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93화 (93/202)

93. 배덕자의 후예들 (4).

“X발. X 됐네.”

부대주와 칼을 맞대고 있던 이선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부대주. 이 상황도 네 계획 속에 있었냐?”

무려 SSS급의 괴물이 둘이나 쳐들어왔다. 이런 상황이 부대주의 계획 속에 있었을 리 만무했기에 던진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선호의 생각처럼 부대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상태였다.

워낙 무표정이라 겉으론 드러나지 않았지만, 부대주와 칼을 마주하고 있는 이선호는 충분히 그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부대주가 저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그리고 이선호는 그거면 되었다.

“오늘 여기서 죽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 듯해. 그렇지?”

욱일회라면 치를 떠는 노인네가 둘이나 이곳에 왔으니 오늘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터였다.

그마저도 살아도 산 것이 아닐 터.

아마 모진 고문 끝에 죽어 나가겠지.

“내 보기엔 너나 나나 사이좋게 회주에게 이용당한 것 같은데. 계속 이렇게 칼 겨누고 있을 거냐?”

“크아악!”

“사, 살려!!”

콰직! 퍽!

끄윽.

그들이 이렇게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도 부대주의 부하들은 하염없이 죽어 나갔다.

투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도의 기운은 주변을 서서히 잠식하며 내리눌렀고.

꾸웅-!

우지지지직. 퍼엉!

사람이었던 것의 존재감이 그대로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피와 함께 검붉고 하얀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흩날리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한 자루 검.

서걱!

깃털보다 가벼우며 번개보다 빠른 검왕의 칼은 그의 검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절단했다.

그리고 신창의 창은.

휘유우우우-.

꽈아아앙----!

주변의 공기와 마나를 빨아들여 대지를 박살 냈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지 고작 1분여.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죽은 이들이 반수를 넘었다.

“괴물이 둘인 줄 알았더니 셋이었네. 신창은 너무 존재감이 없는데?”

이선호는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맞대고 있던 부대주의 검을 밀어내며 한걸음 물러섰다.

“도망치려는 겁니까?”

“그럼 저 괴물들을 상대하라고? 우리 목적은 강현이란 애송이였지 저런 괴물들이 아니었어. 뭐 그마저도 지금은 소용없는 것 같지만.”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한걸음 물러서는 이선호.

그런 이선호를 향해 부대주는 이를 갈며 단어 하나하나를 짓씹어 뱉어냈다.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그런 당신이 대주로 있으니 신멸대가 제대로 된 조직이었을 리가 없지. 당신은 대주로서 자격이 없었어.”

이선호는 부대주의 말에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나보다 먼저 S급에 올라오지 그랬어. 난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왜 네 능력이 부족한 걸 내 탓을 하는 거냐?”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이선호의 얼굴은 악귀와 닮아 있었다.

웃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를 얼굴을 한 그가 말을 이었다.

“난 대주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대 대주를 죽였지. 내 앞을 막는 것들을 모조리 베고 이 자리를 쟁취했어. 그런데 넌?”

이선호가 뱉어 낸 말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부대주의 심장을 찔러댔다.

“그렇게 부하들이 목숨이 아깝고 동료들을 지키고 싶었으면 진즉에 내 뒤통수를 쳤어야지 이 새끼야. 그땐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정의의 사도인 척하고 있어?”

“그건!!”

그 난데없는 폭언에 발끈한 부대주가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이었다.

“여기 있었구나.”

서늘한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오싹.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부대주.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이선호는 부대주의 등 뒤에 선 이를 보고 투덜거렸다.

“씨바. 도망가긴 글러 먹었네. 젠장.”

“네놈들이 바로 그 납치범들이라고 그러던데 납치한 사람은 어디 있누?”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살기 어린 목소리에 부대주의 몸이 움찔하고 움직이려는 순간.

텁.

붉고 하얀 무언가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주름진 손이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스치며 머릿속에 강렬한 경고음을 날린다.

움직이지 말라고.

“흠…. 요즘 젊은이들은 참 개념이 부족한 듯싶군. 나 때는 어른이 물으면 째깍째깍 답을 하는 것이 예의였는데.”

우득.

“크윽….”

노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어깨뼈가 박살이 나 생살을 찢고 튀어 나왔다.

그 어마어마한 완력 앞에서 부대주가 입고 있던 갑옷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쉬이…….”

다시금 귓가에 울리는 노인의 목소리.

“내 다시 묻겠네. 자네들이 납치한 이는 어디 있는가? 참고로 나는 같은 말을 세 번 하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네.”

부대주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회가 지정한 경계순위 1등급의 위험인물.

투왕 구정철.

그의 신선이 부대주와 이선호를 훑었고, 이선호는 주둥이를 나불댔다.

“당신이 잡은 그 녀석이 감췄으니 잘 물어보쇼.”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어투로.

“역시 요즘 애들은 싹수가 없어. 노인공경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거냐?”

순간 구정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패기가 이선호의 몸을 짓눌렀다.

“크윽. X발 노인네들. 대체 뭘 처먹길래 이렇게 힘이 넘치는 거야?! 약자 배려 모르쇼!?”

하지만 이선호는 구정철의 패기를 버티며 또다시 주둥이를 나불댔다.

부대주는 할 수 있다면 저 주둥이를 꿰매버리고 싶었다.

저 빌어먹을 새끼는 뭘 믿고 저렇게 주둥이를 나불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쯧쯧. 그렇게 꼰대 같은 소리를 하시니 젊은 친구들에게 욕이나 먹는 것 아닙니까.”

척.

기다란 창대를 어깨 위에 걸친 도연우가 이선호의 등 뒤에 내려섰다.

“이보게 도 길드장. 자네는 그 주둥이가 언제 한번 큰 사달을 만들 것 같으이.”

“그 언제가 오늘일 수도 있고.”

환두대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다가온 서태촌이 구정철의 말을 받으며 살기 어린 눈으로 도연우를 노려봤다.

“어째? 아까 하지 못했던 교육을 지금이라도 해주랴? 네 아비와의 인연을 생각해 수업료는 받지 않으마.”

그렇게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 부대주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들려야 할 주변의 소음이 모두 사라져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

‘와- 이건 뭐 살인마들도 아니고.’

가벼운 주먹질 한 번에 몇 명이 피떡이 되어 생을 마감하고, 날카로운 검광이 반짝이면 사람이었던 것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꽈아앙-!

그리고 거대한 굉음이 울리면 대지가 갈라지며 그 모든 것들이 땅속으로 묻혔다.

불과 1분.

그들이 공동에 모습을 드러낸 지 1분 만에 500여 명의 적이 시체가 되었다.

그리고 전율이 일만큼 압도적인 그 폭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저기 씨드. 아까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저분들이 기분 나쁘셨을까?’

그 광경을 본 내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이란 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까 화가 나서 질러댔던 말이 저들의 마음속에 앙금을 만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사령관님께서는 의뢰주로서 하셔야 할 요구를 하신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네 말처럼 그 당연한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었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겠냐.’

‘……’

내 말을 들은 씨드는 그 후로 말이 없었다.

씨드의 입장에서는 이런 학살의 장면도 절대 당연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씨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세 사람이 대치 중이던 납치범들을 제압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상황이 정리됐다.

이젠 기적 형님을 찾아 이곳을 빠져나가면 된다.

그렇게 안심을 하고 있을 때.

우우웅-

공동이 울리며 마나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공동의 천장으로 향했다.

인위적으로 손을 댄 것이 확실해 보이는 공동의 천장, 푸르게 빛나는 마나석이 미친 듯이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미친 듯이 공동의 마나를 빨아들인 마나석이 다시 마나를 토해 냈다.

‘뭐지? 불길한데?’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불길한 느낌이 나의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기적 형님을 찾지 못했으니까.

그 짧은 망설임의 시간이 흐르고 천장과 벽을 따라 순식간에 바닥에 도달한 마나가 바닥에 흐르는 피를 빨아들였다.

무려 500여 명이 죽으며 흐른 피가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리고 피를 머금은 공동의 천장과 바닥이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서태촌과 구정철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만 내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그랬다. 이미 늦었다.

마나석이 빛을 발하고 불과 3초도 안 될 짧은 시간, 이미 공동과 이어진 모든 곳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알림음이 울리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창을 확인해 주세요.

오랜만에 보는 퀘스트 메시지였다.

[돌발 퀘스트: 사혼 감옥(데스 셀) 탈출!]

[등급: SS]

[내용: 사용자 강현 님은 인술사가 펼친 사혼 감옥(SS급)에 갇혔습니다. 생존자들을 이끌고 감옥을 탈출하세요.]

[진행상태: 진행 중.]

[보상: 포인트 1,000,000. 무작위 아이템 10.]

[추가 보상: 구출 인원 1명 추가 시 10000포인트 지급.]

[현재 생존 인원: 417]

[제한시간: 23시간 59분]

[제한시간 내 탈출 실패 시 해피니스 시스템 사용자 권한이 박탈됩니다.]

“어….”

퀘스트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잠시 그대로 굳어 버렸다.

SS급 퀘스트.

현재 내 등급은 높게 쳐봐야 D급이다. 그런데 SS급 돌발 퀘스트가 떠버렸다.

퀘스트 등급이 SS 급이란 건 그만큼 클리어하기 힘들단 뜻일 테고, 그래서 그런지 보상이 어마어마했다.

‘기본보상 백만에 룰렛 10회, 추가 보상 구출 인원 1명당 만 포인트.’

일단 기본보상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스케일인데 추가 보상도 미쳤다.

생존 인원 전부 구출에 성공한다면 417만 포인트를 추가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여기까진 좋은데.’

문제는 그 밑에 쓰여 있는 제한시간과 페널티였다.

‘사용자 권한 박탈?’

퀘스트 실패 시에는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 정도는 이해했다.

이게 제한시간이 지나면 탈출할 수 없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탈출은 할 수 있더라도 사용자 권한을 박탈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용자 권한이 박탈되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박살이 난다는 것이었다.

특성과 스탯, 그리고 스킬.

시스템상점과 전용 던전.

시스템에 관한 건 모두 사라지고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각성자가 되는 거다.

이미 얻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최악을 가정하면 얻은 것들마저 잃고 아무것도 없는 알거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계좌의 잔액은 아직 넉넉했고 또 들어올 돈도 적지 않았지만.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껏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들었다.

이런 강제 퀘스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결이 달랐다.

실패하면 모든 걸 잃는다.

붉게 물든 공동.

동굴 입구 쪽으로 뛰어갔던 서태촌이 다시 공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함정이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SSS급 각성자인 그의 힘으로도 이 주술을 뚫을 수 없다는 것.

그 말을 들은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거려다.

‘탈출이 쉬웠으면 SS급 강제 퀘스트가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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