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뇌신일체(雷身一體) (1).
청심원으로 돌아온 내 손에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푸른색 과일이 들려 있었다.
[아이템: 뇌실(雷實)]
[등급: F급]
[설명: 뇌신(雷神) 울티아의 정원에서 자라는 전뢰수(電雷樹) 라그라주의 열매. 뇌신 울티아가 즐겨 먹는 과일이다. 섭취 시 뇌전 속성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
[주의 사항: 짜릿하다.]
시스템 설명 중 주목할 것은‘뇌전 속성의 스킬을 익힐 수 있다.’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 지금 내가 익힌 스킬들을 확인했다.
[스킬]
언어의 마술사 F (LV7)
작은 마력의 샘 F (LV4)
금식충 S (LV1)
모두 패시브나 다름없는 스킬들.
금식충 스킬이 있지만, 금식충은 거의 돈 잡아먹는 스킬이나 다름이 없었다.
애초에 아이템이나 금속을 흡수하는 것을 전제로 사용하는 스킬이니까.
금식충 S (LV1)
금속을 흡수해 몸의 경도와 강도를 해당 금속의 경도와 강도로 변환시킬 수 있다.
스킬의 유지시간은 흡수한 금속의 질과 양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흡수한 금속: 1/3
└아다만티움: 289시간 27분
스킬 각성: 난 아이템도 먹어.
액티브 스킬이 내장된 금속류 아이템을 흡수해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흡수 스킬
└패력(覇力): 한 시간 동안 힘이 523 증가한다. (9/10)
암혈이 무라마사라 부르던 아다만티움 일본도를 흡수한 덕에 당분간 패력이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저 523이란 구체적인 수치는 바로 내 힘 스탯이었다. 한마디로 힘을 두 배로 뻥튀기시켜주는 셈.
아마 암혈이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자랑하는 아다만티움 일본도를 무리 없이 휘두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패력 스킬 덕분이었을 거다.
SS급에 올랐던 놈인 만큼 마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탯도 그만큼 높았을 테니.
‘그래도 조금 아쉽단 말이야.’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여기에 그럴싸한 액티브 스킬 하나 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빠직. 빠직. 빠지지직.
라그라주에서 떨어져 나온 지금도 쉴 새 없이 전류를 방출하는 이 뇌실이라는 놈이 어떤 스킬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시스템을 만든 존재는 참 무작위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F급 아이템이니 큰 기대는 없지마는.’
나는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뇌실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뇌실을 섭취하셨습니다.
-스킬: 뇌신일체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뇌신일체가 사용자 강현 님의 몸에 적용됩니다.
-전기저항 및 전기내성 스킬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전기충격에 대비해 주세요.
“에?”
뭘 대비해?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입속으로 들어간 뇌실은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식도를 따라 흘러내려 갔다.
그와 동시에.
빠지지지직!
끄억!
식도에서 발생한 전류가 위장으로 흘러들어 가더니 곧 전신으로 번져갔다.
어지간한 고통엔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몸 안에서 전류가 살아 움직이는 고통은 또 달랐다.
빠직!빠직!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혈관 속으로 미세한 전류 알갱이가 톡톡 튀며 근육과 신경을 자극하는 느낌.
머리끝에서 시작해 발끝까지 미세한 침들에 수없이 찔리는 고통도 잠시, 곧 온몸이 불타는 듯한 작열감이 신체를 잠식해 들어왔다.
이어서 혈관을 타고 달리던 전류 알갱이가 머릿속에 모여 번쩍이는 빛을 토해 냈다.
순간 눈앞이 새하얘지고.
‘짜릿하다는 게 이런 거였냐?’
끄르륵. 쿵.
나는 또다시 기절했다.
***
다음날.
똑똑.
“현아! 언제까지 잘 거야? 빨리 내려와서 밥 먹어!”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정혜 누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찌뿌둥한 몸을 풀어야만 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방바닥.
어제 뇌실을 먹고 기절한 채로 잠든 모양이었다.
‘사령관님이 잠드신 사이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왔었습니다.’
씨드는 잠들었다고 말했지만 기절한 게 맞다.
고작 F급 스킬 하나 습득하는데 기절을 한 거다. 지가 무슨 S급 스킬 금식충도 아니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뇌신일체(雷身一體).”
어제 날 기절시킨 스킬이다. 직역하면 뇌전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
스킬 설명도 단출하다.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게 다였다.
어떤 스킬인지는 사용을 해 봐야 알 것 같았다.
전기를 발생시킨다니. 인간 스턴건이 되는 건가?
“스킬 사용. 뇌신일체.”
언제나 느끼지만,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이건 무슨 소년만화의 주인공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투 중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
곧 뇌신일체 스킬의 사용과 함께, 뱃속에서 시작된 작은 진동이 오른쪽 복부에서 가슴, 어깨, 팔로 이동한 뒤 엄지와 검지 끝으로 전해졌다.
우우웅-.
그리고 작은 진동음과 함께 손끝이 떨리더니.
틱.
너무 소박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게 뭔…. 스킬 사용 뇌신일체.”
틱.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튀는 작디작은 스파크 하나.
“스킬 사용 뇌신일체.”
틱.
“스킬 사용….”
틱.
이게 바로 스킬을 사용한 결과였다.
“허…….”
이건 한숨도 안 나왔다.
뇌신일체. 얼마나 멋들어진 스킬 명인가.
전기를 발생시킨다는 설명대로 전기를 발생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틱.
인간 발전기는 개뿔. 라이터에 불이나 붙일 수 있을지 의심될 만큼 미약한 방전이었다.
애초에 별 기대가 없긴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한번 사용할 때마다 마나를 10씩이나 잡아먹는 스킬의 위력이 고작 이 정도라니.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스킬 레벨을 올리는 건 그저 많이 사용하면 된다지만, 그렇게 해서 레벨을 올리는 방식은 너무 포션을 낭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내 복에 무슨….”
상태창을 닫은 나는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강산호 회장, 기적 형님, 구정철 전 대통령, 이해찬.
이 네 사람에게 온 전화가 모두 열통.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모두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강산호 회장님: 축하하네. 경매 낙찰금 총액이 우리 측 예상을 웃돌더군. 세금을 제하더라도 자네한테 꽤 큰 금액이 떨어지겠어. 이것 때문에 연락한 건 아니고 저번에 자네가 제시했던 사외이사 건에 대해 전할 말이 있으니 메시지 보는 대로 연락을 줬으면 싶군.』
전투에 참여한 비현은 아무것도 취하지 못했음에도 강 회장은 나를 축하해 줬다.
역시 대인배랄까?
그 뒤의 메시지를 보니 아무래도 사외이사 건이 내부회의를 통과한 모양이었다.
‘이따가 연락 한번 드려야겠네.’
『구정철 전 대통령: 벌써 자는 건가? 경매확인도 안 하고? 경매 결과가 나왔네. 이걸로 자네와 나 사이에 빚은 더는 없는 걸세. 잊지 말게. 좀스럽게 더는 삐지지 말란 말이네.』
구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쓸데없는 내용이니 패스.
『기적 형님: 하자. 그 사업.』
이 형님은 실제로는 말이 많으면서 메시지는 간결하다. 하여튼 같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니까 내게는 잘된 일이다.
『이해찬: 형님. 잘 지내시죠? 저번에 말씀하셨던 파티원 후보들 모두 추려 놨어요. 형님. 메일로 프로필 보냈으니까 결정하셔서 연락 주세요.』
일주일이 넘게 연락 한번 없길래 내 말대로 여행을 간 줄 알았더니 그동안 계속해서 파티원들을 구하고 있었나 보다.
D급으로 승급하기 전에 파티를 구하기로 했으니 지금이 딱 좋았다.
물론 내 스탯은 이미 D등급도 넘어선 것 같지만, 경험치를 얻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에겐 D급 던전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내 레벨보다 낮은 등급의 몬스터들도 주는 경험치가 적다뿐이지 아예 안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혼자 강해지길 원한다면 파티원들을 구할 필요도 없이 지금처럼 버스를 타고 레벨업을 해도 그만이다. 물론 C급 이상의 던전에서 버스를 타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던전이 아니더라도 레벨업을 할 방법은 또 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몬스터 필드로 가는 것. 처음에야 레벨도 낮고 아이템도 빈약해서 불안했지만, 지금이라면 몬스터 필드에서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금식충 스킬도 있고.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파티를 구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내사람.
불과 일주일 전에 보지 않았던가. 2천 명의 헌터가 가진 힘을.
최후에 구름 가오리를 지상으로 떨어트린 건 서태촌과 구정철이었지만, 그전에 구름 가오리가 둥지를 이끌고 내려오게 만든 건 분명 싸울아비와 화랑 길드원들의 힘이었다.
물론 구름 가오리가 숨기고 있던 폭풍의 힘을 사용한 이후엔 모두 낙엽처럼 나가떨어졌지만.
나는 그런 힘을 가지기를 원한다.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그들을 모아 만든 거대한 세력. 일단 타인은 경계부터 하는 나지만, 나도 노력할 거다.
믿음을 주고 믿음을 받을 수 있도록.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진 단체를 만들 거다.
대현의 왕회장 강산호 회장처럼.
싸울아비의 서태촌과 화랑의 구정철처럼.
그게 내가 가고자 하는 지향점이었다.
***
“현아. 여기야.”
나에게 메시지를 남긴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기적 형님이었다.
평일 오전.
한창 일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입던 정장이 아닌 편한 복장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기적 형님의 모습은 내게도 낯설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 그나저나 평일에 이러고 있으니까 좀 기분이 이상하네. 하하.”
어제 나와 대화를 마친 형님은 고민 끝에 오후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부장은 형님의 사표를 형님이 보는 앞에서 수리했단다.
마치 사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달 말까지 근무하겠다는 형님을 그럴 필요 없다며 극구 만류했단다.
승진이 정체된 협회에서, 청소팀이라고는 하지만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으니 아마 자기 사람을 꽂아 넣을 속셈이겠지.
“그나저나 어디 가는데 여기서 보자고 한 거야?”
“아. 누굴 좀 만나러 갈 거예요. 형님하고 같이.”
“나도 같이?”
“네. 형님은 이제 제 사업 파트너니까 같이 가야죠.”
내 말에 기적 형님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설마. 투자자 만나러 가는 거야? 그럼 이런 복장으로 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청바지에 흰색 후드티. 긴 머리칼을 질끈 묶은 형님은 자신의 차림새를 내려다봤다.
“투자자는 아니니까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제 복장을 보세요. 저도 편하게 입었잖아요.”
사실이다. 만날 사람이 투자자는 아니다. 보스가 될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누굴 만나는 거야? 나도 아는 사람인가?”
“네. 형님도 아실걸요?”
“그래? 누군데?”
“대현 그룹 왕회장님요.”
“아-. 대현 그룹 왕…. 응? 누구?”
기적 형님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대, 대현 그룹 왕회장님?!”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치는 기적 형님의 목소리에 순간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고개를 숙여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다시 자리에 앉는 형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요즘 내가 워낙 거물들을 자주 만나서 그렇지 대현 그룹 강 회장님이라면 이렇게 놀라는 게 정상이다.
재계의 거목. 살아있는 신화.
강 회장이 이뤄낸 신화와 같은 업적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저, 정말 강산호 회장님을 만나러 가는 거야? 왜? 대체 뭣 때문에…. 그분이 우리 같은 사람을 만나줘??”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되묻는 기적 형님에게 나는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 회장님과 나 사이의 사연을 이 자리에서 모두 말하라면 약속 시각에 늦을 테니까.
“지금 출발 안 하면 약속 시각에 늦으니까, 그건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일단 출발하시죠.”
“아니. 잠깐 현아. 정말 이렇게 가는 거야? 이렇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저기 매장가서 정장 한 벌 사 입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하는 기적 형님을 보자니 처음 강산호 회장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호랑이.
‘한 마리의 거대한 대호가 대청마루에 앉아 나를 노려보는 느낌을 받았더랬지.’
그래도 나는 저 정도로 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속된말로 지금 기적 형님의 얼굴은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것 같다.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울고 있으니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냥 가요. 정장 살려다가 강 회장님 기다리게 할 참이에요?”
“어? 으, 그건 안 되지. 빨리 가자. 빨리. 강 회장님 기다리시겠다.”
삐걱. 삐걱.
마치 목각인형이 걷는 것과 같은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기적 형님.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외쳤다.
“형님 거기 아니에요. 이쪽. 이쪽.”
기적 형님의 발걸음은 정처 없이 카페안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