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가뭄 (1).
“그게 왜 우리 탓입니까?!”
텅!
국가위기관리 센터장 이호영은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호영 센터장. 공식 회의 석상입니다. 자중하세요.”
“의장님!”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구름 가오리를 처치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 아니오. 그러니 국가 위기관리 센터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책임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최의원! 우리는 대응 매뉴얼에 따라 국가 위기상황에 대처했을 뿐이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임을 묻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소리를 치는 이호영. 그런 이호영을 보며 최창식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도 국가 위기상황입니다. 이호영 센터장. 북부는 지금 비가 안 와서 농작물들이 말라 죽어가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왜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홍수와 가뭄에 대한 대비는 각 지자체의 책임입니다!”
이호영의 말에 최창식은 맞는 말을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지자체의 책임이죠. 그런데 변수가 생겼잖습니까. 구름 가오리가 등장하고 70년간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장마 주기가 바뀌었단 말입니다. 아니. 이제는 장마라는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르죠. 누가 구름 가오리를 잡아버린 덕에 말입니다.”
지난 70년.
습관처럼 준비했던 구름 가오리에 대한 대비가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물론 과학계 일각에서는 지구의 자연계 메커니즘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단지 주장일 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당장의 논의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최창식의 눈을 직시하며 이호영은 말을 이었다.
“그럼 수도 서울이 수몰되도록 그냥 놔뒀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려 4조 4천억 원입니다. 세금을 제외하고 1조 원이 넘는 돈이 각각 수도방위사령부와 국가위기관리 센터에 들어갔어요.”
“그건 적법한 절차대로…!”
“네. 적법한 절차지요. 국가기관의 몬스터 처치에 관한 조항에 국가기관이 몬스터 처치 시 세금을 제외한 금액은 해당 기관에서 유용하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있다는 건 여기 있는 모든 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이번 가뭄 해갈에 자금지원을 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는 것 아닙니까.”
뿌득-!
이호영은 이가 갈렸다. 자연스럽게 좋은 말이 나갈 수 없었다.
“지금 이게 부탁입니까? 제 귀에는 협박으로 들리는데 말입니다.”
지금 최창식은 칼만 안 들었다뿐이지 숫제 돈을 내놓으라 협박을 하고 있었으니까.
“협박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그리 무섭게 하십니까.”
“그럼 감사를 하겠다는 게 협박이 아니면 뭡니까?”
이호영의 말에 최창식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구름 가오리 사냥에 연관된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닌데 감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마치 함정에 걸려든 토끼를 바라보는 여우처럼 최창식의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가 맺혔다.
“굳이 지금 이 자리에서 질문하자면, 왜 싸울아비와 화랑은 갑자기 구름 가오리를 공격한 겁니까?”
“…그건, 기밀 사항입니다.”
이호영은 왜 그곳에서 구름 가오리와의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욱일회라는 테러 단체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단체고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안보상 기밀 사항이니까.
“그러니까 그 기밀 사항이 뭔지 알기 위해서 감사를 진행하는 겁니다. 이호영 센터장님. 국민은 이번 사태의 자초지종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최창식의 말에 이호영의 이마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했지만, 이 역시 돈을 내놓으라는 압박이었으니까.
“의문점은 그것 하나가 아닙니다. 싸울아비가 25%, 화랑이 25%의 지분을 가져갔는데. 이 강현이라는 자는 왜 10%나 되는 지분을 가져간 겁니까?”
“…그것도 기밀 사항입니다.”
강현에 관한 것도 기밀이었다. 그 또한 욱일회와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거기에 비현이 건네준 정보에 따르면 강현의 능력은 국가의 보물을 찾는 데 크게 도움이 될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젠장. 대현의 강산호 회장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기증한 게 강현이라는 사실을 공개할 수도 없고….’
점점 더 굳어지는 이호영의 얼굴, 그걸 바라보는 최창식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물론 그렇겠지요. 아무리 봐도 이번 일의 후속처리에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이러니 감사를 진행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감사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겠지요.”
승자의 미소를 짓는 최창식.
“대통령께서 허락하셨습니까?”
이호영은 이 모든 경위를 보고받은 대통령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 일개 국회의원이 왈가왈부할 계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호영의 마지막 희망을 비웃듯 최창식은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통령께서는 이 회의의 결과에 따라 결정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구름 가오리 사냥으로 얻은 예산을 토해 내던가, 아니면 감사를 받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소리였다.
임기 말, 슬슬 레임덕이 오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몰랐다.
이호영은 느물거리는 최창식의 면상을 보며 ‘뿌드득’ 이를 갈았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느끼한 얼굴로 미소짓는 최창식과 그의 말에 동조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국방위원들.
그들이 원하는 건 가뭄에 대한 대책이 아니었다.
국가위기관리 센터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가져간 어마어마한 경매수익금.
그것을 나눠 주라는 이야기였다.
가뭄에 한숨 쉬는 농민들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호영은 알고 있었다.
그 돈은 농민들이 아니라 저놈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갈 거라는걸.
***
가뭄.
원래라면 구름 가오리가 지나가고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가 사라지자 대한민국엔 비상이 걸렸다.
폭우를 대비해 방류를 시작했던 댐과 저수지의 수문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수위는 평년대비 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에 내려야 할 비가 내리지 않으니 논과 밭의 농작물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 말의 햇빛은 그것을 가속하고 있었다.
지자체에서는 급수차와 살수차를 동원해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하고 있지만, 수원지가 말라버리는 통에 이제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태풍이 구름을 몰고 오기 전에 농작물들이 모두 고사할 판.
아이러니하게도 구름 가오리라는 SSS급 몬스터가 사라지자 가뭄이 찾아온 것이었다.
이는 자연재해이기도 했지만, 인재(人災)이기도 했다.
구름 가오리가 지나가고 난 후에 당연히 장마가 시작될 거라 예상했던 지자체에서 미리 홍수를 대비해 댐과 저수지의 물을 방류해 버렸고.
구름 가오리가 처치되자 이미 비워버린 댐과 저수지를 채울 길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나마 구름 가오리가 먹구름을 몰고 올라왔던 남부지방은 괜찮았지만, 경기도 위쪽의 북부지방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경기 이북 지방 농작물이 말라 죽어 간다!》
《구름 가오리가 사라지고 찾아온 극심한 가뭄 정부의 해결책은?》
《수도권은 찬사! 북 3도는 원망! 싸울아비와 화랑을 향한 각기 다른 목소리.》
《함경도 농민, 올해 농사는 망했다. 한탄.》
《도깨비 길드 소속 수(水) 계열 마법사들 가뭄 지역으로 향해.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파티원들과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드론을 기다리고 있던 강현은 옥외전광판 한가득 떠오른 뉴스에 얼굴을 굳혔다.
***
‘나비효과 같은 건가?’
분명 구름 가오리를 사냥한 것은 잘한 일이 맞았다.
하지만 그 일이 이런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거라곤 나는 물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싸울아비와 화랑 그리고 국가 위기관리 센터를 찬양하던 기사는 어느덧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두 길드와 정부를 성토하는 기사들이 채웠다.
경기도민과 서울시민 합이 2천만.
수도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대가로 대한민국 북부는 심각한 가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거 잘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름 가오리가 올라오기 전 라그라주의 씨앗과 함께 묻은 이프리안의 물벼룩은 약 1000마리.
한 마리당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양은 10만 톤이니 어지간한 중소 도시의 하루 물 소비량과 맞먹는다.
‘남부지방은 구름 가오리가 올라오면서 뿌린 비 때문에 가뭄이 심하지는 않다고 했지?’
그렇다면 문제는 북부지방이다.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당장 일상생활에 쓸 물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하니 상황이 심각한 게 맞았다.
헌터 와치를 조작해 불렀던 드론을 취소하고 씨드에게 지도 검색을 명령했다.
‘씨드. 북부지방에 있는 저수지와 댐들을 지도에 표시 좀 해 줘.’
‘네 사령관님.’
전광판에는 환갑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가뭄에 쩍 갈라진 논바닥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장면이 떠올라 있었다.
《어느 농민의 눈물》
그 영상에 달린 자막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모르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발품을 좀 파는 게 대수일까?
강산호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개인용 드론 좀 빌려야 할 것 같았다.
발품을 팔더라도 이왕이면 빠른 게 좋지 않겠는가.
한반도가 좁다고 하나 북부 세 개 도는 대한민국의 절반이 넘는 면적을 차지하니까.
하지만 드론을 타고 이동한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
“허허허.”
강현과 통화를 끝낸 강산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친구로구먼. 조금은 참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까면 깔수록 새로운 껍질이 나와.”
강산호의 통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켰다가 돌아온 황 집사가 물었다.
“강현 군 말씀입니까?”
“그래. 그 친구가 이번에 북부지방에 찾아온 가뭄을 해결하려고 한다는구먼.”
“…가뭄을 말입니까?”
강산호의 말에 황 집사는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재해와 같은 가뭄을 일개 개인이 해결하겠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나도 다른 이가 그리 말했다면 자네처럼 믿지 않았을걸세. 하지만 강현 그 친구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지 않나?”
그 말에 황 집사는 거대한 나무를 떠올렸다.
구름 가오리와 싸움 중에 순식간에 자라난 거목 말이다.
강현을 지켜보던 비현의 보고 대로라면 아침나절 동안 비를 맞으며 무언가를 심었다고 했으니 분명 강현이 행한 일일 터다.
번개를 잡아먹고 자라는 나무라니.
40여 년간 뒷세계의 정보를 취급했던 황 집사조차도 생전 처음 보는 나무였다.
“회장님 말씀대로 왠지 강현 군이라면 가뭄을 해결할 수 있을 것도 같군요.”
“자네 생각에도 그렇지? 참…. 겪으면 겪을수록 신비로운 친구란 말일세. 평범하지가 않아.”
“그간 강현 군의 행적을 보면 기인(奇人)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긴 합니다.”
황 집사의 말에 강산호는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기인이라…. 그래. 기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지.”
“그런데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욱일회가 아직 강현 군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 이야기를 했다네. 그 친구도 알고 있더군.”
강산호의 말에 황 집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면서도 자신을 노출시키며 단독 행동을 한단 말입니까?”
“그 친구는 이리 말하더군. 어차피 자신을 노릴 놈들이라면 자기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놈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황 집사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구름 가오리를 이용한 테러.
그저 의심일 뿐이지만 황 집사는 욱일회에서 구름 가오리의 이동 경로를 임의로 조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구름 가오리는 마치 목표물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찾아왔고 신풍대 대주 암혈이라는 놈의 머리 위로 벼락을 떨어트렸더랬다.
마치 놈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만일 그런 일이 저택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비현의 힘만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리였다.
신풍대와 신멸대 거의 600에 가까운 인원을 미끼로 던져가며 유도한 함정이었다.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함정.
저택에 남으라고 했던 강산호 회장의 제안을 강현이 받아들이고, 신풍대와 신멸대가 이곳으로 들이닥쳤다면 비현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거기다 구름 가오리라니.
그야말로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재앙이 이곳에서 펼쳐졌을 것이다.
“확실히 강현 군이라면 북부지방의 가뭄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렇지? 근거는 없지만 믿음이 가는 친구야. 지켜보면 무언가를 해낼 것 같은 믿음 말이야.”
강 회장의 중얼거림에 황 집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번개를 흡수하는 나무. 홍수를 막은 물벼룩.
그날 강현이 보여줬던 것 중에 뭐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우리도 준비를 좀 해야 할 듯하네.”
“어떤 준비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강현 그 친구가 판을 벌이면 우리도 숟가락 좀 얹어야 할 것 아닌가. 북부지방 구호물자 좀 준비하게.”
지금 대현 그룹의 이미지는 거의 국민 기업 수준이다.
자수성가의 표본.
독립투사의 후손.
훈민정음 주영본 기증.
이번에 강 회장이 추진한 MC 캠과 DH 미디어 사업으로 인해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을 보유했다는 이미지마저 얻었다.
거기에 이번 북부 가뭄 해결에 한 손을 거든다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대현을 욕하면 매국노 취급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네 회장님.”
강산호의 뜻을 이해한 황 집사가 일 처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그래 이번엔 또 어떤 기적을 보여줄 셈인가?”
강산호는 강현에게 보낸 드론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며 기대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강 회장에게 강현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호사가들이 불가능이라 말했던 사업들을 성공시키며 지금의 대현을 만들어 낸 자신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