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귀환.
번갯불처럼 쏘아져 나가는 타원형의 구체.
“어?”
“저게 뭐야?”
“공…인 것 같네만.”
눈 깜짝할 사이에 쿠아르탐파의 사체에 도달한 주먹만 한 크기의 구체는 순식간에 장막처럼 변화하며 길이만 2.3㎞에 달하는 쿠아르탐파의 사체를 집어삼켰다.
꿀꺽.
“허…. 이게 무슨…?”
마술처럼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쿠아르탐파의 사체.
마법과 스킬이 난무하는 세상을 사는 각성자들도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에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쿠아르탐파를 집어삼킨 구체를 쳐다봤다.
주먹만 한 크기의 타원형 구체.
구체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세 사람보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수수께끼 알’이 태고룡 쿠아르탐파를 흡수했습니다.
쿠울란의 발톱이라는 성장형 아이템을 흡수해 나에게 금식충이라는 S급 스킬을 안겨주었던 수수께끼 알.
놈이 쿠아르탐파를 집어삼킨 것이었다.
“현아. 이거 뭐야? 네가 그런 거야?”
연우 형의 물음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내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아이템이 한 짓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일단 포털을 넘어가서 얘기하도록 하지. 시간이 얼마 없네.”
그 와중에 시간은 흘러가 남은 시간은 20초.
“씨드. 일단 샤이닝 에로우와 알을 회수해.”
“네 사령관님.”
서 영감님의 말에 나는 씨드에게 수수께끼 알의 회수를 부탁했다.
거의 음속의 속도로 날아 돌아온 샤이닝 에로우와 수수께끼 알.
나는 그것들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말했다.
“모두 챙겼습니다.”
쿠아르탐파를 잡기 위해 펼쳐 놓은 수많은 아이템이 아깝긴 했지만, 그것들을 회수할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그런 아이템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충분히 얻었으니, 손해 본 건 없었다.
“그럼 돌아가지.”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
우리는 포탈을 앞에 두고 주변을 둘러봤다.
쿠아르탐파를 사냥하며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여전히 태고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아쉽네….”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연우 형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우리는 포털을 넘었다.
약 40여 일 만의 귀환이었다.
***
“하. 이러다 우리 길드 망하는 거 아니냐?”
동료의 말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사내가 그를 노려봤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리 길드가 왜 망해?”
싸울아비 길드가 설립한 각성자 전문 대학을 졸업하고 싸울아비 길드에 입사해 길드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른 그에겐 거슬리기 그지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상현아. 생각해 봐. 길드장님 돌아가시고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잖아. 그런데 아직 새로운 길드장이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곽영철 부 길드장님이 계시잖아.”
김상현의 말에 동료는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야. 그 양반은 길드장 대행이지 길드장이 아니잖아. 그리고 그 양반이 한 게 뭐가 있어? 공대 두 개 인원이 길드를 빠져나가는 동안 지켜본 거밖에 더 있어? 그런 게 길드장 대행이 하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 이번 계약 만료되면 태산으로 옮긴다. 너도 계약 만료 얼마 안 남았잖아 같이 가자. 태산에서 길드 중진급으로 자리 만들어 준다더라. 솔직히 이 나이 먹고 이런 곳이나 지키고 있는 게 말이 되냐?”
동료는 등 뒤에 있는 공동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길드장님이 여기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현장 보존해야 한다고 말해 놓고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진상조사도 하지 않는데 여길 왜 지켜야 하는 거냐고. 저기 한울이랑 화랑 애들도 흔들리는 것 같더라. 쟤들도 이대로 낙동강 오리 알 되는 거 아닌지 막막해하더라고.”
동료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 수사를 마친 뒤 한참이 지났음에도 현장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세 개 길드는 각기 10명의 인원을 파견해 공동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동안 길드는 공동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조처할 정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10대 길드 중 남은 7대 길드에서 세 길드를 10대 길드에서 제외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고, 남은 7대 길드 사이에서는 그 사실이 거의 기정사실로 되어버렸다.
10대 길드의 조건.
그건 다름 아닌 SS급 각성자의 존재 여부였으니까.
SS 각성자의 부재는 화랑과 싸울아비 그리고 한울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렇기에 외부의 여론과 흔들리는 내부 길드원들을 다독이기에 바빠 길드 수뇌부는 이곳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상현은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썼다.
“나랑 같이 태산으로 가자. 내가 네 자리도 한번 알아봐 달라고 할게.”
“가려면 너 혼자 가. 괜히 다른 애들한테 바람 넣지 말고”
“상현아. 아니 김 팀장. 정말 이대로 여기서 썩을 거야?! 싸울아비는 침몰하는 배라니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
답답한 듯 목소리를 키우는 동료의 말에 김상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동료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자신도 지금 길드 수뇌부들이 취하는 조치가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수뇌부는 길드가 망하길 원하는 것처럼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싸울아비 길드를 버릴 수 없었다.
“제안은 고마운데. 난 싸울아비 못 떠난다.”
“대체 왜?!”
“너는 몰라도 되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그때였다.
“그 개인적인 사정이 뭔지 좀 듣고 싶군.”
날카롭고 카랑카랑하면서 어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그들의 등 뒤에서 울렸다.
“누구…. 헙!!”
“기, 길드장님!!”
큰 키에 깡마른 체구, 한 자루의 환두대도를 허리에 패용한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
서태촌이었다.
“환영해 줘서 고맙군. 자네. 싸울아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내게 들려줄 수 있겠나?”
김상현은 서태촌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죽은 줄 알았던 길드장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 질문에 답할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 맞으리라.
“우리 애들은 어디에 있누? 아! 저기 있네.”
서태촌의 등 뒤로 장대한 체구의 노인 구정철이 지나가고.
그 뒤를 이어 어깨에 신창을 둘러맨 도연우가 낭패스러운 몰골로 걸어가는 것을 본 뒤에야 김상현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당장. 길드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길드장님.”
“아아. 됐네. 내가 여기 있는데 굳이 길드에 연락할 필요가 있겠나.”
“예? 아. 예 예….”
“그래 아까 듣지 못했던 답을 듣고 싶은데 괜찮겠나?”
순간 김상현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켰다.
서태촌의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질문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서태촌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김상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가 길드를 떠나지 않는 이유.”
“그게….”
“그 이유가 뭐든 싸울아비를 지켜줘서 고맙네. 김상현 팀장.”
서태촌의 말에 김상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싸울아비 길드에 소속된 헌터 1천 명 그 많은 인원 중 고작 10명을 이끄는 팀장에 불과한 자신의 이름을 서태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서태촌은 그런 김상현을 이끌고 걸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공동을 떠나간 뒤.
털썩.
김상현에게 태산 길드로 이직을 권유했던 사내는 얼굴이 흙빛으로 물든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X 바…. X 됐네…….”
죽은 줄 알았던 길드장이 살아 있었고,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
‘거. 사람들 참 냉정들 하시네.’
포털을 넘어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인사 한마디 없이 각자의 길드원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세 사람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각 길드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쳇. 나도 기다리는 사람 있거든요?”
나는 헌터 와치를 터치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했다.
“현아!”
“네. 형님.”
“지금 돌아온 거야? 몸은? 몸은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하긴 잘 돌아왔으니까 이렇게 전화했겠지. 지금 어디야? 내가 지금 그리 갈까?”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격한 반응을 내보이며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한 사람.
기적 형님이었다.
이계에 있는 동안 연우 형의 스마트폰을 빌려 꽤 많은 통화를 했음에도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적 형님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아니요. 오늘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쉴까 해요.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하면 안 될까요?”
“아. 그래. 피곤하겠다. 오늘은 일단 집에 가서 푹 쉬어. 아 참. 너 이계에 가 있는 동안 네 집 완공됐더라 강산호 회장님께서 신경 많이 쓰셨어. 내가 가구랑 가전제품 다 들여놨으니까 그냥 몸만 들어가도 될 거야.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형한테 전화하고. 알았지?”
“네. 형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내일 일어나서 연락 드릴게요.”
그렇게 기적 형님과 동화를 끝낸 후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확인했다.
초반에는 기적 형님의 전화와 메시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스크롤을 내릴수록 늘어나는 이름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날 파티사냥을 했던 이해찬과 보육원 어머니 그리고 정혜 누나였다.
그러고 보니 마나석과 부산물 판매대금을 분배하지도 못했으니 파티원들 입장에서는 먹튀나 다름이 없었을 텐데 연락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물론 해찬이도 돈이야기보다 나에 대한 걱정 어린 메시지가 전부였고.
“일단 분배금 먼저 보내야겠네.”
그렇게 네 사람에게 분배금을 보내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걸려왔다.
“현이 형! 어떻게 되신 거예요?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데요. 무슨 일 생기신 거예요?”
“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
해찬이와의 통화는 기적 형님과 통화보다 길어졌다.
이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돌려 말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해찬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른 파티원들에게서 별다른 메시지나 전화가 없던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해찬이가 자기 돈으로 분배금을 대신 보내줬다고 했다.
고마운 녀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 파티를 해체하지 않고 유지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와 함께 사냥할 때처럼 어마 무시한 속도로 던전을 클리어하지는 못하지만, 객원 파티원을 섭외해 주 5일 하루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던전을 돌고 있다고 했다.
해찬이의 말로는 나와 함께 사냥했을 때의 뽕 맛을 잊지 못해서 남았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해도 파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을 해찬이의 고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고맙다.”
“이게 어디 형 혼자만의 파티인가요? 파티 리더는 형이지만 파티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요. 그러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히히.”
내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너스레를 떠는 해찬이의 마음 씀씀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부턴가 이 녀석도 내게 꽤 믿음직한 동생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찬이와 통화를 끝낸 나는 걸음을 옮겨 공동을 벗어났다.
아직 전화해야 할 사람이 남아 있었지만, 집에 가서 할 생각이다.
그중 하나는 일단 1시간 잔소리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정혜 누나였으니까.
***
집.
처음으로 가져보는 온전한 내 집.
강 회장님이 신경을 많이 썼다는 기적 형님의 말처럼 구 청심원 부지에 새로 지어진 집은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예쁘게 잘 지어진 집이었다.
하지만 난 그 집 안을 돌아볼 기력이 없었다.
1시간을 예상했던 정혜 누나의 잔소리는 무려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고.
음공과 다름없는 누나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 나는 영혼이 탈곡된 채로 집에 돌아왔다.
“일단 자고 생각하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진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뉘었고.
기적 형님이 준비해 둔 푹신한 베개와 이불이, 몸을 감싸는 포근한 느낌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머리로는 쿠아르탐파를 흡수한 수수께끼 알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40여 일 만에 푹신한 침대에 누운 내 몸은 그 의지를 배신했다.
‘내일…확인하자…. 설마 그사이에 무슨 일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