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75화 (75/202)

75. 가오리 사냥 (4).

아이템 구매냐 뽑기냐.

선택의 기로였다.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쉬웠다.

‘E급 아이템을 구매해 봤자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란 어려워. 그럴 시간도 없고.’

후우우웅-!

콰직-! 쏴 아아-!

우르릉-콰광!

폭풍이 불고 비가 내리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지고 거기에 짙게 낀 먹구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만들었다.

400이 넘은 힘 스탯이 아니었다면 나무줄기를 붙들고 있는 것도 불가능했을 상황.

한마디로 여유롭게 검색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상점창 구석에 조용히 빛나는 뽑기 아이콘을 누르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알라님, 예수님, 부처님…….’

제발 이 상황에 쓸 수 있는 아이템 좀 나오게 해달라고.

-10포인트를 소모하여 뽑기를 하시겠습니까?

[Y/N]

***

“너도 숨겨둔 한 수가 있었다는 거냐?”

거친 풍랑에 휘청이는 돛단배처럼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한 나뭇가지 위에 발을 딛고선 서태촌은 날카로운 눈으로 재해급 괴수, 구름 가오리를 노려봤다.

휘오오오-!

강현이라는 어린아이의 한 수에 샌드백처럼 얻어터지던 것이 그래도 머릿속에 뇌가 들어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약은 수를 썼다.

이대로라면 포격 지원은 물론 전투기의 지원도 위험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행되는 지원 공격은 자칫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구름 가오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 역장으로 인해 통신마저 불가능한 상황.

이젠 오롯이 이곳에 있는 헌터들의 힘으로 구름 가오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도 아군이 날려 보내는 마나 포격을 회피하면서 말이다.

“네놈의 재롱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보자꾸나.”

서태촌은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아직 도집 안에 머물러 있는 환두대도의 손잡이 안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빨려 들어가고.

스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도집을 빠져나온 그의 애도가 공간을 갈랐다.

단천세(斷天勢)

하늘을 가른다는 오만한 이름을 가진 스킬.

깨달음이 없다면 익히더라도 펼칠 수 없는 광오한 스킬이기도 하다.

번쩍-!

떨어져 내리던 낙뢰도.

휘오오-!

휘몰아치던 바람도.

사아악!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검은 먹구름까지.

그의 칼에서 뿜어져 나온 한줄기 섬광은 모든 것을 가르고 구름 가오리의 거체에 선명한 상처를 남겼다.

서거-억!

쿠오오오오오-!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뿜어져 나온 진녹색의 핏물이 비와 함께 쏟아져 내렸다.

‘베었다.’

분명 구름 가오리에게 타격을 주었지만, 서태촌은 왠지 기쁘지 않았다.

어느새 뇌전은 다시 번쩍이기 시작했고, 바람은 더욱 광포하게 불었으며 먹구름은 다시 사위를 어둡게 감쌌으니까.

‘빌어먹을.’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렇게 서태촌이 한탄하고 있을 때 하나의 인기척이 그의 감각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뭐?’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깃털처럼 나풀나풀 날아서.

***

‘서가 놈의 단천세로군.’

구정철은 먹구름을 가르고 날아가는 한줄기 빗살이 누구의 것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젊은 시절 수도 없이 싸워야 했던 사이였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쿠오오오오오-!

서태촌의 공격은 구름 가오리를 울부짖게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수하들은 이미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남은 것은 자신과 서가 놈뿐.

마나 포격도 전투기의 공격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이토록 짙은 먹구름 안이라면 지원 공격이 오히려 위협이 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구정철은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우우 웅-.

낮은 공명음이 울리고.

그의 옆구리에 자리한 두 주먹이 저녁노을과 같이 붉게 물들었다.

“흐아압!”

이윽고 교차하며 앞으로 내질러지는 두 주먹.

그의 손을 떠난 붉은 기운은 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점차 그 크기를 키웠다.

1m…10m…점차 크기를 불려가던 기운은 이내 지름 100m가 넘는 거대한 주먹이 되어 구름 가오리를 가격했다.

두우웅-!

두우우웅-!!

크어어-!

마치 거대한 북을 두드리는 듯한 울림과 함께 고통에 찬 구름 가오리의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서가 놈과 다를 것도 없군. 쩝.”

구름 가오리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직접적인 타격이 가능하겠으나 그건 불가능했다.

마법사들이 펼치는 플라이 마법이라면 하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마나 역장 안에서 그건 무리였다.

끈 떨어진 연처럼 언제 추락할지 모르니 말이다.

그 순간 넓게 펼쳐진 그의 감각 안으로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 안에서도 봄날의 민들레 홀씨처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던 그것은 이내 구정철의 옆에 착지했다.

“필요하신 게 있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강현이었다.

***

뽑기.

처음 씨드를 얻을 때를 제외하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것.

퀘스트 보상과 전투 보상으로 얻은 무료 이용권이 쌓여 갔지만 나는 두 번 다시 뽑기를 이용하지 않았었다.

뽑기는 확률도 뭣도 없는 말 그대로 도박이니까.

그랬었는데.

폭풍이 휘몰아치고 낙뢰가 그물처럼 사방을 감싸고 있는 와중에 나는 뽑기에 1천 포인트를 투자했다.

1번에 10포인트니 뽑기를 100번 돌린 것이다.

거기에 전투 보상으로 받은 무료 이용권까지 사용하니. 110번 뽑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 97번째의 뽑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템이 나오는 족족 확인을 해보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사용할만한 아이템은 눈에 띄지 않았다.

타다다닥!

폭풍과 천둥으로 주변이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박스 안을 미친 듯이 튀어 다니는 캡슐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유난히 선명하게 귓속을 울렸다.

그리고 칠흑의 하늘을 도화지 삼아 흐드러지게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번개의 꽃을 배경으로 한줄기 섬광이 피어올랐다.

황금색!

여태껏 단 한 번도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던 색깔.

그 선연한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나는 조심스럽게 인벤토리를 열어 97번째 만에 나온 첫 황금색 아이템을 확인했다.

타 다다닥!

다시 돌아가는 박스의 소음을 뒤로하고.

[아이템: 바람신의 걸음]

[등급: S급]

[설명: 바람신 위그야레프가 남긴 발자국이다. 모든 바람을 타고 오를 수 있으며 바람이 없다면 바람을 만들어 날아오를 수도 있다.]

[추가 설명: 일회성 아이템이며 사용 시 1시간 동안 바람신 위그야레프의 권능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바람신의 걸음은 투명한 슬리퍼같이 생긴 아이템이었다.

단지 슬리퍼와 다른 점이라면 오직 밑창만 존재한다는 점일까?

그리고 확인 가능한 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신발처럼, 좌우의 형태는 달랐지만 두 개가 한 쌍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아이템 설명을 떠올렸다.

‘그 어디에도 이 두 개를 한꺼번에 사용하라는 말은 없었지.’

그렇다면 이게 필요한 두 사람에게 하나씩 전달해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마친 내가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바람신의 걸음을 챙겨 넣었을 때였다.

번쩍.

다시 한번 찬란하고 아름다운 황금색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110번째 뽑기에서였다.

***

바람신의 걸음을 받은 두 사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서태촌은 처음엔 ‘이건 뭔 개소리지’하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고, 바람신의 걸음을 착용한 이후엔 경악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구정철은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받아 가는 것처럼 바람신의 걸음을 착용하고는 ‘호오’ 하는 탄성을 한번 내뱉은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이어진 전투.

그것은 마치 신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자그마한 두 인간이 거대한 괴수에 맞서 싸워 세상을 구하는 장엄하고도 숭고한 신화 말이다.

저 멀리서 쏘아져 오는 마나 포격과 전투기들의 미사일을 자유자재로 피하며 전투를 이끌어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하늘의 신장(神將)과 다름이 없었다.

작렬하는 섬광과 굉음.

뿌려지는 피와 살점.

빗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것이 대지를 적시고 더욱 고도를 낮춘 먹구름 속에서 뇌전의 비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종말.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종말의 중심에 서 있었다.

***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서태촌은 3분 구정철은 5분이 남았습니다.”

씨드의 보고에 나는 전장을 돌아봤다.

마나 포격과 미사일요격.

구정철과 서태촌이 뿌려 대는 스킬들에 얻어맞은 구름 가오리는 더는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숟가락을 얹어야 할 시기가 됐네.”

남은 전투시간은 맥시멈으로 잡아도 5분, 그 안에 구름 가오리를 쓰러트려야 했다.

지금 전투기 편대와 마나 포격이 구름 가오리의 몸에 상처를 만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놈의 모든 어그로를 끌고 있는 것은 구정철과 서태촌 두 사람이었으니까.

만일 두 사람이 전투에서 이탈한다면 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체력과 상처를 회복하려 할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놈이 올라갈 수 없도록 두 사람이 붙잡아둔 것도 있고.

“씨드. 준비는?”

“샤이닝 에로우 35기 준비 완료했습니다.”

35기.

크롤러와의 싸움에서, 그리고 암혈과 싸움에서 반파되거나 완파된 기체가 15기나 된다는 소리다.

파손된 샤이닝 에로우는 인벤토리에서 자가 수리를 하고 있지만, 재료가 없기에 순전히 마나석 에너지로 수리 중이라 언제 수리가 완료될지 기약이 없었다.

“표적은?”

“개체명 구름 가오리의 심장입니다.”

구름 가오리의 심장은 무려 일곱 개.

그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전류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거대한 발전기 일곱 개를 몸속에 품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저런 어마어마한 방전이 가능한 것이었나 보다.

그리고 놈의 방전은 라그라주를 다시 살찌우고 있었다.

부러져 나간 가지를 수복하고 다시 무성한 잎이 돋아난 라그라주.

그 라그라주의 줄기에는 손가락 굵기의 와이어가 묶여 있고 그것은 35기의 샤이닝 에로우에 연결되어 있었다.

“실패하면 곤란해 씨드.”

당부 섞인 내 말에 씨드는 믿음직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사령관님.”

씨드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엔 뽑기로 얻은 똥망템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껏 샤이닝 에로우와 씨드는 제 몫 이상의 성능을 보여줬다.

물론 그만큼 많은 투자를 한 것도 사실이다.

마나석이나 탈모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랬다 하더라도 씨드는 투자 대비 그 이상의 성능으로 지금껏 나를 만족시켜 왔다.

“너도 조심하고 씨드.”

“…네 사령관님.”

내 걱정스러운 당부에 씨드의 대답은 조금 늦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의외였던 모양이다.

“그럼.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사령관님.”

씨드의 말에 나는 구름 가오리를 노려봤다.

길이 15㎞ 폭 12㎞.

원래라면 거대하다는 말도 부족해야 할 덩치지만. 잦은 전류의 방출과 힘의 소모로 그 거체는 몰라보게 작아져 있었다.

아마도 그 거대했던 체구는 뇌전을 저장하는 용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길이 500m 폭 400m.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거대한 덩치 안에 존재하는 7개의 심장.

샤이닝 에로우는 그것에 정확히 명중해야 한다.

구름 가오리의 거체에 비하면 가시와도 같은 크기의 샤이닝 에로우.

하지만 샤이닝 에로우와 연결된 와이어가 끊어지지 않는 한 놈은 반드시 죽는다.

후읍.

긴장으로 손이 떨려왔다.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기분 좋은 떨림.

오늘 12마리의 재해급 괴수 중 하나가 죽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내가 장식하게 될 거다.

“샤이닝 에로우. 발진.”

내 명령이 떨어지자 35개의 유성이 푸른빛을 내며 쏘아져 나갔다.

은색으로 빛나는 기나긴 꼬리를 매달고서.

놈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시도조차 못 해 볼 공격.

하지만 마나 역장이 사라진 지금. 샤이닝 에로우라는 작고 날카로운 가시를 회피하기에 놈의 덩치는 너무나도 컸다.

쿠-억!

심장에 서른다섯 개의 가시가 박힌 구름 가오리는 단말마를 토해 내며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어떤 생물이든 생명체라면 심장은 급소인 게 확실했다.

파지지지직!

거칠게 움직이던 지느러미의 움직임을 멈춘 구름 가오리가 뇌전을 뿜어냈지만, 그것은 서른다섯 개의 와이어를 따라 라그라주에 흡수되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구정철과 서태촌의 연격(聯擊)이 놈의 대가리를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퍼퍼퍼퍼펑!

크어어어-!

거대한 폭음과 괴성이 울리며 구름 가오리가 떨어져 내렸다.

순간 라그라주와 연결된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아다만티움과 미스릴 그리고 오리하루콘 철사를 엮어 만들어진 와이어가 쉽게 끊어질 리가 없었다.

우지직! 쿠구궁!

마침내 구름 가오리가 산등성이에 처박혔다.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벌 떼처럼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향해 날아가는 두 개의 그림자.

서태촌과 구정철이 합류한 후 이루어진 헌터들의 파상공세에 구름 가오리가 곧 움직임을 멈췄다.

심장이 멎은 것일까?

와이어를 타고 흘러들어 오던 전류의 흐름이 뚝 끊겼다.

놈의 숨이 멎는 순간. 주변을 휘감고 있던 먹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한 줄기 서광.

난 라그라주의 꼭대기에서 그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빛을 받아들였다.

어제도 그제도 본 햇빛이지만 꽤 오랜만에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022년 7월.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재해급 몬스터 중 하나인 구름 가오리를 처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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