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태초의 별 (1).
내가 포탈을 넘어오는 것을 끝으로 사혼 감옥 탈출 퀘스트는 끝났다.
그 과정은, 처음엔 샤이닝 에로우 열 대를 보내 주변을 경계한 다음 도연우가 건너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안전이 확보됐다는 씨드의 연락에 욱일회 놈들을 차례대로 포탈 너머로 보냈고, 기다리고 있던 도연우가 한 놈 한 놈 내가 준 아다만티움 합금 와이어로 결박했다.
이곳이야 동굴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막혀있는 공간이었고 나중에 사혼 감옥이 펼쳐지는 바람에 도망가려야 갈 수도 없었지만, 포털 너머는 개활지였으니까.
아무리 도연우가 SS급 각성자라지만 50명이 넘는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면 답이 없다.
마지막은 서로 칼부림을 하던 대주와 부대주라는 놈들 차례였는데, 이들은 서태촌과 구정철이 개처럼 끌고 포털을 넘었다. 애초에 도주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틀어쥔 채로.
그렇게 나를 마지막으로 포탈이 닫혔다.
턱.
흐읍. 후아-.
산소 농도가 높다더니 이쪽 세상의 공기는 그 상쾌함이 남달랐다.
단지 한번 숨을 들이쉰 것만으로 폐부가 씻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심해야 했다.
씨드 말대로 고농도 산소는 독과 같으니까.
그렇게 탈출의 기쁨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태초의 별에 입장하셨습니다.
-‘돌발 퀘스트: 사혼 감옥(데스 셀) 탈출!’을 완료하셨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와-. 이 메시지가 이렇게 반가울 줄 정말 몰랐네.’
이토록 알림음이 반가운 이유는 그 음울한 분위기의 사혼 감옥을 탈출한 것도 있지만 어마어마한 보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돌발 퀘스트: 사혼 감옥(데스 셀) 탈출!]
[등급: SS]
[내용: 사용자 강현 님은 인술사가 펼친 사혼 감옥(SS급)에 갇혔습니다. 생존자들을 이끌고 감옥을 탈출하세요.]
[진행상태: 완료.]
[보상: 포인트 1,000,000. 무작위 아이템 10.]
[최종 구출 인원: 58]
[추가 보상: 580,000포인트]
[보상을 수령 하시겠습니까?]
[수락]
‘백오십팔만…….’
거기에 무작위 아이템 10개.
지금까지 퀘스트를 클리어해 모은 포인트의 몇 배는 될 법한 포인트였다.
하지는 나는 보상을 받지 않고 퀘스트 창을 닫았다.
당장 보상을 받는 것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
마지막으로 포탈을 넘어온 강현이 퀘스트 보상을 확인하느라 가만히 서 있을 무렵.
“서가야 느껴지냐?”
“음…. 마나 농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아.”
“그러게요. 이건 마치 마나의 바다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인데요? 산소 농도가 높다더니 마나 농도가 더 높은 것 같아요.”
말을 마친 도연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건 뭐 감옥에서 탈출하니까 절벽이네요. 하하.”
단 한 곳을 제외한 삼면이 높다란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분지.
사아아.
분지에 불어오는 바람에 허리 높이로 자란 풀들이 잎사귀를 부딪치며 바람 소리를 만들어 냈다.
“확실히 호흡은 좀 조절해야겠네요. 그나저나 여기에 얼마 정도 있어야 하는지 아세요?”
손 놓고 압살당할 수는 없어 포털을 넘어오긴 했지만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분지를 둘러보고 있을 때 도연우의 가슴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링-.
“네. 부길드장님.”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도연우가 평소에 폰게임을 즐기는 터라 스마트폰을 챙기고 다녔다는 것과 다차원 송수신기 덕에 지구에 있는 길드원들과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 정도.
“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포털을 넘어오긴 했는데 언제 돌아갈지 모르니 부길드장님이 길드 관리에 신경 좀 써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그나마 두 분과 함께이신 게 천만다행이네요.”
부길드장이 말하는 두 분은 서태촌과 구정철이다.
공식적으로 지구에 다섯 명밖에 없는 SSS급 중 두 명.
이 두 사람도 결계를 부수지 못해 포털을 넘어올 수밖에 없었지만 낯선 세상에 오고 나니 나름 든든하긴 했다.
그렇게 도연우와 부길드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걱정과 놀람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한쪽에서 환두대도의 날을 손질하고 있던 서태촌이었다.
“전화기 좀 빌려주게.”
“아…. 예.”
도연우의 손에서 전화기를 건네받은 서태촌의 입에서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연이니?”
“할아버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제가 연락받고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갑자기 무슨 결계에 갇혔다고 하질 않나 결계가 줄어드는데 탈출할 수가 없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고 하질 않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네?”
걱정스러운 손녀의 목소리.
서태촌의 입가엔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10년 전 암혈에게 살해당한 아들 내외의 시체는 마치 미라와 같았고 차마 그 모습을 손녀에게 보여줄 수가 없어 화장을 한 채로 장례를 진행했었다.
제 부모의 장례가 끝나고 마지막 가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화장을 해버렸다고 원망 어린 말을 토해 내며 연락을 끊어버린 손녀.
그런 손녀가 근 10년 만에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이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할애비 걱정은 하지 마라. 이래 봬도 할애비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다섯 명 중 한 명이잖니. 곧 돌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려무나.”
“그래도….”
서태촌과 서소연의 통화는 길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에 남은 배터리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먹통이 되어 버린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도연우는 울상을 지었다.
‘거참. 영감님…. 충전할 방법도 없는데….’
입술을 삐죽이며 내심 투덜거린 도연우지만 차마 서태촌에게 뭐라 쏘아붙이지는 못했다.
서소연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화랑 길드와 연락 한번 못한 구정철도 조용히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영감님들, 이 새끼들은 어쩌죠? 그냥 풀어 놓자니 도망칠 것 같고. 그렇다고 목을 치자니 강현 씨 말처럼 잡일할 때 부릴 놈들이 필요한데.”
도연우가 말하는 동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의 등에 칼을 찌르는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들을 향한 목숨의 위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흠…. 어차피 마시는 공기도 아까운 벌레들이니 그냥 목을 치는 게 좋을 것 같군. 어차피 살려 놔 봐야 잠자리나 뒤숭숭하게 만들 놈들 아닌가.”
조금 전까지 따뜻한 목소리로 손녀와 대화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서태촌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하지만 그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내 생각은 서가와 조금 달라. 제깟 놈들이 암습을 해 봐야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여기서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칠까? 여긴 지구가 아니지 않나.”
“확실히 구 전 대통령님 말씀도 일리가 있긴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마나 농도가 높으면 이놈들 등급 업 하는 것도 빨라질 텐데 통제할 수 있을까요?”
단기간 이곳에 머무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게 길어진다면 분명 문제가 될 일이었다.
저기 버러지처럼 기고 있는 놈들 중 둘은 S급이니 더욱 위험했고.
“마나홀을 부수면 안 되려나?”
“그럼 산소 중독으로 죽겠죠.”
그들이 그렇게 욱일회 놈들에 대한 처분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퀘스트 확인을 끝낸 강현이 그들의 곁에 다가왔다.
“저들의 거취를 결정하기 전에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봐야 할 것?”
굳은 얼굴로 세 사람을 마주한 강현은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씨드. 홀로그램 화면 띄워.”
“네. 사령관님.”
“??”
“이게 무슨?!”
“설마 저 화살, 인공지능이에요?!”
놀람을 토하는 세 사람.
하지만 강현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단 화면을 주목해 주십시오. 조금 전 샤이닝 에로우가 주변 정찰을 하던 중 찍힌 화면입니다.”
강현의 손목에 채워진 헌터 와치를 통해 출력되는 영상은 세 사람의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처음 나온 장면은 포털을 넘어온 사람들의 머리 위를 찍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메라가 점점 고도를 높여가며 사람들의 모습이 줄어들고 주변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분지가 화면 가득 잡혔을 때 그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발…자국?”
분지의 모양이 마치 거대한 거인의 발자국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고도가 높아지며 홀로그램이 출력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그 화면은 지켜보고 있던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검은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고릴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마에 일곱 개의 뿔이 자란 고릴라 외형을 한 거대괴물이 까마득한 높이로 자란 나무들을 부러트리며 달리고 있었다.
발자국 하나의 넓이가 어지간한 축구장보다 큰 거대 괴수.
“지금 이게 사실인가?”
“이 정도 크기면 구름 가오리 사체와 비견될 정도의 크기인데?”
“잠시만…. 중요한 건 그 뒷부분입니다.”
“음?”
강현의 말에 다시 화면을 주시한 이들은 그 거대 고릴라가 달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톱날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삐쭉삐쭉 솟아있는 앞다리가 휘둘러질 때마다 수백 미터 크기로 자란 나무들이 속절없이 잘려나갔다.
‘쿵. 쿵.’
분명 홀로그램은 소리를 전달하지 않음에도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했다.
그렇게 나무를 베어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도망치는 고릴라보다 두 배는 큰 거대한 사마귀.
순식간에 고릴라를 따라잡은 사마귀의 날카로운 앞발이 휘둘러지고. 고릴라는 시뻘건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냥을 마친 사마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포효를 내지르고 이내 식사를 시작했다.
잔혹하고 살벌한 야생 그 자체.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그 장면을 보던 욱일회 놈들도, 구정철과 서태촌도 그 포식의 장면을 보며 몸을 떨었다.
“하. 하하…. 저놈이 이쪽 세계의 최강자인 모양이네요.”
도연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희망 사항을 말했지만, 화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냥을 마치고 승자의 위치에서 만찬을 즐기던 사마귀의 머리 위로 어두운 그늘이 생겼다.
샤이닝 에로우의 카메라에 잡힌 것은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하지만 잠시 후.
구름이 갈라지고 거대한 무언가가 번갯불같이 떨어져 내려 사마귀를 낚아채고 하늘로 올라갔다.
“드래곤?”
누군가의 중얼거림처럼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을 섞어놓은 듯한 괴생명체는 여섯 쌍의 발과 열두 쌍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파충류였다.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제 둥지로 돌아가는 드래곤을 마지막으로 홀로그램은 끝이 났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고용한 침묵을 가르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귓가에 울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이…괴물들이 있는 정확한 위치가 어딘가?”
“현재 위치와 태양의 궤도로 판단했을 때 북동쪽으로 130㎞입니다.”
구정철의 물음에 씨드가 답을 했고 그 말을 들은 도연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씨드라고 했던가? 네가 파악한 괴물들은 저게 전부야?”
“…….”
“저기. 씨드?”
하지만 도연우의 물음에 씨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 도연우가 재차 질문하려던 순간.
“괜찮아 씨드. 이분들도 모두 알아야 하니까. 브리핑 계속해.”
“네. 사령관님.”
강현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홀로그램 화면이 24개로 분할되었다.
“현재 정찰 중인 샤이닝 에로우들이 보낸 영상을 토대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씨드의 정찰 브리핑.
하지만 도연우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4개의 분할된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이곳을 살아가는 동식물들이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씨드의 브리핑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24개의 화면을 모두 확인한 도연우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감옥 다음엔 지옥이냐……?”
그리고 그 말에 동의한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손발이 결박돼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들조차도.
그만큼 24개의 홀로그램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컸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거대하다.
이방인인 자신들만을 제외하고….
충격에 휩싸인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그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령관님 현 위치에서 이탈하시기를 권고드립니다.”
그 말과 함께 확대되는 하나의 화면.
길고 날카로운 뿔을 가진, 체고가 12m가 넘는 거대한 소.
크기를 제외한 생김새만 보면 소라고 불러도 될 법한 괴물들이 무리를 이뤄 이동 중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 화면으로 향하는 순간.
드드드드드드드드.
거대한 진동과 함께 딛고 있던 대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입으로는 설마를 내뱉은 도연우. 하지만 그는 이미 신창을 꺼내 틀어쥐고 있었다.
말려 올라간 입꼬리와 반짝이는 두 눈.
도연우는 온몸으로 호승심을 토해 내고 있었고 그것은 다른 두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