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이선호.
친일파.
매국노.
나라를 팔아먹은 버러지의 후손.
어린 시절 이선호를 따라다니던 말들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처음엔 말뿐이었지만 나중엔 폭력이 동반되었다.
선생도, 경찰도 모두 그를 외면했다. 매국노의 후손이기에 당연히 감내해야 할 벌이라고 오히려 그를 다그쳤다.
대한민국에서 매국노의 후예는 교도소에 갇힌 범죄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니까.
분명 법적으로 연좌제는 사라졌지만, 그 굴레는 여전히 어린 이선호를 옭아매고 있었다.
매국노 이완구.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
이선호는 그의 후손이니까.
열아홉의 나이에 각성한 이선호는 복수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매국노의 후손이라며 물건을 팔지 않았던 문방구 주인.
중학교 때 좋아한다는 자신의 고백에 경멸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첫사랑.
고등학교 때 학교폭력신고를 하자 당연히 네가 감내해야 할 벌이라며 웃어넘기던 선생과 경찰까지.
각성한 그날. 이선호가 죽인 사람은 40여 명에 달했고 당연히 경찰의 추격을 받았다.
그런 이선호의 앞에 손을 내민 것은 바로 욱일회였다.
이선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욱일회가 내민 손을 잡지 않으면 기다리고 있는 건 사형대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선호는 욱일회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욱일회에 속하게 된 이선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욱일회 또한 차별이 있음을.
순수혈통의 일본인들과 자신과 같은 친일파의 후예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욱일회가 쓰다 버리는 칼로 20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이선호에게 기회가 왔다.
회주가 내민 손.
그 손은 어둠 속에서 회의 더러운 일을 전담하던 그가 양지로 나갈 기회였다.
그동안 공들여 키운 부하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고 회주의 칼인 암혈을 미끼로 판 함정이었기에 그는 그 작전이 실패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목적으로 했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대한민국의 위상은 전 세계를 떨어 울렸다.
세계 최초로 재해급 몬스터를 사냥한 나라.
세계 최초로 두 명의 SSS급 헌터를 보유한 나라.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위해 계획했던 공작은 오히려 대한민국에 날개를 달아 주었으며 이에 회주와 일본 정부는 그 책임을 모두 이선호에게 전가했다.
그 덕에 이선호는 그토록 원하던 양지는 밟아 보지도 못한 채 회주의 개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선호는 그것을 부정했다.
‘나는 회주의 개가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회주의 명령을 따르되 회주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이선호가 중얼거렸다.
“씨X. 존나게 심심하네. 어이 부대주. 뭐 재미난 이야기 아는 것 좀 없어?”
이선호의 물음에 부대주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후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대주님 조금만 참으시죠.”
여느 때처럼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 목소리에 이선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애들은?”
“쓸만한 애들로 준비시켜두었습니다.”
이선호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쓸만한 애들이라….”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신멸대를 사지로 밀어 넣은 것은 회주의 명령이었지만 자신의 결정이기도 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갈 생각이었으니 과거의 흔적은 지워 버리는 게 좋다고 판단했었으니까.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 알았다면 내리지 않을 결정이었다.
아직 신멸대가 건재했다면 회주에게 이렇게 개처럼 부려질 일도 없었을 테지.
‘어쩌면 회주는 여기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이선호는 창밖을 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욱일회에는 수많은 조직이 있다. 신멸대의 대주인 자신도 모를 만큼 수많은 조직이 점처럼 흩어져 대한민국 사회에 깔려 있다.
자신의 신멸대나 암혈의 신풍대처럼 대외적으로 드러난 조직이 있는 반면에 아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조직도 많았다.
회의 실질적인 힘은 그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조직들일 터.
개처럼 회주에게 부려지고 있는 지금도 이선호는 회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았다.
그때 차가 도로를 벗어나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턱. 스릉.
이선호는 풀어 두었던 칼을 쥐고 뽑아 칼날을 확인했다.
도신에 새겨진 물결무늬를 따라 시퍼런 예기가 일렁거렸다.
좋은 칼이다.
좋지 않을 수가 없는 칼이었다. 무려 천황이 하사한 칼이니까.
암혈은 이름까지 붙여 가며 애지중지했던 모양이지만 이선호에게 이 칼은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무라마사는 니미…. 천황이고 나발이고 X 까라 그래. 씨X.’
자신이 욱일회에서 쓰다 버리는 도구인 것처럼 천황에게 받은 이 칼도 그에겐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솔직히 천황이 줬는지 애먼 놈이 준 건지 알 게 뭐야?’
내심 그렇게 투덜거린 이선호는 다시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스릉.
그와 동시에 차가 멈춰 섰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한참 남았지만 더는 차가 들어갈 수 없기에 멈추어 선 것이었다.
“아이-씨. 안가(安家) 좀 좋은 데다 만들자니까. 아무리 음지에 있다지만 꼭 이런 산골짜기에다 안가를 만들어야 하는 거냐?”
차에서 내리자마자 투덜대기 시작하는 이선호와는 다르게 부대주는 차 뒤로 걸음을 옮겨 트렁크를 열었다.
시큼하고 꿉꿉한 토사물의 냄새가 뜨거운 김과 함께 역하게 올라왔다.
“살려….”
자신이 토해낸 토사물과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이기적.
이 더운 여름날 트렁크에 갇혀 1시간 가까이 달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연민일까?
부대주는 운전석으로 가서 물티슈를 꺼내왔다.
“으…으으. 제발. 살려….”
제정신이 아닌 듯 흐리멍덩한 눈으로 자기가 꺼낸 말조차 끝맺지 못하는 이기적.
그런 이기적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부대주가 물티슈로 이기적의 몸과 옷에 묻은 토사물 닦아 냈다.
“어차피 뒈질 양반인데 귀찮게 뭐하러 닦아 줘?”
어느새 다가온 이선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부대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기적에게 묻은 오물들을 닦아 내며 말했다.
“이자. 대주님이 들고 가실 겁니까?”
“응? 아니? 내가 왜?”
“그래서 닦는 겁니다. 어차피 제가 들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영 찜찜하면 그냥 여기서 죽이자. 귀찮게 안가까지 데리고 갈 필요 있어? 여기서 죽이나 안가에서 죽이나 어차피 그게 그건데.”
그 말에 무표정하던 부대주의 얼굴에 미세한 금이 생겼다.
“피 튀잖습니까.”
“아…. 이 차 네 차였지?”
“그리고 인적이 드물다곤 하나 혈흔을 남겨서 좋을 건 없습니다.”
이선호는 픽 하고 웃었다.
이미 수많은 흔적을 남기고 왔는데 이제 와서 혈흔 하나 추가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부대주가 차에 가진 애착은 그가 보기에도 대단했으니까. 아마 저토록 공들여 이기적을 닦는 것도 차가 더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물러선 이선호는 흘끗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색 도화지 같은 하늘에 반짝거리는 별. 그 하늘을 향해 이선호의 칼이 번갯불처럼 뻗어졌다.
“음? 무슨 일이십니까 대주님?”
토사물을 다 닦은 것인지 이기적을 어깨에 둘러멘 부대주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하루살이가 하나 있길래 베었지.”
별일 아닌 것처럼 걸음을 움직이는 이선호의 뒤를 따라 부대주가 걸음을 움직였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산중, 두 사람의 걸음 소리가 적막을 깨고 퍼져 나갔다.
***
“미친….”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
심장 어림에 새겨진 날카로운 칼자국.
납치범들의 머리 위에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놈들의 머리 위 5천 미터 상공.
설마 이 거리에서 칼침을 맞을 줄 몰랐던 터라 정말 놀랐다.
5㎞라는 거리를 격하고 날아온 검격은 강렬하게 나를 가격했고.
나는 유성처럼 떨어져 숲에 처박혔다.
바람 사냥꾼의 하품 스킬을 사용하고 있기에 가벼운 미풍에도 몸이 흔들리는데 그런 강대한 검격을 버텨낼 재간이 있나.
툭툭.
몸에 묻은 흙과 나뭇잎 따위를 털어 내며 가슴팍을 살폈다.
“금식충을 발동시켜놓지 않았으면 심장에 구멍 뚫렸겠네.”
놀랍게도 납치범의 검격은 아다만티움을 ‘베었다’.
비록 피부에 불과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질긴 금속을 베어버린 것이었다.
“중간과정이 없었습니다. 사령관님.”
“음?”
갑작스러운 씨드의 말.
당연히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간과정이 없었다…고?”
“칼을 빼고 휘두른 것은 분명하나 검격이 사령관님을 가격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날아온다는 과정이 생략되었습니다.”
“…에?”
지혜 스탯을 꽤 올렸음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아온다는 과정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검격에 맞을 수 있지?”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 그자가 칼을 휘두르는 순간 그자가 뿜어낸 검격이 사령관님의 바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렇기에 5㎞ 밖이라는 먼 거리에서 쏘아진 검격임에도 힘의 소실 없이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설마?”
“어쩌면 그자는 공간을 다룰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공간을 다룰 수 있는 S급 각성자, 대체 얼마나 사기캐인 걸까?
나는 양아치처럼 껄렁거리던 납치범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보며, 껄렁한 자보다 운전하던 자가 더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감시는?”
“1㎞ 상공에서 비가시 모드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놈들이 목적지만 파악되면 바로 후퇴시켜. 어쩌면 비가시 모드도 꿰뚫어 볼지도 몰라.”
“네. 사령관님.”
씨드의 대답을 뒤로하고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괴물이 따로 없네. 내가 만난 S급 이상 각성자가 죄다 괴물들뿐인 건지 아니면 괴물이 아닌 사람은 S급이 될 수 없는 건지 모르겠네. 젠장.”
지금껏 만나왔던 S급 이상의 각성자들 중 정상적이라 불릴 만한 사람은 월화랑의 수장인 이장현이 유일했다.
그마저도 처음 욱일회 인물들을 잡았을 때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그다지 정상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글생글 웃으며 사람 생살을 저미는 건 그때 처음 봤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잘려나간 갑옷과 셔츠를 벗어 던지고 인벤토리에서 티셔츠를 하나 꺼내입었다.
어차피 금식충 스킬을 사용 중이니 갑옷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쳤을 때 씨드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뭐?”
씨드가 추적에 실패하다니 씨드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적외선 레이더를 사용해 봤지만, 납치범들의 흔적은 이곳에서 끊겼습니다.”
이어서 떠오르는 홀로그램 화면엔 울창한 수풀로 가려진 자그마한 동굴이 출력되고 있었다.
“발자국은 동굴 안으로 향하고 있지만 보시다시피 동굴은 매우 협소하고 짧아 3명의 인원이 몸을 숨길만 한 공간은 아닙니다.”
“그런데 흔적이 끊겼다고?”
“발자국이 정확히 이곳에서 끊겼습니다.”
홀로그램으로 출력되는 화면은 정확히 동굴의 입구에서 10미터쯤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을 비추고 있었다.
확실히 그곳에서 이어져 있던 발자국들이 뚝 하니 끊겼다.
“그리고 주변의 발자국을 분석해 본 결과 저 동굴 안으로 이어진 발자국의 수는 최소 500에서 최대 1천 명입니다.”
“그게…. 말이 되나?”
“교묘하게 위장을 해 놓기는 했지만 확실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들어간 흔적은 있지만 나온 흔적은 극히 소수라는 것입니다.”
“그럼 저 동굴 안에 최하 500명의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설혹 저곳에 던전 입구가 있었다고 치더라도 SS급 레이드 던전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SS급 레이드 던전은 한번 터지면 수습할 수 없는 핵폭탄과 같다. 분명 어마어마한 자원을 품고 있는 자원의 보고와 같지만 그건 그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F~D급의 던전은 1달에 한 번, C~A급 던전은 6개월에 한 번, 그리고 S급 이상의 던전은 1년에 한 번 필수로 던전을 클리어 해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던전 브레이크라는 재앙이 펼쳐진다.
‘욱일회가 SS급 던전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구름 가오리로 테러를 일으키기 전에 먼저 던전을 터트렸겠지.’
나는 일단 씨드의 보고를 토대로 이곳의 위치와 추측 인원을 단체 메시지로 날렸다.
아까 그 검사만 해도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의 강자.
지금은 혼자서 나댈 때가 아니라 몸을 사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