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80화 (80/202)

80. 뇌신일체(雷身一體) (3).

촤라락! 짜악!

날카로워 보이는 청록색 이빨이 빽빽하게 자라나 있는 청동 미믹의 아가리.

텅!

놈이 입을 닫을 때마다 토해 내는 묵직한 소리가 보스방안을 울렸다.

‘스킬 사용. 금식충.’

내비게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여전히 놈의 아가리 안.

미믹의 공격을 피하며 위치를 이동해 보았지만, 화살표는 여전히 놈의 아가리 속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번 물리면 몸뚱어리가 갈가리 찢겨나갈 것 같은 이빨 그 너머를.

그래서 금식충 스킬을 사용했다.

팅.

가시가 달린 놈의 혓바닥이 나를 후려쳤지만, 맑은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지금 내 몸의 경도와 강도는 아다만티움 그 자체. 한낱 청동 가시에 상처 입을 몸뚱어리가 아니다.

입고 있던 청바지와 티셔츠가 찢겼지만 그뿐.

‘당분간은 어지간한 물리 공격은 갑옷 없이도 막아낼 수 있겠는데.’

지금 내 몸은 금강불괴(金剛不壞)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휘릭. 턱!

쿵쿵.

다시금 쇄도해 오는 놈의 혓바닥을 맨손으로 잡고 묵직한 걸음걸이로 놈을 향해 다가갔다.

찌직. 쩌억-!

그리고 미믹의 혀를 뜯어내 바닥에 던졌다.

혀가 뜯겨 나간 놈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괴성을 토해냈다.

키에엑!

날카롭게 돋은 겹 이빨들이 그 흉험한 자태를 드러냈다.

“금식충 스킬 없었으면 저 이빨들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야 했겠네.

내가 금식충 스킬을 발동한 이유는 미믹의 이빨이 겁나서가 아니라 저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을 때 펼쳐질 미지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래 봐야 F급 보스 몬스터의 청동 이빨 따위 부수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금식충 스킬을 발동한 지금은 굳이 그런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턱.

흉험한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놈의 아가리를 붙잡고 버텼다.

“씨드. 정찰 부탁해.”

“네 사령관님.”

내 명령에 샤이닝 에로우 한 대가 미믹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냥 상자입니다. 사령관님.”

안을 들여다보니 빈 상자 안에 샤이닝 에로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흠…. 아무래도 내가 직접 들어가야 하나 본데…?”

답을 구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성큼.

그리고 나는 날카로운 이빨 너머의 상자 안으로 발을 디밀었다.

내비게이터의 화살표가 깜빡이며 다음 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한걸음.

양말을 모두 청동 미믹의 아가리 안으로 밀어 넣은 나는 그 좁디좁은 공간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그리고 버티고 있던 팔의 힘을 풀자.

쿵.

묵직한 울림과 함께 청동 미믹의 아가리가 닫히고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

깜빡.

풍경이 변했다.

청동 미믹의 뚜껑이 닫히는 순간 짙은 어둠이 찾아온 다음, 눈을 뜨니 숲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 아래였다.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목 아래.

고개를 꺾어 위를 올려다봐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그 가지는 사방으로 뻗어 단 한 뼘의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 세계수인가 뭔가가 있는 공간인가?’

이토록 거대한 나무는 세계수 유클리안이라는 나무밖에 떠오르지 않기에 든 생각이었지만 곧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뇌신 울티아의 정원에 입장하셨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그리고.

꽈르르르르릉-.

번—쩍!

거대한 굉음과 함께 새하얀 섬광이 주변을 밝히고 사라졌다.

뇌신 울티아의 정원.

“그 말인즉슨 이 나무가 바로 라그라주라고?”

“아무래도 라그라주가 맞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내리친 벼락을 이 나무가 흡수했습니다.”

“허….”

씨드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 집 마당에 자리한 라그라주가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씨드. 정찰 좀 부탁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24대의 샤이닝 에로우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남은 25대는 인벤토리 내에서 수리 중이고 씨드의 본체가 있는 1번기는 내 곁에 남아 있었다.

이미 활성화된 감각의 영역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만일을 대비한 배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네.”

“이 거대한 땅덩어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이름도 울티아의 정원이잖아. 그럼 하다못해 벌레나 풀 쪼가리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한 물음이었다.

명색이 신의 정원이면 화초라든가 분수, 하다못해 물웅덩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아무것도 없단다. 물론 이 거대한 나무 그늘 밖으로 나가 보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나무, 그러니까 울티아의 정원에서 자란 라그라주는 거대해도 너무 거대했다.

1번기의 제어 한계 거리인 40㎞를 비행했지만, 나무 그늘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나무의 꼭대기를 보지도 못했단다.

물론 그 공간 안에 생명체라곤 라그라주 단 하나뿐이고 말이다.

“결론은 내비게이터가 가리키는 대로 가야 한다는 말인데….”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비게이터의 화살표는 더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끝이 어딘지도 가늠하기 힘든 라그라주의 꼭대기를.

문제는.

“이걸 어떻게 올라가냐?”

씨드의 보고에 따르면 밑동의 지름만 해도 수 킬로미터다.

각성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감각 영역을 확장하지 못했다면 나무가 아니라 그저 거대한 절벽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거대하고 가파른 라그라주의 줄기.

집 마당에 자란 라그라주 위를 올라갔을 때처럼 줄기를 타고 올라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첫 번째 가지까지 10㎞.’

줄기를 타고 오르는 건 무리다.

일단 나무껍질 틈으로 손과 발을 넣고 어찌어찌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문제다.

장장 10㎞ 높이를 그런 식으로 올라갈 만한 체력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씨드, 중력제어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지?”

“아직은 10㎏이 한계입니다.”

씨드의 말에 나는 반색했다.

잘만 하면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나무를 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25대의 샤이닝 에로우를 사용하면 나를 들어 올릴 수 있겠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중력제어로 사령관님을 들어 올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씨드의 말에 나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씨드가 중력제어로 나를 들어 올릴 수 없다면 이 까마득한 높이의 나무를 내 힘으로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니까.

“응? 왜지?”

“해당 기능은 샤이닝 에로우의 기능이 아니라 통합관제 AI인 ‘씨드’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컵에 담긴 물을 25개 컵에 나눠 담는다고 해서 물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씨드의 중력제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힘을 발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제 AI 씨드는 하나니까.

“그렇군….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

그래서 방법을 궁리해 본 끝에 내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을 이용하면 의외로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구름 가오리의 심장을 요격할 때 사용했던 합금 와이어를 12대의 샤이닝 에로우에 연결하고 그것들을 내 허리춤에 묶었다.

그리고 아이템 ‘바람 사냥꾼의 하품’을 사용하자 내 체중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올라가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래. 안전운전 부탁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매달고 있는 샤이닝 에로우의 마나엔진이 가동하며 푸른색 불꽃을 뿜어냈고 와이어로 연결된 내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마치 12개의 풍선에 매달린 것처럼.

잠시 후.

나는 첫 번째 가지를 지나쳤다.

가지라고 하지만 그 두께가 1㎞는 될 법한 그것이 가로로 쭉 뻗어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이었다.

쉬이익.

몸을 스쳐 가는 바람이 매서웠다.

비행에 익숙해진 내가 속도를 높일 것을 명령한 까닭이다.

그렇게 첫 번째 가지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씨드의 정찰 한계인 40㎞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햇빛 한점 들지 않음에도 이파리가 무성한 라그라주 줄기 위로 안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40㎞.

미터로 치면 40000m. 당연히 산소가 부족해야 함에도 숨 쉬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위로는 정찰이 안 된 거지?”

“네 사령관님. 추가 정찰을 시행할까요?”

“그래. 부탁하자.”

이곳까지 올라오는 동안 내가 본 것은 씨드의 보고처럼 오직 라그라주의 가지와 이파리밖엔 없었다.

하다못해 이런 거목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이끼와 벌레 한 마리도 없었다.

이곳은 신의 정원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기이한 곳이었다.

잠시 후 정찰을 마친 씨드의 보고가 끝나고 나는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스팩업 내비게이터의 화살표는 여전히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

쿠르르르릉— 꽝!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이며 낙뢰의 폭포가 떨어져 내렸다.

장장 4시간.

그 긴 시간의 등반을 끝낸 내가 마주한 광경이었다.

번쩍! 쫘자자작!

이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뢰를 보자면 구름 가오리의 낙뢰는 낙뢰도 뭣도 아니었다.

구름 가오리가 필살기처럼 토해 냈던 수백 미터 크기의 뇌구.

그보다도 굵은 낙뢰의 줄기가 허공을 수놓으며 떨어져 내리고, 그 모든 것은 내가 딛고 서 있는 라그라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

멀고 먼 고대.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고 생명이 발아하던 시기의 하늘이 이러했을까?

시선을 내려 지평선을 바라봤다.

감각 영역 확장으로 강화된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나무.

초록의 이파리가 싱그러운 라그라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었다.

딛고 서 있는 발밑부터 저 먼 지평선의 끝자락까지 모든 것이 초록의 물결이며 그 위로 초당 수천수만 발의 낙뢰가 떨어져 내렸다.

경외(敬畏).

인간의 상식선을 벗어난 그 광경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굳이 입을 열어 이 지고한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그렇게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뇌전에 대한 친화력을 얻었습니다.

-신규 스탯: 뇌기(雷氣)가 생성됩니다.

-스탯 뇌기는 스탯 포인트를 투자하여 레벨업을 하실 수 없습니다.

-뇌신 울티아의 정원이 닫힙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짙은 어둠이 나를 감쌌다.

***

콰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청동 미믹의 뚜껑이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 구석에 처박혔다.

“보스룸인가?”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눈을 뜬 나를 맞이한 것은 밀폐된 공간이 주는 답답함이었다.

해서 무심결에 발길질을 한 것인데 청동 미믹의 뚜껑이 떨어져 나가 버릴 줄 상상도 못 했다.

“어차.”

상자 밖으로 나온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슬금슬금 바닥을 기어 몸체로 돌아가려는 뚜껑과 구석에서 빛나는 던전 코어.

변한 건 없었다.

“사령관님. 파괴할까요?”

어느덧 본체 가까이 다다른 뚜껑이 본체와 결합을 하려 하자 씨드가 물어 왔다.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번뜩임이 일어났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분명 청동 미믹의 아가리 안으로 들어가면 울티아의 정원으로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청동 미믹을 내가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몬스터라고 하지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법생명체.

생각이 있고 움직이긴 하지만 피와 근육 따위는 없다. 놈을 구성하고 있는 건 청동.

그리고 내가 가진 금식충 스킬은 청동이란 금속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럼 울티아의 정원으로 가는 통로도 스킬 형식으로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무라마사라 불리던 아다만티움 일본도를 흡수해 패력 스킬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왠지 가능할 것 같은데….”

나는 당장이라도 쏘아져 나갈 것처럼 엔진을 가동하고 있는 씨드를 만류하며 청동 미믹을 향해 다가갔다.

가로 1.5m 세로 1m의 청동 상자.

지금 내 눈엔 청동 미믹이 먹음직스러운 영양간식으로 비치는 건 기분 탓일까?

덜덜덜.

미믹 녀석이 청동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부르르 떨었다.

따닥! 따닥! 따다닥!

뚜껑을 되찾은 미믹이 특유의 그 겹 이빨을 위아래로 부딪치는 모습이 왠지 애처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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