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11화 (111/202)

111. 드러내다 (3).

‘대한민국 109번째 S급 헌터 등장.’

‘새로운 신성의 등장! 강현! 각성한 지 5개월 만에 S급!’

이 기사가 나오고 있을 때 나는 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각성자 센터 154층.

일반인이 들어올 수도 없는 층.

“전망이 끝내주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던 나는 연우 형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드론이 날 수 있는 제한 고도는 500m.

하지만 이곳의 높이는 무려 750m대이다.

500m 높이를 날아가는 드론조차도 작은 점으로 보일 만한 높이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그야말로 절경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티뷰 맛집이 여기 있었네.’

“이 맛에 십 대 길드 하는 거야. 이런 것마저 없으면 뭐하러 목숨 바쳐 가면서 나라를 지키겠냐?”

솔직히 나는 150층부터 154층까지가 10대 길드 전용층이라는 사실도 좀 전에 처음 알았다.

더욱이 154층엔 10대 길드의 길드장들을 위한 열 개의 길드장실과 작은 회의실만 존재한다는 사실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울 길드의 길드장을 위해 마련된 길드장실.

거의 30평은 될법한 널찍한 공간을 블랙과 화이트톤으로 된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와 전자제품들이 채우고 있었다.

이 넓은 공간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마련된 사무용 공간이라니 왜 성공을 해야만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나 했더니 몽땅 여기에 쓰였나 보네.’

내부 인테리어와 전자제품까지 각성자 센터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란 말을 들으니 왠지 속이 쓰렸다.

“야야. 그런 표정 하지 마라. 너보다 우리가 낸 세금이 더 많으니까.”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다고 그러세요?”

“눈빛이나 바꾸고 말하지? 너 지금 나를 무슨 세금 도둑놈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거든?”

아. 속으로 생각만 한다는 것이 밖으로 티가 났나 보다.

‘하여튼 이럴 때 보면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항상 종잡을 수 없는 말투와 행동을 보여 주는 연우 형이지만 이럴 땐 여우가 따로 없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 끝났으면 이제 그만 앉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던 서 영감님이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얼굴에 피었던 검버섯과 주름이 조금 옅어진 것을 보니 유클리안 잎사귀 차를 드셨나 보다.

걸음을 옮겨 두 영감님의 맞은편 소파에 앉자 성격 급한 구 영감님이 입을 열었다.

“자 우리 결산해야 할 게 있지?”

그렇다.

이 자리는 태초의 별에서 얻은 부산물과 포인트를 결산해 분배하기 위한 자리였다.

‘어우….’

기대감에 반짝이는 세 사람의 눈을 보니 심장이 쫄깃했다.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S급 이상의 부산물들과 화우 고기가 모두 털렸습니다.’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지금 이 순간,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그러니까. 이 알이 인벤토리 안에 있던 부산물과 화우 고기를 모조리 먹어치웠다?”

“…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기운을 내뿜는 서 영감님의 기세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 죽겠네. 진짜.’

다른 두 사람도 말이 없을 뿐이지 내뿜는 기세는 서 영감님 못지않게 날카로웠다.

솔직히 나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들 앞에선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최소 S급.

최대 SSS급.

지구에선 구할 수도 없는.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부산물들이 몽땅 알의 뱃속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분명한 건 테이블 위를 데구루루 굴러다니고 있는 저놈의 주인은 나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화우를 먹을 수 없다고?”

“아. 이 미친 서가 놈아. 지금 화우가 문제야? 부산물이 몽땅 사라졌다잖아!!”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구 영감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길드장실이 들썩이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구 영감님을 향한 서 영감님의 눈초리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던 게야. 현이 저 아이 아니었으면 그 모든 것을 인벤토리에 담아두는 게 가능했을 것 같아? 거기다가 네가 진짜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은 네놈 인벤토리에 챙겨오지 않았어? 그건 나와 도 길드장도 마찬가지고.”

“큼. 그건 그렇지. 그래도….”

아쉬움에 말을 잇지 못하는 구 영감님의 목소리엔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을 테니까.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을 어찌할 거야? 이 알을 부숴 토해 내게 만들 수 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나.”

“흠.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현이가 이 알을 부수려고 시도했던 때가 2달 전이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또 모르잖아요.”

그러면서 손으론 테이블 위의 알을 요리조리 굴렸다.

“현이가 안 되면 우리가 해 봐도 되는 거고…. 일단 시도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포기해도 늦진 않을 것 같은데요?”

연우 형의 말에 우리의 시선은 테이블 위를 데굴데굴 굴러가는 수수께끼 알에 닿아 있었다.

부르르르.

내 착각일까?

말랑말랑하고 단단한 알의 껍데기가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순다고 없어진 아이템이 나올 리는 없지. 하지만 이 알의 정체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구만.”

온통 물음표 투성이인 알. 서 영감님의 말처럼 그 물음표 하나하나에 답을 내고 싶긴 했다.

모두 어떤 뜻이 통했을까. 각자 눈길을 주고받은 직후.

“여기는 장소가 좀 그러니 수련실로 이동할까?”

먼저 몸을 일으키는 구 영감님을 따라 한 층 아래로 내려오자 10대 길드 전용 수련실이 있었다.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널찍한 수련실 안엔 최신식 장비들로 가득했다.

사람이 없어 한적한 수련실 한가운데 온갖 방어 마법진으로 보호된 꽤 커다란 넓이의 구조물이 보였다.

언뜻 보기엔 대련을 위한 공간인 듯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 영감님의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여기 방어등급이 S급까지였던가?”

“저번에 대련할 때 보니까. S급 스킬까지는 무난하게 막더라고요. 뭐 우리는 힘 조절 좀 해야죠.”

툭.

대련장 한가운데 알을 던진 연우 형이 말을 이었다.

“그럼 현아. 일단 너부터 시작해 볼까?”

그 말에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솔직히 나도 시험해 보고 싶긴 했다.

S급으로 올랐지만 제대로 내 실력을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알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태고룡을 잡을 때도 먼 거리에서 전황을 살피며 아이템을 사용했을 뿐이었고.

등 뒤에 있는 세 사람은 감히 내가 실력을 비교해 볼 수 없는 강자들이니까.

일단 버프 포션과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을 날리기 위해서 풀 버프가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꼴깍.

마른침을 삼키고 인벤토리에서 한 자루 검을 꺼내 들었다.

상점창에서 구매한, 그나마 A급에선 최상위급 아이템인 초 진동 블레이드였다.

우우-웅.

내가 흘려 넣은 마나를 흡수한 검날이 미약한 진동음을 내며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뇌격세.’

서 영감님에게 배운 뇌격세의 마나 회로를 따라 흘러 들어간 마나가 검날에 맺히자 푸르스름한 전류를 내뿜기 시작했다.

“스킬 사용. 뇌신일체.”

빠지지직!

거기에 추가로 뇌신일체 스킬을 사용하자. 한층 강화된 전류가 허공으로 방전하며 번개와 같은 잔상을 남겼다.

“호오-. 제법이군.”

등 뒤에서 서 영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뇌격세와 뇌신일체의 조합이 썩 마음에 들었나 보다.

서 영감님의 단천세나 멸천세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 두 스킬은 SS급과 SSS급 스킬.

마나 회로를 배우더라도 아직 익힐 수가 없는 스킬이었다.

S급인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은 아직 익힌 지 얼마 안 돼 F급에 불과한 뇌격세와 E급 뇌신일체의 조합이었다.

빠지지직. 우우-웅.

묘하게 공명하는 전류의 방전과 초 진동 블레이드의 진동음.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지….’

“후우-.”

나직하게 숨을 내뱉어 한 줌의 긴장을 덜어낸 나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번쩍!

빠지지직!!

순간 시퍼런 빛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가 사라지고.

“허….”

나는 허망한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알껍데기에 작은 상처도 내지 못한 채 처량하게 울고 있는 초 진동 블레이드.

S급으로 성장해도 고작(?) 알 하나 못 깨는 신세라니….

‘내가 울고 싶다. 이 새끼야.’

나는 아직 진동음을 토해 내는 초 진동 블레이드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씨드에게 명령했다.

‘씨드. 버닝 썬 발사 가능해?’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가능합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누가 뭐래도 씨드와 샤이닝 에로우다.

‘현재 가용 가능한 전함 35척. 샤이닝 에로우 블래스트 모드 작동합니다.’

블래스트 모드를 작동하자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샤이닝 에로우가 한곳으로 모여 변환을 시작했다.

“오오오-!”

등 뒤에서 감탄사가 들려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짐작이 됐다.

‘버닝 썬(Burning Sun) 발사준비 완료. 사령관님 명령을.’

씨드의 말이 머릿속을 울리는 순간 커다란 원통처럼 하나로 뭉친 샤이닝 에로우의 로봇팔을 타고 푸른색 마나가 전류처럼 흘러 한곳에 모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날렸던 뇌격세와는 다른. 푸른색 마나가 한점에 모여 응축된 농밀한 힘의 집합.

‘발사.’

지이잉- 번쩍!

내 명령이 떨어지자 35척의 샤이닝 에로우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응집된 마나를 통과하며 증폭되었고.

우우웅----!

번쩍!

강렬한 한 줄기 주홍색 섬광이 수수께끼 알의 표면에 적중했다.

꿈뻑.

그랬다.

주홍빛 레이저가 스쳐 간 자리엔 공기가 기화되어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들어 냈지만 정작 레이저를 맞은 수수께끼 알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끝이야?”

“…….”

뒤에서 들려오는 연우 형의 목소리에 와락 얼굴이 일그러졌다.

솔직히 공간마저 부수는 버닝 썬을 버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작은 흠집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젠장.’

내가 허망하기 그지없는 결과에 낙담하는 사이.

후드득.

블래스트 모드를 유지하고 있던 샤이닝 에로우가 해제되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에너지로 사용하는 마나석을 모두 소모한 것이다.

주섬주섬 샤이닝 에로우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연우 형을 바라봤다.

“응? 왜? 나 해 보라고?”

생글생글 미소를 띤 자신만만한 얼굴.

“또 이 형님의 실력을 보여 줘야겠구만!”

호기롭게 나선 연우 형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물러서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옆에서 본 나는 나의 뇌격세와 씨드의 버닝 썬이 어떤 식으로 막힌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만영창이 모두 빨려 들어갔어.’

만영창.

일순간에 만개의 창영을 만들어 내는 SS급 스킬.

아직 SSS급 스킬을 만들지 못한 연우 형의 최강 스킬이다.

수수께끼 알은 그런 만영창을 그림자 하나 남기지 않고 빨아들였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저 알의 재질이 뭔지가 궁금해질 정도네.’

할 수만 있다면 갑옷으로 만들어 입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 정도였다.

SS급 스킬을 흠집 하나 없이 막아 내다니 말이다.

“허허. 이거, 도 길드장 체면이 영 말이 아니구먼.”

그다음 차례로 앞으로 나선 것은 구 영감님이었다.

연우 형의 실패를 본 구 영감님은 껄껄거리며 호탕한 웃음을 토해 낸 것과는 다르게 두 손엔 버프 스크롤을 한 움큼 쥐고 있었다.

“그건 반칙 아닙니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헌터가 버프 스크롤을 쓰는 게 반칙이라는 소리는 내 생전 처음 들어 보는구먼?”

능청스러운 구 영감님의 말에 연우 형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도 구 영감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헌터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거지. 음.’

절대 내가 풀 도핑을 하고도 알을 깨는 것에 실패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진짜로.

하여튼 그렇게 풀 도핑을 마친 구 영감님은 수수께끼 알 바로 앞에 다가서서 마나 회로를 따라 마나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순간 수련실의 공기가 한곳으로 몰려들며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풍신퇴.

구 영감님의 SSS급 스킬.

드드드드드.

마나와 바람이 응축되며 거대한 떨림이 만들어졌다.

번쩍.

천장에 닿을 듯이 치켜 올려졌던 발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고.

후우웅.

한점으로 응축된 거대한 마나와 바람이 수수께끼 알에 닿는 순간.

통.

아주 귀여운 소리와 함께 구 영감님의 발이 살포시 튕겨 나왔다.

“풉!”

옆을 돌아보니 연우 형이 입을 가린 채로 웃음을 참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서 영감님도 입꼬리를 씰룩이고 있었다.

“허 참…. 이 조막만 한 게 생각보다 단단하구먼.”

톡. 데구루루.

구 영감님이 민망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바닥의 알을 툭 하고 건드리자 수수께끼 알이 바닥을 굴렀다.

“호오…. 그런 거였군.”

‘응? 무슨 소리지?’

서 영감님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의아한 눈으로 영감님을 돌아볼 때였다.

스릉.

뚜벅뚜벅.

환두대도를 빼든 서 영감님이 멀찍이 굴러간 수수께끼 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입가엔 의미심장한 미소를 매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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