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73화 (73/202)

73. 가오리 사냥 (2).

구오오오오오-!

하늘이 울었다.

그저 하나의 몬스터에 불과했지만 구름 가오리가 토해 내는 울음소리는 하늘을 떨어 울리며 지상의 모든 존재를 공포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온다! 마법사들 전기 굴절(Electricity Deflection) 마법진 가동!”

하지만 분명 그 공포에 대항하는 자들은 존재했다.

마법진을 형성해 방어를 준비하는 화랑이 그러했고.

“일진은 봉뢰진(封雷陳)을 형성한다! 이진은 반격을 준비한다!”

호전적인 싸울아비는 반격까지 염두에 둔 진법을 준비한 채 구름 가오리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우웅- 우우 웅-.

이상한 공명음을 토해 내며 거대한 뇌전의 공이 지상으로 천천히 느릿하게 내려 왔다.

파지 찌직!

사방으로 섬뜩한 스파크를 뿌리며 떨어져 내리는 뇌구(雷球).

뿌려대는 스파크 하나의 굵기가 웬만한 벼락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굵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거리도 있고. 여기가 적당하겠네.’

그것을 본 강현은 인벤토리를 열어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길이 2m는 돼 보이는 양 끝이 뾰족한 쇠막대.

푸욱!

강현은 그것을 작고 가녀린 초록의 새싹 옆에 박아넣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하게.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날카롭게 삐져나온 막대의 첨단만이 그곳에 막대가 박혀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막대를 꽂아 넣은 강현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제 피하셔야 합니다.”

“음?”

“빨리요.”

강현의 재촉에 강현과 함께 말뚝에서 멀찌감치 물러난 구정철이 물었다.

“저 쇠막대가 뭔지 물어도 되겠나?”

“직접 보시죠. 지켜보면 자연히 아시게 될 겁니다.”

구정철의 물음에 강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내새끼가 좀스럽게 말이야. 그거 가지고 아직도 삐져 있는 거야? 조금 전에 목숨도 구해 줬구먼…. 쯧.’

한때 강현의 목숨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가늠했던 구정철이었지만 보통사람들이 그러하듯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빠지직.

느릿하게 떨어져 내리던 뇌구가 점점 더 속도를 높였다.

‘그래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지름 100m는 될 법한 뇌구. 그것이 지나오는 공간이 일렁이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우우우웅-!

번쩍!

퍼퍼펑!

쾅!

뇌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파크 하나하나가 마치 번개처럼 주변의 나무와 건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빠지직!

그리고 마침내 뇌구가 바닥에 닿는 순간.

뻔-쩍!

세상이 새하얀 섬광으로 물들었다.

“어?”

그리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고 있던 이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갔어?”

온몸의 근육을 잔뜩 긴장시킨 채 봉뢰진을 구성하고 있던 싸울아비 길드원들도.

“사라…졌네?”

몸 안의 마나를 쥐어짜다 못해 마나포션을 생수처럼 들이키며 마법진을 유지하던 화랑 길드원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사라진 뇌구를 찾아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드드드드드.

덜덜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어…?”

흔들리는 지반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괜히 정예가 아닌 듯 그들 또한 곧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았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지반을 뚫고 솟구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으악!”

“조, 조심!”

봉뢰진은 흐트러지고 마나 공급이 끊긴 마법진은 허공에서 깨어져 나갔다.

“어억!”

“아니 씨바! 이건 또 뭔 난리야-악!!”

경지에 이른 몇몇을 빼곤 모두가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 상황.

그 경지에 이른 몇몇 중 하나인 구정철은 쓰러지려는 강현을 옆구리에 끼운 채로 지반을 뚫고 솟아오른 그것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무?”

지반을 뚫고 솟아오른 그것들은 방금 땅에서 솟아올랐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초록의 잎이 무성한 거대한 ‘나무들’이었다.

“이게. 자네가 준비한 대책인가?”

구정철의 팔을 밀어내고 땅 위로 내려선 강현은 그의 말을 정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책 중 하나죠.”

[아이템: 전뢰수 라그라주 묘목]

[등급: B급]

[설명: 뇌신(雷神) 울티아의 정원에서 자라는 전뢰수(電雷樹) 라그라주 묘목.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해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추가 설명: 강현이 박아넣은 아이템: 일렉트로닉 드레인 스피어 E를 흡수해 성장이 촉진되었다.]

강현은 눈앞에 떠오른 라그라주의 정보를 읽어 내려가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떨어지는 낙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구름 가오리가 쏟아붓는 빗물에 대한 대비 또한 해 두었기에 피해에 대한 걱정은 덜어낸 상황.

문제라면 강현에겐 구름 가오리를 공격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험치가 아깝긴 하지만 굳이 내가 구름 가오리를 처치할 필요는 없지.’

우르릉. 번쩍!

다시 한번 뇌전의 비가 쏟아져 내렸지만 지상에 닿지 못하고 라그라주 묘목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순간 고요하게 내려앉은 정적.

같은 공간에 자리한 2천 명이 넘는 인원이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번갯불의 향연을 지켜봤다.

“허어….”

그 광경을 본 구정철이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순간.

쩌적.

뿌드드득.

구름 가오리가 뿜어내는 번개를 모조리 흡수한 라그라주가 또다시 성장했다.

더욱 튼튼하고 높게.

“…이거, 이러면 정말 저놈을 사냥할 수도 있겠는데?”

구정철의 목소리엔 나이답지 않게 짙은 호승심이 드러나 있었다.

12마리의 규격 외 몬스터.

다른 명칭으론 재해급 몬스터, 그중 하나인 구름 가오리.

만약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놈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면 전 세계 최초가 될 것이다.

‘재해급 괴수는 죽일 수 없다.’

지금껏 굳건하게 지켜졌던 그 법칙이 파괴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길드업계가 들썩일 것이다.

세계 최초.

이 얼마나 명예로운 단어인가.

세계 최강.

남자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단어.

흘끗.

구정철의 시선은 서태촌을 향했다.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서태촌의 눈은 용광로를 데우는 불꽃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구정철의 시선을 느낀 서태촌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피식.

구정철의 입꼬리엔 미소가 걸렸다.

“오늘!”

미소짓던 구정철이 일갈을 터트렸다.

머리 위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보다 더 큰 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구정철에게 모였다.

“우리는! 몬스터 사냥의 새역사를 쓴다! 세계 최초! 세계 최강! 그 명칭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마나가 담긴 그의 목소리가 넓게 퍼져 나가고.

“구름 가오리가 두려운가?!”

“아닙니다!!”

“가라!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걸 모든 이에게 보여 줘라!”

이글거리는 화랑 길드원들의 눈빛을 확인한 구정철이 씩 미소를 지었다.

“화랑! 출진!”

고요하던 대지 위로 1천의 헌터들이 내뿜는 투기가 유형화되어 일렁거렸다.

“우와-악!!”

화랑의 길드원들은 거대한 함성을 내뱉으며 구름 가오리의 번개를 흡수해 성장하고 있는 라그라주를 타고 올라갔다.

흘끗.

하지만 섣부르게 걸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1천의 싸울아비 길드원들.

그들의 마스터는 아직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니까.

피식.

부하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서태촌은 미소를 지었다.

“나이를 먹어도 약삭빠른 건 여전하군.”

바로 선수를 빼앗은 구정철의 행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세계 최초. 세계 최강.

좋은 울림이다.

강함을 추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말 아니겠는가.

“싸울아비.”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가라.”

나직한 말을 토해 냈다.

“우리가 화랑 샌님들에게 뒤져서야 하겠는가. 가서 누가 진정으로 세계 최강인지 보여 줘라.”

구정철처럼 마나를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큰 울림을 가진 그의 말이 끝나자.

“네!!!”

대답과 함께 1천의 싸울아비는 자라나는 라그라주 묘목을 다람쥐처럼 타고 올라갔다.

화랑 길드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구름 가오리에게 닿겠다는 듯이.

***

싸울아비와 화랑의 길드원들이 모두 라그라주의 나뭇가지를 밟고 날 듯이 위로 올라갔다.

남은 이들은 구정철과 서태촌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이들 몇몇.

“우리는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서늘한 서태촌의 목소리가 날아간 곳엔 짙은 허무에 물든 눈으로 산월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암혈이 있었다.

‘그새 심문이라도 한 건가?’

서태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현은 체내의 모든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듯 푸석하게 말라버린 채 죽어 있는 산월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자네는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게.”

강현의 옆에 서 있던 구정철 또한 그 광경을 본 모양인지 질퍽한 땅을 가로질러 그들에게 다가갔다.

갯벌과 다름없는 땅 위로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초절의 신법.

여든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포횰 하기 그지없는 가벼운 그 몸놀림은 왜 그가 투왕이라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핏 피핏!

서태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유형화된 살기가 암혈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혈인의 모습으로 변한 암혈이지만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는 다시 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마치 시간을 되감는 것처럼.

스윽.

그 공간을 파고든 구정철은 가벼운 손짓으로 서태촌의 살기를 밀어냈다.

“뭐 하는 거지? 설마 날 막을 셈인가?”

진득한 살기가 묻어 나오는 서태촌의 물음에 구정철은 손을 내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내가? 자네를? 왜?”

“그럼. 왜 끼어든 거지?”

“저놈보다 중요한 게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잖나.”

하늘을 가리키는 구정철의 손짓을 따라 하늘을 향했던 서태촌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여전히 살기를 머금은 채로.

“그렇다고 10년을 기다린 복수를 그저 목을 취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아네.”

맞는 말이다.

10년을 묵힌 아들의 복수다.

서태촌은 그 복수를 단 순간에 목을 취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설마 저놈을 이대로 두고 위로 올라가자는 소리는 아닐 테고.”

우르릉-쾅! 쩌저저저적!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내려칠 때마다 라그라주는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그중 강현이 땅속에 박아넣었던 일렉트로닉 드레인 스피어를 흡수한 녀석의 경우는 벌써 밑동의 지름이 20m에 그 높이는 200여 미터까지 자라났다.

가히 경이적인 생장 속도였다.

그리고 그 위에선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둥지를 벗어나 전신을 드러낸 구름 가오리와 2천 명의 각성자들이 벌이는 유례없는 전투가.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처럼 사방을 물들이며 뻗어 나간다.

헌터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스킬이 허공을 수놓으며 구름 가오리의 거체를 타격하자.

구오오오오-.

그 거대한 놈이 신경질적인 울음을 토해냈다.

벼락에 맞을 걱정이 없기에.

그리고 벼락을 흡수한 라그라주가 놈에게 닿을 듯이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기에 가능한 전투였다.

언뜻 보면 각성자들에게 유리해 보이는 전장.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전력인 두 사람이 아직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암혈이 아니었다면 서태촌은 가장 앞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었으리라.

무인이라면, 그리고 헌터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상상해 보는 일이니까.

12대 재해급 몬스터 중 하나를 처치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이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태촌은 아들의 원수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각성자를 포박할 수 있는 구속 구가 없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구속 구들은 각성자 범죄를 전담하는 경찰에게나 보급되어 있어 일반적인 길드는 구할 수조차 없었다.

물론 10대 길드쯤 되면 구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엄연히 불법인 것이다.

“그건, 일단 저 친구에게 한번 물어보지.”

말을 마친 구정철의 고개가 강현에게 향했다.

‘응? 나? 왜?’

“비밀이 많은 친구이니 이 암혈이라는 놈을 묶어둘 방법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강현군?”

구정철의 말에 서태촌이 정말이냐고 묻는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고서야 위험한 미끼 역할을 자처했을 리가 있나.”

구정철의 말을 들은 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저 양반이 비싼 차 마시고 뭔 헛소리야?’

그저 전용 던전이라는 믿음직한 방공호가 있기에 자처한 미끼 역할이 이런 오해를 불러올 줄 몰랐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강현은 자신이 준비했던 아이템 중 하나를 떠올렸다.

[아이템: 이프리안의 물벼룩]

홍수를 막기 위해 구해 두었던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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