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집으로 (1).
띠링.
근 일주일 만에 울리는 시스템 알림음.
그리고 그와 함께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한껏 고양돼 있던 내 기분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신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지구 찾아 삼억 광년]
[등급: SSS]
[내용: 난데없이 이세계(異世界)에 떨어진 당신. 파티원들과 힘을 모아 태고룡(太古龍) 쿠아르탐파를 사냥하자.]
[진행상태: 선택 중.]
[보상: 귀환 포털]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거부]
퀘스트 창을 확인하는 순간.
내 심장은 롤러코스터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릴 때처럼 쿵 소리를 내고 울렸다.
퀘스트가 말하는 태고룡 쿠아르탐파가 어떤 생명체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어쩐지 알림이 울리는 순간부터 느낌이 쌔 하더라니…. X 바……. 이거 아무래도 좆됨 각인데.’
우리가 이계에 도착했던 첫날.
하늘을 찢고 내려와 괴물 공룡을 낚아채 하늘로 올라갔던 괴물.
몸길이만 200m에 달하던 괴물 공룡을 한쪽 발로 낚아채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체구와 힘을 가지고 있던.
여섯 쌍의 발과 열두 쌍의 날개를 가진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을 섞어 놓은 듯한 그 녀석.
“X발.”
쿠아르탐파란 드래곤 놈과, 시스템 둘 다에게 욕이 나왔다.
시스템은 지구로 돌아갈 포털을 미끼로 이곳 생태계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놈을 죽이라고 말하는 거였다.
‘빌어먹을.’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구름 가오리도 찢어발겨서 씹어먹을 것 같은 놈을 무슨 수로 잡으라는 건지….’
더군다나 이곳엔 2천 명의 지원군도 군대의 포격 지원도 없다.
서태촌, 구정철, 도연우, 그리고 나.
전력 외로 치부해도 될 만한 전력인 나까지 포함해서 고작 네 명.
네 명이 그 괴물을 잡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문제는 또 있었다.
저 멀리서 해맑게 웃고 있는 세 사람.
‘이걸 저 사람들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시스템을 빼고 이 내용을 저들에게 설명할 적당한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드래곤을 잡으면 지구로 돌아갈 포털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예감이 듭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골 아프네.’
***
전장의 정리는 여느 때와 같았다.
마나석 채집은 샤이닝 에로우가 도맡아 하고 기타 쓸만한 부산물은 내가 채집한다.
채집보다는 도축에 가깝지만, 하여튼 그렇게 모아놓은 부산물이 이미 베이스캠프로 쓰고 있는 천막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와르르.
이제는 누울 자리도 찾기 힘들 정도로 비좁아진 천막 한쪽에 마나석과 부산물들을 쏟아내고 밖으로 나오니 세 사람이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풍덩. 풍덩.
뭐. 뒤처리라고 해 봐야 별것 없었다.
흐르는 강물에 조약돌 던지듯이 부산물 채취가 끝난 몬스터 사체를 집어던지는 것뿐이니까.
그나마 저들이나 되니까 저렇게 몬스터 사체를 조약돌처럼 집어던질 수 있는 거다.
내가 처리하려고 했으면 강가까지 하나씩 들어서 날라야 했을 테니 시간이 몇 배로 걸렸겠지.
하여튼 그렇게 사체를 옮기고 나면 내가 이프리안의 물벼룩을 이용해 전장을 씻어 버렸다.
이렇게 하면 피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만 피가 고여 썩는 냄새를 풍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번거롭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당연히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서.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저 하늘 어딘가에서 언제 떨어져 내릴지도 모를 그 괴물 녀석이었고.
그렇게 전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아침 식사를 하자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무슨 일인가? 설마 오늘 아침밥 없나?”
구정철의 말에 나는 심각한 와중에도 피식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식사는 모두 내가 만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물음이었지만 지금 이곳에서 내 위치가 딱 그 정도라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네. 내가 요즘 식욕이 왕성해졌어요. 어째 이 동네 온 뒤로 옆구리에 살이 붙은 것 같다니까?”
구정철의 너스레를 뒤로하고 나는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꺼냈다.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생겼습니다.”
“음?”
“네? 지구로 돌아간다고요?”
“흠…. 벌써?”
나름 심각하게 꺼낸 말인데 세 사람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이 양반들이 왜 이래?’
마치 놀이공원에 와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집에 가자는 말을 들은 초등학생과 같은 표정이랄까?
“어…. 저는 이곳에 더 있어도 상관없는데요. 숨만 쉬어도 마나 쌓이겠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서 업무 안 봐도 되겠다. 거기다가 폰게임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딱 좋은데.”
왠지 마지막 이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 도연우의 말이 끝나자 구정철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좀 더 있다가 가면 안 되겠나? 어차피 난 은퇴한 지 오래라 가 봐야 별로 할 일도 없다네. 거기에 아직 욱일회 놈들 꼬랑지도 못 잡았다지 않던가. 그놈들이 본색을 드러냈을 때 살랑살랑 가서 처리하는 게 어떻겠나? 원래 영웅은 그렇게 등장하는 법이라네.”
밑도 끝도 없는 영웅론으로 말을 마친 구정철의 뒤를 이어 서태촌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이번 참에 은퇴할 생각이라 바쁜 일 없네. 그나저나 아침을 뭐로 할 생각인가? 난 화우(華牛) 고기가 당기는데.”
“오! 나도 찬성일세. 이곳 속담에 아침 화우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더군.”
있지도 않은 속담을 잘도 만들어내는 구정철이다.
화우는 우리가 이곳에 온 첫날 잡았던 괴물 소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고기에서 꽃향기가 난다고 서태촌이 직접 붙인 이름.
그래서인지 화우를 향한 서태촌의 애정은 남다른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간 하루에 한 번은 화우 고기를 먹었음에도 아침부터 찾는 걸 보면 말이다.
츄릅. 꿀꺽.
아. 화우 얘기를 하니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건 뭐랄까 조건반사 같은 거다.
신맛이 나는 레몬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이는 그런 거.
여하튼 나름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고 서두를 꺼냈건만 결론은 ‘아침 메뉴는 화우.’로 끝나 버렸다.
이게 뭔가 싶다가도 어차피 시간제한도 없는 퀘스트이니 좀 더 이곳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여기서 폭렙 하고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화우 고기가 정말 맛있기도 했고.
왜? 뭐?
지구에 돌아가면 못 먹잖아.
***
아침 식사가 끝나고.
서태촌과 나는 수련장으로 이용하는 공터에 올라와 있었다.
“아까 조금 어이가 없었지?”
“네?”
“자네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생겼다고 했을 때 말이야.”
“아…. 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스스로를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라고 말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길드는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이미 승계를 마쳐 놓은 화랑 길드는 사정이 나았지만, 한울과 싸울아비는 거의 거덜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침밥이 뭐냐는 어이없는 핑계로 말을 돌렸으니 내가 당황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우리 행동이 다소 황당할 테지만 자네가 조금 이해해 주게.”
잠시 말을 멈춘 서태촌은 주변을 둘러봤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자라난 울창한 수림.
맑은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
한쪽으론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강이 소리 없이 흐르고 그 안엔 이름도 모르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태초의 자연.
이름을 붙이지도 못한 거대한 동물들이 시시때때로 목숨을 위협해 오지만 이곳 어디에도 인간의 흔적은 없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베이스캠프를 제외하면 말이다.
서태촌을 따라 그 모든 것을 둘러보았을 때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사람일세. 수백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기분 좋게 하하 호호거리며 웃을 수 없는 사람.”
“…….”
“우리라고 같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는가?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그리하는 거지. 우리가 하지 않으면 내 가족이, 우리 이웃이, 그 빌어먹을 것들에게 겁박을 받을 테니 해야만 하는 일인 거지.”
몰랐다.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취할 수 있는 압도적인 강함.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들이 가진 그 강함을 부러워했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처음 이들이 공동에 등장했을 때, 거리낌 없이 수백 명을 죽이는 것을 보고 살인마들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내가 누렸던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 뒤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게 미안해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귓가로 서태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니까. 투정을 한번 부려본 걸세.”
회한이 서린 그 목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돌아가면 다시 이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붙여 가며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 머물고 싶은 거지. 어쩌면 다시는 이런 평화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서태촌의 목소리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독과 슬픔 그리고 한이 묻어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어둠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온 남자의 목소리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일세. 자네 손에 들린 검엔 몬스터의 피만 묻혔으면 좋겠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왠지 자네라면 그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믿음이 가네. 하하.”
나는 고개를 들어 서태촌을 바라봤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맑은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얼굴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럼. 수련을 시작하지. 미리 말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힘들 걸세.”
“네. 각오하고 있겠습니다.”
꼬장꼬장했던 서태촌의 다른 모습을 보아서일까?
내 대답엔 왠지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1시간 후.
나는 맨정신으로 노란 하늘을 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있었다.
우욱. 웨엑!
아침으로 먹었던 화우 고기를 확인하며.
***
“어우야. 이게 무슨 냄새예요? 강현 씨 토했어요?”
서태촌이 내려가고 뒤이어 올라온 도연우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내 옆에 코를 막고 주저앉았다.
그 빤질빤질한 얼굴을 흘끗 노려본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 토했습니다.”
“아이고 목소리가 다 죽어 가네. 바로 수련 시작하는 건 힘들 것 같고 조금 쉬었다가 할까요? 물어볼 이야기도 있고.”
“물어볼 거요?”
“아까 아침 먹기 전에 했던 말 있잖아요.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는 말.”
“네.”
“생각해 보니까 그 방법이란 게 뭔지 물어보지도 않았더라고요. 강현 씨가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얘기를 꺼내는 거 보면 쉬운 방법은 아닐 텐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좀 물어보려고요. 그 미확인 포털이라는 건 아닐 테고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란 게 뭐예요?”
나는 바닥에 누운 채로 잘생긴 도연우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 양반은 제대로 씻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
자신감 있고 당당한 얼굴.
이 남자에게도 서태촌과 같은 고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생각이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말하기 곤란한 방법인가요?”
“아.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이 들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침에 먹은 걸 토할 정도면 수련이 꽤 힘들었을 텐데 그럴 수도 있죠.”
역시 이 사람의 캐릭터는 종잡을 수가 없다. 어떨 때는 세 살짜리 아이 같다가 또 어떨 때는 이해심 많은 형 같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또 삼천포로 빠지려는 생각을 붙잡은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을 잡아야 합니다.”
“음? 뭘 잡아요?”
차마 그 괴물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아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드래곤….”
“네?”
“드래곤을 잡아야 합니다.”
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도연우의 눈빛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이게 지금 제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