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85화 (85/202)

85. 레코드 브레이커(record breaker) (1).

트위치 스트리밍 채널.

심해 탐사를 하는 걸 즐기는 트수인 김제훈은 요즘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던전 스트리밍 채널을 검색하던 중 어그로 가득한 방제를 하나 발견했다.

★파티 즈믄나래. 청계천 E급 던전 클리어 기록 단축 드가자-!★

시청자 수는 0명.

스트리밍 시간 3분.

이제 막 시작한 하꼬 중의 하꼬 방송이었다.

“기록 경신은 개뿔.”

김제훈은 방에 입장하며 인터넷 창을 하나 더 띄워 청계천 E급 던전의 최단 시간 기록을 확인했다.

1시간 49분.

E급 입문 던전이라 불리는 청계던전답게 F급 던전과 비슷할 정도로 클리어 타임이 짧았다.

그것도 최신 갱신된 기록이었다.

“3일 전 갱신됐네. 요즘 던전 클리어 타임이 줄어든다더니 기존기록보다 20분이나 단축됐네. 그런데 이 기록을 더 줄이겠다고? 어그로 오지네. 흐흐.”

그렇게 기록을 확인하고 다시 보니 자신 말고도 시청자가 두 명이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올리는 채팅.

└에네르귀파: 와- ㅅㅂ 미쳤다 미쳤어. 이 속도면 정말 시간 단축 가능할 듯.

└돼지코인떡상: 지금 이미 고블린 10마리쯤 잡지 않았음?

└에네르귀파: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더 죽였을 수도 있음.

└돼지코인떡상: 저 화살 뭐야? 나도 저 아이템 있으면 헌터 쌉가능 사냥이 ㅈㄴ쉽네 ㄷㄷ.

김제훈은 멍한 눈으로 스트리밍 화면을 바라봤다.

저벅저벅.

그저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한 남자.

묵직한 남자의 걸음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리고.

쉬이익-!

파공음과 함께 쏘아져 나간 은회색 화살이 허공에 푸른 궤적을 남기면.

키엑! 크르륵!

여지없이 울려 퍼지는 몬스터의 비명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저벅저벅.

남자는 걷는 것 말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끼에엑! 퍼억!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앞을 향해 걸어가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몬스터의 비명.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남성과 함께 걷는 파티원들의 표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전해져 왔다.

그저 걸음을 옮길 뿐이었지만 파티는 어느새 청계던전의 중심에서 보스 몬스터인 고블린 주술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벌써?”

깜짝 놀란 김제훈은 스트리밍 시간을 확인했다.

23분 41초.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방송을 시작했다 치더라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보스와 마주한 것이었다.

김제훈은 시선을 올려 화면을 바라봤다.

키에엑!

분노에 찬 괴성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보스 몬스터 고블린 주술사.

트수이기도 하지만 헌터 지망생인 김제훈도 잘 아는 몬스터였다.

헌터 협회에서 발행하는 가이드를 정기적으로 구독할 만큼 F급에서 D급 던전 정보에 해박한 그이기에 알 수 있었다.

검은색 나무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

“속박…!”

보통은 불과 얼음의 화살을 먼저 날리는 것으로 공격을 시작하는 고블린 주술사가 즈믄나래 파티원들에게 특이 패턴인 속박 주술을 펼치려 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나있었다.

푸푸-푹!

마치 원래 고블린 주술사가 달고 있던 장식품인 것처럼 온몸에 돋아난 10대의 화살.

“캑…. 크륵….”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해 내던 고블린 주술사는 그렇게 허무한 신음을 흘리며 무너져 내렸다.

순간 화면 아래에서 채팅 창이 주르륵 올라왔다.

└주작충감별사: 와~주작 들통났죠~E급 헌터가 고블린 주술사를 원콤에 보내버렸죠~E급 헌터 아닌 거 뽀록났죠~.

└벌레야짖어봐: 감별사 말이 ㄹㅇ임. E급 헌터 혼자 보스몹인 고블린 주술사를 원콤에 처리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됨. 일단 E급 나부랭이가 저런 무기를 사용한다는 게 말이 안 됨.

…….

…….

…….

어느새 100명 가까이 늘어난 이들 중 누군가가 주작의심을 재기했지만, 곧바로 올라온 하나의 링크에 조용해졌다.

└에네르귀파: 오늘 자 청계천 F급 던전 출입명부임. 이름은 안 나왔지만 지금 E급 헌터 5명 입장한 거 맞음. (링크)

링크를 타고 들어가 각성자 센터에서 제공한 출입명부를 확인한 김제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E급 헌터라고?”

어쩌면 D급 승급을 앞둔 헌터일지도 모르지만, E급 헌터라는 건 확실해진 상황.

김제훈은 가만히 스트리밍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방송은 종료되어 시커먼 화면만 출력되고 있었지만, 그 아래 표시된 스트리밍 시간은 확인할 수 있었다.

25분 17초.

기존기록 1시간 49분에서 무려 1시간 24분을 단축한 기록이었다.

“쩐다…….”

어쩌면 두 번 다시 깨어지지 않을 기록이 세워지는 것을 본 김제훈은 심장이 미친 것처럼 뛰는 것을 느꼈다.

압도적인 강함으로 몬스터를 학살하는 헌터의 모습.

자신이 되고자 했던 이상적인 헌터가 그곳에 있었다.

아직 채널을 빠져나간 시청자 중에 E급에서 고인 썩은 물이네 어떠네 하는 채팅이 올라왔지만, 그건 정말 ‘헌알못’이나 할 말이었다.

각성자는 매년 1회 의무적으로 등급 측정을 하게 되어 있기에 고여 봐야 1년에 불과하니까.

“즈믄나래 파티….”

김제훈은 열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채널에 쓰여 있는 파티 이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즈믄나래 TV의 방송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

백영웅은 던전을 벗어나는 강현의 등을 보며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지? 같은 E급 헌터가 맞긴 한 걸까?’

분명 파티원 정보공유로 각성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강현이 보여 주는 무력은 같은 E급 헌터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강현이 보여 준 압도적인 강함은 무모함이라고 생각했던 강현의 행동과 이해찬의 맹목적인 믿음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염동력 같은 능력인 걸까?’

10개의 화살을 수족처럼 부리며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던전을 거닐던 강현의 모습은 염동력을 각성한 헌터를 떠올리게 했다.

힐끗.

시선을 돌려 파티원들을 돌아보니 같이 파티에 합류한 이루미와 채민하도 생각이 복잡한 얼굴이었다.

하긴 그들도 같은 등급 안에서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강현의 뒤를 따라 던전을 빠져나오자 강현은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빠르게 강해질 겁니다. 고작 E등급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어찌 보면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그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렸다.

백영웅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껏 다른 이들과 사냥하며 스스로 자신의 실력이 뒤처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강현의 사냥을 지켜본 후 받은 충격은 더욱 거대했다.

스스로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작 각성한 지 3개월도 안 된 이에게 추월당해, 행여 그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닐지 걱정을 하는 자신이.

백영웅이 고개를 숙였다.

알록달록한 광장의 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마치 벌떼의 날갯짓처럼 그의 귓가를 시끄럽게 어지럽혔다.

‘또다시 짐덩이 취급을 당하는 건가.’

같은 파티원들에게 이용당하다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가 그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가 욱신거리며 아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 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소음을 뚫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의 고막에 때려 박히는 강현의 목소리.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빠르게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강현의 눈이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 겁니다. 제 사냥 스타일은 보시다시피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강현.

“아-. 신이시여-! 정녕 좋은 날은 이대로 끝인 겁니까-?”

연극 톤의 목소리로 대사를 읊듯 말을 하는 이해찬의 입꼬리도 말려 올라갔다.

뭔가 기대가 가득한듯한 눈빛.

그 눈빛을 받은 강현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제 목표는 모든 파티원이 3개월 안에 C급으로 승급하는 겁니다.”

순간 백영웅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3개월 안에 E급 헌터가 C급으로 승급을 한단 말인가?

그건 여태껏 정립되어온 던전 사냥에 대한 상식을 부수는 말과도 같았다.

등급이 오를수록 다음 등급 업을 위해 필요한 마나의 절댓값은 더욱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 절댓값을 채우기 위해 헌터들은 더 높은 등급의 던전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사냥한다.

등급이 오를수록 던전의 넓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클리어를 하기 위해선 그 시간도 늘어날 수밖엔 없다.

그렇기에 보통 F급에서 E급으로 승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 E급에서 D급으로 승급하는 데는 1년, D급에서 C급은 2년의 세월이 걸리는 게 평균적이다.

강현의 말은 최대 3년의 세월을 3개월로 단축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허언증 환자라 욕해도 할 말이 없을 만한 발언.

하지만 백영웅은 왠지 강현의 그 말에 믿음이 갔다.

“제가.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최소한 던전 안에서만큼은 제 말에 완벽하게 복종해 주길 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3개월 후엔 여러분들은 C등급 헌터가 되어 있을 겁니다.”

“하. 하하하.”

백영웅은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분명 사기꾼들이나 할 법한 말을 들었음에도. 놀랍게도 그 말이 사실이 될 것 같아서.

뭔가 믿음이 가는 목소리도, 놀라운 화술을 지닌 것도 아닌데 강현의 말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강현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강현은 파티원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하며 말을 하면서도 전혀 그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자기가 그것을 해낼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백영웅은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백영웅이 웃음을 멈추고 강현에게 말했다.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 약속,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단단한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강현은 다시 한번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어느새 백영웅의 옆에 다가온 이해찬이 장난꾸러기 악동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해요. 영웅이 형. 이제는 외롭지 않겠네요.”

“삼 개월 후에 C등급 헌터가 될 수 있다면 지옥이라도 가야죠.”

“오오! 영웅이 형- 역시 상남자-!”

이해찬과 백영웅이 그렇게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강현은 남은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두 분은?”

고민이 역력한 이루미와 뭔가를 결심한 듯한 눈으로 강현의 눈을 마주하는 채민하.

강현의 시선을 받은 이루미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채민하가 입을 열었다.

“저, 저도 할래요!”

평상시 그녀와는 다른 격앙된 채민하의 목소리.

채민하는 돈만큼이나 강해지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고 강현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마나 중독에 걸린 지 6개월이 넘은 동생.

마법 치료와 힐링 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는 동생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선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도 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강해지더라도 치료방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0에 수렴한다.

수많은 고위급 헌터 중 누군가 마나 중독의 치료방법을 찾았다면 이미 그 헌터는 억만장자가 되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채민하의 눈빛은 어떠한 열망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채민하의 그런 열망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럼….”

모두의 시선이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짓씹고 있는 이루미에게 향했다.

이마를 찌푸린 채 고민을 하고 있던 이루미는 다른 파티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 해! 하면 되잖아. 근데 정말 던전 안에서만이에요! 사생활에 개입하는 건 정말 사절이에요!”

여전히 예민한 성격이 조금 거슬렸지만 명령체계가 명확해지기 전이기 때문에 강현은 넘어가기로 했다.

한편, 전 파티의 파티장이 그녀의 사치스러운 사생활에 개입했기에 그녀가 이전 파티에서 탈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이 형 명령에 잘 따르겠다고 해 놓고 또 막 토 달고 그러면 안 돼요. 누나.”

이해찬의 말에 이루미가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쫌! 잔소리 좀 그만해! 두 달 못 본 사이에 잔소리만 늘었어! 아주!”

짜증 어린 그녀의 외침을 뒤로하고 강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정말 파티사냥다운 사냥을 할 시간이었다.

이들 모두를 수족처럼 다루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