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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76화 (76/202)

76. SSS급?

-SSS급 몬스터 구름 가오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전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강현 님께 전투 보상이 지급됩니다.

-기여도를 산정합니다…….

-전투기여도 7%.

-보상으로 보너스 스탯 7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무료 뽑기 이용권 10매가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레벨업!

-레벨업!

-….

한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시스템 메시지는 무려 25번의 레벨업을 끝으로 멈췄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청명하게 갠 하늘.

가장 높은 라그라주의 꼭대기에서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까맣게 몰려든 인파.

기자, 군인, 경찰, 정부 관계자, 그리고 일반인들.

족히 수십만은 되어 보일 듯한 사람들이 전투가 끝남과 동시에 몰려들었다.

거의 2㎞ 높이까지 자라난 라그라주.

그 까마득한 높이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모습은 거대한 구름 가오리의 사체를 둘러싸고 바글거리는 개미 떼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기자들로 보이는 무리 몇 개가 몇몇 사람들을 둘러싸고 인터뷰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씨드의 말로는 청심원 식구들과 인근 주민들이란다.

아무래도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니 지켜본 게 있을 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화랑이나 싸울아비 길드원들에겐 접근조차 할 수 없으니 서태촌이나 구정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주민들이라도 붙잡고 인터뷰를 할 수밖에.

“씨드.”

“네 사령관님.”

“저거 오래 걸리겠지?”

하늘 가오리. 바닥에 떨어져 몸을 뉘었지만, 여전히 거대한 체구.

다행히 산자락에 떨어져 인명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위를 오가는 화랑과 싸울아비, 그리고 군대와 정부 관계자들.

“네. 아직도 구름 가오리의 분배 비율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습니다.”

“쩝.”

아쉬웠다.

무려 기여도가 7%나 되는데 저 자리에 낄 수 없다는 게 말이다.

서태촌, 구정철, 정부 관계자들과 군 장성들. 어마어마한 거물들이 바글거리는 그곳에서 내 지분을 요구해 봤자 들어줄 것 같지도 않기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쓱싹 모가지나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시스템이 산정한 기여도 7%는 그렇게 깔끔하게 포기했다.

전투에 참여했던 대현 그룹의 그림자 비현도 포기하고 물러난 상황이기도 했고.

“흠. 그럼 일단 물벼룩이나 회수해야겠군.”

라그라주 씨앗과 함께 묻어 둔 물벼룩 100마리.

라그라주는 이미 거대한 나무가 되었으니 회수할 길이 없지만, 물벼룩은 이야기가 다르다. 흡수했던 물만 방출하면 재사용할 수 있기도 하고.

샤이닝 에로우에 연결했던 와이어는 씨드와 함께 회수되었으니 이제 물벼룩만 회수하면 될 터.

“씨드 물벼룩 위치는 다 확인해 뒀지?”

“네 사령관님.”

“그럼 가자.”

나는 걸터앉아 있던 라그라주의 아래로 몸을 날렷다.

바람을 타고 팔랑팔랑하며 봄날의 민들레 홀씨처럼, 가을날의 낙엽처럼 나는 그렇게 허공을 부유해 바닥에 착지했다.

이 또한 와이어와 함께 뽑기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 ‘바람 사냥꾼의 하품’의 효과였다.

이번 전투엔 사용하지 못했지만, 첫 번째 뽑기 때와는 다르게 꽤 쓸만한 아이템이 많이 뽑혔다.

마지막으로 나온 황금색 아이템도 그렇고 상황이 마무리되면 하루 날 잡아서 정리를 좀 해야겠다.

***

‘재해급 몬스터! 구름 가오리는 이제 없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 재해급 몬스터를 퇴치한 나라!’

‘싸울아비와 화랑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의 합작! 정부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세계가 경악한 구름 가오리 퇴치! 길드업계 지각변동 시작되나?’

‘싸울아비 대변인, 우린 세계 최강이다. 발언.’

‘화랑과 싸울아비! 이제는 양대 길드의 시대!’

구름 가오리를 잡은 그날 저녁 대한민국은 새로운 소식에 뜨겁게 달궈졌다.

└이게 나라다!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이게 바로 국뽕이라는 건가?

└아-. 국뽕충들 나대는 거 개극혐. 어쩌다 운 좋게 잡은 것 가지고 이게 나라다 ㅇㅈㄹ.

└네 다음 매국노?

물론 우호적인 댓글만 달리는 건 아니었지만, 대다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수많은 인파에 몰려든 구 청심원 부지.

인파에 파묻혀 포털에 올라온 기사들을 살펴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강 회장이 구해 줬던 캠핑카는 서태촌과 암혈의 싸움에 먼지가 되어 흩어진 지 오래라 나는 정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분명 사유지임에도 바글거리는 사람들. 그들은 라그라주를 올려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하루 만에 자란 거라고?”

“하루는 무슨. 오늘 아침만 해도 없었던 거라고 하더구먼. 한나절 만에 이렇게 자란 거지.”

“번개를 빨아들여서 이렇게 컸다던데 만지면 감전되려나?”

“아까 각성자들 오르내리는 거 보니까 감전은 안 되는 것 같던데.”

그렇게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원래는 내 집이었어야 할 구 청심원 부지를 벗어나려 할 때였다.

“…….”

주변을 시끄럽게 하던 사람들 사이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자네 여기 있었구먼? 찾느라 힘들었네.”

구정철이었다.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화랑 길드의 전대 길드 마스터.

구름 가오리를 마지막까지 상대한 이인중 일인.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조용히 거리를 벌려 그를 바라볼 뿐 그 누구도 그의 근처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구정철의 말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구름 가오리를 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친구가 이런 곳에 있으면 어쩌자는 건가?”

찰칵! 찰칵! 찰칵!

번쩍이기 시작하는 카메라 플레쉬.

구정철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기자들이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시야가 빛으로 가득 찼다.

구름 가오리의 번개도 맨눈으로 봤던 나인데, 이건 그 정도를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 전 대통령님, 방금 그 발언 사실입니까?!”

“옆에 있는 헌터분이 이번 사냥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한 겁니까?!”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자들의 질문 속에서 구정철은 나에게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이 망할 노인네가!!’

“배분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나누기 뭐하니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말을 마친 구정철은 나를 옆구리에 끼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마치 바람처럼.

***

“만나서 반갑군. 배동운이라고 하네.”

군복을 입은 무뚝뚝한 인상의 남성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 왔다.

나이는 50대 중반쯤 되었을까?

어깨에 달린 계급장엔 별이 세 개나 박혀 있는 분이었다.

“아. 강현이라고 합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허.”

그러자 옆에 있던 구정철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자네 나를 대할 때와는 아주 딴판이구먼? 나를 대할 때도 그렇게 예의가 바르면 얼마나 좋나?”

심술 맞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구정철의 말에 내 손을 놓은 배동운의 미간이 움찔거리더니 나를 바라보는 눈에 불길이 일어났다.

하긴 내가 구정철 전 대통령을 옆집 영감님 대하듯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게도 이유는 있었다.

유클리안 잎사귀 차, 무려 강 회장이 천억이란 가치를 매긴 그 차를 구 전 대통령은 거의 날로 먹지 않았던가.

그것도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나와 배동운 사이의 분위기가 삭막해지려는 찰나.

“안녕하십니까? 강현 씨.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 센터장 이호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나라를 위해 아주 큰일을 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대 팔 가르마에 안경을 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중년인이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 네. 강현이라고 합니다.”

“네. 강현 씨. 나라를 위해 이토록 큰일을 해 주시니 대통령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시며 강현 씨를 칭찬하셨습니다.”

“아…. 네.”

사람 좋은 얼굴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마주 잡은 손을 흔드는 이호영.

하지만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투명한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먹이를 바라보는 여우의 눈과 같았다.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지만 호의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때였다.

“이제 당사자들이 다 모였으니 배분에 관한 이야기나 마무리하지.”

짜증이 섞인듯한 신경질적인 목소리.

서태촌이었다.

그 목소리에 압박을 받은 것일까?

이호영은 내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예, 예. 그렇게 하시죠. 서태촌 길드장님.”

그 모습이 나를 대할 때와는 또 달랐다.

전형적인 ‘약강강약’의 인간상.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야.’

내가 머릿속으로 이호영이라는 자의 이름에 가위표를 하는 동안 배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럼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정부와 수도방위 사령부가 40%의 지분을 가지고 싸울아비가 25% 화랑이 25% 그리고 여기에 계신 강현 씨가 10%의 권리를 가지신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십니까?”

“10% 퍼센트요?”

이호영의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스템이 파악한 나의 기여도는 7%. 시스템이 파악한 수치이니 틀릴 리가 없다.

그런데 10%의 권리라니 놀랄 수밖에.

“원래는 5%였지만 여기 계신 두 어르신께서 각기 2.5%씩을 강현 씨에게 양도하셨습니다.”

‘왜?’

내 표정에서 의문을 느낀 걸까?

“깨달음에 대한 보답일세.”

“그게 무슨….”

“자네가 건넨 아이템 말일세 신발 밑창같이 생겼던 물건. 보통 아이템이 아니더구먼.”

당연히 보통 물건이 아니다. 무려 바람신이라는 존재의 발자국이니까.

한시적이나마 신의 권능 일부를 쓰게 해 주는 어마어마한 물건이기도 했고.

‘근데 그게 왜?’

“모르는 눈치군.”

이 영감님이 아까부터 말을 자꾸 빙빙 돌린다.

“하긴 10대 길드 소속이 아니면 모를 수밖에. 자네 각성자가 스킬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뚱한 얼굴로 구정철을 바라봤다. 구정철의 질문은 세 살배기 아이도 답을 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이었으니까.

“그래. 당연히 알고 있겠지. 마법사나 힐러 같은 이능(異能)계 각성자를 제외하고 모든 각성자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행위를 반복해 스킬을 익히지. 하지만 스킬을 익히는 방법이 그것 하나만은 아닐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에?”

스킬을 익힐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스킬을 익히지 않아도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 우린 그것을 독각(獨覺)이라고 부르지.”

“독각….”

“어떤 이는 새로운 스킬을 창안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경지의 벽을 넘어서기도 하지. 자네가 건네준 그 아이템 덕분에 저 서가 놈과 나는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내디딜 수 있게 되었네.”

“헉!”

“정말입니까?”

구정철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이호영과 배동운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계속 그런 불손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다시는 그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 따위 없을 걸세.”

“죄, 죄송합니다.”

이건 서태촌과 이호영의 대화였고.

“그렇게 되었네.”

“정말. 축하드립니다. 각하!”

“이 사람이. 내가 대통령 그만둔 지가 언젠데 아직도 각하인가. 허허.”

이건 구정철과 배동운의 대화였다.

그리고 나는.

‘그러니까. 뭘 축하하는 건지 나도 좀 압시다!’

멀뚱히 그런 네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대화의 맥락을 들어 보면 서태촌과 구정철 두 사람에게 축하해 줄 일이 생긴 모양인데 주어를 생략하니 도통 무슨 일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SSS급 각성자가 나오는 거군요 그것도 한 번에 두 분이나.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르신들.”

호들갑스러운 이호영의 목소리.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태촌과 구정철이 SSS급 각성자가 된다는 말이었으니까.

이호영의 축하에 서태촌은 뭐가 못마땅한지 흥 하고 고개를 돌렸으며 구정철은 옆으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게 모두 이 친구 덕이네.”

“에?”

“그렇다면 두 분이 강현 씨에게 지분을 2.5%씩이나 넘기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종합해 보면 내가 넘겨준 바람신의 발걸음 아이템 덕분에 깨달음을 얻어 SSS급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두 사람 모두.

“축하드립니다. 두 분.”

나는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구름 가오리 지분 5%. SSS급의 벽을 뚫는 데 도움을 준 보상이라면 충분히 차고 넘친다.

바람신의 발걸음이라는 아이템이 아깝기는 했지만 내가 그 아이템을 사용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어 SSS급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것도 다. 저 영감님들이 깨달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공식적으론 세계 최초의 SSS급 몬스터 사체인데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세계 최초 SSS급 몬스터의 사체.

그것도 마나가 담긴 부산물만 있는 것이 아닌 온전한 사체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거였다.

이번 싸움 덕분에 내 계좌도 시스템 상점 포인트도 모두 바닥을 드러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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