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인필리언의 구원자 (7).
인필리언에 있는 세 왕국 중 가장 큰 왕국은 태양신을 받드는 신성 왕국 쿠단이다.
그리고 지금 쿠단의 수도 이르틴은 화마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대체이게…. 어떻게 된…. 성기사와 사제들이 어째서?”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도시 내에선 새하얀 갑옷과 로브를 걸친 자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서슴없이 살수를 펼치고 있었다.
살려달라 비는 사람들과 성기사와 사제들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
개중 몇몇은 무기를 들고 대항해 보지만 숙련된 기사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인지라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내려다본 퍼드릭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붉게 타오르는 도시와 그 위를 뒤덮은 검은 연기.
그가 기억하던 아름답고 평화롭던 도시 이르틴은 이제 없었으니까.
‘지켜보고 있을 상황은 아니군.’
퍼드릭과 함께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강현은 인벤토리에서 이프리안의 물벼룩을 꺼내 들었다.
구름 가오리를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아이템을 두고두고 요긴하게 써먹는 중이다.
‘씨드. 일단 불부터 끄자.’
‘네. 사령관님.’
한 왕국의 수도라고 하지만 그 넓이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에 불과했기에 샤이닝 에로우 한 대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씨드에게 불을 끌 것을 명령한 강현은 수도 인근 평야 지대에 내려섰다.
원래라면 누렇게 익어 갔어야 할 이삭들이 시커먼 재가 되어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들판.
샤이닝 에로우와 연결된 와이어를 모두 회수한 강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현재 사용 가능한 샤이닝 에로우가 총 몇 대지?’
‘50대 모두 수리를 마친 상태입니다.’
강현은 공황에 빠져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퍼드릭을 흘끗 쳐다보고는 명령을 이어나갔다.
‘화재진압용으로 빼놓은 전함을 제외하고 모두 저 도시에서 날뛰고 있는 놈들을 생포하는 데 투입한다.’
‘생포…입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초지종은 알아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어딘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한 씨드가 샤이닝 에로우 함대를 이끌고 도시를 항해 날아갔다.
샤이닝 에로우를 만든 플리피인들보다는 크다곤 하지만 그래 봐야 엄지손톱 크기인 인필리언인들이다.
강현에겐 화살 크기에 불과한 샤이닝 에로우지만 인필리언 인들에겐 거대전함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크기.
곧 성벽 안에서 기존에 들리던 비명과는 다른 종류의 외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찍이 본적 없는 물건에 대한 경악이었다.
‘도시 쪽은 샤이닝 에로우로 수습을 한다 치고, 남은 건 이쪽인데….’
강현의 눈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는 퍼드릭을 향했다.
“이건…. 이건 아니야. 태양신의 성기사들이 대체 왜…?”
그는 아직도 눈으로 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
“정신 차리시죠.”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퍼드릭에겐 천둥보다 큰 울림이었을 터.
“큭.”
내 손바닥 위에서 몸을 휘청이던 퍼드릭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충격이 큰 건 알겠지만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샤이닝 에로우를 보냈지만, 아직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아니, 도시 안의 학살을 수습하더라도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검은 그을음의 파편을 찾아 없애지 못하면 퀘스트는 클리어되지 않는다.
시간제한이 없는 퀘스트라곤 하나 현생을 살아야 하는 내겐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강현 경.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행히 퍼드릭은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뇌파 통신으로 전해져 오는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지만, 넋을 놓고 있는 것보단 백 배 나았다.
‘마수의 파편을 찾아야 합니다. 놈을 찾지 못하면 지금 보고 계신 지옥도가 이 세계 전체로 번져 갈 겁니다.’
내 말을 들은 퍼드릭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믿었던 태양신 교단의 추악한 민낯을 봤지만, 그는 여전히 태양신의 용사였다.
그에겐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는 말이었다.
‘왕궁을 먼저 수색하겠습니다. 그곳이라면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퍼드릭이 손바닥 위에서 훌쩍 몸을 날려 바닥에 내려선 후 도시를 향해 달려갔다.
퍼드릭에게 들은 대로라면 쿠단은 신정일치(神政一致) 왕국이었다.
태양신 교의 제사장이 종교의 우두머리이며 쿠단이라는 나라의 정치지도자이기도 한 나라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교왕(敎王)의 말은 신의 말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었다.
그러니 교왕의 명을 누가 의심했을 것인가. 그의 명은 신의 명이나 다름없었으니 그저 믿고 따른 거지.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수수께끼 알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쉽게 끝날 일이었는데. 쩝.’
수수께끼 알을 사용해 종말의 파편을 찾을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벼룩 하나 잡겠다고 세계를 멸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곳으로 오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수께끼 알을 풀어놓았을 때를 떠올렸다.
내 손바닥을 벗어난 녀석이 제일 먼저 먹어치운 건 마침 근처를 날아가던 새떼였고 그다음으로 먹어치운 것은 초원에 자라있던 풀과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퍼드릭이었고.
그때 잡아채지 못했다면 태양신의 용사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꼼수로 퀘스트를 완료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수수께끼 알이 세계를 모조리 집어삼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도시로 향했던 샤이닝 에로우 함대가 돌아왔다.
새하얀 갑옷과 법복을 입은 교단의 인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그리고 그중엔 왕궁을 수색하겠다고 떠났던 퍼드릭도 함께였다.
‘퍼드릭은 왜?’
씨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퍼드릭에게서 들려왔다.
“크아아아!!”
시뻘게진 눈과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오라.
씨드의 중력제어에 묶여 허공에 떠 있으면서도 발버둥을 치는 걸 보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저기서 떨어지면 백 퍼센트 낙사일 텐데 말이다.
숭고한 신념으로 가득했던 용사는 도시에 들어간 후 광견병 걸린 개가 되어 돌아왔다.
문제는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게 퍼드릭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다.
대략 1만 명 정도 될까?
교단의 성기사이자 왕국의 기사이기도 한 자들과 새하얀 법복을 입은 사제들 그리고 고급스러운 복식을 한 자들까지.
모두가 같이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일단 위험인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생포해 왔습니다.’
‘어…. 그런데 아무래도 자초지종을 알아내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이네….’
그리고 그중엔 누가 봐도 왕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단 왕은 종말의 파편이 아니란 소리네.”
혹시나 내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육성으로 말을 뱉어봤지만.
“끄르륵.”
“컥.”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는 이들은 있어도 제정신을 차리는 이들은 없었다.
“단체로 뭘 잘못 먹은 게 아닌 이상 공통점이 있을 텐데…. 뭘까?”
나직한 혼잣말에 씨드가 대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교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들입니다.”
면면을 훑어보니 씨드의 말대로였다.
귀족과 왕족 그리고 성기사와 사제.
거기에 용사까지.
어디에도 평민은 보이지 않았다.
“흠….”
공통점은 찾았지만,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한가지 명확해진 것은 이 일 또한 태양신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인데….
“음? 태양신?”
그러고 보니 생포된 이들의 몸에선 하나같이 황금빛 오라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흘러가는 뭉게구름 너머로 고고하게 빛나는 태양.
이 세상의 근원이라 불렸던 것이 이 사태의 원흉일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
뜨겁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살이 익을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크기가 작다고 얕봤더니 꼴에 태양은 태양인가 보다.
“모태 솔로가 발동되었다면 괜찮았을까?”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고작 스탯과 방어력 좀 올라간다고 해서 태양을 손에 쥘 수는 없는 법이니까.
달그림자를 따라 위치를 바꾸며 이동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기가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치-이익.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기화되어 날아가 버렸다.
한여름 용광로에 들어간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씨드 넌 괜찮아?”
“아직은 버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내가 태양에 다가갈 수단이 샤이닝 에로우뿐인데, 아무리 샤이닝 에로우라고 해도 태양 근처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이미 샤이닝 에로우는 물론이고 내 몸과 연결된 와이어 일부도 붉게 달궈져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상점창을 열어 태양의 열기를 이길 아이템을 찾아냈지만, 그것을 구매하기엔 내 등급도 포인트도 부족했다.
지니고 있던 포인트를 소모해 아이템 몇 개를 구매했지만, 태양의 열기를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스럭.
꿀꺽.
인벤토리에서 조그마한 얼음 조각을 꺼내 삼켰다.
프로이듀라는 이름의 아이템으로 체온을 낮추고 주변의 열기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다.
“후우. 좀 살 것 같네.”
덕분에 숨은 좀 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다.
97%.
프로이듀를 복용함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게이지는 남은 시간이 채 몇 분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초당 1%면. 하나에 1분 40초 버티는 게 고작인가?”
개당 10만 포인트나 주고 산 아이템치곤 유지시간이 짧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럼 1분 40초 안에 끝을 봐야겠지.”
어두운 달그림자 뒤에서 몸을 숨긴 채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분명했으니까.
“씨드. 행여나 태양으로 빨려들어 가는 일 없도록 주의해줘.”
“네 사령관님.”
비행은 오롯이 씨드에게 맞긴 나는 인벤토리에서 수수께끼 알을 꺼내 들었다.
인벤토리 밖으로 나오자마자 먹이를 향한 강렬한 열망으로 발버둥 치는 알의 떨림이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듦과 함께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쐐에엑!
써걱!
나와 샤이닝 에로우를 연결해 주고 있던 아다만티움 와이어 중 하나가 잘려 나가고.
“미친!”
순간 중심을 잃은 나는 허공에 매달린 채 휘청거렸다.
바람 사냥꾼의 하품을 사용한 상태라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테지만 문제는 떨어지는 방향이었다.
지상 쪽으로 낙하한다면 상처 좀 입고 말겠지만 만일 태양 쪽으로 끌려간다면 답이 없었으니까.
다행히 아직 남아 있는 와이어들이 있어 떨어지는 일은 면했지만.
치이익!
휘청거리는 순간 달그림자 밖으로 드러난 손이 태양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올리며 타들어 가다가 이내 재가 되어 흩어졌다.
“!!”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크롤러의 공격으로 부식되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는 또 다른 고통.
왜 사람들이 화상을 인간이 느끼는 최악의 고통 중 하나로 꼽는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 누구도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들도 태양의 열기에 손이 재가 되어 흩어져 본 적은 없을 테니까.
“씨…. 끄으.”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
씨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커다란 장막이 눈앞을 가리며 시야를 차단했다.
재가 되어 흩어져버린 왼손에 쥐어져 있던 수수께끼 알이었다.
“…무슨?”
갑작스럽게 생긴 그림자에 고통을 참으며 시선을 돌리자 장막 일부가 내 쪽으로 삐쭉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종말의 파편이 재차 공격을 시도했던 모양이다.
욕심 많은 수수께끼 알은 그것을 흡수하기 위해 장막을 펼친 것일 테지만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꿀꺽.
포션을 마시고 상처 부위에 포션을 뿌릴 수 있는 시간 말이다.
“끄읍.”
힐링 포션은 다 좋은데, 상처를 재생할 때 느껴지는 고통이 문제다.
상처를 입을 때 느꼈던 고통을 고스란히 다시 느껴야 하거든.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 정도일까?
내가 그렇게 잃어버린 왼손을 재생하는 동안 흡수를 마친 수수께끼 알은 어딘가를 향해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달?”
그리고 그 방향에는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 중 하나가 있었다.
쩌어어억!
달이라고 해 봤자 고작 짐볼 크기의 구체.
수수께끼 알에게는 그저 한 입 거리일 뿐이었다.
몸길이만 2㎞가 넘던 쿠아르탐파도 한입에 집어삼킨 녀석이 아니던가.
꿀꺽.
그렇게 수수께끼 알이 하늘에 떠 있던 두 개의 달 중 작은달을 집어삼켰을 때였다.
띠링.
-퀘스트 [아공간 퀘스트: 인필리언의 구원자]를 완료하셨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알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어서 떠오르는 또 다른 메시지.
-아공간 인필리언의 청소를 마치셨습니다. 던전으로 귀환하시겠습니까?
-[Y/N]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