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성장 (1).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었기에 우리는 동굴을 떠나 수원지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기 전에 꽤 큰 강줄기를 찾을 수 있었고 약간의 정수과정을 거치면 음용할 수 있다는 씨드의 보고에 그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그리고 일주일.
우리는 어마어마한 습격을 받아야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물이 필요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싸우고 또 싸우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도연우는 SSS급에 올라섰다.
30살에 SS급에 올라 미래의 SSS급이라 평가받던 그는 불과 35살의 나이에 SSS급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해 냈다.
정확한 것은 지구로 넘어가 측정을 해 봐야 알겠지만, 서태촌과 구정철이 인정했으니 SSS급으로 올라선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성장한 것은 도연우만이 아니었다.
헉헉!
“제법 늘었구먼.”
“컥. 그렇…습니까?”
턱 끝까지 차오른 숨.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나는 힘겹게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스읍-. 하아.
공기 중 산소농도가 높아서 그런지 몇 번 숨을 들이쉬지도 않았는데 호흡이 진정되었다.
“음, 이제 제법 칼잡이 태가 나. 원래 몸 쓰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익히는 게 빠르군.”
“오늘도 가르침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감사까지야. 할 일이 없어 소일거리로 자세 좀 봐 주는 거지. 큼. 난 이만 가네.”
솔직히 내가 부탁하긴 했지만, 그가 정말 내 검술을 봐줄 줄 몰랐다.
검왕(劍王) 서태촌.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최강의 검객.
그런 이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왔는데 말 한번 꺼내 보지 않는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이 없었기에 용기를 냈고 그는 흔쾌히 그러마 하고 답해줬다.
그는 한사코 스승이란 말을 거부했지만, 어찌 보면 내 첫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사박사박.
서태촌이 떠나간 공터엔 곧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좀 더 쉬실래요? 아니면 바로 시작할까요?”
서태촌에 이어 나의 수련을 도와줄 도우미는 바로 도연우였다.
기다란 창대를 어깨에 메고 찾아온 도연우.
가로막고 있던 벽을 깨고 SSS급에 올라서 그런지 그의 얼굴은 생기가 넘쳤다.
천재(天才).
도연우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대한민국 헌터계의 판도를 바꿀 거라는 평을 받았던 기대주.
직접 겪어 보니 뭐랄까…. ‘덜 큰 어른’ 같았지만 그런 단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그의 재능은 빛났다.
하늘이 내린 재능은 시간마저 단축했다.
서태촌과 구정철이 여든이 넘어서 도달한 경지를 도연우는 불과 서른다섯이란 나이에 도달한 것이다.
말 그대로 천재.
지구에 돌아간다면 대한민국이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오늘도 충전해 주시는 거죠?”
“그런 거래였으니까요.”
그런 도연우가 나의 수련을 도와주는 이유는 바로 스마트폰 충전.
나도 전기를 발생시키는 뇌신일체 스킬을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다.
이곳에 온 첫날 밤 전원이 꺼져버린 스마트폰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도연우를 본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충전기와 연결된 스마트폰에 전류를 흘러 넣었고 놀랍게도 느리긴 하지만 충전이 되었다.
그날 밤 이후 도연우는 마치 나를 구세주처럼 대했으며 다차원송수신기 대여와 스마트폰 충전에 대한 대가로 나의 수련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물론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번 납치사건을 계기로 내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았으니까.
헉헉.
그렇게 도연우와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어김없이 거친 숨을 들이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래도 강현 씨는 참 빠르게 배우시는 편이에요.”
“그런가요?”
“네. 워낙 기초가 없으시다 보니까 습득하는 게 빠르신 것 같아요.”
역시 이 양반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칭찬하는 듯하면서도 꼭 끝에는 저렇게 방향을 트니.
‘이건 뭐 맥이는 건가?’
나는 아무런 말 없이 불퉁한 눈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도연우의 면상을 노려봤다.
“아…. 빈정대는 거 아니고 정말 강현 씨가 기초가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에요. 원래 뭘 좀 어설프게 배운 애들은 ‘쪼’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생겨서 버릇이 잘못 들면 고치기가 힘들거든요. 그런 애들에 비하면 강현 씨를 가르치는 게 훨씬 쉽죠. 백지에 가까우니까.”
“끙. 도 길드장님에 비하면야. 누군들 안 어설프겠습니까.”
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도연우와 비교하면 지구상에 어설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태촌과 구정철마저도 도연우에 비하면 둔재라 보는 게 맞았다.
무려 SSS급이라는 경지에 오른 각성자들마저 말이다.
“강현 씨.”
내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도연우는 생글거리던 얼굴을 굳히고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네?”
갑작스러운 그 표정 변화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을 정도로 그의 표정은 무척 진지해져 있었다.
“내가 창술을 익힌 지 얼마나 된지 알아요?”
“잘…모르겠습니다.”
“처음 창을 잡은 게 5살 때니까. 한 30년 됐네요.”
“아….”
“알아요. 사람들은 내게 천재라고 하죠. 내가 이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그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재능이 있었으니까 남들보다 빠르게 이 경지에 올랐겠죠. 하지만 과연 내가 재능만 믿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SSS급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요?”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요. 5살 때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5시간씩 창술을 익혀야 했어요. 재능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재능이 있었기에 더 노력해야 했죠. 가문의 누군가는 신창(神槍)을 계승해야 했고 그 누군가는 내가 되어야 했죠. 형들과 누나들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던 천재 도연우에 대한 편견.
금수저로 태어나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성장해, 온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10대 길드의 한 축인 한울의 길드장이 된 사내.
어쩌면 그의 삶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털썩.
내 곁으로 다가온 도연우가 내 옆에 주저앉았다.
“강현 씨. 내가 왜 강현 씨의 수련을 돕는다고 생각해요? 설마 정말 스마트폰 충전해 주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게 아니면 왜 수련을 도와주시는 겁니까?”
“라이벌이 필요해서요.”
“…네? 그게 무슨?”
“서태촌 구정철 두 영감님 말이에요. 어떻게 동시에 SSS급이 되었을까요? 단지 강현 씨가 두 사람에게 아이템을 건네주었기 때문에?”
“….”
“물론 그 아이템이 계기가 됐을지는 몰라도 그게 전부는 아닐 거예요.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사람에게 강현 씨가 그 아이템을 건네줬다면 저분들처럼 벽을 넘을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 아이템에는 그런 마법적인 힘이 없었으니까요.”
“저 두 분은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이었어요. 나이도 같고 각성 시기도 비슷했죠. 거기에 10개 길드의 후계자라는 위치까지….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는 구도잖아요. 그렇게 80년을 살아온 거예요. 때로는 밀어주고 또 때로는 끌어주며.”
나는 도연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태촌과 구정철의 이야기는 워낙 기사로 많이 접해 봤기에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헌터 업계에 워낙 널리 퍼진 사실이기도 했고.
“두 분이 라이벌이 아니었다면 과연 SSS급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나는 아니라는 것에 내 모든 걸 걸 수 있어요.”
잠시 말을 멈춘 도연우는 나를 돌아보더니 싱긋 웃었다.
“나한테도 라이벌이 필요해요. 때로는 밀어주기도 하고 또 당겨주기도 하는. 그리고 나는 왠지 강현 씨라면 그 라이벌이 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수련을 도와주는 거고.”
“하하. 전 이제 겨우 E급에 불과한데 어떻게 제가 도 길드장님의 라이벌이 됩니까. 농담도….”
“농담이요? 난 진심인데?”
생글생글 웃는 얼굴, 하지만 그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도연우.
“나 말이죠. 17살 때 각성하고 SS급에 오르기까지 13년 걸렸거든요? 근데 강현 씨 각성한 지 이제 겨우 3개월 지나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나 3개월 땐 고작 F급 던전에서 빌빌거리고 있었어요. 그것도 길드 소속 각성자들이랑. 그런데 강현 씨는 지금 보면 C급 초반 정도 되는 것 같은데? 3개월 만에 C급이라 어마어마하네요. 언제 여길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구로 돌아갈 때쯤이면 B급 승급도 가능할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심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함께 사냥을 이어간다면 B급을 넘어 A급 그 이상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혼자서는 상대할 수조차 없는 괴물들을 수십 수백 마리씩 사냥했으니까.
내가 한 것은 고작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얻기에 충분했다.
도연우가 어떤 계기로 SSS급에 올라섰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언젠가 나도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 거라는 것이었다.
몬스터를 처치해 마나를 흡수하고 깨달음을 얻어 등급을 올리는 일반 각성자와 시스템 사용자인 나는 강해지는 방법이 달랐으니까.
확신은 아니지만 내 성장을 막는 깨달음이라는 장벽은 없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또 모르지 깨달음은 필요 없더라도 퀘스트를 깨야 할지도.’
이것 또한 짐작이지만 지금까지 시스템을 사용해 본 경험에서 우러난 직감이었다.
그렇게 도연우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릴 때 도연우가 말을 이었다.
“강현 씨 각성한 지 3, 4개월 만에 B급까지 승급한 각성자…들어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기 있네요. 내 옆에. 그것도 이렇게 신비한 능력까지 갖추고. 이러니 내가 기대가 안 되고 배겨요?”
“하. 하하….”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나를 보며 도연우는 진지한 눈빛을 거두고 다시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미 SSS급이 되셨는데 굳이 라이벌이 필요하실까요? 하하….”
“그렇죠…? 근데 있잖아요. 난 왠지 SSS급이 끝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뭐랄까…. 수능 겁나 잘 봐서 서울대 입학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새로운 경쟁의 시작이었다는걸 깨달은 것 같달까?”
“그게 무슨….”
“한마디로 SSS급이 끝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죠. 두 영감님도 아마 나랑 같은 생각일 거예요. 서 길드장님도 아마 그래서 강현 씨를 가르치는 걸걸요? 자기가 배울 땐 몰랐던 걸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깨닫는 경우도 있거든.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배워요. 엇차.”
자리를 털고 일어난 도연우가 걸음을 옮기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나를 돌아봤다.
“아 참. 구 영감님한테도 한번 부탁해 봐요.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눈치던데. 그 영감님이 근접박투로는 대한민국 원탑이니까 배워두면 나쁠 거는 없을걸요?”
나는 멀어져가는 도연우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라이벌….’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고작 E급에 불과한 내가 세기의 천재 도연우와 라이벌이라니 언감생심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도연우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공식적인 등급은 E급이지만 레벨업으로 인해 높아진 스탯은 이미 D급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아마 도연우가 C급이라 말했으니 그 언저리일 테지.
각성 4개월 만에 C급.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소설 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빠른 성장이었다.
“라이벌…. 돼 주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터에서 저물어 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을 보며 나는 다짐했다.
천재 도연우의 라이벌이 되기로.
“사령관님.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베이스캠프로 접근하고 있는 다수의 몬스터들이 감지되었습니다.”
“그래.”
씨드의 보고에 수련장으로 이용하던 공터를 빠져나오자 이미 전투준비를 마치고 몬스터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이 보였다.
쓰르르-. 쓰르르-.
아스라이 올라오는 물안개 그 위를 비행하는 주먹만 한 크기의 반딧불이들이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빛들의 향연.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이계의 밤하늘 아래서 우리는 전투를 준비했다.
내게는 레벨업의 기반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깨달음의 실마리가 되어줄 전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