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잊지 못한 사람들.
툭툭.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건들.
도연우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주워 미리 준비한 이름표를 붙인 뒤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렇게 몇 개의 물건들을 챙기고 나자 아무도 없던 공간에 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과 달리 이제는 별달리 신기하지도 않은 광경이었다.
오늘만 해도 수백 번은 넘게 본 광경이었으니까.
“이제 이 던전은 청소 끝난 거야?”
“네. 최여욱 씨가 마지막이었어요.”
최여욱. 조금 전 강현이 청소를 마친 인벤토리의 주인이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시간도 너무 늦었고 너도 피곤할 테니까.”
도연우의 말에 강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자정을 넘어 새벽 한 시를 향해가는 시각.
저녁도 도시락으로 때우며 인벤토리 청소를 한 덕에 오늘 하루만 12개의 던전을 돌 수 있었고 회수한 유품만 해도 벌써 200여 명의 유품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부터 끝까지 도연우는 강현과 함께했다.
길드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도연우는 농담 한마디 하지 않는 진지한 모습으로 사망한 길드원들의 유품을 회수하며 또 강현을 놀라게 했다.
한없이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던 도연우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던전 코어를 부수고 밖으로 나오자 별이 촘촘히 뜬 밤하늘이 그들을 맞이했다.
“고맙다. 현아.”
잠시 그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도연우가 강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멀리서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렸다.
“네가 아니었다면 유가족분들에게 이렇게 유품을 전달해 주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거야. 이건 한울 길드 길드장으로서 하는 말이야 정말 고마워.”
진심이 가득 담긴 단단한 목소리가 어둑한 하늘을 가로질러 강현에게 닿았다.
“별거 아니지만, 네가 이걸 받아줬으면 좋겠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도연우는 인벤토리를 열어 명함 크기의 카드 하나를 꺼내 강현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형?”
전면에는 도연우가 사용하는 신창이 음각되어있고 뒷면에는 힘 있는 글씨체로 ‘한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금속 재질의 카드.
강현이 그 카드를 받아드는 순간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길드원들이 그 카드를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야. 네가 내 동생이라는 증표 같은 거로 생각하면 돼.”
정말 별거 아닌 듯 말하는 도연우였지만 길드원들의 반응을 본 강현은 이 카드가 그렇게 가볍게 취급할 물건이 아님을 느꼈다.
“그래서 이게 뭔데요? 뭔지를 말해 주셔야 잘 써먹죠. 형.”
“신창패(神槍佩). 한울의 은인에게 주는 일종의 증표 같은 거야. 언제고 한울이 그 은혜를 갚겠다는 의미의 증표지.”
순간, 강현의 얼굴에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울의 은인.
10대 길드. 이제는 3대 길드라 불리는 한울의 은인이라는 말은 그리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모를 만큼 무지하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강현은 그 패를 도연우에게 돌려주지는 않았다.
“네. 형. 잘 가지고 있을게요.”
도연우가 이 패를 건네주기까지 수많은 생각을 했음을 강현도 모르지 않았으니까.
줄 만하니까 줬을 테고 받을 만하니까 받았다.
강현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강현이 신창패를 인벤토리에 넣는 것까지 확인한 도연우는 굳어 있던 얼굴을 풀며 입을 열었다.
“내일은 몇 시에 시작할 거니?”
주위에 있는 길드원들을 의식한 물음.
강현이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 것을 아는 도연우의 배려였다.
“오전엔 저도 볼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고요. 오후부터 시작할 것 같아요. 내일도 같이 하시게요?”
“그게 길드장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의무니까.”
도연우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봤다.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반만 빼꼼히 얼굴을 내민 반달.
9월.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
경기도 양주의 한 시골.
추수를 앞둔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농부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바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그곳.
“아이고 우리 강아지. 오늘 온다고 했는데 언제 오려나….”
마을 어귀에 자리한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
새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넘겨 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른 아침부터 당산나무 아래를 서성이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노인이 할머니를 발견하곤 가던 걸음을 멈춰 세우더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오늘도 나와계시네. 선철이 기다리셔요?”
“응. 선철이. 오늘 우리 강아지가 온다고 했어.”
“선철이가 오늘 온다고 했구먼요? 그래도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셔요. 날도 점점 추워지는데.”
안월리의 이장인 최 씨는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손자를 기다리는 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려 했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해 왔던 일.
할머니의 하나뿐이던 손자 황선철이 던전에서 사망한 이후. 면사무소 사람들과 선철이네 길드에서 나온 사람들이 김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려 했으나 할머니의 완강한 거부에 포기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치매에 걸린 김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은 마을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가끔 시청에서 사회복지사가 찾아오긴 했지만, 고작 한 달에 한두 번이었고 할머니의 식사와 생활은 전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책임졌다.
다행히 금전적인 문제는 없었다.
국가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과 선철이가 다니던 길드에서 나오는 유족연금이 있었기에 생활은 오히려 풍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뭐해. 가족들이 하나도 없는데.’
내일모레가 추석이다.
가족의 부재가 그 어느 때보다 뼈아프게 다가오는 시기인 것이다.
‘망할 놈. 뭐가 그리 바빠서 그렇게 일찍들 가누.’
최 씨가 25년 전 빅 웨이브 때 죽은 친구 부부와 10년 전 죽은 황선철을 떠올리며 할머니를 부축하려 할 때였다.
후웅!
탁!
김 할머니가 한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최 씨의 팔을 내리쳤다.
“절루 가 이놈아! 난 여서 내 강아지 기다려야 혀!”
할머니의 역정에 놀란 최 씨가 주춤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지팡이에 맞은 팔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힘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그가 놀란 이유는 할머니가 지난 10년 동안 보인 적이 없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 씨는 다시 살가운 웃음을 띠며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우리 엄니 뭐 때매 이리 화가 나셨을까? 날 추우니까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셔요. 여기 이렇게 있다가 감기 걸리셔.”
“아. 안 간다고 이놈아! 절루 가라니까!”
할머니를 부축해 집으로 모시려는 최 씨와 지팡이를 휘둘러 그런 최 씨를 밀어내려는 할머니.
휙휙.
그렇게 두 사람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을 때였다.
마을 입구로 들어선 승용차 한 대가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음? 못 보던 찬데?’
라는 생각이 최 씨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늦가을 아침 찬 바람에 할머니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빨리 집으로 모셔야 했으니까.
“아. 엄니 집에 가서 기다리시자니까요.”
“아. 안 간다니까! 이놈이 왜 자꾸 이래!”
집에 가자고 조르는 60대 노인과 그에 역정을 내는 90대 노인,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을 당산나무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끼익.
마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던 승용차가 다시 되돌아 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노인들 옆에 섰다.
이내 운전석 문이 열리고 30대로 보이는 사내가 내려서며 두 사람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말씀 좀 여쭤도 되겠습니까?”
사내의 물음에 최 씨가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쪽 어르신이 김막례 할머님이신가요?”
“음? 댁이 우리 엄니 이름은 어찌 아셔?”
순간 사내를 보는 최 씨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간 어찌 알았는지 김 할머니가 받은 보상금과 유족연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기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최 씨의 날카로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는 한울 길드에서 나온 박현성이라고 합니다. 김막례 할머님께 황선철 헌터의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말과 함께 사내는 차 뒷좌석에서 작은 나무상자를 꺼내 왔다.
가로세로 30㎝ 높이 10㎝ 정도 되는 나무상자를 손에 들고 온 박현성을 향해 최 씨는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어서 뭔 소리를 듣고 와서 또 사기를 칠라 그러는 것이여 지금! 시골 사는 노인네라고 아무것도 모를 것 같더냐. 이놈아?! 되지도 않는 수작질 하덜 말고 썩 꺼져!”
갑작스러운 최 씨의 호통에 놀란 박현성.
움찔하는 박현성의 모습을 본 최 씨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에 다시 박현성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젊은 놈이 선량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순진한 노인들 등이나 치려고 하느냐?! 이놈!!”
“아니 어르신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니라요….”
최 씨의 호통에 박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최 씨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어허- 이놈이 그래도! 한울이 어떤 곳인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촌 무지렁이라고 해도 10대 길드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안다 이놈아. 그런 길드에서 10년 전에 죽은 선철이 유품을 이제 와서 전달해 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여!!”
시체조차 찾지 못해 장례도 빈 관으로 치러야 했던 선철이. 그런 선철이의 유품을 가지고 왔다는 말에 최 씨는 당연히 박현성이 사기꾼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박현성이 최 씨의 호통에 쩔쩔매며 땀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우리 선철이 유품을 가지고 오셨다고 하셨소?”
나직하게 흘러나온 김 할머니의 목소리가 구원의 동아줄처럼 최 씨의 호통 속에서 박현성을 구해냈다.
“아. 네. 그렇습니다. 어르신.”
“어디 한번 봅시다.”
할머니의 말에 사내는 반색을 했고 최 씨는 그런 할머니를 만류하려 했다.
“아이고 엄니. 저거 다 사기 치려고 그러는…….”
“기동아. 나 괘안타. 그러니 너는 네 일 보아라.”
“…어머니?”
최기동은 김 할머니를 막지 못했다.
최기동을 바라보는 김 할머니의 눈엔 지난 10년간 본적 없던 맑은 빛이 어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이. 괜찮으니 이놈 신경 쓰지 말고 그 뚜껑 좀 열어 줄 수 있겠소?”
할머니의 말에 박현성은 들고 있던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어 할머니에게 건넸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나무상자.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물건 몇 개가 조심스럽게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나무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떨리는 손길로 쓰다듬었다.
“아이고. 우리 선철이가 왔네. 선철이가 왔어….”
그중 아주 오래된 한 쌍의 은가락지를 집어 든 할머니가 그것을 품에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할머니가 손주 며느리가 생기면 주라고 황선철에게 건네주었던 은가락지였다.
먼저 간 영감이 결혼할 때 끼워주었던 은가락지 말이다.
“아이고 이놈아…. 이리 올 걸 왜 그리 할미를 기다리게 했누. 내 새끼…우리 강아지…. 그간 혼자 얼마나 추웠을꼬…….”
소리 없이 흘러내린 눈물이 할머니의 가슴팍을 적시고.
박현성과 최기동은 그저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이렇게라도 할미한테 와줘서 고맙다. 내 새끼. 이렇게라도 와줘서…. 흐으으으.”
당장이라도 심장을 토해낼 것 같은 할머니의 한 맺힌 울음소리에 박현성은 눈시울이 시큰해져 차마 고개를 내릴 수가 없었다.
추석이 다가오는 어느 가을.
단풍이 물들어가는 당산나무 아래.
돌아오지 못했던 손자가 10년 만에 돌아왔고.
노인은 눈물로 손자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 시각 전국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십 년 전 사망한 길드원들의 가족들에게 그들의 유품이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