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91화 (91/202)

91. 배덕자의 후예들 (2).

“왜 안 들어오고 저러시는 거지?”

결계 밖에서 투덕거리는 서태촌과 구정철의 모습.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들의 모습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답답했다.

빤히 입구를 옆에 두고도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사령관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들의 눈에도 그 ‘입구’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감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나서야 깨달았던 이질감의 원인.

그것은 바로 동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결계를 기점으로 대칭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결계는 의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투과시켰으나 의식하고 바라보면 모든 것을 반사했다.

그렇기에 이질감을 느낀 것이었다.

내가 마나의 잔흔이라 생각했던 것은 결계를 이루고 흐르는 마나의 흐름이었고, 그 아지랑이를 기점으로 안과 밖이 나뉘었으니.

나는 그 아지랑이 사이에 있는 미세한 틈을 찾아 결계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저 또한 사령관님과 함께 결계를 넘기 전까지는 결계를 인지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들은 결계를 경험해 보았기에 결계를 인지하고 있는 듯 보이나 사령관님처럼 결계의 틈을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씨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차게 창 한번 내지르고 동굴 밖으로 튕겨 나갔던 도연우가 씩씩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저들은 사령관님처럼 ‘공간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특성: 공간시.

다른 이들에겐 없고 나에겐 있는 유일한 특이점.

그것이 저들과 나의 차이를 만들어 냈음을.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결계를 이루고 있는 마나의 흐름.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턱.

이질적인 기운의 흐름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그 손바닥 옆에 있는 건 결계의 틈. 그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입구다.

출구가 아니니 나갈 수가 없다.

그게 동굴에서 나가는 발자국이 적었던 이유다. 애초에 출구가 다른 곳에 있으니 나가는 발자국이 적을 수밖에.

아까 서태촌이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가려는 시도를 해 봤지만, 마나의 흐름이 나를 밀어냈다.

따라서 내가 들어왔던 틈을 통해 나가는 것을 불가능.

저 틈은 오롯이 입구의 기능만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다른 특성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르지.’

특성: 아공간 조작.

입구에 손을 얹은 나는 아공간 조작의 마나 회로를 떠올리며 마나를 운용했다.

아직 F급에 불과한 특성이지만 그간 인벤토리와 아공간을 청소하며 수없이 발현해 보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미 입구라는 ‘틈’이 있기에 저들이 그 틈을 볼 수만 있게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아공간 조작 특성이 발현되자 손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손을 통해 입구에 마나가 유입되자, 그에 반발하듯 손을 밀어내고자 입구가 뿜어내는 마나의 흐름이 더욱 거세졌다.

그와 함께 들리는 미세한 소음.

티딕.

그 소리를 들은 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입구에 미세한 균열이 만들어지는 것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딴 술법 따위 얼마든지 부술 수 있습니다!”

도연우의 외침에 구정철은 시큰 궁한 표정을 지었다.

“도 길드장. 자네는 이미 한번 시도했고 실패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 내 차례지.”

“그땐 제가 저 술법의 특성을 잘 몰랐을 때이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면 이번엔 분명히 부술 수 있습니다!”

나이와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억지를 부리는 도연우.

그게 바로 그가 설익었다는 증거였다.

서태촌은 구정철에게 억지를 쓰는 도연우를 마뜩잖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움찔.

무심결에 뿜어낸 살기 때문일까?

도연우가 놀란 눈으로 서태촌을 돌아봤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모자란 녀석.”

“네?”

“도진명이 네 꼴을 보면 지하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거다. 이 모자란 놈아.”

서태촌의 말에 도연우가 발끈했다.

“서 길드장님. 같은 길드장인데 말이 심하십니다.”

“말이 심한 건 네놈이지.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기회를 나눠 가졌고 그 기회를 날려 버린 건 너다. 그런데 너는 너에게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는구나.”

“어리광이라니!”

“지금 그 꼴이 어리광이 아니면 뭐지?”

“애초에 난 그따위 순번 정하기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서 길드장님.”

도연우의 말에 서태촌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그럼.”

텁.

“여기서.”

스릉.

“우리끼리.”

우우웅-.

“피를 보기라도 할까?”

환두대도를 뽑아 든 서태촌에게서 서릿발처럼 뻗어 나온 살기가 야금야금 도연우를 압박했다.

“이익!”

발끈한 도연우가 신창의 창대를 틀어쥐는 순간이었다.

“그 창. 움직이면 자네는 죽네.”

서태촌과 도연우의 사이로 구정철이 끼어들었다.

“태촌이 너도 적당히 하고. 도 길드장이 아직 어리잖아. 늙은 우리가 젊은 혈기를 이해해야 하지 않겠어?”

구정철의 말에 서태촌은 못마땅한 눈으로 도연우를 노려봤다.

제 주제도 모르고 모가지를 뻣뻣하게 세우고 노려보는 눈깔을 보자니 살심이 불끈 치솟았다.

‘제 아비도 나를 저런 눈으로 보지 못했거늘….’

아무래도 제 아비가 하지 못한 교육을 저놈에게 해 줘야 할 듯싶었다.

스윽.

환두대도를 틀어쥔 서태촌의 손이 움직이려 할 때였다.

“아무래도 내 차례는 오지 않을 모양이구나.”

구정철의 중얼거림에 서태촌은 고개를 돌려 결계를 바라봤다.

티딕.

빙판이 쪼개지는 듯한 파열음을 내며 만들어진 균열이 눈에 들어왔다.

결계가 붕괴하는 징조였다.

“하하! 이럴 줄 알았습니다. 고작 쪽바리가 펼친 결계 따위가 신창의 힘을 버틸 리가 없죠!”

득의양양한 애송이 놈의 목소리에 서태촌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놈 말대로 놈의 일격에 결계가 파괴된 것이라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것이니까.

쩌저적-.

미세하게 생성되었던 결계의 균열은 선명한 파열음을 내며 주변으로 번져갔다.

“두 분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좀 전에 하셨던 두 분 말씀대로면 이 게임은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만?”

미묘하게 말꼬리를 올리며 빈정거리는 도연우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인상을 쓸 때였다.

쨍그랑-.

마치 투명한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결계의 중앙이 깨어져 나가며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왔다.

“균열을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빨리 들어오세요!”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다급한 외침을 토해내는 사내.

강현이었다.

***

헉헉.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의 끈적한 느낌이 영 불쾌해 인상을 찡그렸다.

“자네. 이런 재주가 있었구먼? 결계에 구멍을 만들다니 대단허이. 허허.”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구정철.

그저 원래 있던 입구를 눈에 보이게 만든 것뿐이었지만, 나는 그의 장단에 맞춰줄 기력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그보다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 오더군요.”

그 비명들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무리를 해 가며 결계의 균열을 빠르게 확장하지 않았을 거다.

단지 다행인 점은 비명의 주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일까?

하지만 그마저도 기적 형님이 섞여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계의 안쪽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별 시답지 않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누구에게 우선순위가 있는 겁니까?”

도연우의 물음에 서태촌이 사납게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네놈의 기회는 이미 저 결계 밖에서 끝나지 않았던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결계는 의뢰주께서 열지 않았던가요?”

“건방을…….”

“그런 모욕적인 언사는 삼가시죠. 저도 한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서태촌 길드장님이 SSS급으로 승급하셨다고 하나 이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허….”

도연우의 말에 서태촌이 한숨을 토해 냈다.

“그거 아느냐? 네 아버지 도진명도 내 앞에서 그따위 건방진 말은 하지 못했다.”

“저는 아버지가 아니니까요.”

꾸웅.

순간 두 사람이 뿜어낸 기운이 맞부딪히며 공간이 떨렸다.

그리고 그 여파에 밀린 나는 동굴의 한쪽 구석에 짜다만 걸레처럼 널브러졌다.

‘…아니, 이 양반들이 하라는 구출은 안 하고 왜 자존심 싸움이야?’

“끙.”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통을 느껴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금식충은 여전히 발현 중이었으니까. 몸의 기력이 다해 온몸이 천근만근이라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소리였다.

“그렇게 제비뽑기해서 순서를 가리다가 기적 형님의 몸에 생채기라도 생기는 순간, 두 분은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될 겁니다.”

내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저만한 각성자들의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서로 기운을 내뿜으며 대치 중이던 두 사람도 멀거니 서서 그걸 구경하고 있던 구정철의 시선도 내게 향했다.

“아니면 세 분 모두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먼저 기적 형님을 구한다면 말이죠.”

나를 보는 그들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네까짓 게?’

하긴 저들의 머릿속에 나는 고작 E급 각성자.

제법 신기한 물건을 담고 있는 마법 주머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 저런 시선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울컥.

그래도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솟아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걸음을 움직였다.

파직!

티디딕!

서태촌과 도연우가 내뿜은 기운이 맞부딪히며 파열음을 내는 공간의 한가운데로.

찌지직.

순식간에 걸치고 있건 옷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전심전력을 다 해서 뿌리는 공격이라면 모르지만 이따위 기파 정도로는 아다만티움의 경도와 강도를 가진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만들 수 없다.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나는 그들 사이에 서서 웃었다.

“마나의 묘약.”

돌발적인 내 행동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도연우와 구정철의 몸이 움찔거렸다. 묘약의 가치를 파악한 것일 테지.

“유클리안 잎사귀 차.”

서태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그에겐 꼭 필요한 것일 테니까. 그렇지 않다면 마나의 묘약 대신 저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내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매달렸다.

명백한 비웃음.

나중에 이들과의 관계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게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결계의 틈을 만들고 결계 밖에서 빌빌거리던 세 분을 결계 안으로 들어오게 해 준 건 저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 왜 순서 타령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납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지금 이렇게 알력다툼으로 인해 시간을 지체할수록 기적 형님을 무사히 구출해 낼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구출 작전을 속행시키기 위해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물건들을 내놓지 않으면 겁박이라도 하실 참입니까? 그래서 인질의 안위 따위 관심이 없는 겁니까?”

“말이 심하군.”

언짢음이 담긴 구정철의 목소리.

“심한 건 여러분들이죠. 이건 의뢰이며 거래입니다. 그리고 의뢰주는 저고요.”

나는 잠시 말을 끊고 세 사람을 노려봤다. 한심하다는 듯이

“그런데 왜 의뢰주를 무시하는 겁니까. 그건 제가 별 볼 일 없는 E급 각성자이기 때문입니까?”

그리고 등을 돌려 동굴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러분들에게 실망입니다.”

“이보게.”

뒤에서 나를 부르는 구정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움직였다.

천 명.

그리고 S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각성자.

그들 사이에서 기적 형님을 구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저들처럼 미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찢겨 나간 옷을 대신해 경갑을 한 벌 꺼내 입었다.

어차피 싸우다 보면 다시 찢겨 나갈 테지만 벌거벗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죽여!!”

“어차피 놈은 하나다.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챙!

캉! 깡!

서걱!

“크악!”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외침과 비명 그리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울림이 점점 뚜렷하게 고막을 자극해 왔다.

‘피 냄새….’

그리고 코점막을 자극하는 비릿한 쇠 냄새.

‘내분이라도 일어난 건가?’

어쩌면 그 세 사람에게 장담했던 것처럼 내 힘으로 기적 형님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박.

나는 주변의 기척을 살피며 은밀하게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전장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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