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97화 (97/202)

97. 퀘스트: 사혼 감옥 탈출 (4).

……

└미확인 포털(Unidentified Portal):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포털을 생성한다. (10/10)

……

미확인 포털. 뇌신 울티아의 정원을 다녀온 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청동 미믹을 흡수해 얻은 스킬.

지금껏 상태창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스킬이다. 나 또한 사용할 생각도 없었던 스킬.

‘문제는 이 스킬이 사혼 감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발동하냐는 거지.’

퀘스트 랭크로 짐작하건대 사혼 감옥의 랭크는 최소 SS급 이상. 거기에 지금은 피와 마나를 흡수해 강화까지 된 상황이니 SSS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반면 무작위 포탈은 등급이 없다.

청동 미믹이라는 몬스터가 가지고 있던 스킬을 빼앗은 거니 몬스터의 등급으로 유추해 보자면 E급일 것이나, 무려 뇌신 울티아의 정원이라는 신화에나 나올법한 공간으로 이동을 시켜주는 것을 보면 또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었다.

포털에 연결된 공간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것.

표기된 정보대로라면 바닷속 깊은 곳일 수도 있고 용암이 들끓는 화산일 수도 있다.

그나마 그게 지구 안이라면 다행이다.

만약 포털 너머가 다른 세계라면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서 버텨야 한다.

‘포털 너머가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이라면, 우주 미아가 되겠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혼자 고민해서 답이 나올 일이 아니지.’

내 목숨만 걸려 있다면 할 때까지 노력해 보고 미확인 포털을 열어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이곳엔 나 이외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욱일회 놈들은 제외하더라도 세 명은 반드시 구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얼굴에 묻은 피딱지들을 떼어낸 뒤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그러니까 자네가 말한 대로라면, 이면 세계로 가는 포털을 열 수 있다고?”

내 설명을 들은 구정철의 물음에 도연우가 답답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이면 세계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포털이라잖아요.”

“그게 그거 아니야?”

“엄연히 다르죠. 설명 들어보니까 강현 씨가 청소한다는 이면 세계는 강현 씨도 어느 정도 정보가 있는 것 같은데. 이 포털은 아예 정보가 없다는 거잖아요. 지구 내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세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주 한복판일 수도 있고. 맞죠?”

“네.”

도연우의 정리에 내가 긍정을 표하자 옆에서 나와 마주 서 있던 서태촌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나. 결계는 계속 줄어들 테니. 이대로 여기서 계속 버텨 봤자 압사당하는 것 말고 다른 결론은 없을 것 같은데.”

“흠…. 그건 그렇지 그래서 서가 네놈은 강현 군 의견에 찬성이야?”

구정철의 물음에 서태촌은 고개를 끄덕였고 도연우는 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참…. 고생한 거 뻔히 알면서 물어봐서 미안한데 아까 그 공간조작이라는 스킬 지금은 불가능한가요? 강현 씨가 균열을 만들고 우리가 공격하면 결계를 부술 수 있을 것도 같던데.”

도연우의 말에 나는 결계를 바라봤다.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격을 퍼부었는지 모르겠지만, 시뻘건 핏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검붉은 결계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두꺼워져 있었다.

“가능하긴 한데 아까보다 두꺼워진 결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하겠네요.”

“하긴 결계가 너무 두꺼워지긴 했죠. 강현 씨 기절한 사이에 우리도 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조금 무리를 했는데…. 이렇게까지 두꺼워질 줄은 몰랐네요. 쩝.”

쓰게 입맛을 다시는 도연우.

나는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단 무작위 포털 스킬이 제대로 발동하는지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정은 그다음에 하도록 하시죠.”

내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킬이 발현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말이 더 길어질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

후….

온몸에 기력이 없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자리 깔고 드러눕고 싶을 만큼.

머리는 지끈거리고 근육은 푸들거리며 떨려서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육체적인 피로보단 정신적인 피로라고 보는 게 맞았다.

내 능력 이상의 결계를 파훼하기 위해 무리했던 것의 여파가 포션을 마셨음에도 여전히 내 몸에 남아있는 것이다.

“스킬 사용. 미확인 포털.”

내가 스킬명을 내뱉음과 동시에 마나홀에 머물러 있던 마나가 마나 회로를 따라 움직였다.

찌릿.

“윽-.”

마나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 신경을 타고 뇌를 자극했다.

그리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포털.

“오! 성공이구먼.”

구정철의 말처럼 스킬은 성공적으로 펼쳐졌다.

문제는 과연 이 포털 너머가 안전하냐는 것이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겠는가?”

서태촌의 물음에 나는 소모되는 마나 양을 체크했다.

“포션을 마신다면 장시간 유지하는 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마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포털이 보이십니까?”

“음? 당연한 것 아닌가?”

분명 청동 미믹의 아가리를 통해 울티아의 정원으로 가기 전 나는 씨드에게 정찰을 명령했었다.

그리고 씨드는 샤이닝 에로우를 이용한 정찰에 실패했었고 말이다.

내가 몸을 밀어 넣어 상자 뚜껑을 닫기 전까지 청동 미믹의 아가리 속은 그저 텅 빈 상자일 뿐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포털이 보인다면 샤이닝 에로우를 이용한 정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쓴 도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포털을 열 기회는 10번이나 있었고. 그중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넘어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세 사람에게 기다려 달라 말을 한 나는 씨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씨드 정찰 좀 부탁해.’

‘네 사령관님.’

내 명령에 샤이닝 에로우 한 대가 포털 속으로 날아 들어갔고 지켜보고 있던 구정철이 물었다.

“설마 그 화살 같은 것으로 정찰을 하는 건가?”

역시 괜히 SSS급이 아니다. 하긴 SS급인 도연우마저도 샤이닝 에로우의 존재를 느꼈는데 구정철이 못 느낀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냥 알면서도 지금껏 모른 척해 준 거다.

“네.”

“그래 정찰 결과는 남아있는 저것들을 통해 받는 거고?”

“뭘 그리 조바심을 내고 물어. 기다리면 알아서 얘기해 줄 텐데. 넌 네놈에게 붕천격의 묘리를 물어보면 다 말해줄 거냐?”

서태촌의 핀잔에 구정철이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큼…. 그런 거였나? 미안하네, 강현 군, 내가 궁금한 걸 못 참아서 말이야 허허.”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쿨럭.”

각혈했던 영향인지 기침이 흘러나왔다.

마나 회로를 따라 흐르는 마나가 만들어 내는 찌릿찌릿한 통증에 대답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렸다.

지금 내 육체는 아다만티움의 경도와 강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포털을 유지하고 있을 때 씨드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통신이 두절 되었습니다.’

‘음…. 샤이닝 에로우가 파괴된 건가?’

‘그건 아닙니다. 단지 샤이닝 에로우가 제 통제권을 벗어나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포털 너머는 다른 세계다. 씨드가 샤이닝 에로우를 통제할 수 있는 거리는 고작(?) 40㎞에 불과하니 어찌 보면 통신이 끊어진 게 당연하다.

씨드의 보고를 들은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다차원 송수신기.

정확히는 송신기와 수신기 한 쌍이다.

‘중력제어로 송신기를 들고 다시 진입해봐.’

포털 너머가 극한의 환경이라면 샤이닝 에로우 두 대와 송신기마저 잃는 것이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미확인 포털(Unidentified Portal):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포털을 생성한다. (9/10)

내가 가진 기회는 단 열 번, 기회 한 번 한 번이 모두 소중하니까.

그리고 다차원 송 수신기와 함께 포털을 넘었던 샤이닝 에로우는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처음 들어갔던 샤이닝 에로우와 함께.

***

첫 번째 포털. 알 수 없는 소행성대.

두 번째 포털. 빛 한점 들지 않는 심해.

세 번째 포털. 가스행성.

네 번째 포털….

……

첫 번째 포털을 시작으로 정찰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포털 너머엔 단 한 번도 인간이 살만한 환경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무리하지 않기 위해 세 번의 휴식을 취해야만 했고 시간은 어느새 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제한시간: 7시간 50분]

남은 시간은 여덟 시간 남짓.

결계의 크기는 더 줄어들었고 욱일회 놈들은 알아서 자기 동료를 죽여 줄어든 만큼 공간을 확보했다.

그 피를 흡수한 덕분에 결계는 더욱 두껍고 단단해져 이젠 외부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다.

└미확인 포털(Unidentified Portal):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포털을 생성한다. (3/10)

남은 기회는 단 세 번.

나는 온몸을 끈적하게 적신 땀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지만, 공간적인 여유는 없어.’

비좁기 그지없는 결계 내부.

남은 시간을 믿고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었다.

컨디션은 정말 최악이지만 결계에 짓눌려 압사당하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했다.

“스킬 사용. 미확인 포털.”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이렇게 스킬 명을 말하는 것도 처음에나 쪽팔렸지 이제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10번의 기회는 많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직 절박하고 절실하게 포털 너머의 공간이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좋지 않은 정찰 결과가 거듭될수록 서태촌과 구정철 그리고 나와 도연우, 우리 네 사람 사이에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으니까.

저들도 생각이 많아지는 것일 테지.

“후….”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이 샤이닝 에로우 한 대가 다차원 송신기와 함께 포털을 건너갔다.

이번에도 생존 불가지역이라면 남은 기회는 단 두 번.

어쩌면 그 기회를 다 쓰기도 전에 괴물 세 마리의 인내심이 바닥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상황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고 기도했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제발…. 인간이 살 수 있기만 하면 되니까 제발….’

나의 간절한 기도가 먹혔던 걸까?

‘찾았습니다. 사령관님.’

‘응? 정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네. 지구와 유사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지만, 대기 중 산소농도가 지구보다 높습니다.’

‘그래? 어느 정돈데?’

‘지구대기의 3배 정도 되는 60%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지구 대기의 산소농도는 20~22% 사이입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

언뜻 들으면 큰 문제는 아닐 것 같기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어지는 씨드의 설명에 곳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공기 중 산소의 압력과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1기압 기준 산소함량 60% 이상의 기체를 흡입하면 산소가 혈장에 직접 용해되며, 세포는 혈장에 용해된 산소를 쓰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은 계속 산소 포화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생명 활동의 부산물인 이산화 탄소를 운반할 수가 없고, 그렇게 체내에 축적된 이산화 탄소가 혈장에 용해되어 탄산화하면서 혈액을 급격히 산성으로 만들며 각 장기에 악영향을 끼치는데, 이게 산소 중독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꽝인 거야?’

‘하지만 이것은 일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각성자들은 마나를 흡수하며 일종의 진화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산소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씨드에게 보고받은 이야기를 그대로 세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는 금세 녹녹해졌다.

“고산소라고? 허허. 그거 호흡 조절 좀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건 구정철의 반응이었고.

“그나마 다행이네요. 여기서 칼부림 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건 도연우의 말이었다.

“구가 놈 말처럼 우리가 일반인도 아니고. 호흡을 조절한다면 체내에 유입되는 산소도 조절할 수 있겠지. 거기에 지금 남은 기회는 두 번이 전부라 하지 않았나. 그 미확인 포털이라는 걸 다시 열었을 때 지금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이번에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군.”

항상 짧고 간결하게 대화를 하는 서태촌답지 않게 이야기가 길었다.

아무래도 나를 대신해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였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어쩌죠?”

도연우가 말하는 ‘저것들’은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서 있는 욱일회 놈들이었다.

“여기에서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나?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세계에 위험요소를 안고 갈 필요는 없지.”

나는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욱일회 놈들에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구정철을 황급히 막았다.

“일단 데리고 가시죠.”

“응?”

“정찰했다곤 하지만 저쪽 세상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또 얼마나 그곳에서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고요. 잡일을 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놈들 하나당 포인트가 얼만데 여기서 죽인다는 말인가.

대충 훑어봐도 50명은 넘어 보이는데 그러면 추가보상이 50만 포인트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단이 감옥에서 구출한 뒤에 죽여야지 이곳에서 죽이기엔 너무 아깝다.

‘포인트도 얻고, 덤으로 일꾼도 얻고.’

“흠…. 그 말도 일리가 있군.”

내 말을 이해한 듯 구정철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의논이 시작되었다.

“그럼, 이 포털은 누가 먼저 넘어가죠?”

도연우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에…. 저요?”

그런 도연우를 바라보는 서태촌과 구정철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늙은 우리가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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