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99화 (99/202)

99. 태초의 별 (2).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등장한 소 떼.

하지만 그 위압적인 등장과 다르게 퇴장은 허무하리만치 빨랐다.

스악-. 콰앙-!

서태촌의 칼질, 구정철의 주먹질 그리고 이어진 도연우의 찌르기 한번, 물 흐르듯 이어진 세 사람의 연격(聯擊)에 괴물 소 떼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나 압도적인 폭력(暴力).

찰나라고 부르기도 모자란 짧은 시간.

인류 최강 생체병기라 불리는 SSS급 각성자의 위용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물렁물렁한 녀석들인데요? ”

도연우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지의 입구를 가득 채운 100여 마리의 괴물 소 사체.

그중 한 녀석의 몸에서 나온 마나석을 손에 쥔 구정철이 말했다.

“이 녀석들 마나석도 가지고 있구먼. 이 크기 보게. 최하 A급은 될 것 같은데?”

“오-. 이 녀석도 마나석을 가지고 있으려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휘둘러진 신창에 도연우의 앞에 있던 괴물 소의 사체가 수백 조각으로 잘려 허물어졌다.

깔끔한 창질이었지만, 불필요하게 화려한 마나석 채취 방법이었다.

하긴, 살면서 그가 마나석을 채취할 일이 있었겠는가.

태어나길 금수저로 태어난 것을.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현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마나석 채취는 제가 하겠습니다.”

“음? 왜요?”

“원래 이런 건 전문가가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마나석을 채취하시면 부산물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곳에 얼마나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아….”

강현의 말에 도연우가 자신이 해체한 괴물을 돌아봤다.

네모반듯하게 수천 토막으로 깍둑썰기해 놓은 괴물 소의 사체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도연우가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서고 강현은 씨드에게 마나석 채취를 명령했다.

“씨드. 마나석 채취 시작해.”

그 명령이 떨어지자 24대의 샤이닝 에로우가 선수에서 레이저를 쏘아내며 괴물 소의 사체를 파고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도연우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강현 씨 그 씨드라는 AI도 이면 세계에서 구하신 겁니까?”

“네. 그런 셈입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제가 구매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도연우의 모습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붉어진 두 볼과 과하게 반짝거리는 눈빛.

그 모습은 강현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주었다.

“비매품입니다.”

“아…. 역시 그렇겠죠?”

냉정한 강현의 말에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 걸음을 물리는 도연우.

강현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벤토리에서 단검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씨드에게 마나석 채취를 맡겼지만, 부산물 채취는 직접 해야 했다.

이런 일을 직접 해 본 지 오래됐지만, 지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부산물 채취였다.

‘그나마 가죽이 성한 거로 몇 마리만 해체하면 될 것 같네.’

워낙 체구가 커다란 녀석들이었기에 몇 마리만 해체해도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천막 지붕과 벽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도 길드장님. 저자들 결박 좀 풀어주시겠습니까. 잡일을 시키려 데려온 자들이니 부려 먹어야죠.”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로 서 있는 도연우에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욱일회 인물들의 결박을 풀어 달라고 부탁한 강현은 양손에 단검을 들고 괴물 소 앞으로 다가갔다.

10분.

강현이 비교적 온전한 괴물 소 한 마리 가죽을 벗겨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것은 마치 마법이나 스킬 같았다.

단지 단검을 가져다 댈 뿐인데 괴물 소가 알아서 가죽을 벗는 듯한 느낌이었다.

구멍 하나 없이 말끔하게 벗겨진 가죽.

신기에 달한 강현의 솜씨에 지켜보는 이들은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볼 뿐이었다.

깔끔하게 벗겨진 괴물 소가죽을 정리한 강현이 지켜보고 서 있던 욱일회 인원들에게 단검 두 자루를 던져 주며 말했다.

“쉽지? 한번 해 봐.”

‘대체 어디가?’

***

“호오-. 상당하고만 이거. 허허.”

구정철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나석을 보곤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코드명 몬스터 카우. 총 107개체에서 채취한 마나석 547개 중 A급 마나석은 415개이며 나머지 132개는 B급 마나석입니다.”

그저 대충 ‘많구나’ 정도로 생각했던 마나석 더미의 정확한 개수를 듣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A급 마나석 하나에 얼마더라?’

아직 헌터 등급이 E급에 불과한지라 A급 마나석의 정확한 가격을 알지 못했지만 대충 시세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대충 하나에 5천만 원만 잡아도 저게 얼마냐…. 컥. 200억이 넘네.’

한번 사냥에 200억 B급 마나석까지 계산하면 대충 300억 가까이를 단 세 명이 칼질 몇 번으로 벌어들인 셈이었다.

이건 정말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마나석이 나올 확률은 10%. 100마리를 사냥하면 평균적으로 10마리에서 해당 등급의 마나석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107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자 마나석이 550개 가까이 나왔다.

게임으로 치자면 아이템 드랍률 50배 버프를 받고 사냥을 한 셈이었다.

지구와는 다르게 대기 중 마나 농도가 높은 이 세계이기에 벌어진 일인 듯했다.

“아 저도 3은 가져가야죠! 제가 놀기만 한 것도 아닌데.”

“우리, 도 길드장. 이면 세계에 넘어오면서 양심은 지구에 두고 왔나 보군. 자네 창질 한번보다 우리가 숨 한번 내쉬는 게 더 쌜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나? 자네와 우린 급이 달라-.”

구정철과 도연우가 마나석 분배 문제로 투덕거리는 사이 나는 샤이닝 에로우를 띄워 정찰을 시작했다.

이토록 진한 피 냄새를 풍겼으니 곧 포식자들이 몰려들 터.

그전에 몸을 숨길만 한 안전한 곳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괴물 소의 치아 구조로 보아 저 거대한 괴물 소는 놀랍게도 초식 동물이었다.

‘분명 저 소를 먹이로 삼는 포식자들이 있을 거야. 놈들이 몰려들기 전에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해.’

씨드에게 정찰을 명령하고 긴장된 눈으로 분할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내게 서태촌이 다가왔다.

“쯧.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들이 투덕거리기는. 자네 아까 벗겨낸 가죽 좀 빌려줄 수 있겠는가?”

“네. 여기 있습니다.”

서태촌은 내가 건네준 가죽 일부분을 크게 잘라내더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나석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어? 서가야 왜 그걸 네가 다 챙기는 거냐?”

그 모습을 본 구정철과 도연우가 투덕거리는 걸 멈추고 서태촌에게 다가왔다.

못마땅한 눈으로 그들을 쓸어본 서태촌이 나직하게 혀를 찼다.

“쯧. 여기서 분배를 하면, 인벤토리에 다 집어넣을 수는 있고?”

“...아?”

각성자의 등급과 상관없이 인벤토리의 한계는 같다.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의 개수는 최대 100개고 그 무개는 100㎏이 최대치다.

이건 F급 각성자건 SSS급 각성자건 같다.

그러니 서태촌의 말처럼 이곳에서 마나석 분배를 마친다고 하더라도 각자 인벤토리에 챙겨 넣을 수 있는 개수는 몇 개가 안 된다는 소리였다.

평소 각자의 인벤토리에 챙겨 다니는 아이템도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5살 아이를 다그치듯 두 사람을 혼낸 서태촌이 남은 마나석을 담으며 말을 이었다.

“강현 군을 봐라.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음? 갑자기 나는 왜?

구정철과 도연우의 눈이 내게로 향하자 마치 내 상황을 대변하는 것처럼 서태촌의 말이 이어졌다.

“바람을 따라 괴물 소의 피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을 거다. 아까 그 사마귀 놈처럼 괴물 소를 먹이로 삼는 놈들이 있다면 여기에 뷔페가 차려졌다는 소식을 보낸 셈이지. 강현 군은 이미 그것에 대비해 주변을 정찰하고 있어. 그런데도 철딱서니 없이 계속 장난질을 치고 있을 셈이야?”

질책 섞인 서태촌의 말에 구정철이 헛기침을 뱉었다.

“큼! 장난질은 무슨 장난질을 쳤다고. 그저 긴장을 풀려고 했던 거지.”

말을 해 놓고 자신도 민망했던지 고개를 돌리는 구정철.

어느새 마나석을 주워 담아 매듭을 지어 보따리를 만든 서태촌이 그것을 내게 건넸다.

“저 철딱서니 없는 것들에게 맡기자니 불안하니 자네가 좀 맡아 주게. 내 나중에 수수료는 주겠네.”

“네. 어르신.”

“그래. 정찰 결과는 좀 어떤가? 머물만한 곳은 좀 찾았나?”

“분지 입구를 지나 산등성이를 타고 3㎞ 정도 이동하면 작은 동굴이 나온다고 합니다. 동굴 내부까지 정찰을 해 봤는데 동굴이 꽤 깊어 이 인원을 다 수용할 수도 있고. 생명체 반응이 없다고 하더군요.”

내 말을 들은 서태촌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열심히 괴물 소의 가죽을 벗기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욱일회 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굳이 저 벌레들을 끌고 가야 할 필요가 있나?”

갑작스러운 물음.

“네?”

“자네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 적들에게까지 그렇게 자비로울 필요는 없어. 언젠가 화근이 될 싹이라면 미리미리 잘라두는 게 좋단 뜻일세. 이유야 어찌 되었건 저놈들은 자네를 노리고 함정을 팠고 또 그 함정의 성공 직전까지 갔었지.”

내가 저들을 살려 이곳까지 끌고 온 이유는 오직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였지만 서태촌은 내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저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구름 가오리를 사냥하기 전 암혈이란 놈이 신풍대와 신멸대를 이끌고 습격을 해 왔을 때 이미 서른 명이 넘는 적들을 처치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서태촌의 말을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30년 동안 살아오며 뼈에 각인되다시피 새겨진 사회적 통념.

그것은 살인은 죄악이라는 것이었으니까.

“죄책감을 느끼지 말게 강현 군. 저놈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좀먹는 해충들일 뿐이니. 바퀴벌레 한 마리 잡는 것에 일일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뜻일세.”

스릉.

그렇게 말을 마친 서태촌이 환두대도를 뽑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시퍼런 예기를 발하는 칼날을 보는 순간 나는 서태촌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 길드장님.”

“음?”

내가 아직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대상이 아무리 나의 적이라 해도 말이다.

“굳이 길드장님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 손에 환두대도를 쥔 서태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시퍼런 살기가 어린 그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나를 향한 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일었다.

차갑고도 날카로운 칼이 목젖 앞에 드리워진 듯한 느낌.

“그건, 무슨 뜻인가?”

서늘한 서태촌의 물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번에 목숨을 끊어주는 건 저들이 지은 죄에 비해 너무 자비로운 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

“그냥 이곳에 버려두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제가 없으면 저들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문명에서 유리된 체 원시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하는 게 더 큰 벌이 될 것 같습니다. 저들이 지난 삶을 반성하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구정철이 끼어들었다.

“흠. 강현 군 말도 일리가 있다. 서가야. 그리고 우리 오늘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어.”

내 의견에 장단을 맞춰주는 구정철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도연우가 구정철의 말을 거들었다.

“저는 찬성이요. 왠지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뭐. 정 걱정되면 팔다리 하나 자르든가 마나 홀을 박살 내고 풀어주면 되고요.”

장난기 어린 말투로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을 하는 도연우였다.

구정철과 도연우까지 나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지자 서태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강현 씨.”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도연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기 내가 결박 풀어주지 않은 두 놈 보이죠?”

“네….”

그렇지 않아도 의문이었다. 왜 다른 자들은 결박을 풀어줘 놓고 저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는지.

“저기 양아치같이 생긴 놈 이름이 이선호. 욱일회 신멸대 대주고 민족의 역적 이완구의 증손자예요. 저놈이 각성하자마자 저지른 일이 뭔 줄 아세요?”

“모릅니다.”

“살인이에요. 그것도 40명이나 죽였죠. 친일파의 후손이란 이유로 그를 차별했던 사람들이 그 살인의 대상이었고요.”

할 말이 없었다.

“저기 있는 놈들 중 강현 씨처럼 제대로 사람 같은 생각을 하는 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강현 씨도 보셨잖아요. 결계가 줄어들 때 서슴없이 동료의 등에 칼을 박아 넣던 거. 저것들은 동정이라는 감정조차 사치인 벌레들입니다. ”

도연우가 나의 어깨를 '탁' 치고는 멀어져갔다.

“저는 가서 영감님들 좀 거들어야겠네요. 나중에 잔소리 안 들으려면.”

나는 쓰게 웃었다.

대한민국의 뒷 세계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대다수였으니까.

‘하지만 이젠 나도 바뀌어야겠지.’

계속 모른 채로 지냈다면 모르겠지만 어느새 욱일회와 깊숙하게 엮여버린 이상,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었다.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선 말이다.

‘씨드.’

‘네. 사령관님.’

그렇기에 씨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도망치려는 이들의 마나홀을 부숴.’

칼과 창을 휘둘러 팔다리를 끊어내는 서태촌과 도연우.

삽시간에 비명과 고성이 울리는 분지에서 도주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이들의 마나홀에 샤이닝 에로우가 날아가 박혔다.

마나홀을 부수는 것은 각성자의 생명을 끊는 살인과 다름없는 행위.

산소 농도가 60%에 달하는 이곳에서 마나홀을 잃고 일반인으로 돌아간 놈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광경을 보는 내 마음은 의외로 차분했다.

기적 형님이 납치되며 충분히 배우지 않았던가.

‘내가 강하지 못하면 내 사람이 다친다.’

몸도 마음도 강해져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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