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96화 (96/202)

96. 퀘스트: 사혼 감옥 탈출 (3).

피가 마른다.

시간이 갈수록 사혼 감옥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처럼 빽빽하게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은 좁디좁은 공간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우리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처음 수축한 뒤로 매시간 1번씩 사혼 감옥은 수축을 진행했고 이제는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서로 몸을 밀착하고 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공간이협소해졌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구조팀이 바쁘게 움직였는지 금세 하나의 터널이 뚫리면서 결계 밖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고 그들에 의해 기적 형님은 구출되었으니까.

“이기적 씨는 응급실로 후송했고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하네요.”

옆에 다가온 도연우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기적 형님 건강에 이상이 없다니 안심되었다.

“다행이네요. 빠르게 손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다 보상받고 한 일인데요. 그런데 평탄화를 위해선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이곳에 인원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조금 줄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주변에 늘어선 욱일회 인물들을 훑는 도연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당장이라도 신창을 휘두를 것만 같은 그 기세에서 그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양 떼 무리에 사자를 집어넣으면 이렇게 될까?

그들은 어떻게든 구정철 등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공기가 텁텁한 것 같기도 하고….”

도연우가 뱉어 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날 선 칼이 박혀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나직한 목소리로 만류했다.

“처음, 이 결계가 발동될 때 내부에 있던 피를 흡수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내부에서 피를 흘리면 결계가 더욱 강화될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마법사분들은 뭐라고 합니까?”

내 시선은 결계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향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술식이랍니다. 너무 복잡해서 파악하기도 힘들고 파훼하기는 더욱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방법이 없다는 소리네요.”

“당장은요.”

“그럼….”

“영감님들께서 곧 말씀할 테지만 강현 씨의 스킬을 사용해 보는 방법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도연우의 눈이 다시 욱일회 놈들에게 향했다.

그의 눈빛은 옆에 있는 나조차도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차가운 살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죄다 목을 쳐버리고 싶지만, 강현 씨 말처럼 결계가 피를 흡수해서 강화돼 버리면 하나 마나 한 짓이니까…. 일단 영감님들하고 다시 대화해 보죠.”

말을 마친 도연우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나도 그를 따라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영감님에게 향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건가?”

구정철의 물음에 그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가진 역량으론 분석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위 술식인지라…….”

대충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그 맥락을 파악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밖에 있는 마법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일 테지.

“알겠네.”

침중한 얼굴로 통화를 끝낸 구정철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강현 군. 아무래도 자네가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군. 길드 마법사들이 결계를 파훼하는 건 힘들 것 같아. 시간이 더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결계가 줄어드는 속도를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도 같고.”

옆에 있던 서태촌이 구정철의 말을 이었다.

“지금 저놈들이 숨 쉬는 공기도 아깝지만, 저 애송이 놈이랑 자네가 나눈 대화를 들어보니 자네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네. 밖에 있는 마법사들도 그 생각에 동의했고.”

서태촌이 말한 저놈들은 결계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욱일회 인물들이었고 애송이는 도연우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에겐 두 가지 방법이 남았네. 그중 첫 번째는 말 그대로 무식하게 힘으로 이 결계를 깨부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네의 그 공간조작능력이지.”

잠시 말을 멈췄던 서태촌은 예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먼저 시도해 볼 것인가 하는 것일세. 처음 시도가 실패하면 그다음엔 사활을 걸어야 할 테니까.”

“결계는 더욱 강해져 있을 테고요.”

“그렇지.”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나 두 번째나 큰 차이는 없었다. 둘 다 부담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매도 처음 맞는 게 낫다고.

“제가 먼저 공간 조작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내가 먼저 하는 게 나았다.

솔직히 저들이 사혼 감옥을 깨부순다면 모르겠지만, 그 공격을 흡수한 사혼 감옥에 아공간 조작으로 틈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제 생각에도 그러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영감님들이 결계를 부수지 못하면 그 충격을 흡수하고 어마어마하게 강화될 건데 그걸 어떻게 파훼합니까? 어우-.”

옆에서 한마디 거드는 도연우를 흘끗 노려본 서태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지.”

***

‘철퍽.’

실제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내 귓가엔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끈적하고 질척거리는.

온갖 악의를 끌어다가 만들어 놓은 늪과 같은 불쾌한 느낌이 결계에 닿은 손끝을 통해 느껴졌다.

‘아까보다 더 강해졌다.’

공간시의 특성이 발현된 내 눈에 보이는 사혼 감옥은 아까보다 더 두터워졌고, 얼기설기 얽혀 있던 마나 회로는 이게 마나 회로인지 사혼 감옥인지 모를 만큼 응축되고 융해돼 숫제 하나의 결계가 되어있었다.

‘가능할까?’

무려 SS급 퀘스트.

쉬울 리가 없었다.

나는 깊게 심호홉을 하고 결계에 맞닿은 손끝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아공간 조작 특성의 마나 회로를 타고 손끝에 맺힌 마나가 사혼 감옥과 맞부딪쳤다.

파직!

드드드드드.

마나를 불어넣으려 하는 나와 그 마나를 거부하는 사혼 감옥.

손끝에서 일어난 미약한 진동이 점점 거세지며 내 몸을 뒤흔들었다.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공간을 가르려는 힘과 유지하려는 힘의 부딪힘은 더욱 거세졌고 마나 홀에 자리 잡고 있던 마나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꿀꺽꿀꺽.

하지만 내게 남아도는 게 포션이다.

위장에 깡소주를 때려 붇듯 마나포션을 들이부으며 버티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우우우우웅-.

쩌저적.

내 손끝에서 일어난 균열이 나의 의지를 따라 크기를 키워갔다.

콰악-.

1㎝, 2㎝, 순조롭게 크기를 키워가던 균열이 어느 순간 덜컥 멈춰 섰다.

겨우 야구공 하나 빠져나갈 정도로 작은 크기의 구멍.

동굴 입구에 설치돼 있던 결계는 인벤토리나 아공간의 틈을 늘릴 때보다 반발력이 약해 사람이 통과할만한 크기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혼 감옥은 동굴 입구에 펼쳐져 있던 결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반발력이 거셌다.

투둑.

“크으으….”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며 콧구멍에서 뜨뜻한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

주위에서 무언가 외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귀속에서 울리는 공명음 때문에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멍하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윽.

꿀꺽꿀꺽.

그저 기계적으로 인벤토리를 열어 마나포션을 꺼내고 그것을 마셨다.

우우웅.

머릿속에 각인된 아공간 조작의 마나 회로대로 마나를 돌려 손끝에 집중시켰다.

기계적인 반복.

하지만 여전히 균열의 크기는 그대로였다.

성장을 멈춘 채 얼어붙은 듯 정지해 있는 균열, 나는 균열의 성장을 방해하는 무언가를 파괴 하기 위해 마나를 집중했다.

“끄윽.”

순간 시야 한쪽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아마도 안구의 실핏줄이 터진 모양이었다.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 핏물의 느낌이 끈적하다.

이곳이 내가 청소하던 인벤토리 혹은 아공간 안이었다면 이렇게 무리하지도 않았을 거다.

퀘스트 실패 시 해피니스 시스템 사용 권한 박탈이라는 페널티가 없었다면 진즉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시스템 사용 권한이 박탈된다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다.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으니까.

하지만 내 이상과 꿈은 이대로 다시 주저앉아 포기해야 한다.

시스템이 없는 나는 그저 흔해 빠진 헌터 중 하나로 영락할 게 뻔하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오한이 든 것처럼 온몸이 떨리고 사혼 감옥의 결계와 맞닿아 있는 손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삐----!

공명음이 사라진 귓가에 길고 날카로운 이명이 울리고, 머릿속에선 번갯불이 번쩍이고, 눈앞은 흐릿해졌다.

울컥.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참으며 집중을 유지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우웨엑!!”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무언가가 입을 통해 분수처럼 뿜어졌다.

내가 뿜어낸 붉은 피가 푸른색 마나 회로를 통해 흡수되는 것을 보며 나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씨발….’

***

“끄응….”

눈을 뜨니 보이는 건 붉은 천장.

아직 사혼 감옥을 탈출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들어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도연우가 초췌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실패. 큼. 실패한 겁니까?”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듯 까슬까슬해서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힘들었다.

“아쉽지만. 결계를 파훼하는 건 실패 했어요. 강현 씨도 우리도.”

‘우리?’

우리라니, 설마 구정철과 서태촌도 실패했다는 걸까?

내 눈에 어린 의문을 이해했는지 도연우가 말을 이었다.

“강현 씨가 쓰러지고 6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도 놀고만 있진 않았죠. 강현 씨가 결계를 부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으니 남은 건 우리 차례였잖아요.”

그렇게 이어진 도연우의 설명은 길었지만, 그 내용은 간단했다.

실패.

서태촌의 검격인 단천세도 구정철의 붕천격도 결계를 부수지 못했단다.

그리고 그 힘을 흡수한 사혼 감옥은 더욱 강화되었고 수축되는 시간도 빨라졌다.

외부에서 마나석을 부수려는 시도도 해 봤지만, 그것도 실패했단다.

“그럼…?”

“지금 남은 인원은 채 100명도 안 될 겁니다.”

도연우의 말에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결계는 그새 어마어마하게 줄어 들어있었다.

원래 천 명이 들어설 수 있을 만큼 거대했던 공동의 크기만큼 커다랬던 사혼 감옥이 이젠 스무 평 남짓한 크기로 줄어 있었고, 그만큼 감옥 안에 있던 인원들의 수도 줄어 있었다.

백 명. 아니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인원이 결계 한쪽에 서 있었다.

“허….”

탄식과 같은 한숨이 나왔다.

추가보상을 얻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불과 6시간 만에 300명이 넘게 죽었다. 한마디로 300만 포인트가 증발한 셈이었다.

사람을 포인트로 계산한다는 게 반인륜적인 느낌도 들지만 내게 저들은 그래도 되는 이들이었다.

욱일회.

처음엔 목포에서 나를 납치하려 했고 그다음엔 구름 가오리를 이용한 테러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수몰시키려 했으며 그마저도 실패하자 기적 형님을 납치해 나를 이곳으로 유인한 단체.

하지만 그마저도 미끼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기적 형님이라는 미끼로 나를 유인하고 나라는 미끼로 그들과 원한이 큰 서태촌과 구정철을 유인하는.

잘 짜인 함정이었던 거다.

나 하나만을 대상으로 준비했다고 생각하기엔 1000명에 달하는 욱일회 인원도, 사혼 감옥이라는 이름의 결계도 너무 과했으니까.

그런 이들을 포인트로 계산하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추가보상 400만 포인트 중 300만 포인트가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에 증발했다.

“후….”

그렇게 포인트가 줄어든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옆에 있는 도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러지들….”

“네?”

“저 버러지 같은 놈들 목숨이 아까워서 한숨을 내쉰 거라면 그러지 말아요. 강현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한숨을 내쉰 게 아니었는데.

“저것들. 두 영감님이나 내가 손을 쓴 게 아닙니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강현 씨가 실패하고 시간이 지나서 결계가 줄어드니까 자기들끼리 알아서 인원을 줄이더라고요. 아마 우리에게 한꺼번에 몰살당할까 봐 그런 것 같은데 덕분에 강현 씨 예상대로 결계는 더욱 단단해졌죠.”

순간 저쪽에 있는 욱일회 놈들이 같은 인간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리고 나발이고 개뿔도 없는 것들이에요. 저것들은.”

그 말을 들은 나는 저들을 버러지처럼 보는 도연우의 눈빛이 이해가 됐다.

‘몰살당할 게 겁나서 동료의 등에 칼을 박아 넣다니…. 보통 이런 상황이면 죽기 살기로 적에게 덤벼들어야 맞는 것 아닌가? 적어도 같은 단체 소속이라면….’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서태촌과 구정철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밖의 마법사들과 통화했는데 이렇게 계속 결계가 줄어든다면 한나절 후면 이 안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구먼.”

그럴 거다. 퀘스트 제한시간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제한시간: 13시간 24분]

솔직히 말하면 암담했다.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받아든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인벤토리와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 안에서 방법을 찾지 못하면 시스템 상점창을 뒤져서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구매할 수 있는 건 고작 D급 아이템이라 SS급 사혼 감옥을 파훼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뽑기라는 대안도 있었다.

물론 모든 건 운에 걸어야 하는 도박이지만. 이곳에 갇혀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어…. 이거라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껏 쓸모없이 칸을 차지하고 있던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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