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집으로 (2).
“뭘 잡아야 한다고?”
갑작스러운 도연우의 반말.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 아니죠? 서 영감님이 수련을 빡세게 시켜서 그런 거죠? 그 정신적으로 공황상태 뭐 그런 거. 그래서 말이 잘못 나온 거죠?”
이번엔 존댓말.
“아니. 씨…이게 말이 돼? 그 괴물을 잡아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응?”
내 어깨를 붙잡고 탈탈탈 흔들면서 다시 반말.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혼자 주절거리던 도연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여전히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나를 옆구리에 끼고 산비탈을 따라 바람처럼 내려갔다.
다다다.
아. 나이 서른 먹고 남자 옆구리에 끼어 옮겨지는 경험의 횟수가 늘어간다.
기시감인가?
며칠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왜 그 태고룡이라는 놈이 괴물 공룡 낚아채 갈 때 말이다.
몽롱한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쯤 도연우의 발걸음이 우뚝하고 멈춰 섰고.
우웨엑!
나는 다시 한번 거나하게 내 속에 든 걸 게워 내야 했다.
***
“그러니까 뭘 잡아야 한다고?”
도연우에 의해 짐짝처럼 베이스캠프로 옮겨진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들려온 질문이었다.
“아 몇 번을 말해요. 영감님. 그 드래곤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니까요?!”
“아. 이놈아 넌 좀 가만히 좀 있어 봐!! 내가 강현 군에게 물었지 너한테 물었어? 어째 이놈은 날이 갈수록 더 철이 없어지누. 쯧쯧.”
그래도 처음엔 서로를 도 길드장 구 전 대통령님이라고 칭했던 호칭들이 날이 갈수록 편해지더니 이놈 저놈과 영감님이 되어 버렸다.
‘이것도 어쩌면 도연우만의 매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해 주었다.
“이곳에 온 첫날 만났던 드래곤. 태고룡 쿠아르탐파. 그놈을 사냥해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응? 태고룡 쿠아르탐파? 이게 그 드래곤 이름이에요? 나한텐 그런 말 없었잖아요.”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절 옆구리에 끼고 달리셨지 않습니까.”
“아…?”
“그런데 자네는 그 드래곤의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건가? 듣자 하니 그냥 막 갖다 붙인 건 아닌 것 같고.”
구정철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해피니스 시스템과 그에 관련된 것들.
혹여 이들이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은 아니었다.
사혼 감옥 결계가 설치된 공동에서부터 이곳 태초의 별까지 지난 8일 동안 나와 이들 사이엔 그 정도의 신뢰 관계는 구축되었으니까.
거기에 난 누가 뭐래도 여기 있는 세 사람의 공동 제자나 다름없다.
누군가 내게 검술을 누구에게 배웠나 묻는다면 서태촌의 이름을 말할 것이고 창술과 박투술을 누구에게 배웠냐 묻는다면 도연우와 구정철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사승(師承).
저들은 스승으로 불리기를 거부했지만 이미 내가 가르침을 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사승 관계로 묶여 버렸다.
때문에 나는 시스템에 관한 사실을 이들과 공유한다는 게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시스템에 관한 것을 비밀로 하고 사냥할 수 있을 만큼 태고룡이란 놈이 만만한 놈이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단지.
‘내 말을 믿어줄까? 상태창, 상점창, 퀘스트, 업적, 룰렛, 뽑기. 차라리 게임이라고 하는 게 편하지 이건….’
과연 이들이 믿어줄까 하는 게 고민이었을 뿐이다.
정신이상으로 오해받지나 않으면 다행인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시스템을 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시스템을 활용해서 아이템을 구매해 태고룡 쿠아르탐파를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구름 가오리를 사냥할 때보다 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살아날 확률은 끝없이 0에 수렴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우선 이들을 이해시켜야 했다.
상점창을 통해 꽤 많은 아이템을 구매해야 할 텐데 인벤토리에 준비해 두었다고 둘러대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해피니스 시스템이라는 시스템의 사용자라는 것과 그간 어떤 경로로 유클리안 잎사귀 차라든가 마나의 묘약 같은 아이템을 구했는지를.
처음엔 다소 반신반의하던 이들도 내 이야기가 끝날쯤엔 어느 정도 믿는 듯한 눈치였다.
특히 도연우의 경우엔 그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는데.
“와씨-!! 그럼 정말 게임 같은 거네요? 막 퀘스트도 받고 클리어하면 보상도 받고 거기에 상점창도 있고. 그 해피니스 시스템인가 하는 거 사용하는 유저들끼리 거래도 한다는 거잖아요?!”
“아, 네….”
이 사람 왜 이렇게 신났지?
도연우는 마치 자신이 해피니스 시스템의 사용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신이나 있었다.
마치 신작 갓겜을 발견한 게임 폐인처럼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물어 오는데 그 눈빛이 영 부담스러웠다.
“그 유클리안 잎사귀 차라는 건 뭐예요? 10년 회춘? 와- 우리 구전 대통령님 요즘 원기 왕성하신 이유가 있었네. 좋은 거 혼자 드시니까 좋아요?”
그러다가 문뜩 뭔가가 떠오른 듯 그 눈이 구정철에게 향했다.
“아-. 그렇게 부러우면 네놈도 마나의 묘약 반납하고 그거 달라고 하던가! 저번에 보니까 태촌이는 마나의 묘약 대신 그거 받는 것 같더구먼.”
“어?! 정말요? 그럼 나도! 아….”
구정철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당장이라도 마나의 묘약을 반납할 것 같던 도연우는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곧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난 그가 저렇게 시무룩한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묘약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현 그룹 왕회장 강산호와 나눠야 할 물건.
그렇기에 자기 마음대로 반납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저렇게 시무룩해진 거다.
“저기 저 철딱서니 없는 것들은 무시하고 구상했다는 사냥계획이나 계속 말해 보게. 어떻게 그놈을 사냥할 생각이지?”
서 길드장의 물음에 나는 퀘스트를 받자마자 떠올렸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놈을 파악해야 합니다. 구름 가오리를 사냥할 때처럼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선 그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 말에 서태촌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게 먼저지 적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 그게 선행되지 않은 공략법은 휴짓조각과 다를 바 없어.”
“아….”
그 말을 듣고 있던 순간 나는 내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이야말로 몬스터 공략의 전문가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중 둘은 전문가 중 전문가이고 말이다.
60년에 가까운 헌터 경력을 가지고 있는 서 길드장과 구 전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들이 헌팅을 시작했을 땐 지금처럼 헌터 협회에서 발행하는 던전 가이드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신규 던전도 직접 몸으로 부딪쳐 몬스터의 공략법을 알아내고 클리어하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 난 뭘 알려주려고 했던 거냐?’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단 우선 해야 할 게 있군. 그 상점 등급이라는 거 올리려면 거래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던가?”
“네.”
“상점 등급을 올리면 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고. 맞나?”
“그렇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서 길드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흠…. 그럼 상점 등급을 빨리 올려야겠군.”
‘있는 거라곤 광활한 대자연과 몬스터와 같은 동식물밖에 없는 이곳에서 무슨 수로 상점 등급을 올리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런 내 생각을 알아차린 것인지 서 길드장은 우리가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고 있는 천막을 가리켰다.
“상점 거래의 승급 조건이 거래횟수라면 문제될 게 없지 않은가. 마나를 머금은 아이템이라면 저기에 많으니까. 저걸로 부족하면 더 사냥하면 될 테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그리고 그동안 포인트를 벌겠다는 욕심에 가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프리안의 물벼룩도 뇌전수 라그라주의 씨앗도 모두 아이템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과 같은 것들이 저 천막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도.
마나석과 부산물들을 떠올린 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내가 할 일은 정해졌다. 상점의 등급을 올려 태고룡 사냥에 도움이 될 아이템들을 구는 것.
놈을 사냥할 방법을 구상하는 것은 여기에 있는 전문가들이 할 테니 내가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의 일과가 타이트하게 짜였다.
***
아침에 일어나서 서 길드장과 구토가 나올 정도의 고강도 수련을 마친 뒤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면 거의 반죽음이 된 몬스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성장 조건이 기존 각성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들은 세 사람이 정한 규칙이다.
막타는 내가.
이게 경험치를 먹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그렇게 죽어가는 몬스터들에게 막타를 넣고 부산물과 마나석을 채취한 뒤 전장 정리를 마치면 아침을 먹고 다시 수련장으로 올라와 구 전 대통령과 수련을 시작한다.
그렇게 두 시간 수련을 마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면 길드장과 도연우가 준비해 둔 경험치 덩어리들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또 막타를 쳐 경험치를 획득하고 전장 정리를 한 뒤 잠시 상점창을 관리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 상점 등급이 너무 낮아서 이곳에 있는 마나석과 부산물 중 C급 이상의 것들은 판매할 수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팔린 물품들을 확인한 뒤 새로 얻은 부산물들과 마나석을 등록하고 나면 기다리는 건 도연우와의 수련.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이렇게 빡빡하고 힘든 수련을 함에도 워낙 대기 중 산소 농도와 마나 농도가 높아서 금세 원래 몸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지구에서 지금과 같은 수련 강도로 이 일정을 소화했다면 지금쯤 병원에 입원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도연우와 수련을 끝내고 내려와 다시 경험치를 먹고 전장 정리를 마치면 약간의 여유시간이 남는다.
그럼 그 시간에 도연우의 스마트폰을 충전해 주고 이후 저녁 식사를 한 뒤 상점에 아이템을 판매한다.
그러면 하루가 끝난다.
가끔 밤중에 혹은 새벽에 습격하는 몬스터들을 맞아 전투를 치르기도 하지만 샤이닝 에로우가 주변을 경계하기에 대체로 편안하게 숙면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태초의 별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
서걱!
날카로운 검이 푸른색 검격을 토해 내 몬스터를 절단하고.
푸푸푹-!
철창이 쏘아져 나가며 놈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근접 박투.
손, 발, 무릎, 어깨, 온몸을 이용해 펼쳐지는 물 흐르는 듯한 연격이 몬스터들의 몸에 닿는 순간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퍼억! 콰직! 터엉---!
퍼퍼펑-!!
사방으로 비산하는 몸 일부였던 것들과 함께 괴성에 가까운 비명이 울려 퍼지고.
키에엑!
크아아아!
서거걱--!
절삭 음과 함께 이어진 검격이 놈들의 비명과 생을 함께 잘라냈다.
“허…고작 한 달 만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구정철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식과 같은 한마디.
옆에 있던 도연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구정철의 말을 거들었다.
“재능이고 뭐고 필요 없네요…. 그냥 그 시스템이 사기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고작 C급 초반 정도였던 강현.
한 달이 지난 지금 강현은 S급에 준하는 각성자가 되어 있었다.
검과 창. 그리고 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하는 근접 박투.
서태촌과 구정철, 도연우의 장점을 모아 만든 듯한 하나의 예술품. 강현의 전투는 예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파괴적이었다.
“저 이제 어디 가서 나 천재예요라는 말도 못 하겠네요. 각성 넉 달 만에 S급에 올라온 인간이 저기 있는데 쪽팔려서 그런 말 할 수나 있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도연우의 입꼬리엔 미소가 매달려 있었고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아.”
“그 부족한 게 언제까지 부족한 채로 남아 있을까요? 성장세를 보면 조만간에 우리도 따라잡힐 것 같은데요.”
“흐음…. 하긴 설마 깨달음의 벽이 없을 줄 생각도 못 했지.”
깨달음의 벽, 그것은 A급과 S급을 가르는 경계이며 또 S급과 SS급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인구 1억 2천만.
그중 각성자들의 수는 1백만 명 내외.
A급 이하의 각성자들은 수시로 변화한다. 누군가가 죽고 샛별처럼 떠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우고.
하지만 S급 이상은 다르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S급 각성자는 고작 108명. 고작 만 명 중 한 명만이 S급에 오르는 거다.
대다수의 각성자들은 A급에서 깨달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전투 스킬 하나 없는 강현이 그 경지에 올라섰다.
깨달음의 벽 따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러니 구정철과 도연우의 입장에선 사기란 말이 나올 수밖에.
끄아아앆---! 켁!
구정철과 도연우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독 덩치가 커다랬던 대장 놈의 비명과 함께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푸른 피가 얼룩진 대지를 밟고선 강현.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홀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유독 눈부시다고 도연우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