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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84화 (84/202)

84. 업적 상점.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

흥부 놀부 이후에는 끊긴 줄만 알았던 그 선행의 이야기가 나에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선업 포인트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착한 일을 한 뒤 오픈된 업적 상점은 내게 큰 고민을 가져다줬다.

“어떤 걸 골라야 하는 거냐?”

[업적 상점]

본 상점은 이용자의 레벨에 맞는 특성을 추천해 드리며, 사용자는 선업 포인트를 소모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한번 구매하신 특성은 환불이 불가하니 구매에 유의해 주십시오.

[특성 카탈로그]

위대한 초인 F-200,000P

방구석 여포 E-210,000P

선행 F-190,000P

이 구역의 미친X E-350,000P

승자독식 E-420,000P

카탈로그가 보여주는 특성은 다섯 개, 하지만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문구는 그 아래 있는 것이었다.

본 카탈로그는 한 사용자에 한해 단 한 번만 지급되며 추천된 특성 중 단 하나만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한 사용자에게 단 한 번만 지급된다는 말은 두 번 다시 같은 특성을 담고 있는 카탈로그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고.

추천된 특성 중 하나만 구매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네 가지 특성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특성의 면면은 이러했다.

위대한 초인 F-200,000P

└초인의 기틀을 마련한다. 해당 특성은 일회용이며 특성을 습득하는 즉시 사용자가 가진 스탯을 영구적으로 두 배 증가시킨다.

방구석 여포 E-210,000P

└특정 공간에 한해 여포와 같은 무력을 지닐 수 있다. 힘, 민첩, 체력 스탯이 열 배 증가하며 발현 시 초당 20의 마력을 소모한다. 최초 1회에 한하여 사용자는 특정 공간을 지정할 수 있다.

선행(善行) F-190,000P

└선행을 베풀수록 보너스 스탯이 지급된다.

이 구역의 미친X E-350,000P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광전사(狂戰士) 스킬이 발동된다. 스킬의 지속시간은 사용자가 지닌 원래 체력에 비례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

승자독식 E-420,000P

└특정 상대와 대결을 벌여 승리 시 상대의 스킬과 특성 그리고 스탯을 빼앗아 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패배 시 스킬과 특성 그리고 스탯을 상대에게 빼앗긴다.

*특성 발현 시 상대의 동의를 얻어야 특성이 발현된다.

다섯 개의 특성 하나하나가 지금 내가 지닌 특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지닌 특성은…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8)

공간시 F (LV8)

아공간 조작 F (LV9)

아공간을 청소할 때나 발현되는 특성들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요 며칠은 사냥과 청소를 하지 못해 성장이 멈춰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 관련 특성을 습득할 수 있다는 건 내 등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았다.

‘위대한 초인과 방구석 여포 둘 다 탐이 나는데 하나밖에 구매를 못 하니 아쉽네…. 쩝.’

특히 위대한 초인과 방구석 여포의 시너지는 나를 두 단계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특성이었기에 정말 탐이 났지만, 문제는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특성 중 구매할 수 있는 특성은 오직 한 개뿐이라는 점이었다.

위대한 초인과 방구석 여포 두 개의 특성을 모두 구매할 수 없으니 단일 특성으로 가장 필요한 특성을 골라야 했다.

솔직히 모든 특성이 욕심이 났다. 어느 하나도 버릴만한 특성이 있었다면 고민이 덜 했을 테지만 그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씨드. 네 생각에 어떤 특성이 내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아?”

“저는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내용을 추측해 보건대 지금 사령관님께 가장 도움이 될 특성은 선행 특성일 것 같습니다.”

씨드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카탈로그의 다섯 가지 특성 중 가장 별것 없어 보이는 선행 특성을 추천했으니까.

하지만 그 이유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들을 보면 지구인들의 관점에서 선행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이는 시스템이 유도한 바도 없지 않아 있으나 결과적으로 사령관님이 택하신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여 단기적인 시선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선행 특성이 사령관님께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도 시야 한쪽 구석에서 올라가는 해피 포인트 메시지를 바라봤다.

-김기성 님이….

-표기훈 님이….

-….

선행 특성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보너스 스탯을 지급해 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보너스 스탯을 얼마를 주던 씨드 말대로 단기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다른 특성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선행 특성이 확실한 이득일 것은 명확했다.

이 지구엔 80억에 달하는 인류가 살고 있으니까.

“즉. 특성의 사용 대상이 80억이나 있는 선행 특성이 성장에 유리하다는 거지.”

“맞습니다. 사령관님.”

“그럼 만약 단기적으로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건 특성의 효과들이 다양해서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선택을 유보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사령관님.”

씨드의 말대로 특성의 효과는 다양했다.

위대한 초인 특성은 바로 스탯을 두 배로 뻥튀기시켜 주니 당장 스탯 업은 확실하지만, 미래가 없다.

방구석 여포 특성은 특정 공간을 지정하면 열 배나 뻥튀기된 스탯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일례로 전용 던전을 특정 공간으로 지정하면 청소를 위해 아공간에 들어갈 때 원하는 순간에 열 배의 스탯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거였다.

물론 초당 20이라는 무지막지한 마력 소모를 생각하면 지금은 고작 25초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이 구역의 미친X.

이 특성은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 광전사 스킬을 발동시켜 목숨을 부지하게 해 주는 특성인 것 같다.

분명 구사일생의 상황을 대비한 보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광전사 스킬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져야만 발동된다는 발동 조건도 문제였고.

승자독식의 특성은 일기토에서나 쓸 특성이었는데 나의 승리가 확실히 보장될 때나 쓸법한 특성이었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형이랄까?

“하아…. 어렵네.”

업적 상점이 열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특성 선택을 두고 고민을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래도 씨드의 말처럼 좀 더 고민을 해 보는 게 좋을 듯했다.

업적 상점이 이대로 계속 유지될지 이번처럼 특정한 이벤트가 있어야 열리는 건지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이니까.

벌써 새벽 3시. 내일 오전에 파티사냥을 예약해둔 상황이니 이젠 자야 할 시간이다.

나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씨드에게 부탁했다.

“씨드. 불 좀 꺼줘.”

“네. 사령관님.”

‘달칵’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확실히 씨드는 이제 내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던전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

“그 복장으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요?”

청계던전 입구 앞.

해찬이 녀석이 놀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후줄근한 경갑 하나 걸치고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으니 녀석이 황당해할 법도 했다.

녀석의 뒤에 있던 다른 파티원들도 나를 미친놈 보듯이 바라봤다.

심지어 게이트 키퍼들조차도.

하지만 무시했다.

“형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따라와.”

그렇게 난 다른 이들보다 먼저 포탈을 통과해 던전에 들어섰다.

이 또한 입장 순서를 무시한 행위다. 던전 입장은 탱커가 먼저라는 공식이 국룰이니까.

그렇지만 내겐 전천후 만능 레이더인 씨드가 있으므로 괜찮았다.

만일 주변에 몬스터가 있다면 씨드가 먼저 감지하고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놈을 요격할 테니까.

거기다 나도 감각 영역을 활성화한 상태였고.

‘현 위치 반경 100m 이내엔 몬스터가 없습니다. 사령관님.’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들려온 씨드의 보고와 내 감각 영역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전을 확인한 나는 입구 근처에 서서 파티원들을 기다렸다.

원래라면 탱커와 검사가 바로 따라 들어왔을 테지만 입장이 늦는 걸 보니 뭔가 다툼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제대로 된 장비라고는 크로스보우 하나 딸랑 들고 던전에 들어가 버린 파티 리더를 믿고 목숨을 맡기기는 어려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는 내가 파티원들에게 주는 마지막 테스트와 같은 것이었다.

아직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았기에 치르는 테스트.

그리고 그들은 테스트를 통과했다.

중갑을 입은 채 포탈을 넘어오는 백영웅의 뒤로 들어서는 파티원들.

투구를 쓴 백영웅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이루미와 채민하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어떻게 설득을 한 모양이네.’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이해찬을 노려보는 걸 보니 해찬이 녀석이 이들을 설득한 모양이었다.

“한 열흘밖에 안 됐는데 되게 오랜만에 형하고 같이 사냥을 하는 것 같아요. 헤헤.”

해맑게 웃는 녀석의 얼굴.

나는 피식 웃고는 시선을 파티원들에게 돌렸다. 긴장과 불만이 역력한 얼굴들.

전혀 상반된 해찬과 파티원들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이번 사냥은 저 혼자 할 테니 다른 분들은 그냥 지켜보시면 됩니다.”

“어? 오늘은 저도 그냥 형 버스 타면 되는 거예요?”

“물론, 첫 사냥에 한해서는 너도 그냥 지켜보면 돼.”

그때 해찬과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루미가 뾰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무슨 이존(二尊)이야, 뭐야. 대체 뭔 자신감이래?”

이존(二尊).

요즘 구정철과 서태촌에게 붙은 새로운 별호였다.

전 세계에 단 다섯뿐인 SSS등급의 헌터. 그들을 향한 경외심을 담아 만들어진 새로운 별호.

이루미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분명 그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각성자의 예민한 청각에 들리기엔 충분한 크기의 목소리.

“누나. 던전 들어오기 전에 약속했잖아요. 제발 좀….”

“아, 알았어. 이번 한 번은 네가 말했던 대로 그냥 지켜볼게.”

이해찬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루미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불퉁한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걸 보니 뭔가 협박이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백영웅의 표정은 모르겠지만 채민하의 얼굴도 이루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불만 어린 표정이 곧 바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내가 가진 능력 중 한 가지를 오픈할 생각이니까.

그렇게 파티원들의 면면을 확인한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야구공처럼 둥근 아이템 여섯 개를 하늘에 흩뿌렸다.

“어? 형 이거 MC 캠이에요? 와- 이거 주문 밀려서 예약해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던데 어떻게 구하셨어요?”

놀란 얼굴로 내가 흩뿌린 스파이캠을 바라보는 해찬이와 파티원들.

스파이캠을 대현 전자의 MC 캠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요즘 던전 개인방송으로 부수입 올리는 파티들 많다길래 나도 어렵게 구했어.”

“오- 정말요? 그럼 오늘부터 우리 파티도 방송 타는 거예요?”

한껏 신이 난 얼굴의 해찬.

하지만 조심스러운 목소리 하나가 반론을 제기해왔다.

“파티장님. 저희는 촬영에 동의한 적이….”

백영웅이었다.

“이따 나가서 계약서를 작성할 테지만 방송으로 얻은 수익은 정확하게 20%씩 배분할 겁니다.”

반대의 의견을 내비치던 그의 목소리는 이어진 내 말에 급선회했다.

“하하하. 역시 파티의 리더답게 명쾌한 수익 배분이십니다!”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트리는 백영웅. 다른 두 사람도 수익 배분에 관해선 마음에 들었는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채널명은 뭐예요 형? 파티 이름 같은 것도 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개인방송 보니까 각자 파티 명도 있고 그러던데?”

왠지 들뜬 듯한 해찬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샤이닝 에로우를 꺼내 들었다.

“파티명 내가 지었어. 즈믄나래라고.”

“즈믄나래? 그게 무슨 뜻인가요? 뒤에는 연예인 이름인가?”

이해찬의 말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순우리말. 천 개의 날개.”

내 대답에 이해찬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멋지네요! 천 개의 날개라니.”

순우리말로 지은 파티 명에 해찬은 두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날개가 천 개나 되는 거….”

그러다 문득 내 손에 들린 샤이닝 에로우를 확인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형, 그건 그동안 못 보던 화살이네요? 저번에 본 크로스보우용 화살은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 새로 구매하신 거예요?”

그동안 해찬과 사냥하며 사용했던 크로스보우용 화살보다 긴 샤이닝 에로우에 의문을 표하는 해찬.

나는 녀석을 보며 씩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미있는 거 보여 줄까?”

“네?”

‘이형이 왜 이러지?’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해찬의 눈은 잠시 후 이내 휘둥그레졌다.

평범한 화살인 줄로만 알았던 샤이닝 에로우가 눈앞에서 떠올랐으니까.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는 열 대의 화살.

비가시 모드로 이미 허공에 떠 있는 샤이닝 에로우가 15대가 더 있지만, 오늘은 10대만 공개하기로 했다.

파티명 즈믄나래.

채널명 즈믄나래 TV.

내가 오늘 이렇게 생방송으로 내 전력의 일부를 드러내는 이유.

오늘부터 나는 모든 E급 던전의 클리어 기록을 갈아치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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