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본업에 충실할 때 (4).
길드원들과 만남을 끝내고 내가 찾은 곳은 한울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 중 하나인 논현 F급 던전이었다.
“어. 현아 여기.”
던전 앞.
먼저 도착한 연우 형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길드장 때문인지 던전 포탈 앞에서 긴장이 역력한 모습으로 경계를 서고 있던 길드원들이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려 나를 바라봤다.
“굳이 형이 오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안 바쁘세요?”
내 물음에 연우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말도 마라. 지금 길드 앞에 인파가 너무 몰렸어. 나도 드론 타고 나오는 거 아니었으면 빠져나오지도 못했을걸?”
“사람들이 왜 길드 앞에 몰려요?”
“알면서 뭘 물어. 치료제 때문이지.”
“아….”
말을 마친 연우 형이 헌터 와치를 조작해 홀로그램을 하나 띄웠다.
‘마나 중독 치료제. 알고 보니 각성제?’
마나 중독 치료제를 먹은 환자들이 각성했다는 내용의 짤막한 기사였지만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워. 나도 치료제 먹음 각성할 수 있는 거?
└설레발 금지요. 치료제 먹은 사람 전부가 아니라 그중 몇몇이 각성한 거. 기사를 읽긴 하는 거냐?
└와-. 기사대로면 길드 판도가 바뀌는 거 아님? 비 각성자도 각성을 시킬 수 있다는 소린데. 누가 다른 길드에 가입함? 진짜 3대 길드로 굳어질 듯.
└나머지 7대 길드는 이제 X 됐음. 세 사람 사망기사 났을 때, 한울하고 싸울아비, 화랑 10대 길드에서 축출하려고 기를 쓰더니 이제 자기들이 축출될 판. 아이고 꼬숩다.
└7대 길드 ㄴㄴ. 7중 길드 ㅇㅇ.
여론의 반응은 이미 10대 길드가 아닌 3대 길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길드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유품을 찾는 일인데 길드장이 안 오면 누가 오냐?”
나는 물끄러미 연우 형을 바라봤다.
이 형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곤 한다.
지금처럼.
“큼…. 뭐 당연한 걸 가지고 감동한 얼굴을 하고 그러냐? 들어가자.”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앞서서 걸음을 옮기는 연우 형.
확실히 이럴 때 보면 이 사람도 한 단체를 책임지는 수장이구나 싶었다.
한울이라는 길드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끌어 가는 사람.
‘이런 건 본받을 만하지.’
가끔은 장난꾸러기 악동 같지만 말이다.
***
논현 F급 던전.
던전 안은 짙은 회색의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 있는 숲이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하늘과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들.
휘오오오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여긴 우리 길드에서 관리한 지가 한 30년 정도 될 거야. 그때 생성된 던전이니까.”
이곳에 대한 정보는 나도 알지 못했다.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는 던전이 아니기에 헌터 협회에서 발행하는 던전 가이드에도 정보가 없었으니까.
“이곳에서 사망한 길드원들은 몇 분 없어. 처음 생성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길드에서 관리했으니까 외부인 유입도 없었지.”
“그런데 왜 헌터 협회가 아니라 한울 길드가 관리하는 거예요?”
고작 F급에 불과한 논현 던전을 헌터 협회에 넘기지 않고 한울 길드가 관리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돈이 안 되는 던전이니까.”
연우 형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돈이 안 되는 던전이니 협회가 관리 하기를 꺼리는 거지. 돈은 안되고 관리 인원은 파견해야 하니까. 그리고 이런 던전을 관리하는 게 길드의 의무이기도 하니 우리로서도 억지로 떠넘길 수도 없고.”
“돈이 안 되는 던전이라면….”
“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유령계열이거든. 부산물이 없지.”
파티에 힐러가 없으면 상대조차 불가능한 몬스터가 유령계열 몬스터다.
당연한 얘기지만 유령계열 몬스터기에 사냥해도 나오는 부산물이 없고 마나석도 보스가 아니면 주지를 않는단다.
한마디로 신규 길드원들의 훈련과 승급용으로 사용하는 것 말고는 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었다.
연우 형의 설명을 들으며 숲길을 이동하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잠시만요. 먼저 테스트해 볼 게 있어요.”
“음? 테스트?”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던 연우 형이 이내 내 손에 쥐어진 수수께끼 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수께끼 알? 그걸로 뭘 하게? 여긴 부산물도 나오지 않는다니까.”
“형. 제가, 제 전용 던전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어…. 설마?”
역시 길드장 짬밥을 날로 먹은 건 아닌가 보다.
단지 전용 던전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연우 형의 입에서는 정답이 튀어나왔다.
“수수께끼 알이 몬스터를 잡아먹는 거야? 하긴, 쿠아르탐파가 생태계의 정점에 있던 포식자였으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데….”
솔직히 좀 놀랐다.
전용 던전과 수수께끼 알이라는 단서만을 가지고 거기까지 유추해낼 줄을 몰랐거든.
“네. 전용 던전의 몬스터도 포식했으니까. 유령계열 몬스터라고 해도 수수께끼 알이 포식할 수 있을 거예요.”
크롤러의 정확한 명칭은 아공간 기생 생명체.
아공간 청소 전용 아이템이 아니면 공격조차 하지 못하고 방어는 애초에 불가능한 몬스터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비슷하지 않은가?
파티에 힐러가 없으면 상대할 수 없는 유령계열 몬스터와 말이다.
하지만 수수께끼 알은 그런 크롤러를 포식했다.
크롤러의 천적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따라서 나는, 연우 형의 말처럼 수수께끼 알이 유령계열 몬스터라 해도 포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때였다.
우오오오오-.
인간의 본능 속에 내재된 공포심을 자극하는 으스스한 울음소리와 함께 투명한 무언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성직자 계열 힐러의 버프가 없다면 그 형체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유령계열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순간.
부르르.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수수께끼 알이 손아귀를 탈출하기 위해 몸을 떨어댔다.
“호오…. 쓸 만하겠는데?”
유령이 등장했음에도 연우 형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제대로 된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고작 F급 몬스터.
힐러의 버프가 없더라도 검기 한 방이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잡몹일 뿐이니 본능적인 거부감과는 별개로 긴장이 될 리가 없다.
“그럼 풀어놔 볼게요.”
연우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수수께끼 알을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쉬-익!
쫘아악!
꿀꺽.
톡.
“이게 뭐…?”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연우 형.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사일처럼 쏘아져 나간 수수께끼 알이 장막처럼 넓게 펼쳐지며 유령으로 의심되는 무언가를 꿀꺽 삼키고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과정은 찰나라는 비유조차 무색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끝나버렸다.
그나마 내가 레벨업을 했기에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수수께끼 알만 멀뚱히 쳐다봤으리라.
“우. 우와아아!! 와 씨! 이거 대박인데?! 현이 너 레벨업은 돼? 나는 등급 차이가 나서 마나가 안 들어오는 것 같은데.”
“저도 이제 F급 몬스터는 잡몹 수준이라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경험치는 들어오지 않을까요?”
“하긴 그렇겠네. 게임방식을 차용했으면. 그나저나 이거 정말 탐나네. 수수께끼 알 하나 더 구할 수 없나? 형이 전 재산 털어서라도 살게.”
연우 형의 말에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수께끼 알은 구매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룰렛에서 알을 얻고 난 후, 정보를 얻을 겸 혹시나 해서 상점창에 검색을 해 봤지만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었으니까.
그런 내 얼굴을 본 연우 형이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역시 안 되나 보네? 하긴 저런 알이 흔할 리가 없겠지. 쩝.”
“그나저나 구매하실 아이템은 정하셨어요? 아이템 두 개 구매해 드리기로 했잖아요.”
그 말에 시무룩했던 얼굴이 금세 밝아진다.
참 여러모로 재미있는 형이다.
저 나이에 자기감정을 저렇게 솔직하게 얼굴에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응. 난 저걸로 정했어.”
초롱초롱한 눈을 한 연우 형이 가리킨 것은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씨드.
정확히는 샤이닝 에로우였다.
하지만 우주 전함 샤이닝 에로우는 정확히 50대 한정으로 만들어진 전함이었고 그 모든 전함은 내가 소유하고 있다.
정확히는 신규 전함이 생산되며 퇴역한 낡은 전함을 내가 수리해서 사용하고 있는 거지만.
“아….”
내 얼굴에서 난감함을 읽은 걸까?
“설마 저것도 살 수 없는 거야?”
연우 형의 목소리가 금세 또 시무룩해졌다.
“샤이닝 에로우가 50대 한정으로 만들어진 거라서요. 추가 구매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아…….”
내 말을 들은 형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일단 나가서 다시 검색해 볼게요. 샤이닝 에로우는 퇴역 전함이라 신규 전함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 정말?”
또 그 말을 듣더니 금세 눈을 빛내는 연우 형.
참 알기 쉬운 사람이다.
“저도 이참에 샤이닝 에로우 업그레이드가 가능한지 알아봐야겠어요.”
내가 레벨업을 하는 동안 샤이닝 에로우는 그대로였다.
이것저것 부가 기능들을 활성화해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을 하고 있긴 했지만, 샤이닝 에로우의 한계는 명확했다.
B급 헌터.
그 이상의 헌터들은 샤이닝 에로우의 기척을 느끼고 방어하는 게 가능했다.
목포에서 해랑 길드 놈들과 욱일회 놈들을 상대할 때도 그게 한계였고, 내가 S급 오른 지금도 B급이 한계다.
씨드도 샤이닝 에로우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연우 형과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던전을 거니는 사이.
‘수수께끼 알. 보스 방 앞에 대기 중입니다. 사령관님.’
샤이닝 에로우의 중력 제어로 던전을 돌아다니며 모든 유령을 포식한 수수께끼 알은 이미 보스 방 앞에 도착해 있었다.
‘보스 몬스터 사냥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리고 30초쯤 지났을까?
씨드의 보고보다 먼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 E (LV9) 가 발현됩니다.
-특성: 공간시 D (LV4) 가 발현됩니다.
-특성: 아공간 조작 D (LV1) 이가 발현됩니다.
-이제 버려진 아공간을 청소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발현된 세 개의 특성이 던전 안은 이제 안전한 곳임을 말해줬다.
‘그러고 보니 인벤토리 청소는 꽤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인벤토리를 청소한 게 석 달쯤 전이니 오래되긴 했다.
그동안 내가 인벤토리 청소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인벤토리 청소는 아공간 청소와는 달랐으니까.
‘이제는 유품 정도는 인벤토리 밖으로 꺼낼 수 있을 거야.’
처음 인벤토리를 청소할 땐 퀘스트가 있었기에 추가보상으로 해례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기본적으로 인벤토리는 청소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없었다.
아공간 청소는 청소를 마치면 아공간 내에 존재하던 아이템 중 1개를 무작위로 받을 수 있지만, 인벤토리 청소는 그런 기본 보상도 없는 것이다.
사망자의 유품 하나 유가족에게 전달해 주지 못한다면 인벤토리를 청소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난 지난 몇 달간 인벤토리 청소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력도 지혜 스탯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그리고 전용 던전에서 청소하며 미리 연습을 해 본 결과 지름 50㎝ 정도의 구멍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어지간한 크기의 유품이라면 유족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게 된 셈이다.
나는 특성의 발현과 함께 나타난 초록색 빛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형. 제가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그리고 허공에서 물건이 튀어나오더라도 놀라지 마시고요.”
내 말에 연우 형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어…. 이제 청소 시작하는 거야?”
길드를 위해 헌신한 길드원의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인지 더없이 진중한 모습이었다.
“네. 이 앞에 인벤토리가 하나 있네요. 성함은 황선철 님이에요.”
[각성자 황선철의 인벤토리]
인벤토리 주인의 이름을 들은 연우 형이 헌터 와치를 조작해 15명의 이름이 나열된 리스트 하나를 띄웠다.
그 중간쯤에 적혀 있는 세 글자.
황선철.
10년 전 히든 보스의 등장으로 사망한 길드원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