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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07화 (107/202)

107. 집으로 (5).

일주일.

원래 계획대로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쿠아르탐파를 파악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씨드가 통제하는 스파이캠은 천 개가 넘었고 놈을 추적하기 위해 깔아놓은 다차원 송수신기는 5000개를 넘어섰다.

그렇게 이틀 만에 알아낸 놈의 둥지.

우리는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가 올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굴로 된 베이스캠프를 차렸고.

이후 놈의 이동 경로, 생활방식과 사냥 방법, 그리고 사소한 습관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걸 파악했다.

빠지지직- 콰과과광!!

구오오오오- 푸화악!

퍼퍼퍼퍼퍼퍼펑!

적어도 전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했었다.

“우아악! 이런 건 예상에 없었잖아악!!”

쿠아르탐파의 머리 위에 돋아난 일곱 개의 뿔에서 쏘아져 온 뇌전 다발을 회피하던 연우 형은 연이어 쏘아진 놈의 브레스에 거의 직격당하다시피 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곧 라그라주가 싹을 틔울 거예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속성저항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서 그나마 타격이 적다는 점이었고.

“와. 죽는 줄 알았네.”

신창을 든 연우 형은 화염 브레스 정도는 흘려버릴 수 있는 강자라는 사실이었다.

끼에에에엑!

거대한 덩치에 안 맞는 날카로운 소성을 내뱉으며 발버둥 치는 쿠아르탐파.

투둑. 투두둑.

그 발버둥에 놈을 속박하고 있던, 아다만티움 합금 와이어로 만든 그물이 파열음을 내며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한데…. 아직 영감님들 준비가 안 됐네요.”

“아…. 젠장.”

가볍게 욕설을 내뱉은 연우 형은 땅을 박차고 다시 쿠아르탐파에게 쇄도해 갔다.

이유야 어찌 됐건 쿠아르탐파가 속박을 탈출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이번 사냥에서 연우 형의 포지션은 탱커.

그리고 내가 샤이닝 에로우와 여러 송수신 장치들을 다루며 전체적인 상황을 중계하고 통제하는 지휘전략본부 역할을 담당.

즉, 시야에 한계가 있는 연우 형은 내 브리핑에 따라, 공격을 맡은 서 사부와 구 영감님이 준비가 끝날 때까지 어그로를 끌어줘야 했다.

사실 T렉스의 사체로 놈을 유인하고 아다만티움 그물로 놈의 날개와 발을 묶을 때까지만 해도 사냥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물과 와이어에 묶인 놈이 이능을 발휘하면서 얘기는 달라졌다.

근 일주일 쿠아르탐파를 관찰하는 동안 놈이 이능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일곱 개의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다발과 입에서 쏘아지는 브레스.

정말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드래곤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들을 가까스로 회피하고 막아내는 연우 형의 모습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싶어 준비한 속성저항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꽈과광!

“으악! 전기!!”

지금처럼.

전기에 감전돼 찌릿거리는 손을 털어 내며 뒤로 물러서는 연우 형.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쿠아르탐파는 다시 와이어를 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꽈드드득.

순간.

놈이 움켜쥔 대지가 뜯겨 나가고 희뿌연 흙먼지가 일어나 시야를 가렸다.

‘위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내 머릿속에선 경종이 울렸다.

온몸이 구속된 놈은 땅을 파헤쳐 행동반경을 넓힐 속셈인 듯했다.

“물러서세요. 형! 중력 제어장치 가동할게요!!”

“뭐? 그걸 벌써 쓰게?!”

쿠아르탐파의 머리 쪽에서 어그로를 끌고 있는 연우 형은 보지 못했겠지만, 거리를 벌리고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고 있는 내 눈엔 놈의 속셈이 보였다.

“땅을 뒤집어서 속박에서 벗어날 속셈이에요! 지금 아니면 늦어요!!”

“알았어!”

희뿌연 먼지구름 밖으로 연우 형이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나는 미리 설치해 두었던 중력 제어장치를 가동했다.

[아이템: 중력 제어장치]

[등급: A급]

[설명: 일정 반경 내의 중력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

상점에서 무려 백만 포인트나 들여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드드드드드.

대지가 떨리고 허공을 부유하던 흙먼지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쿠웅.

쩌저적.

쿠아르탐파의 거체가 한여름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대지에 들러붙는다.

무려 2.3㎞에 달하는 거체를 하늘로 띄우기 위한 12쌍의 날개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였다.

콰직. 우드득.

끼에에에엑!!

포식자로 군림하게 했던 압도적인 질량은 독이 되어 놈을 대지에 처박힌 화석으로 만들었다.

“후우-. 한숨 돌렸네. 지금 저기 중력이 몇 배지?”

“20G요.”

무려 20배의 중력.

몸무게가 100㎏인 사람이 저 공간 안에서는 무려 2톤의 몸무게를 지니게 되는 거다.

일반적인 생물의 근육과 뼈라면 갑작스럽게 늘어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얼마나 유지될 것 같아?”

연우 형의 물음에 나는 중력 제어장치의 마나석 소모량을 확인했다.

중력 제어장치는 연료로 마나석을 소모했다. 설정된 중력과 그 반경에 따라 마나석 소모량이 달라지는데, 쿠아르탐파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초당 S급 마나석 한 개가 소모됐다.

“1분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중력 제어장치에 투입해 놓은 S급 마나석으론 고작 1분 정도밖에 버티지 못했지만, 문제는 마나석이 아니었다.

쿠쿵.

20G의 중력을 이겨내더니 이내 부러진 뼈까지 회복하고 있는 놈이 문제였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원흉을 찾으려는 것일까?

살기를 흩뿌리며 주변을 훑던 쿠아르탐파의 일곱 개 눈동자가 내게 고정되었다.

번뜩.

분노와 살기가 어린 눈동자.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나를 향하는 순간 오싹한 소름이 일어났다.

덜덜덜.

몸이 떨리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통제를 잃은 손이 제멋대로 춤을 추고 몸을 지탱하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찰나.

쿠-쿵.

순식간에 부러졌던 뼈와 근육을 재생한 놈의 굵은 다리가 20G의 중력을 이겨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꽈드득.

아다만티움 와이어가 목을 옥죄며 상처를 입혔지만, 쿠아르탐파는 개의치 않고 대가리를 내 쪽으로 틀었다.

쩌어억.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고 그 목구멍 속에 붉게 일렁이는 화염이 보이는 순간.

“피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연우 형이 나를 덮쳤다.

쿠당탕.

콰우우우우---!

퍼퍼퍼퍼퍼퍼펑!!!

터져나가는 대지. 흩날리는 흙먼지와 이글거리는 화염의 비가 쏟아져 내렸지만 나는 괜찮았다.

“와…. 겁나 뜨겁네.”

연우 형이 내 몸을 덮고 있었으니까.

“괘. 괜찮아요. 형?”

“어. 조금 뜨겁긴 한데 신경 쓰지 마. 그나저나 너 저놈하고 눈 마주치지 마. 피어 쓰는 것 같으니까.”

말을 마친 연우 형이 신창을 쥔 채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내 앞을 막아선 연우 형의 등.

붉게 물든 갑옷이 뜨거운 열기와 아지랑이를 뿜어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속성저항 아이템으로 도배를 했어도 뜨겁지 않을 리가 없지만, 연우 형은 신음 한번 내뱉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하! 저 영악한 새끼.”

그런 연우 형의 시선이 향한 곳엔 몸을 속박하고 있던 와이어의 3분의 1을 끊어낸 쿠아르탐파가 있었다.

“현아. 우리 준비한 거 아직 남았지?”

“네. 형.”

“그거 지금 쓰자. 시간 더 줬다간 이 판 나가리 되겠다.”

연우 형의 말이 맞았다.

저 그물에서 놈이 벗어나는 순간 이제껏 해 왔던 것은 물론이고 준비해 둔 것들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

하늘은 쿠아르탐파의 홈그라운드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쿠아르탐파가 아직 땅에 붙어 있을 때 결판을 내야 했다.

“아까 미끼랑 같이 먹인 반 마력 폭탄부터 시작할게요. 워낙 재생력이 좋은 녀석이라 금세 회복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끌어 봐야죠. 형한테 어그로가 끌린 순간 발동시킬게요.”

“좋아. 바로 가보자.”

말을 마친 연우 형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이미 반쯤 그물을 찢은 쿠아르탐파를 향해 달려갔다.

“야! 이 도롱뇽 새끼야!”

미사일처럼 달려가며 앞으로 내지른 창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그 수를 늘려 1만 개의 창영을 만들어냈다.

신창의 계승자 창왕(槍王) 도연우의 SS급 스킬.

만영창(萬影槍).

허공을 가득 채운 ‘창의 비’가 놈을 향해 쏟아져 내리고.

끼에엑----!

대지를 뒤집으며 발버둥 치고 있던 쿠아르탐파의 입에선 길고 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상처 입으면 아픈 건 똑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때.

“반 마력 폭탄 격발.”

나는 놈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반 마력 폭탄을 터트렸다.

꾸웅!

뚝.

-!!

미약한 폭음이 놈의 뱃속에서 울리는 순간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던 놈의 아가리가 쩌억 벌려졌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비명조차 지우나 보다.

순간 정적이 내려앉은 전장.

하지만 찰나의 적막은 거대한 비명과 함께 깨어졌다.

끼에-에-엑---!!

마치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처럼 온몸을 뒤틀며 발버둥 치는 쿠아르탐파.

쿠앙 꽈르릉.

땅거죽을 뒤집으며 몸을 비틀어대는 통에 놈을 구속하고 있던 그물이 찢겨나갔다.

그 광경을 보며 머릿속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놈에게 타격을 주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놈의 탈출을 도와준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당황 어린 연우 형과 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온몸을 뒤틀며 지랄발광을 하던 놈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샤이닝 에로우에 의해 시야 한편에 도식화된 쿠아르탐파의 신체 능력 그래프에서, 갑자기 재생능력의 그래프가 폭증했다.

‘빌어먹을 재생력.’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상처를 수복한 것이다.

“연우 형! 피해요!”

후웅! 꽈앙!

퍼퍼퍼펑!

내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

휘둘러진 쿠아르탐파의 앞발에 맞은 연우 형이 대지를 가르며 튕겨 나가 지면에 처박혔다.

“쿨럭. 씨…바…….”

붉게 물든 눈동자에 살기를 줄기줄기 흘리며 연우 형을 노려보던 쿠아르탐파가 길고 긴 목을 치켜들고 거대한 외침을 내뱉었다.

끼에에에엑!!!

그 외침에는 속박에서 풀려난 최상위 포식자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찌이잉-.

“크윽.”

고막을 울리는 이명에 인상을 찌푸리고 놈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나는 곧 미소를 지었다.

이곳의 주인임을 내비치듯 고고하게 치켜든 놈의 머리 위.

빌딩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놈의 대가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한 줄기 빛.

하늘 높이 치켜들었던 한쪽 다리를 내리치며 떨어지는 인영이 말했다.

“뱀탕을 고아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목청만 크구나.”

투왕 구정철.

그리고 그의 SSS급 스킬.

풍신퇴(風神腿).

꾸웅---!

그것이 놈의 머리에 적중하는 순간 거대한 울림이 울려 퍼졌다.

쿠아르탐파의 거대한 머리가 대지에 처박히며 엄청난 크기의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뒤이어 마치 행성 자체가 울음을 토해 내듯 엄청난 폭음이 따라붙었다.

꽈아아아앙---!!!

그와 함께 주변을 휩쓰는 열기의 폭풍과 먼지구름.

그리고 그 먼지구름이 채 걷히기도 전.

번-쩍!

한줄기 섬광이 하늘과 대지를 반으로 갈랐다.

스륵.

내가 기울어진 것일까?

세상이 기울어진 것일까?

검왕 서태촌의 SSS급 스킬.

멸천세(滅天勢).

하늘을 멸망시키겠다는 광오한 이름답게 스킬의 위력은 정말 경악스러웠다.

쿠아르탐파의 대가리가 처박히며 만들어진 크레이터에서 시작된 하나의 선은 수십 킬로미터 밖의 설산 봉우리마저 반으로 가르고 나서야 멈췄다.

우르릉-. 쿠웅-.

“허….”

아무리 마나 집적진으로 외부 마나의 유입을 늘리고 수십 개의 S급 버프 포션과 스크롤을 사용한 후 신성의 축복까지 걸었다지만, 이 위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경악 어린 눈으로 서 영감님과 구 영감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퀘스트: 지구 찾아 삼억 광년’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귀환 포털이 생성됩니다.

-본 포털의 유지시간은 1분입니다. 신속하게 이동해 주세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새하얀 포털이 내 앞에 생성됐다.

60.

위에 붉은색 타이머를 달고서.

어느새 옆에 다가온 연우 형이 어이없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내 눈에만 보이는 거 아니지?”

59.

시간이 없었다.

쿠아르탐파가 쓰러지고 생성된 포털의 유지시간은 고작 1분.

쿠아르탐파가 가진 마나석과 부산물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채취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58.

시스템은 마치 우리가 쿠아르탐파에게서 무언가를 얻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태초의 별에서 우리를 쫓아내려 했다.

“아니. 인간적으로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부산물 채취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허허….”

불만 어린 연우 형의 목소리와 허탈한 구 영감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법이 없을까? 이런 개고생을 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어.’

쿠아르탐파 사냥 준비에 들어간 상점 포인트만 2억 포인트가 넘는다. 이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귀환한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손해였다.

무언가 방법을 찾기 위해 인벤토리를 열었을 때였다.

불쑥.

인벤토리 입구를 통해 빠져나온 아이템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쿠아르탐파의 사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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