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면접.
코어를 부수는 것으로 던전을 클리어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남한산 던전에서 얻은 게 많았다.
미믹이 마나석이나 아이템을 드랍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해를 본 느낌은 없었다.
적은 양이지만 경험치를 얻었고 울티아의 정원에 입장해 뇌기 스탯을 얻었다.
파직.
‘틱’이 아니라 ‘파직’이다.
뇌기 스탯을 얻은 후 뇌신일체로 만들어 내는 전압과 전류의 양이 늘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일회용 라이터에서 가스레인지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
파직.
나는 뇌신일체 스킬을 사용하며 그 마나가 흐르는 느낌을 기억했다.
그리고 기억한 마나 회로를 따라 마나를 흘려보냈다.
피식. 픽.
하지만 마나 회로가 틀렸는지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마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파직.
다시 뇌신일체를 사용하고 그 회로를 기억하려 노력했다.
픽.
다시 허공으로 흩어지는 마나.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몸으로 깨닫지 못한 힘이라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크롤러를 상대하면서 충분히 깨닫지 않았던가.
이는 보통 각성자와 내가 스킬을 익히는 방식이 다르기에 생기는 차이였다.
일반적인 각성자들은 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스킬을 얻는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몸 안에 그려진 마나 회로로 마나를 흘려 넣음으로써 스킬을 사용하고 마나 양으로 그 위력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시스템에 의해 스킬을 익힌다.
이는 분명 장점이 있지만, 단점 또한 명확하다.
바로 스킬의 위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과 전투 시에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으로 스킬 명을 외치는 것보단 났지만….’
별것 아닌 작은 차이 같지만, 생사가 오가는 찰나의 순간에 그것을 의식한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크롤러와의 싸움에서 깨달았다.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시스템으로 인해 남들보다 편하게 다양한 스킬을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 귀찮음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파직. 푸식.
파직. 푸식….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과 마나 물약을 소모한 효과가 나타났다.
파직. 파직. 빠지직.
머리는 뇌신일체의 마나 회로를 또렷하게 기억했고.
빠지지지직!
-스킬: 뇌신일체 F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 스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뇌신일체 F (LV1)→뇌신일체 F (LV2)
-뇌신일체 F (LV2)→뇌신일체 F (LV3)
-…….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스킬의 레벨도 올랐고 마나 회로에 집어넣은 마나 양을 조절해 발생시키는 전기의 강도 또한 임의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뇌신일체는 이쯤 하면 됐고. 남은 건 이건가? 일단 습득하기는 했는데…. 쩝.”
상태창을 열어 스킬 목록을 확인하던 나는 금식충 스킬을 보고 쓰게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
현재 흡수한 금속: 2/3
└아다만티움: 289시간 27분
└청동: 1시간 02분
스킬 각성: 난 아이템도 먹어.
액티브 스킬이 내장된 금속류 아이템을 흡수해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흡수 스킬
└패력(覇力): 한 시간 동안 힘이 523 증가한다. (9/10)
└미확인 포털(Unidentified Portal):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포털을 생성한다. (10/10)
청동 미믹을 흡수하고 얻은 미확인 포털이라는 스킬은 울티아의 정원으로 갈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포탈을 생성한다는 건 말 그대로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아쉽지만 이 스킬은 목숨이 위급한 순간이라면 모를까 쓸 일이 없을 듯했다.
***
다음날 서울의 한 카페.
“어! 현이 형 여기에요!”
카페에 들어선 나를 우렁찬 목소리가 반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드는 해찬.
“이쪽이요. 형!”
거의 열흘 만에 만나는 거지만 여전히 해맑다.
나는 해찬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향하며 녀석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여성 둘에 남성 하나.
내가 해찬이 녀석이 건네준 프로필을 보고 뽑은 사람들이다.
그중 한 명은 내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색한 얼굴로 쭈뼛거리며 눈인사를 건네는 여성.
바로 이루미였다.
솔직히 이루미의 프로필을 봤을 때 의아했다. 헤어질 때 악감정이 없이 헤어지긴 했지만, 그녀에게 내가 껄끄러운 사람이란 건 사실이니까.
나는 이루미의 눈인사에 미소로 화답한 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파티의 리더를 맡을 강현이라고 합니다.”
“아! 자기소개 타임인가요? 저는 이해찬 스무 살 마법사입니다.”
내 인사를 이어 해찬이 녀석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남은 사람들도 입을 열어 자기소개를 했다.
“이루미에요. 힐러입니다.”
딱 잘라 기본정보만 이야기하는 이루미.
“백영웅입니다. 나이는 스물여덟이고 보시다시피 탱커입니다. 하하.”
매력적인 눈웃음을 가진 단단한 체구의 백영웅이 자기소개를 하곤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채, 채민하입니다.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검사예요….”
이어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민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마쳤다.
“각자의 직업과 포지션은 이따가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서 공지할 테니 확인하시면 됩니다.”
나는 파티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면접이라고 해서 긴장하셨을 텐데 사실 파티원들은 여러분들로 결정된 상황입니다. 오늘 만난 건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나 익혀 두자는 취지에서 모인 거고요.”
“하하. 그렇습니까? 솔직히 면접이라고 해서 긴장 많이 했는데 다행이네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백영웅의 모습은 털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씨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백영웅은 호구다.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다는 뜻이다. 그 성격이 자신과 파티원들에게 손해가 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이전 파티원들에게 내쳐졌다.
탱커로서 능력은 출중하지만 같은 파티원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팽당한 것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저를 파티에 받아 주셔서….”
백영웅의 뒤를 이어 다시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는 채민하.
그녀는 청초하고 가련하며 수줍음이 많다. ‘평상시에는’.
일견 그녀는 일선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서브 탱커이자 검사라는 포지션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씨드가 조사해온 그녀의 별명은 광녀(狂女)다.
몬스터의 피만 보면 미치는 광녀.
덕분에 몇 차례나 함께 사냥하던 파티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던전의 불문율인 ‘리더의 지시에 절대복종’을 무시하고 날뛴 덕분이었다.
뛰어난 검술 실력과 스킬이 없었다면 벌써 몇 번 죽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그녀의 성격은 정말 특이했다.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았다.
던전 안에서 채민하가 미쳐 날뛸 시간 같은 건 주지 않을 생각이니까.
혹시 몰라 정규파티 구성 요건대로 힐러를 포함하긴 했지만, 마음 같아선 솔직히 모두 딜러로만 채우고 싶었다.
지금까지 버스를 타면서 그래 왔던 것처럼 당분간은 모든 딜링을 내가 전담할 생각이다.
정확히는 씨드가.
일단 내 목표는 이들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거니까.
최소 D급 혹은 C급까지는 빡세게 굴릴 생각이다. 그래야만 진짜 팀으로 사냥이 가능해질 테니까.
“일단 먼저 말씀드릴 것은 우리 파티는 일주일에 삼일만 사냥할 거라는 겁니다.”
“어? 정말요?”
내 말을 들은 해찬이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 열흘 쉬고 다시 원래의 루틴대로 일 3회~5회 주 칠 일 사냥을 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전용 던전에서 아공간 청소도 해야 하고 새로운 사업에 신경도 써야 하는 나로서는 주 3일 던전 사냥하는 것도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거다.
물론 주 7일 사냥하던 것을 3일로 줄였으니 횟수를 조금 늘릴 생각이다.
해찬이 녀석이야 원래 하던 사냥횟수에 1~2회 추가하는 것일 테지만 나머지는….
“주 삼일 사냥하는 거면, 조금 여유 있는 것 아닌가요? 적어도 주 5일은 돌 줄 알았는데….”
백영웅의 목소리는 걱정에 물들어 있었다. 사냥은 헌터의 수입과 직결된 것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사냥하는 일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수입도 줄어드니까.
이루미와 채민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의문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돈.
이해찬이 추천한 많은 사람 중에 유독 이들은 돈에 쪼들리고 있었다.
백영웅은 끝내주는 호구력으로 같이 던전에 들어갔다 사망한 파티원의 가족들에게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보내고 있었고.
채민하는 일 년 전 몬스터에게 부모님을 잃고 하나뿐인 동생은 마나 중독으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중이었다.
마나 중독 환자의 기대 수명이 1년 정도이니 동생의 삶은 6개월 정도 남았을 것이다.
채민하는 그런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부담해 가며 마법 치료와 힐러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루미는….
명품 중독이다.
목숨을 걸고 던전을 돌아 고작 명품을 사기 위해 그 돈을 쓴다는 게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 또한 이루미 개인 사정이니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돈이라는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소리고 그 약점은 내게 믿음이 될 테니까.
급격하게 어두워져 가는 이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이해찬이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물어왔다.
“현이 형. 그럼 전처럼 하루 5회 도는 건가요?”
그리고 난 그 희망찬 해찬이 녀석의 목소리를 사뿐히 즈려밟았다.
“주 3일밖에 안 도는데 횟수는 늘려야지.”
“어, 어. 그럼 얼마나…?”
“이제 정규 파티원들도 꾸려졌으니까 속도를 좀 높여도 좋지 않을까?”
“그, 그래서 얼마나 늘리시게요? 형?”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
나와 대화를 나눌수록 해찬이 녀석의 얼굴이 똥색으로 물들어 갔다.
반응이 즉각적인 녀석이니 놀리는 맛이 났다.
“일단 계획은 일 7회. 시간 여유가 되면 더 돌고.”
“컥-! 아무리 형이라도 그건 좀 무리 아닐까요?”
“이따가 톡으로 일정표를 보낼 테지만 미리 말하자면 E급 입문 던전부터 시작할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청계천 던전이요?”
청계천 던전, 그곳은 해찬이와 내가 처음으로 정식 파티를 맺고 사냥을 시작했던 던전이다.
고블린이 등장하는 필드형 던전.
그리고 그런 개활지에서 씨드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럼 조금 안심이 되긴 하는데…. 우리가 죽어나는 건 변함이 없네요.”
나는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해찬이 녀석을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3일 빡세게 사냥하고 4일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설마 지금 그 말 위로라고 하시는 거예요. 형?”
“어? 응.”
“하. 하하하. 정말-큰-위로가-되네요-하하하.”
나는 정말 위로라고 한 말이다.
난 3일은 파티원들과 일반 던전을 돌고 2일은 전용 던전에서 아공간을 청소하고 남은 2일은 새로 시작한 경매사업에 할애할 생각이니까.
경매사업이 안정되면 모를까 내 일정표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그런 내 일정에 비하면야 삼일 빡세게 사냥하고 4일 쉬는 스케쥴이면 정말 개 이득아닌가?’
그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백영웅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하하. 두 분 대화 중에 죄송한데. 그 일 7회라는 게 설마 하루에 던전을 일곱 번 돈다는 건가요?”
설마 하는 의문을 담은 그 물음에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스케쥴표를 헌터 와치로 전송했다.
텅!
“이. 이게 지금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내게 빚이 있어서인지 여태 가만히 있던 이루미는 일정표를 확인하곤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하루에 던전을 일곱 번 돈다고요? 요즘 버스니 뭐니 하면서 위험하게 하루에 두세 번씩 사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일곱 번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요!!”
씩씩거리며 다다다 말을 쏟아 낸 그녀의 눈이 나를 지나 해찬이에게 향했다.
“넌 왜 가만히 있어? 설마 이 스케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 나?”
“그래. 너. 아무리 강현 씨가 파티 리더라도 이렇게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스케줄을 짜면 너라도 말렸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스케줄을 짜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이 스케줄대로 던전을 돌 수 있다고 생각해?”
길고 긴 그녀의 질문에 해찬이의 대답은 간결했다.
“어.”
“…뭐?”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해찬과 이루미. 해찬이 녀석이 나와 파티를 맺기 전 몇 달을 함께 했던 파티원이다.
그렇기에 이루미는 나보단 해찬이가 만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해찬이는 나와 함께 던전을 돌며 제 몫을 다하며 성장했다.
일 최소 3회에서 최대 5회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이어진 강행군에 해찬이의 등급은 어느새 D등급을 목전에 둔 상태다.
한마디로 이루미와의 격차는 그만큼 벌어졌다는 소리다.
“해 봤어?”
나직한 해찬의 목소리.
녀석은 여태 헤실거리며 웃음을 흘리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냉정한 눈으로 이루미를 노려봤다.
“뭐?”
“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 적어도 현이 형이랑 나는 근 한 달 보름을 적게는 하루에 세 번 많게는 다섯 번씩 던전을 돌았어.”
“그…. 그게 된다고?”
“나는 아니지만, 현이 형은 그게 가능해. 그러니까 누나랑 현이 형을 같은 급에 놓지 마. 그건 내가 불쾌하니까.”
이루미를 향한 해찬의 까칠한 대답에 파티원들의 경악 어린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내가 각성한 지 3개월이 안 됐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직업도.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이런 괴물이?’
그것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경외의 시선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