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태초의 별 (3).
거대한 공동은 수천 명의 사람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일단 세 분 다 무사한 건 확실한 거죠?”
소란스러운 와중에 그 중심지에 모여있는 길드 수뇌부들이 나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일단 세분 모두 큰 부상이나 이상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들으셨잖습니까.”
“허…. 이세계라니…….”
“이미 던전과 함께 몬스터들이 등장한 지도 80년이 지났습니다. 이세계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죠.”
“그건 그렇지요.”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소연이 앞으로 나섰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도연우 길드장님의 말처럼 진행되는 건가요?”
“세 분이 세우신 계획을 따를 수밖에요.”
“그럼….”
“네. 세 분은 이제 욱일회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생각이신 모양입니다.”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욱일회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테러 단체였다.
정부와 10대 길드의 수뇌부들. 그리고 음지에서 그들과 싸우는 사람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욱일회라는 조직.
지금 이 세계로 넘어가 있는 세 사람은 이번 기회에 그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전직 대통령과 10대 길드 중 2개 길드의 길드장이 사망한 사건이다.
그중 둘은 SSS급 각성자이니 사회적인 파급이 적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넘어가 있는 세 사람은 바로 그 점이 욱일회가 노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세 사람의 사망으로 10대 길드 체제로 굳어져 있던 대한민국 헌터 판을 뒤흔들고 그 빈 자리를 놈들이 파고들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어 주는 게 맞겠죠. 그동안 우리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던 놈들, 내부에 있을지도 모를 스파이들, 이번 기회에 전부 다 걸러내고 갑니다.’
10대 길드의 수장 셋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한다.
대한민국이 뒤집힐 소식이고 분명 그렇게 될 거다.
구정철과 서태촌의 승급 소식에 뜨겁게 달아오른 지금 상황에서 찬물이 뿌려지는 격일 테니 그들의 사망 소식이 만들어 낸 여파는 상상 이상일 터.
도연우는 그렇게 10대 길드 체제가 흔들리면 분명 그 틈을 노리고 야욕을 드러내는 길드가 있을 것이고 그들 중 반드시 욱일회의 끄나풀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럼 이제부터 세 분은 대외적으로 사망한 거군요.”
“네. 그 빌어먹을 결계와 함께 소멸하신 겁니다. 보시다시피 결계가 소멸했지만, 시체 하나 남지 않았잖습니까. 욱일회 놈들도 분명 알고 있을 테니 큰 의심은 없을 겁니다.”
“이번엔 반드시 꼬랑지가 아닌 몸통을 잡았으면 좋겠네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소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한겨울 얼음물에 들어간 듯한 한기를 느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서태촌의 핏줄이라 이건가? 아직 A급에 불과한 거로 알고 있는데 무슨 기세가….’
서소연 그녀는 욱일회에 의해 부모를 잃었다. 거기에 하나 남은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실종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 상황.
전라도내에서 꼴통으로 불리는 각성자 범죄 전담팀 팀장 서소연.
그녀의 눈에서 푸른색 불길이 차갑게 타오르고 있었다.
***
서쪽 하늘로 해가 지자 하늘 위로 달이 떠올랐다.
솔직히 저쪽이 서쪽인지는 모르겠다. 해가 저무는 쪽이니 서쪽이려니 할 뿐.
이곳이 이 세계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떠오른 세 개의 달.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는 달빛이 이상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낼 무렵 강현과 일행들은 이미 씨드가 정찰을 마친 동굴 앞에 도착해 있었다.
타닥.
치-이익.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만든 화톳불 앞.
지글지글 기름을 떨구며 노릇하게 익어 가는 고기를 앞에 둔 도연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먹을 수는 있는 거겠죠?”
“씨드가 스캔했을 때 인체에 해로운 독소는 없다고 했으니 드셔도 될 겁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 가는 고기의 정체는 그들이 얼마 전에 학살한 괴물 소였다.
공기 중의 산소농도가 높아서인지, 익어 가는 고기가 뿜어 내는 육향이 모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크흠-.”
구정철 역시 전 대통령이라는 품위 때문인지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고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코를 간질일 때마다 시시때때로 안면 근육이 춤을 췄다.
꿀꺽-.
그 옆에 앉은 서태촌은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과 다르게, 고이는 침을 삼키느라 연신 목울대가 꿀렁이고 있었다.
“네. 그럼….”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 꽂혀 있는 고깃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는 도연우.
거의 24시간이 넘게 식사를 하지 못한 구정철과 서태촌도 허기가 지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저마다 잘 구워진 꼬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꼬르륵.
노릇하게 익어 가는 고기의 자태에 강현의 위장이 어서 빨리 고기를 씹어 삼키라고 재촉했다.
허겁지겁 양손으로 고기를 붙잡은 채 한입 베어 물은 네 사람의 눈이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허공에서 마주쳤다.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고기는 그 결마다 숨어있던 육즙을 내뿜었다.
그리고 잠시 육향을 음미하는 사이, 모두의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고기.
‘뭐지?’
‘뭔데 고기에서 꿀맛이 나는 거지?’
그들은 핏물만 제거하고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고기가 이런 맛이 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울 때야 냄새가 좋았다 하더라도 막상 입안에 넣으면 분명 노린내라든지, 육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쩝쩝.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서 퍼져 나가는 은은한 꽃향기.
간을 하지 않았는데도 혀를 은은히 자극하는 함미(鹹味 : 짠맛).
지금까지 먹어본 고기 중에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당연히 엄지를 치켜들 만한 맛이었다.
빛과 같은 속도로 고기를 흡입한 네 사람 덕에 굽고 있던 고기는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아…. 좀 더 챙겨올걸.’
겉으로 보이던 흉악스러운 외형과는 다르게 괴물 소의 고기는 지구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미가 남달랐다.
“와…. 이게 대체 무슨 맛이죠? 어떻게 소고기에서 꽃향기가 나지?”
“그러게 말일세. 이런 맛일 줄 알았으면 좀 더 챙겨올 걸 그랬어.”
고기를 더 챙기지 못해 아쉬운 건 강현만은 아니었는지 도연우와 구정철은 물론이고 서태촌마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씨익.
입가에 기름 범벅을 한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적어도 그 맛은 진미(珍味)라 부르기에 무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두 눈을 감고 입안을 즐겁게 하는 새로운 맛의 여운을 즐겼다.
부스럭.
쿵.
우지직.
콰앙!
적어도 이 소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굉음과 함께 아름드리나무를 수수깡처럼 부러뜨리며 모습을 드러낸 놈은 거대하다는 말이 부족했다.
킁킁.
수풀 사이를 뚫고 들어와 코를 벌름거리는 놈의 머리는 덤프트럭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화톳불에 비친 놈의 머리.
불빛에 반짝이는 검붉은 비늘과 샛노란 동공.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러운 놈의 등장에 놀란 도연우가 황급히 신창을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검기를 쏘아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태촌이었다.
쉬-이익!
캉!
“캉?”
놈의 비늘은 놀랍게도 서태촌의 검기를 막아냈다.
크롸롸롸!
놈은 자신의 콧잔등에 미약한 생채기도 남기지 못한 서태촌의 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개를 쳐들고 괴성을 질러댔다.
움찔.
놈이 내지른 괴성에 순간적으로 강현의 몸이 덜컥 멈춰 버렸다.
‘피어(Fear)!’
쿵.
놈이 만들어 낸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화톳불로는 다 비추지도 못할 거대한 동체가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티라노사우루스를 20배 정도 확대해 놓으면 이런 모습일까?
아까 잡은 괴물 소 정도는 한입에 씹어 넘길 것 같은 거대한 입.
티라노사우루스와는 다르게 잘 발달한 긴 앞발과 그 육중한 체구를 지탱해주는 우람한 뒷발.
대체 저런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어떻게 기척도 없이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까.
머리부터 꼬리까지 적어도 200m는 넘어 보일 놈이 피어에 직격당해 몸이 굳어버린 강현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이 창날처럼 빽빽이 솟아있는 아가리를 벌리고 고개를 숙였다.
후웅.
단지 고개를 숙이는 단순한 행위 임에도 주위의 공기가 밀려나며 바람을 만들어 냈다.
돌풍에 밀려버린 화톳불이 꺼지고.
희미한 연기가 놈이 만들어낸 바람에 흐트러지던 그 순간.
쉬시시시식-!
은회색의 화살들이 흐트러지는 연기를 뚫고 날카로운 파공음을 토해 내며 놈의 거대한 눈을 향해 쇄도했다.
은은하게 내리쬐는 달빛을 받아 찬연한 빛을 머금은 채 총알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샤이닝 에로우.
티티티티티티팅.
놈은 자신의 눈동자를 향해 날아오는 그 공격을 단지 눈을 감는 것만으로 막아냈다.
물론 튕겨 나온 샤이닝 에로우가 허공을 선회하며 놈의 눈꺼풀을 두드리고 있지만.
카카카카캉--!!
놈의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쇠를 두드리는 소리만 날 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놈의 신경이 잠시 강현에게 쏠린 그 순간.
타다닥-!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붉은 피가 허공을 수놓았다.
어느새 서태촌이 놈의 콧잔등을 밟고 날아올라 닫힌 눈꺼풀을 베어낸 것이었다.
크아아아아-!
고통에 찬 놈의 괴성이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콰앙! 콰드드득!
탁탁탁.
놈이 서태촌에게 신경을 팔린 사이 도연우가 빠르게 걸음을 놀려 강현에게 다가왔다.
크르르.
한쪽 눈두덩이에서 핏물을 쏟아내며 발광을 하던 놈이 남은 한쪽 눈을 번뜩이며 서태촌의 뒤를 쫓았다.
쿵 쿵쿵.
와드득. 쿠궁.
이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서태촌을 발견한 놈이 거칠고 급한 발걸음으로 그 뒤를 쫓으려는 순간.
꾸아아앙-!! 뻐엉-!
쿵! 쿵!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놈의 거체가 뒤로 밀려났다.
“허…. 버텨?”
놈의 복부에 붕천격을 박아 넣은 구정철은 헛웃음을 흘렸다.
어지간한 빌딩도 한방에 무너트릴 붕천격을 놈이 버텨냈으니까.
크아아아아아!!!!!
화가 난 놈이 구정철을 노려보며 피어를 토해냈다.
샛노란 동공에 넘실거리는 살기.
그 눈에선 하찮은 먹잇감에게 상처 입은 포식자의 분노가 느껴졌다.
“감히….”
그리고 그 눈을 마주한 구정철 또한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히 나를 먹잇감으로 본다고? 나 투왕 구정철을?’
순간 구정철의 모습이 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끔뻑.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놈이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그 찰나의 순간.
꽈아아앙!!
마치 대포알이 작렬하는듯한 굉음과 함께 놈의 머리가 휘청였다.
풍신퇴(風神腿).
구정철이 바람신의 걸음이란 아이템을 사용하고 일부나마 신의 권능을 몸으로 체감하며 느낀 깨달음을 녹여 만들어 낸 스킬이었다.
SSS급 랭크가 붙을 만한 스킬이었지만, 그런 풍신퇴를 맞고도 괴물 공룡은 쓰러지지 않았다.
“하! 이것까지 버틴단 말이지?”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구정철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빛내며 호승심을 불태울 뿐.
그때였다.
숲속에서 서태촌이 튀어나오며 크게 외쳤다.
“구가야!! 달려!!”
“응?”
갑작스러운 서태촌의 외침에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구정철은 헛숨을 들이키며 강현과 도연우가 몸을 피한 동굴로 몸을 날렸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 고개를 흔들고 있는 괴물 공룡의 머리 위.
여섯 쌍의 발과 열두 쌍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파충류가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대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쿠 콰아아아앙!
콰지직! 빠직! 우드득-!!!
순식간에 떨어져 내려 공룡 괴물을 낚아채고 하늘로 떠오르는 드래곤.
후우우웅-!
우지끈.
드래곤의 발톱에 숲이 뜯겨 나가고 그 날갯짓이 만들어낸 돌풍에 수백 미터 높이로 자라있던 아름드리나무의 허리가 꺾여 나갔다.
재앙(災殃).
마법적인 힘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으로 순식간에 숲을 초토화한 드래곤이 한쪽 발에 공룡 괴물을 쥐고 저만치 멀어져 갔다.
“허….”
가까스로 동굴로 몸을 피해 화를 면한 구정철이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토해낼 때 그의 등 뒤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와…. 엄마 보고 싶네….”
도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