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드러내다 (1).
‘속보. 구정철 전 대통령. 서태촌 싸울아비 길드장, 도연우 한울 길드장 생환!’
‘욱일회의 음모 속에서도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세 영웅!’
‘구정철 전 대통령. 우리는 이계를 다녀왔다. 발언 그가 말하는 이계는 어디인가?’
‘드래곤 잡느라 죽는 줄 알았다. 초췌한 행색의 도연우 한울 길드장(사진).’
‘이계에서 먹은 화우는 세계 제일의 진미라 극찬한 서태촌 싸울아비 길드장.’
‘구정철 전 대통령 파격 발언. 10대 길드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3대 길드의 시대.’
‘한울! 화랑! 싸울아비! 무너져 가던 3대 길드. 부활의 신호탄을 쏘다!’
‘SSS급 헌터를 보유하지 못한 길드가 대(大) 길드라 불릴 자격이 있나요? 도연우 한울 길드장의 발언에 헌터 업계 들썩.’
‘충격! 한울 길드장 도연우. SSS급 승급! 각성자 센터가 경악했다.’
‘욱일회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 욱일회와 전쟁을 선포하는 세 명의 SSS급 헌터(사진).’
다음날.
매스컴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세 헌터의 귀환 소식에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와-. 도연우 천재가 천재 했네. 35살에 SSS급 실화냐?
└엌. 전 세계에 SSS급이 6명인데 우리나라에만 그중 세 명이 있네. ㄷㄷㄷ.
└각성자 초강대국 가나요?
└이건 욱일회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미지를 띄우려는 3대 길드의 수작질임.
└X도 모르는 반도 원숭이들 또 주작질에 놀아나쥬-.
└와-. 이 악물고 발악하는 친일파 새끼들 보소. 애쓴다 애써.
└국뽕 열차 출발합니다. 어서 올라타세요-!
그런 매스컴에 대한 국민 여론은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간혹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악플들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올라온 선플들에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제대로 한판 하시려나 보네.”
일어나자마자 포털에 떠오른 뉴스를 확인한 나는 샤워를 하고 가볍게 아침을 먹은 뒤에야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 씨드를 인벤토리에 그대로 뒀구나!’
그것도 쿠아르탐파를 삼킨 수수께끼 알과 함께.
서둘러 씨드를 인벤토리 밖으로 꺼내자 씨드가 외쳤다.
“사령관님! 수수께끼 알이!”
“어, 미안. 또 그 녀석이 샤이닝 에로우를 잡아먹으려고 들었어?”
“화우 고기를 모조리 먹어 치웠습니다!”
“화우 고기…. 화우 고기?!”
씨드의 말에 놀라 인벤토리를 확인하자 정말로 화우 고기가 몽땅 사라졌다.
“함대를 운영해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화우 고기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허….”
화우 고기는 물론이고 등급이 높아 상점창에 등록하지 못했던 S급 이상의 부산물들마저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허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부산물들은 그렇다 쳐도 화우 고기는 서 사부님이 지구에 돌아가 아껴 먹을 거라 말씀하시며 가장 맛있는 부위로만 골라 담으셨는데.
그런 화우 고기를 수수께끼 알이 몽땅 처먹어 버린 거다.
“젠장. 이번엔 대체 뭐야?”
저번엔 금속들을 먹고 금식충이라는 스킬을 줬던 수수께끼 알.
몬스터 부산물을 먹은 녀석이 어떤 스킬을 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이템: 수수께끼 알]
[등급: A급]
[설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알. 태고룡 쿠아르탐파를 흡수해 성장 중이다. 사용 시, 스킬: 몬스터 포식(捕食) A (LV 1)을 습득할 수 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수수께끼 알의 등급은 A급.
인벤토리 내에 있던 S급 이상의 부산물을 모두 먹어치웠으니 이해가 되는 등급이었다.
오히려 그 많은 걸 처먹고도 아직 S급이라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다.
“몬스터 포식?”
스킬명만 보면 몬스터를 잡아먹어야 할 것만 같은 살벌한 이름.
저 스킬 명이 금식충처럼 직관적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몬스터를 먹어야 하는 스킬일 것이었다.
아니면 지구로 오기 직전 수수께끼 알이 행했던 방식으로 몬스터를 흡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단은 녀석을 S급까지는 성장시키고 나서 생각하자.’
S급 몬스터의 부산물을 구하려면 못 구할 것도 없었다.
지구상에 등장하는 몬스터 부산물을 거래하는 헌터 마켓. 그리고 시스템 상점창이 있으니 돈과 포인트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좀 비싸긴 하겠지만.’
물론 그 전에 세 사람과 대화를 해 봐야겠지만.
쿠아르탐파를 먹어치운 것도 모자라 인벤토리에 있던 부산물을 모두 먹어치웠다는 말을 들으면 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서 사부님은 애정하는 화우 고기가 몽땅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극대노를 하실지도….’
아마도 오늘 스케줄은 무척 빡빡할 것 같다.
***
이계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한국은 어느새 가을의 문턱 앞에 있었다.
아침나절 선선한 바람이 부는 카페의 야외테라스에서 만난 기적 형님은 어느새 사업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게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인데. 온라인으로 경매를 진행한다고 해도 오프라인 매장 하나는 필요할 것 같아서 강남에 매장 하나를 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오프라인 매장이요?”
“응. 각성자 센터하고 각성자 스토어 사이에 괜찮은 상가 하나 나왔길래 봐뒀어. 이따가 같이 가서 한번 보자.”
“오늘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내일이나 모레 시간 정해서 말씀해 주세요. 형님.”
그렇게 경매장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몇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음? 이건 뭐야? 경매에 올릴 물품들이야?”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처럼 다양한 색으로 빛을 내는 포션들.
나는 그중 푸른색으로 빛을 내는 포션 병을 들어 올리며 기적 형님을 바라봤다.
“형님. 각성하실 생각 없으세요?”
“에…. 각성?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하고 싶지.”
갑작스러운 말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기적 형님.
“형님도 아시겠지만, 욱일회 놈들이 저를 노리고 있어요. 여전히 저를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처럼 제가 아닌 제 주변 사람들을 노릴 수도 있고요.”
기적 형님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직접 겪어 보니까. 내가 너무 무력하고 또 두렵더라.”
납치되었던 그 날의 일이 떠올라서였을까?
테이블 위로 올려진 기적 형님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텁.
형님은 떨리는 두 손을 팔뚝에 근육이 도드라질 정도로 꽉 움켜쥐었다.
“저는 형님이 각성하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제 주변엔 위험이 많을 것 같거든요.”
“나도 각성하고 싶지…. 그런데 그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아?”
나는 그렇게 말하는 형님의 앞으로 들고 있던 마나의 묘약을 밀었다.
“마나의 묘약이라는 아이템이에요.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마나를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효과가 있어요.”
[아이템: 마나의 묘약]
[등급: D급]
[설명: 위대한 마도 문명 랑데르칸. 그 마도 문명의 시작을 연 것은 전설이 된 대마법사 쉬누아 툴킨이 만들고 배포한 마나의 묘약의 레시피였다. 전설이 된 쉬누아 툴킨이 만든 마지막 마나의 묘약. 복용 시 영구적으로 마나를 증가시킨다.]
[추가설명: 쉬누아 툴킨이 만든 마나의 묘약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들도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만듦으로써 마도 문명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저 설명을 우리식으로 정리하면 각성이다.
“마나를 가질 수 있다고?”
“네. 인위적인 각성이에요.”
“그런 게…가능해?”
“직접. 드셔 보세요.”
퐁.
꿀꺽꿀꺽.
‘독이라도 줬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마시는 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떤 망설임도 없이 깡 소주를 들이켜는 것처럼 마나의 묘약을 마신 형님은 호쾌하게 빈 포션 병을 테이블 위로 내려놨다.
탕.
그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잠시 우리에게 향했지만 이내 흩어졌다.
“나 이제 각성한 거야?”
솔직히 모르겠다.
두 영감님이나 연우 형 같은 경우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 쉽게 그 사람의 경지를 파악하던데, 나는 아직 그런 쪽으로는 내공이 없다.
“어…. 그건 각성자 센터 가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이거마저 드실래요. 형님?”
나는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여섯 개의 포션 중에 보라색 병을 가리켰다.
“그건 드시면 안 돼요. 개량된 발모제예요.”
“어억!! 정말?! 이거 나 주는 거야?!”
마나의 묘약을 설명할 때보다 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기적 형님.
“명색이 발모제 메인 모델이신데 계속 장발로 다니실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이거 비싸지 않아? 너 없는 동안 헌터 마켓에서 경매가보다 세 배 높은 가격으로 팔리던데,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거라고!”
40일 넘게 발모제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중고가에 거품이 잔뜩 낀 모양이다.
우선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 기적 형님을 진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발모제가 아니니까.
“형님, 나머지 포션도 복용하실래요? 발모제보다 이쪽이 더 중요해요.”
“어? 어. 그래.”
말은 알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보라색 포션을 흘끔거리는 기적 형님에게 남은 다섯 개 포션에 대해 설명을 했다.
힘. 민첩. 체력. 내구. 지혜.
마나의 묘약을 제외한 다섯 가지 묘약.
두 달 전쯤, 북부지방의 가뭄을 해결하고 난 후 시스템 상점의 등급이 D급으로 올라서며 구매가 가능해졌지만, 이미 그때 난 이것들을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묘약으로 올릴 수 있는 스탯 한계치는 400.
‘아버지의 유산’ 퀘스트를 깨고 추가보상으로 얻었던 ‘늙은 연금술사의 무덤’이라는 던전에서 이미 꽤 많은 묘약을 얻어 스탯 업을 했었고.
이후 레벨업으로 얻은 스탯을 투자해 모든 스탯이 400을 넘긴 상태였었다.
따라서 상점에서 묘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내게는 필요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내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단이 될 테니까.
그렇다. 이제 나는 시스템을 감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다고 드러내 놓고 저는 시스템사용자입니다.라고 광고를 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처럼 마냥 감추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꿀꺽꿀꺽.
달그락.
그사이 포션을 모두 마신 기적 형님이 빈 병을 내려놓았고 나는 포션 18병을 더 꺼내 놓았다.
그러자 그걸 바라보는 기적 형님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이것도?”
“좀 많죠?”
“다 마시면 배 터지겠는데?”
“바로 흡수되는 거라서 배가 터지는 일은 없을걸요?”
그렇게 테이블에 포션 병을 올려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우리 곁을 지나가던 카페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 손님 죄송한 말씀인데요….”
“아. 네 무슨 일이시죠?”
내 물음에 직원은 더없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매장은 외부 음료의 반입이 금지돼 있어서요….”
“아….”
점원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말끔히 비워진 포션 병 여섯 개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다.
***
막간의 헤프닝으로 기적 형님과 만남을 마치고 강남으로 이동해 또 카페에 들어왔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현이 형!”
출입구가 열리며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카페 안을 울렸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출입구로 향했고 여자들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와…. 존잘.”
“연예인? 아이돌?”
“심장아. 나대지 마. 내꺼 아니야….”
항상 경갑과 로브 차림이던 녀석이 사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잘생기긴 잘생겼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게 걸어오는 녀석.
늘씬한 기럭지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화보가 따로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 나도 방금 왔어. 네 음료는 내가 같이 주문했으니까. 일단 앉아.”
하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딘가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주문을 받던 직원이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니 왜 당신이 아쉬워하는 건데?’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해찬을 바라보던 직원이 나와 눈을 마주치곤 화들짝 놀라 얼굴을 가렸다.
왠지 기분이 나빴다.
“얼굴 많이 좋아졌네. 나 없는 동안 편했나 봐?”
“하하. 솔직하게 조금 편하긴 했죠. 이제 그것도 끝이겠네요. 형이 돌아왔으니까.”
하나도 아쉽지 않은 표정으로 아쉬운 듯 말하는 해찬.
탁.
나는 인벤토리에서 태블릿을 꺼내 웃고 있는 녀석의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태블릿을 확인한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