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19화 (118/202)

119. 양아치 짓거리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삼 주가 흘렀다.

그간 많은 일이 일어났다.

‘각성자 센터 <각성제> 공식인정! 대 각성 시대 열리나?!’

‘삼대 길드. 각성제(마나의 묘약) 수급 원활하지 않아. 전 국민 보급 어려울 듯.’

‘대현과 삼대 길드 합작연구소 설립. 각성제 대량생산을 위해 연구 중.’

마나 중독 치료제인 줄 알았던 포션이 각성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들썩였다.

마나 적합성 검사도 통과하지 못한 부적합자들도 마시기만 하면 각성자가 된다는 사실이 마나 중독 환자들을 통해 밝혀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특히 땅덩어리는 넓지만 그에 반해 각성자가 부족한 중국, 미국, 러시아 등에서 구매 문의가 넘쳐났다.

하지만 대현과 삼대 길드는 원재료 수급 문제로 난색을 표했고, 정부는 각성제(마나의 묘약)를 전략 물자로 지정해 정부와 협의 없이는 해외 반출을 금지했다.

사실 아직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삼대 길드와 대현에겐 그것이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이슈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테러. 테러. 테러! 지난 80년간 욱일회가 자행한 테러의 역사!’

‘꼬리 감춘 욱일회. 경찰 총력을 기울여 수사 중.’

‘테러단체 욱일회의 극악무도한 테러 행각들 집중조명. 구름 가오리 사태도 욱일회의 테러였다!’

그간 욱일회가 저지르려 했던 테러 행각들이 밝혀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경찰의 전방위적인 압박 수사를 이기지 못하고 욱일회를 배신한 후 자수와 양심고백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욱일회는 기가 막히게 꼬리를 자르고 몸통을 감췄으며, 경찰은 여전히 욱일회를 추격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현 상황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일시위 격화! 혐일 감정 이대로 괜찮은가?!’

└ 매국노다! 매국노가 낙타낳다!

└ 기자가 ‘재한 일본인이다.’에 내 돈 모두와 손모가지를 건다. 넌 뭣을 걸래?

└ 우리나라에 살면서 우리나라에 테러를 자행하는 일본인들을 혐오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기자님 기자정신은 어디로 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수천 개나 되는 악플 세례에 신문사는 기사를 내리고 사과문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커다란 이슈들이 떠올랐다가 잠잠해질 무렵.

하나의 이슈가 떠올랐다.

‘6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돌려받았습니다.’

시작은 어느 은퇴한 노 교수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었다.

낡은 회중시계와 신분증.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사탕 봉지 하나.

요즘 시대엔 볼 수 없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 소년은 빠진 앞니를 드러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시간의 흐름에 그리움도 풍화되어 사라진 줄 알았건만 아버지의 유품을 마주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

블로그에 올라온 몇 장의 사진과 장문의 글은 그의 감정이 얼마나 격해져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그 글 밑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수님 아버님께서 던전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유품을 전달받으실 수 있는 거죠?

└그러게요. 저도 의문이네요. 던전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못 찾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럼 길드나 헌터 협회에서 유품을 보관 중이었다는 건데. 60년이나 지나서 유품을 전달해 줬다는 것도 의문이고요.

댓글 중엔 노교수의 건강상태를 염려하는 글이 절반을 넘을 정도였고.

심지어 악플 중엔 교수가 노망이 난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악플은 며칠 후 귀신같이 사라졌다.

한울, 싸울아비, 화랑.

세 길드의 대변인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던전에서 사망한 길드원들의 유품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공표해 버렸기 때문이다.

└와 삼대 길드가 삼대 길드 해버렸네.

└킹정! 갓정!

└칠중 길드 쩌리들은 흉내도 못 내쥬.

└60년 전 사망한 길드원의 유품을 찾아준다고.? 실화냐?

└심지어 유품 받은 사람 중엔 80년 전 사망한 사람도 존재함. 삼대 길드 소속은 아니었지만.

└크-. 한울 길드 대변인 말하는 거 봤음? ‘우리는 당신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았습니다.’

└ㅇㅇ. 이 말 들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함.

└내 친구가 싸울아비 길드원인데, 이거 유품 회수할 때 길드 장들이 직접 움직였다고 함. 길드가 관리하는 F급 던전부터 A급 던전까지 전부. 모든 던전을 직접 들어가서 유품을 회수했다던데?

└엌ㅋㅋ 보통 이런 건 이거 비밀인데 가 먼저 아님?

└ㄹㅇㅋㅋ. 근데 삼대 길드는 못 하는 게 뭐임? 각성제도 만들고. 수십 년 전 사망한 길드원들 유품도 찾아주고. 그저 빛. 그저 갓.

└근데 대변인이 말한 강현이라는 사람은 누구임?

└그러게? 찾아보니까 마나 중독 치료제 발표할 때도 삼대 길드장 이름 옆에 개발자로 올라와 있던데?

└삼대 길드장이랑 나란히 언급될 정도면 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정보가 없음.

그렇게 여론은 삼대 길드 찬양 일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강현에 관한 의문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슬슬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강현은 자신의 전용 던전 안에 있었다.

***

“푸른색 아공간은 전부 클리어한 거지?”

“네. 사령관님. 푸른색 아공간 1853개 모두 클리어되었습니다.”

3주 전엔 935개에 불과했던 푸른색 아공간이었다.

하지만 청소 맛집이라고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매일 청소를 해도 그 수가 불어나 어제까지 청소한 것이 1800개를 넘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아공간들은 크게 개수가 불어나지 않은 건가?”

청소하는 족족 빈자리를 채웠던 푸른색 아공간과 다르게 다른 아공간의 개수는 크게 변동이 없었다.

“현재 남은 아공간은 모두 817개이며 그중 노란색 아공간이 402개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주황색 아공간은 285개. 붉은색 아공간은 77개. 흰색과 검은색 아공간은 각각 20개이며 황금색 아공간이 13개로 가장 수가 적습니다.”

3주 전보다 약 200개가 늘어났다.

“와….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 아직 817개가 남아있다고?”

“사령관님께서 청소하신 덕분에 817개만 남은 겁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공간이 던전을 채우고도 남았을 겁니다.”

앓는 소리를 조금 했더니 씨드가 나를 위로했다.

인공지능이 위로라니.

뭐랄까.

감회가 남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씨드의 사회성이 늘어난 게 느껴졌달까?

능동형 인공지능이라더니 사회성도 학습하는 모양이다.

피식.

그 어색하고 딱딱한 위로가 뭐라고 웃음이 나왔다.

“그럼 오늘부터 할 건 노란색 아공간을 공략하는 거군.”

각각의 아공간 개수를 보더라도 난이도는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촉은 황금색 아공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큰 게 올 것 같은데 말이지….’

문제라면 내게 황금색 아공간을 클리어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지만.

“못 먹어도 고!”

나는 내 촉을 믿기로 했다.

일단 색깔부터 노란색보단 황금이 좋잖아.

저벅.

나는 지뢰처럼 촘촘히 깔린 형형색색의 아공간들을 피해 황금색 아공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찬란한 봄 햇살과도 같은 빛을 내며 존재감을 뽐내는 황금색 아공간.

왜인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기분도 들었다.

수많은 지뢰밭을 해치고 그곳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아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고.

화악-!

곧 아공간에서 뿜어져 나온 찬란한 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

강현이 전용 던전에 들어가 있을 무렵. 각성자 센터 154층 대회의실.

커다란 타원형의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한 10명의 인물 사이로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7명의 남성과 3명의 여성.

10대 길드 길드장들이었다.

“그래서 각성제의 제조법은 공유하지 못하겠다는 말인가요?”

그 불편한 침묵을 깬 것은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지닌 여자였다.

10대 길드의 한 축이며 충청도 계의 수장인 현월(玄月) 길드의 길드장 우지영.

그녀는 불쾌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려는 듯 맞은편에 앉은 구지석을 죽일 듯이 쏘아 보고 있었다.

“하하. 우리도 모르는 걸 가르쳐 드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정작 그 시선을 받은 구지석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뿌득.

그리고 구지석의 그런 여유로운 행동은 우지영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빌어먹을…. 아버지 후광에 기대어 사는 버러지 주제에. 감히.’

사실 구지석의 아버지 구정철이 아니었다면 화랑은 진작에 10대 길드에서 퇴출당했어야 옳았다.

일단 구지석이 SS급 헌터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이 자리에 앉을 자격조차 없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구지석의 옆에 앉은 곽영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싸울아비의 신임 길드장 곽영철.

그 또한 아직 S급 헌터에 불과했고 이 자리에 함께하기엔 그 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내치기엔 그들 뒤에 있는 그림자가 너무도 거대했다.

서태촌과 구정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최초이며 세계에 단 6명밖에 없는 SSS급 각성자.

그들이 저들 뒤에 버티고 있는 한, 힘으로 저 두 사람을 겁박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거기에 그들 곁에는 도연우가 있었으니까.

흘끗.

우지영의 시선이 구지석의 옆에 앉은 도연우에게 향했다.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얼굴에 늘씬한 기럭지. 우수에 찬 눈으로 커피를 마시는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아…. 연우야…….’

그런 도연우를 흘끔거리는 우지연의 볼이 붉게 물들어갈 때쯤이었다.

“큼! 그래서 그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는 강현이라는 자와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투왕이라 불리는 구정철과 비교될 만큼 거대한 체구를 가진 40대 남자.

강원도를 대표하는 태산 길드의 길드장 한태산.

소회의실을 떨어 울리는 우렁찬 그 목소리에 커피를 마시던 도연우의 시선이 한태산에게 향했다.

움찔.

그리고 그 무심한 눈빛을 받은 한태산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크윽…. 무슨 놈의 기세가.’

도연우의 무감정한 눈에 담긴 기세.

달리 SSS급이 아니라는 듯 도연우는 눈빛에 담아 쏘아낸 기세만으로 한태산을 떨게 만든 것이었다.

“태산 길드장님. 대화라고 하셨나요?”

“그. 그렇습니다. 한울 길드장. 그 강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경호만 풀어주시면 저희가 직접 대화를 해서 레시피를 얻어내겠습니다.”

어떻게든 떨림을 숨기려 안간힘을 쓴 한태산의 목소리에 도연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어린놈이. 등급이 높아졌다고 기고만장해선…. 쯧.’

그런 도연우를 바라보는 다른 7대 길드 길드장들의 얼굴엔 불편한 심기가 적나라하게 떠올랐다.

“뭐가 웃기죠. 도 길드장?”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그렇게 우습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 불편한 심기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일곱 길드장이 쏘아낸 그 명백한 적의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도연우를 압박해 들어가자, 도연우의 입꼬리에 매달려있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고.

“감히!”

“도 길드장! 지금 우리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요?!”

일곱 길드장의 타오르는 분노에 뿌려진 기름과도 같았다.

“우습네. 정말.”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도연우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가 내보인 비웃음은 자신에게 적개심을 내뿜는 이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이럴 때 보면 두 영감님 인내심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네.’

그가 쓴웃음을 지은 이유.

그것은 과거 사혼 감옥 결계에 갇히기 전 어떻게든 자신의 앞을 막아선 벽을 깨부수고자 서태촌과 구정철에게 끊임없이 도발을 날렸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급이 다르다고.

지금 자신이 느낀 SS급과 SSS급의 격차.

그것은 일곱 길드장이 쏘아내는 살기가 어린애들의 장난과도 같이 느껴질 정도로 큰 차이였다.

지금 자신이라면 여기 있는 길드장들이 모두 달려들더라도 창질 몇 번으로 썰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서태촌과 구정철은 자신의 도발에 그저 훈계 몇 마디 하는 것으로 그쳤던 거다.

‘괜히 어른이 아니라는 거지. 쳇.’

도연우는 괜스레 고개를 드는 반항심에 슬쩍 혀를 차곤 자신 앞에 있는 자들을 봤다.

창질 몇 번이면 쓰러질 약하디약한 자들.

그게 저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격의 차이.

그런데도 저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발톱을 들이민다.

우스웠다.

“대화라고 말씀하셨나요. 태산 길드장님?”

그 말과 함께 뿜어져 나온 기세가 도연우를 향해 쏟아지던 길드장들의 살기를 날려버렸다.

그와 함께 그들은 도연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짓눌려 몸을 떨어야만 했다.

“큭. 크윽.”

“근데 왜 전 그 대화가 대화가 아니라 협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그, 그럼. 자네는 이대로 각성제를 독점하고 삼대 길드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건가?! 우리도 충분히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왔어!!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내쳐지는 게 옳다는 말인가! 진정으로 그게 한울이 원하는 거냔 말일세!”

화연 길드 길드장 이석평의 말에 도연우는 더욱 기세를 끌어올렸다.

“참 뻔뻔들 하시네. 그렇게 말하면 얼굴에 부끄럽지 않으신가? 그리고 그게. 그 아이를 협박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죠. 화연 길드장님.”

우직.

뿌드득.

도연우가 끌어올린 기세에 길드장들이 앉아 있는 의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뒤틀렸다.

‘이게…. SSS급?’

‘큭. 이런 격차라니 말이 돼?!’

그들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SSS급 각성자의 힘에 경악이 어린눈으로 도연우를 바라봤다.

“좋습니다. 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드리죠.”

그리고 이어진 도연우의 말에 그들은 기세에 억눌려있으면서도 반색을 했다.

그만큼 그들에겐 각성제가 간절했던 거다.

“하지만 그 자리엔 제가 함께할 겁니다. 현이는 내 제자이자 동생이기도 하니까.”

순간 길드장들의 얼굴이 더는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도연우의 말은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도연우는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매달고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했다.

“이젠 십대 길드 이름 달고 양아치 짓거리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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