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15화 (202/202)

115. 본업에 충실할 때 (2).

내가 가진 아공간 관련 특성은 모두 3개.

[특성]

아공간 청소부 E (LV1)

공간시 E (LV6)

아공간 조작 E (LV2)

세 특성 모두 발동 조건은 같았다.

특정 상황, 즉 아공간을 청소할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발동한다.

마치 패시브 스킬처럼.

분명한 건 특성이 발동할 때 정해진 루트를 따라 마나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루트들 중 하나를 익혔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한다면 특성을 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바로 아공간 조작 특성.

처음엔 던전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유품을 얻기 위해 시작한 수련이었다.

그리고 그 수련 효과는 사혼 감옥의 결계에 구멍을 낼 수 있을 만큼 확실했다.

고작 E급에 불과한 특성으로 시스템이 공인한 SS급 결계에 구멍을 만들어 냈으니까.

물론 작은 구멍 하나 만들고 피를 토하며 기절해야 했지만.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렇게 피를 토하며 마나 회로를 수련한 아공간 조작보다 공간시의 레벨이 더 높다는 부분이었다.

‘왜지?’

지금 발동되고 있는 특성은 아공간 청소부와 공간시.

아공간 조작은 발현되지 않았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한 아공간 조작 특성은 균열을 청소할 때만 발현되니까.

‘관조.’

나는 두 눈을 감고 마나홀에서 시작한 두 줄기 마나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공간 조작의 마나 회로가 커다란 강줄기처럼 흐른다면 이 두 줄기 마나 회로의 흐름은 미약한 시냇물과도 같았다.

졸졸 소리를 내며,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나는 정신을 집중해 그 마나의 흐름을 따라갔다.

두 개의 마나 흐름 중 하나는 심장을 거쳐 온몸을 휘돌았다.

신경 말단부터 미세한 세포 하나까지, ‘내 몸’이라 생각되는 모든 것을 거치고 모공을 통해 방출되어 착용하고 있는 장구류를 휘감고 사라졌다.

‘이게 아공간 청소부의 마나 회로구나.’

그 마나의 흐름을 파악한 순간, 나는 아공간 청소부 특성을 내 뜻대로 펼칠 수 없을 것을 직감했다.

온몸에 펼쳐져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 하나까지 거쳐 가야 하는 마나 회로.

이것은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수준의 마나 회로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세포 하나까지 거쳐 가는 미세한 마나 회로의 루트를 사람의 머리로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아공간 청소부는 포기하고…. 이게 공간시의 마나 회로인가?’

아공간 청소부 특성의 마나 회로를 익히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한 나는 남은 마나 회로에 집중했다.

아공간 청소부와는 달리 공간시의 마나 회로는 마나홀에서 시작한 마나가 척추를 따라 올라와 뇌의 일정 부분을 거친 뒤 눈에서 끝나는 흐름이었다.

‘어……. 뇌를 지나가네….’

공간시의 마나 회로는 아공간 청소부의 마나 회로에 비하면 단순했지만, 뇌를 지난다는 부분에서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공간 청소부의 마나 회로만큼 세밀하고 복잡하지 않다는 정도일까?

‘포기해야 하는 건가?’

솔직하게 말해서 쫄렸다.

흔히 말하는 백회혈이 있는 뇌를 건드린다는 건 함부로 시도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상식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아쉬웠다.

분명 이대로 계속해서 아공간과 인벤토리를 청소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레벨업을 할 걸 알고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원할 때 특성을 발현할 수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서 영감님에게 그렇게 배웠다.

‘일단은 마나 회로를 외우는 데 집중하자.’

하나씩 천천히 익혀가면 된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공간시를 내 뜻대로 펼칠 수 있을 거다.

아공간 조작을 익히는 것도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잖은가.

***

“사령관님. 약속 1시간 전입니다.”

“어. 벌써 그렇게 됐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아공간 청소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던전에 들어온 게 오전 8시였으니 꼬박 다섯 시간 동안 청소만 한 것이었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밥을 먹는 것도 잊고 청소만 했나 보다.

하늘의 별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반짝이는 아공간으로 가득하던 던전에도 드문드문 빈 곳이 보였다.

“모두 몇 개나 청소했지?”

“115개의 아공간을 청소하셨습니다.”

“후아-.”

불과 5시간 만에 115개.

한 달 보름 전에 온종일 열 개 남짓 청소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보상도 그만큼 어마어마했고.

아공간 청소 115개.

인벤토리 확장 115칸, 한계 중량 115㎏ 증가.

거기에 청소를 완료할 때마다 하나씩 얻은 아이템이 모두 115개다.

보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 E (LV9)

공간시 D (LV4)

아공간 조작 D (LV1)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아공간 계열 특성의 레벨업.

청소를 시작하기 전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특성 레벨업은 무척이나 빨랐다.

‘꼭 공간시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공간시가 D급으로 승급하며 마나 회로가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마나 회로가 변화했다는 건 공간시의 능력에도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뜻일 텐데 아직은 이렇다 할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이것도 차차 알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공간 조작은 D급으로 승급된 이후 마나 회로가 복잡해지진 않았지만, 마나의 흐름이 더욱 세밀해졌다.

그동안 10의 마나를 들여 균열을 메꾸던 것이 7이나 8 정도 마나로 메꾸는 게 가능해졌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턱대고 회로대로 마나를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을 조절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다.

물론 빗자루질을 할 때는 패시브로 특성이 발현되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만, 임의로 균열의 틈을 벌리고자 한다면 저 흐름을 조절하는 것도 익혀야 했다.

‘조금 번거로워졌지만, 내가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 또한 성장을 멈출 게 아니라면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일일 뿐이다.

***

“여기예요?”

“응 어때? 건물 괜찮지? 유동인구도 많고.”

기적 형님 말대로였다.

각성자 센터와 각성자 스토어 강남점 중간에 있는 4층 건물.

대로변에서 조금 벗어나 골목 안쪽에 있다는 점과, 지은 지 오래된 듯 건물이 조금 낡고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강남에서 이만한 매물을 찾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네. 입지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고, 유동인구도 많네요.”

중요한 점은 그 유동인구의 열에 한 명은 손목에 헌터 와치를 찬 각성자라는 점이었다.

위치 때문인지 유독 유동인구 중 각성자의 비중이 높았다.

이들 모두가 잠재고객인 셈이니 입지는 정말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오프라인 매장 하나 내면 진짜 우리 경매장 유명해지는 건 일도 아니겠더라. 너 없을 때 여기저기 건물 보러 다니면서 상권분석이니 유동인구 분석이니 다 해 봤는데 여기만큼 입지가 좋은 곳이 없더라고. 그렇죠 사장님?”

그러자 옆에 있던 부동산 사장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각성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하시는 거면 이만한 입지가 없죠.”

하긴, 본인이 해야 할 말을 기적 형님이 대신하고 있으니 어색해할 만도 했다.

“그래서 이 건물 가격이 얼마라고요?”

“90억입니다.”

지은 지 40년은 돼 보이는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이 90억이라니 생각보다 비쌌다.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기 때문일까?

부동산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주변 시세보다는 5억 정도 싸게 나온 겁니다. 아무래도 연식이 연식이다 보니….”

솔직히 말해 고민할 거리도 없을 만큼 입지가 매력적이었다.

건물이 낡은 거야 어차피 리모델링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렇게 우리가 건물 내부를 돌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우웅-.

손목에 차고 있는 헌터 와치가 울리며 홀로그램으로 발신인이 출력됐다.

이해찬.

“도착했나 보네.”

계단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자 해찬과 파티원들이 건물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해찬아. 올라와.”

창문 밖에 머리를 내밀고 말하자 고개를 치켜든 해찬이 싱그러운 웃음을 짓더니 이내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이 형. 여기서 뭐하세요?”

“건물 좀 보는 중이야. 길드 설립하려면 사무실이 있어야 하잖아.”

“아. 여기에 길드 사무실 차리시게요?”

내 말을 들은 해찬이 눈을 반짝이며 건물을 둘러봤다.

“좀 오래된 것 같은데요?”

“어차피 리모델링 할 거니까.”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 녀석 뒤로 파티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오늘 각성자 센터에서 함께 승급 테스트를 한다기에 시간 내서 이쪽으로 오라고 했다.

소개해줄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인 걸 보니 각성자 센터에서 승급 심사를 무사히 마친 모양이었다.

파티원 중 유독 뜨거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느껴졌다.

채민하.

‘동생이 완치됐나 보네.’

나는 그녀가 이토록 뜨거운 눈길을 보내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해찬을 통해 그녀에게 건내 줬던 마나의 묘약.

채민하가 그걸 동생에게 사용한 모양이었다.

하긴 의심이 가더라도 모든 매스컴을 통해 기사가 터져 나왔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본인도 효과를 봤을 테고.

“일단 자리를 옮길까?”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여기 서서 할 수는 없으니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마침 건물주와 계약을 진행하려면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으니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

간단하게 통성명을 마치고 마주 앉은 사람들.

파티원들은 기적 형님이 어색한지 연신 커피잔을 만지작거렸지만, 역시 우리 기적 형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현이가 만드는 길드 창립 멤버들이라고 들었어요. 와-. 어쩌면 이렇게 미남미녀들만 모아 놨지? 현아 너 길드원 얼굴 보고 뽑는 거야? 어? 그럼 나는 탈락인가?”

쉬지 않고 파티원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기적 형님은 불과 10분이 지나지 않아 파티원들과 호칭 정리를 끝내 버렸다.

“그럼 형은 현이 형을 10년 전에 만나신 거예요?”

“응.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지. 어둑한 골목에 쓰러져 있는 들짐승 같았달까? 상처 입은 야수 그런 거. 솔직히 나는 물리는 줄 알았잖아.”

처음 형님이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를 말하는 건가 보다.

기적 형님의 말에 해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믿기 힘들다는 듯한 그 눈빛에 나는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솔직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진짜 사람된 거다.

그나저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 엉뚱하게도 내 과거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근데 너희는 왜 그렇게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냐? 별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일단 서로 어색해하던 분위기는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

파티원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걸 안 기적 형님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고 발모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해찬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며 멈췄다.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 그거 현이 형이 만든 거였어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어 바라보자. 해찬이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거 완전 구하기 힘들던데. 와. 내 옆에 그걸 만든 사람이 있었다고? 대박!”

그러더니 내 손을 덥석 움켜쥐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형 저한테 발모제 한 병만 파시면 안 돼요?”

어우야.

다 큰 사내 녀석의 눈빛 공격이라니.

순간 발모제 대신 주먹이 나갈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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