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레코드 브레이커(record breaker) (3).
쏟아지는 명함 세례.
“도깨비 길드의….”
“한울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싸울아비….”
“화랑….”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경쟁적으로 명함을 건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이어지는 기자들의 외침에 묻혀 사라졌다.
“청계던전의 기록을 더는 줄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단축을 시키셨는데 비결이 뭡니까?”
“금일 청계던전을 7회나 클리어하셨는데 체력적인 부담은 없으셨습니까?”
“16분 57초라는 다시는 없을 기록을 세우셨습니다. 가장 큰 공훈자를 뽑으라면 누굴 뽑으시겠습니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즈믄나래 파티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방송을 진행하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청자 수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몰려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록을 많이 단축하긴 했지만, 고작 E급 던전 하나를 클리어했을 뿐인데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몰려든 걸까?
즈믄나래 파티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하지만 파티원들은 곧 이렇게 몰려든 기자들과 스카우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손으론 자신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었고, 카메라도 자신들을 비추고 있긴 했지만, 기자들과 스카우터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백영웅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자들과 스카우터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광장 한쪽에 마련된 작은 부스 안에서 각성자 센터의 파견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강현이 있었다.
“마나석은 직접 처분하시겠다고요?”
“네.”
“그럼 몬스터 부산물과 잡템 정도만 매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청소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액수가 산정될 테지만, 지금까지 사냥하신 총 칠 회 중 육회까지의 정산금을 말씀드리자면 1억 9,876만 원입니다.”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왔네요.”
강현의 물음에 직원은 태블릿을 조작했다.
“음. 던전 클리어 시간이 빠르시다 보니 던전 이용료 부분이 적게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안 가보셔도 되시겠습니까? 10대 길드 쪽에서도 스카우터가 온 것 같던데요.”
직원의 말에 강현은 씩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습니다. 제가 늦으면 늦을수록 안달 나는 건 저들일 테니까요.”
“아…. 그것도 그렇겠군요. 역시 주목받는 루키시라 그런지 생각이 다르시네요. 하하.”
“주목…받는 루키요?”
“아. 모르셨습니까? 지금 헌터갤이 아주 뒤집혔습니다.”
이슈 인사이드 헌터 갤러리.
그곳은 지금 센터 직원의 말처럼 즈믄나래 파티의 방송에 관한 이슈로 뒤집혀 있었다.
방송 자체가 주작이라는 글부터, 강현이 고위 각성자인데 신분 세탁하고 방송으로 돈 좀 빨아보려고 저러는 거라는 글까지.
강현에 관한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이루어진 글이 이슈 인사이드 실시간 베스트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
하여튼 그렇게 강현과 센터 직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순간에도 강현을 향한 스카우터들의 구애의 눈빛은 점점 진해져 가고 있었다.
“정산금은 제 계좌로 입금해 주십시오. 전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네요.”
기자들과 스카우터들에게 둘러싸인 파티원들의 간절한 눈빛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강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찰나.
우웅-.
강현의 손목에 채워진 헌터 와치가 묵직한 울림을 토해 냈다.
강산호 회장이었다.
‘음? 출근하기로 한 날도 아닌데 무슨 일이시지? 경매장 건 때문에 연락하신 건가?’
짧은 의문과 함께 통화를 연결한 강현은 이내 들려오는 강 회장의 목소리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강현 군. 이기적 씨가 납치되었네.”
***
덜컹거리는 차 안.
사지가 결박된 채로 트렁크에 갇힌 이기적은 불안감에 온몸이 떨려왔다.
‘대체…나를 왜?’
무슨 이유로 자신이 납치되는 것인지 지난날을 반추해 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납치를 당할 만큼 누군가에게 원한을 맺은 일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일은 며칠 전 퇴사를 하고 강현과 경매장 사업을 하기로 한 것 말고는 없을 정도였으니까.
흔들리는 트렁크 안에서 이기적은 필사적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 사람들은 누구였지?’
갑작스럽게 거실 창문을 깨고 난입해 자신을 납치한 괴한.
괴한이 거실에 난입하고 불과 수 초도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이 현관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왔고 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수는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온 이들이 더 많았으나 싸움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검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괴한은 칼질 몇 번으로 정장을 입은 세 사람의 사지를 잘라 내고 목을 베었다.
그것이 칼질이었다는 것도 피가 뿜어져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짚단처럼 피를 뿜어 내고 허물어지는 남자들 사이에서 괴한이 한 손에 일본도를 들고 서 있었으니까.
톡.
시뻘건 피가 거실의 벽과 천장을 물들이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거실이 피바다로 변했지만, 이기적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피를 모두 뒤집어썼다.
우욱.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이기적인 필사적으로 그것을 내리눌렀다.
그의 본능이 움직이면 죽는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죽는다고.
그래서 싸움이 끝날 때까지 숨 쉬는 것도 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 이 아저씨 감이 좋은 거야 운이 좋은 거야? 도망치면 그냥 썰어 버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귀찮게….”
시퍼런 예기가 번쩍이는 일본도를 칼집 안으로 집어넣은 괴한은 붉은 피가 융단처럼 깔린 거실을 지나 이기적이 앉아 있는 소파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괴한은 이기적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아저씨. 아저씨한테 두 가지 선택지가 있거든? 그러니까 아저씨가 결정해. 그냥 조용히 납치당할래? 여기서 죽을래? 참고로 나는 후자를 선호해.”
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지에 이기적은 당연히 납치당하는 쪽을 선택했고 괴한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이기적을 결박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뒈지지 괜히 자신을 귀찮게 한다.’라는 말 같지도 않은 투덜거림을 내뱉으며.
그 후 괴한의 옆구리에 끼워져 이 트렁크에 갇히기까지 어떻게 상황이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으며 허공을 가로질러 괴한이 도착한 곳엔 검은색 승용차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밖엔.
‘설마 강산호 회장과 연관된 일인가?’
불현듯 이기적의 머리에 어제 만났던 대현 그룹 왕회장 강산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강산호 회장과 원한이 있는 이들이 내가 저택에 출입하는 걸 보고 오해한 걸 수도 있어.’
재계의 살아있는 신화 강산호.
이기적은 강산호와 엮인 게 아니라면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해를 잘 풀면 괜찮을 거야. 잘….’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거실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버린 세 남자가 떠올랐다.
시뻘건 피.
생명의 기운을 잃은 공허한 눈동자.
선혈이 낭자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널브러진 장면들.
처음엔 던전 청소부로, 이후엔 팀장으로 25년이란 시간을 헌터 협회에서 일하며 수많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봐왔던 그였지만, 실제 사람이 죽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욱.”
순간 다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고.
“우웨엑!”
그 욕지기를 이번엔 참지 못했다.
“으, 으으으….”
죽은 사내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이기적을 잠식해 들어왔다.
‘어차피 죽을 건데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뒈지지.’
‘어차피 죽을 건데….’
머릿속에서 괴한의 중얼거림이 멈추지 않고 울려댔다.
“으…….”
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덜컹거리며 어딘가를 향하는 차의 트렁크 안.
이기적은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
“그게…무슨 말씀입니까? 기적 형님이 납치되다니요?”
나는 나도 모르게 강 회장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들은 그대로일세. 이기적 씨가 납치되었어. 이기적 씨를 경호하던 비현의 요원들이 연락이 끊겼네. 이기적 씨 집으로 비현을 급파했지만 경호원들의 시체 말곤 아무것도 찾지 못했….”
뚝.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진 내 귀엔 이어지는 강 회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치잇!”
자리를 박차고 부스를 벗어난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스킬 사용! 바람 사냥꾼의 하품!”
-아이템 스킬: 바람 사냥꾼의 하품 A가 사용됩니다.
“씨드!”
“네. 사령관님.”
주변에 있는 기자들이고 스카우터들이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와이어를 꺼낸 나는 그것을 허공에 흩뿌렸다.
촤르륵!
철컥.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가던 와이어가 허공을 부유하던 샤이닝 에로우에 연결되고.
둥실.
내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내 뇌파를 읽은 것일까?
쉬-이익!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샤이닝 에로우는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현이 형!!”
등 뒤에서 이해찬의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보육원을 나오고 10년.
틀어져 가던 내 인생을 바로 이끌어준 인생의 스승.
기적 형님이 납치당했다.
***
1분.
납치 소식을 들은 내가 청계던전을 떠나 기적 형님의 집에 도착하는 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빌라의 3층.
깨어져 나간 베란다 유리창이 보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한 것인지 경찰차 두 대가 빌라 앞에서 경광등 불빛을 토해내며 밀려드는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강현 군? 들리는가?”
헌터 와치에서 들려오는 강 회장의 목소리.
나는 그제야 아직 강 회장과 통화를 끊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네. 듣고 있습니다. 회장님.”
“우리 쪽에서도 납치범의 행적을 쫓고 있네. 하지만 이럴 때는 국가기관의 정보력을 빌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네.”
국가기관. 이를테면 경찰이라든가 국정원같이 합법적으로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기관들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나에겐 그들보다 더 유능한 AI가 존재한다.
‘씨드. 지금부터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형님을 납치한 놈들을 찾아. 기적 형님을 찾기 위해서라면 내게 어떤 허락도 구할 필요 없어.’
‘네 사령관님.’
나는 그렇게 지금껏 씨드를 제약하고 있던 제한을 풀었다.
허공에 뜬 채로 보이는 거실의 광경은 가관이었다.
어떻게 비현에서 경호원들의 시체는 수습한 것 같지만 거실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을 질척하게 적시고 있는 핏자국은 당시 참혹한 살인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응?’
그때 내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콩알만큼 작은 붉은 혈흔.
그 붉은 핏자국은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점점이 옥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마치 내게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씨드. 저 핏자국 보여?’
‘스크린 전환합니다. 블러드스테인 필터 적용합니다.’
순간 망막에 뿌연 무언가가 끼는 것처럼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암실 필터 적용합니다. 자외선 스캐너로 스캔합니다.’
그리고 씨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이 어두워지며 내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형광으로 빛나는 빛 덩어리들.
점점이 떨어진 형광빛은 빌라의 옥상으로, 그리고 다시 옆 건물로 이어져 있었다.
‘씨드.’
‘바로 추적 들어가겠습니다. 사령관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검고 어두운 세상에 유일하게 빛나는 형광색 조약돌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