는 이계의 존재.
현실에서 나의 목숨을 노리는 욱일회.
그리고 어쩌면 때를 기다리며 이빨을 감추고 숨죽이고 있을 이들까지.
“어떻게 된 게 레벨업을 할수록 적이 늘어나는 건지 모르겠네.”
표면적인 적은 욱일회뿐이었지만, 연우 형과 강 회장님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10대 길드와 10대 그룹.”
대현과 합작연구소를 세운 3대 길드를 제외한 모든 길드와 대기업들이 나를 노리고 있다고 전해왔으니까.
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내 손에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무기가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템: 케이돈]
[등급: E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