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74화 (74/202)

74. 가오리 사냥 (3).

힐끔.

나는 여전히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서 있는 암혈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양옆으로 SS급 각성자가 둘이나 서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암혈이 위험인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제정신이 아닌 지금이 아니라면 이걸 쓸 여건도 안 됐겠지.’

[아이템: 이프리안의 물벼룩]

[등급: F급]

[설명: 행성 도다의 어인(魚人)족 이프리안이 키우는 애완용 물벼룩. 물을 흡수한다.]

[추가 설명: 생존에 물이 필수인 어인족 이프리안이 물이 없는 사태를 대비해 키우는 물벼룩이다. 주로 사막을 여행하는 이프리안의 필수품인 물벼룩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물을 흡수하고 토해 낸다. 한 마리의 물벼룩이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총량은 10만 톤에 불과하니 사용에 유의하십시오.]

물벼룩 한 마리가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총량은 10만 톤.

시스템이 ‘10만 톤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한 걸 보면 이프리안이라는 어인족에겐 그게 적은 양인 것 같지만 그게 모이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구매한 물벼룩은 총 1000마리. 이걸 이용하면 구름 가오리가 쏟아부을 폭우에도 대비할 수 있다.’

시간당 1000㎜를 쏟아붓는 폭우.

비를 가장한 물의 폭력.

하지만 놈이 얼마를 쏟아붓든 상관이 없었다.

물벼룩이 흡수한 물의 해결 방법도 이미 생각해 두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네 마리의 물벼룩을 암혈의 사방에 내려놓았다.

고작 2㎝ 크기에 불과한 물벼룩 한 마리가 10만 톤의 물을 흡수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지만, 그저 그러려니 할 뿐이다.

‘머리 위에 시간당 수천 밀리미터의 폭우를 쏟아붓고 번개의 신처럼 벼락을 일으키는 놈도 있는데. 고작 물을 흡수하는 물벼룩이야 뭐.’

그렇게 물벼룩의 배치를 끝낸 나는 조용히 명령했다.

“먹어.”

손끝으로 암혈을 가리키며 의지를 담아.

그리고 그 순간.

꾸르륵.

털썩.

암혈의 사지를 이루고 있던 피와 물이 모두 물벼룩에게 빨려 들어가고 졸지에 다시 두 다리를 잃은 암혈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자 서태촌에 의해 잘려 나갔던 암혈의 상처에서 다시 피가 새어 나왔지만, 나는 암혈의 상처에 포션을 뿌리는 것으로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았다.

‘대체 무슨 말을 들었길래 SS급 각성자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암혈은 여전히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호-. 재미있는 아이템이로군. 물을 흡수하는 건가?”

내 옆에서 지켜보던 구정철이 흥미롭다는 듯한 얼굴로 물벼룩을 내려다보았다.

“만지지 마십시오. 비싼 겁니다.”

“큼…. 거참 까칠하기도 하네.”

물벼룩을 향해 손을 뻗는 구정철을 제재하자 그가 무안한 눈으로 나를 힐끔거렸다.

“구름 가오리의 폭우를 막기 위해 준비한 겁니다. 마침 이자에게 효과가 있었을 뿐이죠.”

“이런 조그마한 벌레로 홍수를 대비했다고?”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그게 그렇게 보여도 10만 톤의 물을 흡수합니다.”

“뭐?”

“그게 말이 되나?”

두 사람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십만 톤의 물이란 어지간한 중소 도시의 시민들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2㎝ 크기에 불과한 물벼룩 한 마리가 그만한 양의 물을 흡수할 수 있다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하지만 나는 이 귀찮은 두 영감님에게 설명이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나무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 급한 것 아니었습니까?”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저 위에서 수많은 비명과 고함 그리고 폭음이 요란하다.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루한 E급 헌터는 끼어들 수도 없는 대전(大戰)이.

한데 이 사람들은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걸까?

고작 E급에 불과한 나도 저 대전에 끼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리는데.

“기다리는 중일세.”

“기다린다고요?”

구정철은 무뚝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대답을 회피한 것이 그의 심기를 거슬렸나 보다.

“자네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나?”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세계 10대 기업 중 둘을 보유하고 있고, 100대 기업 중엔 그 수가 무려 다섯이나 되지.”

어지간한 국민은 다 아는 사실을 말하는 구정철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가끔 잊어버리는 게 있지. 우리나라가 군사력으로도 어디에 꿀리지 않을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말일세.”

“??”

“세계 6위의 군사 대국. 세계 7위의 각성자 전력을 가진 나라.”

전직 대통령을 지내서 그런 걸까?

구정철의 목소리엔 대한민국이 가진 군사력에 대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물론 그럴 만도 했다.

지금 그가 말한 것 중 일부엔 분명 그의 땀과 노력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

내가 궁금한 점은 하나였다.

‘왜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거지?’

내 얼굴에 어린 의문을 읽어낸 것인지 구정철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정부엔 국가 비상대책 매뉴얼이라는 게 존재하지. 그리고 구름 가오리는 그중 1등급. 구름 가오리가 하강을 시작한 순간부터 매뉴얼대로 작전이 시작되었을 거란 얘기지.”

그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마치 지금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쪽 하늘에서 전투기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슈우우웅-!

그리고 그 전투기 편대의 머리 위로 유성과도 같은 빛 덩어리들이 구름 가오리의 둥지를 뚫고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콰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구름 가오리의 거체를 타격하고 산란하며 흩어지는 빛.

마나 포격이었다.

크어어어!

그 타격이 작지 않은지 구름 가오리가 지금껏 들려줬던 울음소리와는 다른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토해 냈다.

“구름 가오리 1등급 재해급 괴물.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자랑스러운 얼굴로 전투기 편대를 바라보는 구정철.

“건드렸다면 최대한 빨리 놈을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지.”

그의 얼굴에 드러난 자부심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저 정도 넘쳐나는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앉을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전투기 편대가 머리 위로 지나가며 미사일을 떨궜다.

슈우우우-

과녁은 구름 가오리의 거체.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빗나가려야 빗나갈 수도 없었다.

빠지직.

구름 가오리의 몸 위로 전류의 그물이 방전되듯 일어났으나 미사일은 전류의 그물을 뚫고 들어가 놈의 몸을 타격했다.

콰콰콰콰쾅!

그어어어!

구름 가오리가 처음 등장한 지 70년.

그 시간만큼 놈도 강해졌다.

40년 전 중국 웨이팡시에 재앙을 내릴 때보다 체구는 더 거대해지고 놈이 부리는 뇌전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그 40년 동안 이루어진 인류의 발전 역시 그야말로 눈부셨다.

대 괴수 전용 무기인 마나 포가 만들어져 국경을 방비했고.

마나가 이동하는 경로인 마나 터널을 이용한 인 터널 네트워크(In-Tunnel Network). 통칭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의 국경이 허물어졌다.

그와 함께 이루어진 국가 간의 정보 교류의 대부분은 대 몬스터에 관한 대응책과 대응 무기에 관한 정보였고 그 결과가 지금 보이는 이것이었다.

파지지지직! 우우웅-!

구름 가오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전류와 공명한 전자기 역장이 구름 가오리의 몸을 두껍게 감쌌다.

하지만 그것은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도 수도방위군단에서 발포한 마나 포도 막지 못했다.

슈우웅-!

콰과과과광!

놈이 거대해지고 강해지는 동안. 인류는 그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진화했으니까.

그렇다. 이것은 진화였다.

수천 년 인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마나라는 새로운 힘의 법칙에 적응하고 수용해 더욱 발전시키는 진화.

그리고 그 진화의 끝에 있는 존재가 바로 각성자.

휘유유유-! 콰과광!

퍼퍼퍼퍼퍼펑!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수천 개의 스킬들.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미약하지만 그것들이 뭉쳐 만들어낸 결과는 절대 하찮지 않았다.

그오오오!

거대한 구름 가오리의 몸에 상처가 만들어지고 전류와 함께 핏물이 흘렀다.

물론 어마어마한 재생력으로 금세 상처를 수복했지만, 분명한 것은 저 거대한 괴물이 상처를 입고 울부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전투를 라그라주의 최상단에서 관전하고 있었다.

“놈을 잡을 기회를 만들어준 이가 이 아래서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구정철의 이상한 논리와 함께 끌려오다시피 라그라주의 위로 올라오게 되었지만, 솔직히 나도 조금은 이곳에 오고 싶었다.

‘세계 최초’라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순간에, 관계없는 사람처럼 아래서 구경만 한다는 건 나도 내키지 않았으니까.

휘이잉.

스쳐 가는 바람에 내가 몸을 기대고 있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힐끗.

구름 가오리를 바라보던 눈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새 얼마나 자란 것인지 저 멀리 아래로 보이는 지표면이 까마득하다.

푸르게 우거진 이파리 때문에 아래를 볼 수는 없지만, 저 멀리 도도하게 흐르는 북한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 가오리의 둥지. 먹구름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어?”

순간 뭔가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구름이 왜 이렇게 낮게….”

아무리 라그라주가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닿으려면 최소 2km 크기로 자라야 한다.

산자락에서 만들어져 상승기류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구름이 아니라면 적어도 2km는 올라가야 구름이 손에 닿을 듯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건 아직 라그라주는 그 정도로 자라지 못했다.

그 말은.

“구름이 내려오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뒤덮은 거대한 먹구름이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를 느낀 건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러서라!”

“공격을 멈춰! 퇴각하라!”

전투를 독려하던 싸울아비와 화랑의 수뇌부들이 퇴각을 명령했다.

하지만.

꽈르르릉.

쩌저저저적!

둥지의 하강은 나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랐다.

샤아아아.

순식간에 구름 가오리가 둥지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우리는 천둥이 울리고 뇌광이 번쩍이는 먹구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침착하게 나무 아래로 퇴각한다!”

“서두르지 마라!”

여기저기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오지만, 안개에 잡아먹힌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서늘하고 축축한 안개가 주변을 잠식한 상황.

감각의 영역을 확장했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구름 가오리가 뿜어내는 마나 역장 안에서는 확장된 감각 영역은 오히려 혼란을 줄 뿐이었다.

내가 확장했던 감각 영역을 다시 갈무리하던 그때.

빠지지직!

“끄아아-!”

사방을 밝히는 거대한 섬광의 그물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울리며 누군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둥지가 뿜어낸 뇌전의 대부분은 라그라주에 흡수가 되었지만, 워낙 그 범위가 넓어 모든 이들이 뇌전을 피할 수 없었던 탓이다.

쫘좌좌작!

마치 거대한 채찍이 휘둘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고.

끄아아악--!!

쉴 새 없이 번쩍이는 섬광 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또다시 아래로 멀어져 갔다.

검고 짙은 안개 사이로 거뭇한 구름 가오리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씨드의 외침과 함께 바람이 우리를 덮쳤다.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후우웅-!

거대한 바람.

“씨발!!”

태풍이라 불려야 할지도 모를 위력적인 바람이 녀석의 양 지느러미 끝에서 일어나 라그라주를 덮쳤다.

솨아아아-.

우지직. 꽈직!

녀석이 뿜어내는 강대한 뇌전마저도 흡수하던 라르라주의 가지가 그 강대한 바람 앞에서 힘없이 꺾여 나갔다.

나는 폭풍이라 불려도 될 바람의 폭력을 겨우겨우 라그라주의 줄기를 붙잡고 버텼다.

으아아아-

‘빌어먹을.’

또다시 수많은 비명이 저 아래를 향해 멀어져 갔다.

이렇게 위력적인 바람이 불어옴에도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안개는 미동조차 없었다.

구름 가오리 녀석, 이런 바람을 일으킬 수 있으면서도 여태껏 단 한 번도 그걸 드러낸 적이 없었다.

‘아니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거겠지.’

그렇다. 놈은 굳이 몸을 움직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벼락을 떨어트리는 것만으로도 놈의 적은 지리멸렬해서 죽어 나갔을 테니.

그저 양 지느러미를 휘젓는 것만으로 이런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서도 말이다.

우지직!

그 거대한 바람의 폭력에 내가 붙잡고 있던 나무줄기가 휘청이며 파열음을 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해.’

공개되어 있던 구름 가오리의 정보만으로 대책을 준비했기에 바람에 대한 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저 거대한 지느러미를 보고 예상해야 했는데.’

하지만 언제까지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한 손으로 줄기를 붙든 채 시스템 상점창을 열었다.

[상점 등급: E]

[검색: ]

[구매] [판매]

[보유 포인트: 1032.2]

아침에 모두 소모했던 포인트가 어느새 천 포인트대까지 회복되었다.

이게 모두 해피포인트 덕분이다.

해피포인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면 내게 주어지는 포인트였다.

정확한 명칭을 몰라 나는 그냥 해피포인트라고 부르기로 했다.

‘1032포인트.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상점창을 연 나는 고민을 해야 했다.

구매와 뽑기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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