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가오리 사냥 (1).
“미친놈이. 제멋대로 산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고 지랄이야.”
강현의 말에 장내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강현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의 눈빛은 ‘저 미친놈이 뭐하고 떠드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구름 가오리.
이 자연 재해급 몬스터가 둥지를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 건 40년 전 중국을 제외하고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등장은 적어도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확실한 충격을 남겼다.
SS급 각성자 및 길드원 1천 명 전멸. 공격에 참여했던 사단급 군대 전멸. 격전지였던 웨이팡시 및 인근 주민 40여만 명 사망.
그리고 지금까지 웨이팡시와 인근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금지가 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길드와 군대의 사망원인은 홍수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인은 모두 감전사였다.
한마디로 모두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런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쿠르르릉.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던 구름 가오리의 눈이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붓던 장대비가 멎었다.
이것은 구름 가오리가 벼락을 뿌릴 준비를 한다는 신호였다.
중국이 공개한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웨이팡시가 멸망하던 그 날. 그곳에는 백만 번의 벼락이 떨어졌다.’라고.
워낙 과장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기에 그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구름 가오리가 벼락을 뿌린다는 것 말이다.
“큭. 저 애송이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모양이군.”
강현의 말을 비웃으며 입을 연 것은 산월이었지만 모인 이들 중 몇몇은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 당신도 여기 있는 이들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산월은 암혈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그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그놈이야 어찌 됐건 우리가 알 바가 아니지. 하지만 난 아직 죽을 생각이 없는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산월의 말에 대답한 강현은 곧장 말을 이었다.
“너희 같은 미친 테러리스트가 노리고 있고 저런 괴물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는데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없었을 것 같아?”
강현의 말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 욱일회가 구름 가오리를 이용한 테러를 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풍대와 신멸대 그리고 암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일본 정부와 천황 그리고 욱일회의 대(對)대한민국 정책의 기조는 무력 통합에 이은 식민통치.
그것은 지난 80여 년간 변하지 않은 기조였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독립국이 아닌 자신들이 되찾고 통치해야 할 자신들의 영토였으니까.
어떤 미친놈이 자기국토에 재앙과도 다름없는 짓거리를 하겠는가?
그 때문에 일본 정부도 천황도 심지어 테러단체인 욱일회마저도 구름 가오리라는 통제 불가의 재난을 한반도 하늘 위에서 터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자 욱일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욱일회가 구름 가오리를 자극해 재난을 만들어 낼 거란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 정부의 내각이 개편되며 대한민국을 향한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
다스려야 할 땅이 아닌, 지워 버려야 할 땅으로.
그로 인해 일본 정부와 천황 사이에서 마찰이 생겼고, 이에 일본 정부는 욱일회주와 결탁해 이번 테러를 계획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내에 있는 천황의 세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세계시장에서 자국의 기업들을 추월하기 시작한 대한민국 기업들에 대한 견제로써.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성공을 앞둔 상태였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설마. 진짜 아무도 대비를 안 했다고……?”
어이없어하는 강현의 목소리에 그나마 강현과 안면이 있는 구정철이 말을 받았다.
“큼…. 이번 작전을 워낙 급하게 세우다 보니, 구름 가오리라는 변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궁색하기 그지없는 변명.
말을 마친 구정철도 민망했던지 강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정말? 진짜?’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강현.
하지만 그들 모두 슬그머니 강현의 눈을 피했다.
‘테러범들을 잡겠다는 사람들이 정작 이런 테러에 대해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
자신의 눈을 피하는 길드 관계자들을 지나쳐 강현의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짙은 먹구름을 가르며 구름 가오리의 거대한 몸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쿠르릉-. 꽈르릉-.
구름 가오리가 먹구름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하늘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일단 믿을 수 있는 건 뿌려 놓은 씨앗들뿐이라는 건데.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곳에서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주변에 뿌려둔 아이템들뿐이라는 사실이 걱정될 뿐이었다.
‘청심원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대현에서 지은 신축 건물이라 조금 안심이긴 해도 백만 번의 벼락을 직격으로 때려 맞으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일단 저 녀석을 처리하는 데 집중해야 해.’
걱정된다고 당장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 괴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팔당호 아래로 있는 모든 도시는 홍수에 쓸려갈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
최하 수십만에서 수백만이 사망하고 수천만의 이재민들이 생겨난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비가 그쳤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놈이 왜 이곳을 공격하는 거지?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을 풀어줄 만한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화랑 길드 전투 준비!”
“싸울아비 전투 준비! 오늘 구름 가오리를 세상에서 지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겁먹지 마라! 그래 봐야 한낱 몬스터에 불과하다!”
“네! 마스터!!”
부하들을 독려하는 서태촌의 목소리가 울리고.
꾸르릉.
번쩍!
꽈앙-!!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던 암혈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끄아아악-!”
“아악!”
“피, 피해!”
정작 벼락을 맞은 암혈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그 주변에 오순도순 모여 있던 녀석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암혈의 사지를 구성하고 있는 피와 물이 전류를 사방으로 퍼트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애꿎은 부하들만 죽어 나갔지만, 암혈은 여전히 짙은 허무가 담긴 눈으로 산월이라는 놈을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반면, 화랑과 싸울아비의 대응은 달랐다.
“뇌망진(雷網陳)을 구성하라!”
싸울아비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뇌망진이란 진법을 구성했고.
“전 마법사 대기. 라이트닝 스토어러지(Lightning storage) 발동합니다.”
화랑은 이상한 기계장치를 꺼내 그곳에 마나포션을 때려 부으며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뭔가 체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역시 10대 길드라 이건가?’
S급 던전까지 헌팅을 하는 길드들이다 보니 속성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번쩍-!
꽝!
그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다시 한번 번개가 암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번쩍-!
꽈 광!
그리고 그다음에도.
꽝-꽝-꽝! 꽈 광!
“허….”
구름 가오리가 암혈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한번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벼락은 계속해서 암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머리에 피뢰침이라도 달아 놓은 건가?”
어느새 옆에 다가온 구정철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생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암혈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져 내린 이후 쉼 없이 떨어져 내리는 벼락은 점점 그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벼락이 떨어져 내리는 곳은 암혈의 머리 위였다.
‘이렇게 되면 아이템을 쓸 일이 없는 건가?’
[아이템: 라그라주의 씨앗]
[등급: E급]
[설명: 뇌신(雷神) 울티아의 정원에서 자라는 전뢰수(電雷樹) 라그라주의 씨앗. 벼락을 맞아야만 발아해 싹을 틔우며 벼락을 흡수해 자란다.]
이게 내가 아침나절 동안 비를 맞으면 삽질을 한 이유다.
벼락을 맞아야만 새싹을 틔우고 벼락을 흡수해야만 성장을 하는 기괴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무.
설명대로라면 시스템 상점창을 뒤적거려 겨우 찾아낸 이 아이템이야말로 구름 가오리의 공격을 원천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었다.
“그나저나 자네 계속 이렇게 멀뚱히 서 있을 셈인가? 아깐 뭔가 숨겨둔 한 수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나는 구정철과 대화를 하는 것이 마뜩잖았지만,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우리 거래는 그때 끝났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를 보호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던전 살인마 놈들 일로 구정철에게 도움을 받긴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전해 받은 정보는 그저 간단한 프로필 정도였고 그마저도 그들의 배경에 관련된 정보는 빠져 있었다.
그나마 해랑 길드의 던전을 칠 때 지원을 받은 건 쓸만했기에 불평을 하지 않았을 뿐.
구정철이 그걸로 거래가 끝이란 말을 꺼냈을 땐 마지못해 수긍하긴 했지만 정말 눈뜨고 코베인 기분이었다.
그러니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갈 리가 있나.
“그때 일로 손해를 봤다고 여기는 건가?”
“…….”
구정철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니까.
“손해라 생각하지 말게. 적어도 나 구정철의 호의는 얻었지 않은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확실한 내 사람도 아닌 이의 호의 따위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심이 들뿐.
무슨 속셈으로 구정철이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더 뻗대 봐야 얻을 것도 없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뻔쩍-!
그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내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감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음에도 내 몸은 떨어져 내리는 번개를 피하지 못했고.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섬광.
그렇게 내 머리에 벼락이 작렬하려는 찰나.
후웅-.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구정철의 주먹이 번개를 후려쳤다.
빠지지직!
그렇다. 주먹으로 번개를 후려쳤다.
투왕(鬪王) 구정철의 이름이 허명은 아니었나 보다.
‘SS 급이란 것들은 죄다 이렇게 괴물인 건가?’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대체 중국의 SS급 헌터란 놈은 무슨 짓을 했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런 의문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내 의문에 답하는 것처럼 잠시 후 구름 가오리가 참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꾸르릉- 콰광!
번쩍! 번쩍! 번쩍!
퍼퍼퍼퍼퍼펑!
번개의 비가 내리면 이런 광경일까?
하늘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구름 가오리의 동체에서 쉼 없이 떨어져 내리는 낙뢰.
1초에 수천 발의 낙뢰가 떨어지는 광경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장관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낙뢰의 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아니었다.
암혈의 곁에 있던 그의 부하들은 모두가 죽었다.
새까맣게 타서 죽거나 아니면 육신이 벼락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죽거나.
그 안에 살아있는 이는 오직 단둘.
암혈. 그리고 내가 갇혔던 거대한 물의 구체에 갇혀 있는 산월이라는 자뿐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내리던 낙뢰의 비는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 싸울아비와 화랑의 길드원들이 방진을 짜고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구오오오-.
천둥과도 같은 구름 가오리의 울음이 하늘을 떨어 울리고.
우우우웅-
빠지지지직.
구름 가오리의 거대한 동체 위로 푸른색 뇌전이 일렁이더니 한 점에 모이기 시작했다.
“어…저건 못 막을 것 같은데…? X됐네.”
전직 대통령이라는 양반이 말투가 영 이상했다. 나이가 여든이라는 분이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X됐네 라니.
내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구정철은 어깨를 으쓱이며 뭐 어떠냐는 식으로 말했다.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체면 챙기게 생겼나?”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똑같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죽긴 왜 죽습니까? 이제 시작인데.”
“음?”
나는 딛고 있는 땅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검붉은 흙더미 속에 피어난 초록의 잎사귀.
“새싹?”
구정철의 눈에는 그냥 새싹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아이템: 라그라주의 새싹]
내가 뿌린 씨앗이 드디어 싹을 틔웠다.